돌고 돌아, 기어코
카이멜 시레노바 x 리비에르 시라
그들은 나를 물러버린 겨울이라 불렀다. 어찌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늘상 생글생글 사람 좋은 미소를 뒤집어쓰고, 공기 가득 불어 넣은 풍선처럼 가벼운. 나는 정착지 없이 떠다니는 잎새와도 같았다.
나에게 주어진 의무를 적당히 어깨에 짊어진다. 하지만 그 무게에 구속되지 않도록, 적당히 떨쳐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어진 끈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지만 결코 얽매이지도 않도록.
차마 한겨울의 얼음이라 불릴 정도로 단단하지 않았고, 무겁지도 않았다. 이슬에 낀 서리마냥, 다음 날 아침이 오면 스르르 녹아버리고 말 안개 같은 마술사.
그것이 그들이 나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내 마음속에 소중히 숨겨둔 작고 반짝이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구태여 그렇게 이해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그렇게 얄팍한 허상 뒤에 열쇠 없는 서늘한 자물쇠를 감춰두었다. 짧았던 봄날이 나를 떠나고,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겨울이 도래하며, 감정이란 마음의 강은 흐르기를 멈추었다.
메마른 것이었을까. 손끝에서 피어나는 얼음에 비친 시린 눈동자는 그저 온기 없이 웃었다.
마른 사막에 불을 피운 듯, 달라지는 것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우리의 손이 맞닿았을 때도 큰 기대는 없었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머무르는 이는 아니리라 확신하여 고개를 돌렸지만.
네가 남기고 간 온기가 메말랐다 생각한 깊은 곳에 변화를 가져왔다.
단번에 꽃이 푸르게 싹틔우는 기적은 아니었지만, 가슴 속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손을 가슴께에 대고 눈을 감는다. 느리지만 확실한 박동이 울린다. 무너질 리 없다고 생각한 벽에 금이 간다.
그 강은 메마른 것이 아니었다. 그저 견디기 힘든 한기에 얼어붙은 것뿐이었다. 그 누구도, 자신도, 쉽게 다칠 수 없게. 단단히 다져진 얼음 강 아래, 아직 무언가가 숨을 틔울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먼 과거의 잔재에 침몰해 안주하고 있던 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이는 태양과도 같아서, 타죽는 것이 아닐까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그 온도는 나를 화상 입히는 법 없이, 그저 녹여 내릴 뿐이었다. 그 어떤 바람도 흠집 내지 못한, 내가 쌓아 올린 얼음의 성벽을.
얼어붙은 마음이 눈물로 녹아내렸다.
나의 운명, 나의 필연. 영겁의 시간이 흘러 내 주변의 모든 게 먼지로 변해 사라지더라도, 유일하게 곁에 남아있기에 안심할 수 있는 내 사람.
기꺼이 웃으며 네 손을 다시 마주 잡는다. 이제 일어서 내 발로, 네 옆을 걸어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애절하고 아름다웠던 추억을 가끔 돌아보는 한이 있더라도, 매몰되지만은 않겠다.
나의 온기, 나의 따스한 빛, 내가 내릴 수 있는 닻.
내 견고한 얼음 성이 녹아 흐르는 강물이, 돌고 돌아 기어코 너라는 찬란한 바다에 닿기를 소망한다.
Written 21-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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