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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챠 타입 16

원신 - 타르탈리아

12월의 어느 날이 되면 몹시 소란스러워진다.

아이리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옅은 푸른 빛에 옅은 잿빛 구름이 있었다. 곧 눈이 오려나. 구름이 제법 켜켜이 쌓인 탓에 금방이라도 차가운 솜을 토해낼 거 같았다. 세차게 바람이 불자, 아이리스의 긴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이 스네즈나야에서 눈이 내리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다른 지역보다 추운 편이니까. 아이리스는 눈이 오면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숨을 토해내자 하얀 입김이 모락 피어올랐다.

빨리 가야지.

아이리스는 제 품에 고이 모신 뜨개질용 실을 보았다. 본래 썼던 실은 어느새 다 떨어져서 새로 사서 가는 길이었다. 특별히 무언가 만들 거라는 계획이 있는 건 아니었다. 적당히 생각나는 거 만들어야지. 뜨개질은 의외로 재밌었다. 제 한계를 시험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제법 적성에도 맞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단조로웠다. 점점 날이 추워지니 집에 틀어박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이리스는 걷던 도중 볼에 차가운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었다. 눈이 올 거 같았는데, 그게 지금이었나보다. 제 추측보다 일찍 내리는 눈을 피하고자 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뜨개질용 실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주황색, 분홍색, 붉은색…. 색색의 실이 제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아이리스는 식탁을 톡톡 건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무슨 실로 만드는 게 좋으려나. 아이리스의 손이 어느새 주황색 실로 향했다. 주황색은 꼭 타르탈리아를 생각나게 만드는 색이었다. 어쩐지 그가 보고 싶어졌다. 그럴 때마다 그는 꼭….

“안녕.”

…어디선가 나타났다.

아이리스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온 걸까. 현관 앞에서 타르탈리아는 어깨에 묻은 눈을 탈탈 털어냈다.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날 줄이야. 아이리스는 타르탈리아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타르, 언제 온 거야?”

“지금 막. 네가 가는 게 보여서 내친김에 따라왔지.”

“어디에 있었…어?”

왜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까. 평소였다면 진작 그의 존재를 깨달았을 텐데. 어쩐지 무방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들자 부끄러워졌다.

“부엌 좀 빌릴게.”

타르탈리아는 능숙하게 부엌으로 향했다. 아이리스는 그의 뒷모습을 빤히 지켜보았다. 그러다 이내 식탁 위에 두었던 실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타르탈리아가 만든 건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그의 특제 수프였다. 예전에도 종종 얻어먹었을 때가 있었지. 아이리스는 타르탈리아가 저를 위해 만들어 주었다는 게 기뻤다. 그가 만들어 준 요리를 먹으며 대화할 수 있다. 단순했지만, 그만큼 아이리스에게 있어 타르탈리아는 중요했다.

처음에 만났을 땐 이렇게 친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걸 깨달았다. 타르탈리아는 수프를 한 입 떠 먹으며 아이리스에게 질문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뭘 만들 생각이야?”

“2m 목도리? 아직 제대로 정한 건 아니어서 잘 모르겠어.”

무엇을 만드는 게 좋을까. 우선 색깔은 주황색으로 정했다. 흐음. 뜨개질로 인형을 만들 수 있으려나. 다른 것보다 복잡하겠지만, 만들 보람이 있을 거 같았다. 타르탈리아는 생각에 잠긴 탓에 손이 멈춘 아이리스에게 말을 걸었다.

“먹을 때는 여기에 집중해야지.”

아이리스가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렇게 먹을 기회가 언제 오겠어. 아이리스는 손을 바삐 움직였다. 따뜻한 게 뱃속으로 들어가니 노곤노곤해지는 거 같았다.

“벌써 한 해가 다 간다니까 시간이 참 빠르지 않아? 이번 달에는 좀 할 만한게 있으면 좋을 텐데, 도통 생기질 않는다니까.”

“그렇게 자주 누군가랑 싸울 일이 있으면 상대방이 더 지치지 않을까.”

타르탈리아는 종종 무서울 정도로 누군가와 싸우는 상황에 집착했다. 즐겁게 한다고 해야 하나. 서로 무기를 겨누고 싸울 때마다 생기가 넘쳤다. 걱정될 때가 많았지만, 타르탈리아가 세 살짜리 어린애도 아니었기에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알아서 잘하겠지. 어느새 두 사람은 수프를 다 먹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할 일 있어?”

“딱히 없을걸.”

“그럼 낚시나 하러 갈래? 춥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재밌으니까.”

“낚시말고 다른 건 안 되나….”

이렇게 눈이 올 정도로 추운데 낚시를 하겠다니. 물고기를 낚으러 가는 것도 아니면서. 크리스마스 낚시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았다. 아이리스는 가기 싫다는 듯 작게 투정 부렸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낚시할 때 필요한 걸 꼽아보았다.

“……혹시 할 말 있어?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까 이상해.”

“그냥, 이렇게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편안한 자세로 저를 바라보는 타르탈리아의 모습에 영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이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프 그릇과 숟가락을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설거지는 나중에 해야지. 특별하게 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아이리스는 무척이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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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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