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츄린
유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어렵다는 것은 아직 익숙하지 않다는 것

HONKAI by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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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츄린이 레이시오의 강의를 도강합니다.

CP 요소… 눈 크게 뜨고 보면 있음. 모브(NPC) 비중 적지 않음. 아무튼 레이시오 교수님 덕에 어벤츄린은 제법 행?복해집니다.

육무린(@murin_6636)님과의 연성교환으로 작성했습니다.

대략적인 플롯은 「익명을 원하는 머시기(이렇게 적기로 했습니다)」님과 이야기하며 짠 것입니다.


#1.

“평가 방식은 출석, 보고서가 각각…….”

탄산칼슘이 도자기에 닿아 정갈하게 부스러진다. 지나가며 흘려듣자면 날카롭지만, 눈 감고 귀에 담으면 그 소리가 곱다. 꼭 흰 그것을 손에 쥔 ‘그’ 자신처럼. 바스러져 그어진 흰 흔적들을 이어 읽어보자면,

「일반 물리학 실험」

이제는 눈치챘을 것이다. 요컨대 칠판이 분필에 닿아 닥닥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다. 이 공간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 모양새에 집중한다. 나조차도 그렇다. 언젠가 듣기로는 특수 제작한 분필이라던데. 필기감에 그립감, 손에 묻어나지 않는 것까지 고려한 무언가라고……. 하긴. ‘그’ 정도의 능력이라면 새로운 재료를 발명했다 해도 이상한 것은 없다.

으흠, 이제 집중해야지. 부하 직원들에게 들었던 말을 되새긴다. ‘그’는 딴생각하는 학생을 100%의 정확도로 잡아낸다더라. 들은 바로는 그랬다는 이야기로, 진위를 믿는 것은 아니다. 사실이라면 도박판에서 놀았더라도 제법 괜찮은 인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석고상을 쓰고 있어 그 눈을 보지 못했음에도 그런 것만 같았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날아올 질문이 두려워 피하는 평범한 학생처럼. 고개를 숙이면 책상에 내려놓은 손과 팔이 한눈에 시야로 들어온다. 가지런한 필기구와 노트도, 과할 정도로 다림질에 힘을 준 체크무늬 셔츠와 꼼지락거리는 손가락도. 더하자면 움츠러든 어깨에, 책상 아래로는 보이지 않지만 잘 모은 다리까지.

“전달 사항은 끝이다. 질문 있나?”

들인 시간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정보량. 아주 푹 자며 들었더라도 이해는 물론 암기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주위에서 손이 하나둘 올라온다. 하나 같이 초롱초롱한 눈빛이다. ‘대학교 1학년 학생’이라는 집단은 이렇게까지 나약한 것인가.

“교수님의 석고상 구입처가…….”

“진리대학교가 질문의 의의에조차 무지해도 입학할 수 있는 곳인 줄은 미처 몰랐군. 다음.”

“사업 후계자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때때로 결석하게 될 것 같습니다만.” 여기서 안경을 한 번 치켜세웠다. 뭐지? “결석이나 지각에 양해를 미리 구할 수 있겠습니까?”

“결석과 지각의 기준에 예외는 없다. 다음, 너.”

“저, 교재 이름을 잘 못 들어서 말인데…….”

교수님께서 이런 질문에도 답해 주실 줄이야. 턱 괴고 싶은 욕망을 참아낸다. 막 컴퍼니에 입사한 신입도 이따위 질문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병아리들이 몇 년 후면 컴퍼니에 들어온단 말이지. 지루한 시간이 흘러가는 도중, 이제는 늘어지는 하품까지 참아내며 곁눈질로 또 다른 컴퍼니 사람 셋을 찾…다가, 석고상 고개가 이리저리 돌아가는 것에 금방 관두기로 한다.

“조를 나누겠다.”

영민하신 교수님께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겠나. 두 손을 책상 위에 가지런히 모으고, 교수님의 말에 집중하는 착한 학생이 된다.

그러니까, 그게.

‘그’는 레이시오 교수이며, 나는 이 강의의 도강생이다.

#2.

이쯤에서 의문이 하나, 아니, 적어도 하나 생겼을 수 있다. 굳이 어설픈 변장까지 하고 기어들어 왔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돈이라면 넘쳐나고, 시간이라면 부족한 와중 ‘도강’이라는 선택지는 불합리해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아무튼 그 수많던 일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까라고 해 깠다.

직장인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 P45라고 해 예외는 없다. 직급이 높아지며 바뀐 것은 물론 수없이 많다. 대우, 보수, 거주 환경, 통장 잔고 등. 하지만 물리 법칙과 같이 변하지 않는 것도 존재한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던가, 에브긴인은 경계하고 멸시해야 한다거나, 보석은 세공된 후가 가장 빛나는 법이라거나.

――그렇게 나는 ‘오스왈도·슈나이더’가 되었다.

재차 많은 것들이 생략되긴 했지만, 대충 그런 이야기다. 본디 삶이란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오리엔테이션을 끝내자마자 바로 첫 강의에 돌입하는 교수의 존재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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