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the BEYOND
Over the BEYOND 세계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남몰래, 신속하게, 시나브로 시작되었다.
처음은 ‘나무’부터였다. 세계 각지의 숲과 산, 거리에서 하룻밤 새 지나치게 커다래진 나무들이 발견되었다. 풀이나 꽃에도 예외는 없었다. 나무 하나가 휴양지의 고층 빌딩만큼 자라났고, 아기 손바닥만 했던 들풀이 어른 머리통만큼의 크기로 커졌다. 수많은 식물학자들이 비대하게 자란 풀과 나무를 조사하기 위해 앞다투어 달려 들었다. …… 그러나 아무도, 심지어는 그 학자들마저도 알지 못했다. 그들이 또 다른 ‘변화’의 불씨가 되리라는 것을.
3개월이 흘렀다. 허나 그 시간이 무색하게, 세상은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식물들이 발견되었고, 자라났고, 설상가상 이변을 두려워한 사람들이 뭉쳐 곳곳에서 사이비 종교와 종말론을 지어냈다. 세기말, 폭풍전야라는 이름이 꼭 어울리던 시기.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불안과 혼란이 수면의 기저에서 넘실대며 터져나갈 때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두 번째.
‘나무’들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학자들이 하나 둘 사라져갔다. 소리 소문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조사를 나갔다가 사라지거나, 산책을 갔다가 사라지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또는 아무 이유 없이 사라져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라진 아버지, 아들, 어머니, 딸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어제는 두 명이, 오늘은 네 명이, 내일은 여덟 명이… 울며 길거리를 헤집었다. 무능한 정부를 탓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하지만 무엇 하나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세상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었고 하루하루 하릴없이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사이로 커다래진 나무가 육식을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런’ 종류의 소문이 늘 그렇듯, 출처가 불분명한 익명 게시판에서 시작된 ‘경험담’이었다. 흐릿한 화질의 동영상과 함께 게재된 게시글에는 사람을 삼키는 나무의 이야기와, 실종된 학자들의 신변에 대한 추측이 달려 있었다. 함께 첨부된 또 다른 동영상에는 예의 ‘돌연변이’ 나무가 스스로 뿌리를 우득이며 움직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야기는 날개 돋힌 듯 퍼져나갔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치부하면서도 혹시나,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더욱 더 많았다. 밤길을 걷는 사람들이 적어지고 ‘공원’이라고 일므 붙은 장소들은 줄줄이 문에 자물쇠를 걸었다. 찾는 사람도 없고, 공원을 관리하는 이들도 일을 꺼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파견되었던 학자들도 한 명, 두 명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돌아온 사람보다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았다. … 이제는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세간의 공포는 실체를 가졌다.
‘식인’ 나무를 베어내라는 원성이 빗발쳤다. 한 편으로는 나무를 베어냈더니 속살이 시뻘갰다느니, 붉은 피가 왈칵 흘렀다느니 하는 괴담들이 우후죽순 터져 나왔다. 공포에 모인 사람들이 모임을 만들고 그 모임에 이름이 생겨 곧 종교가 되었을 정도로, 온 세상이 겁에 질린 채 시간이 흘렀다. 누구도 ‘나무’의 곁으로 가려 하지 않았기에, 길거리는 낮에도 휴일에도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결국 각국의 정부는 ‘나무’를 베어내기 위해 총화기와 군인들을 동원했다. 그렇게 ‘첫 번째’ 벌목 부대가 출동을 준비하던 그 날에.
그 날 밤, 모든 ‘나무’가 시커멓게 말라 ‘비틀어졌다’.
거대했던 예전의 모습은 다 꿈이었다는 듯, 초라한 모습으로 휘어진 나무는 더 이상 식인 괴물의 모습도 돌연변이의 모습도 아니었다. 길거리에 흔하고 흔한, 수명이 다한 나무의 모습. 나뭇잎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쪼그라든 모습은 분명 인간의 두려움을 살만 한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은, 안심하지 못했다.
안심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6년 전.
세상을 발칵 뒤집었던 ‘대변이’ 이후, 어느덧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수많은 사람들의 실종을 야기했던 그 날, 그로부터 세상은 격변의 물살 한 가운데 내동댕이쳐졌다. 상냥한 예행연습 따위는 없었다. 모든 것은 시작과 동시에, 즉시, 곧바로 들이닥쳤다. 길거리에는 전에 없던 이생물이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사람, 동물, 식물, 사물을 가리지 않고 먹어 치우는 마수까지 출몰했다.
전세계가 너 나 할 것 없이 큰 혼란에 빠졌던 시기였다. 개중에서도 가장 크게 흔들린 곳은 세계 최강대국이라 이름 높던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었다. 물론, 썩어도 준치라고 ‘겨우’ 그 정도로 그 큰 나라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지구의 세계 공용어는 여전히 영어였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나마’ 안전한 미합중국으로 떠나길 원했다. 문제는 단 하나, 2019년 대변이 사건으로 ‘세계수(World Tree)’라는 폭탄을 떠안아버린 뉴욕 주의 상황이었다.
혹자는 어디 신화에나 나올 법한 작명 센스라며 비웃지만,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모습을 보자면 거기에 ‘세계수’라는 단어 말고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싶은. 대변이 이후 ‘나무’들이 자취를 감춘 후(평범한 나무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12월 12일의 하룻밤, 단 하룻밤만에 나타난 그 나무는 그간 인간이 세워 온 그 어떤 건물보다도 웅장했다. 뿐만 아니라 거대한 나무의 가지는 사방으로 뻗쳐 뉴욕의 온 거리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결국 2019년 12월 이후 뉴욕은 대낮에도 가로등을 켠 채, 햇볕이라곤 구경조차 할 수 없고, 곳곳에 안개와 안개와 안개 뿐인 도시로 변화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수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이형수와 마수들이 태어났고, 뉴욕의 거리 곳곳이 ‘저쪽’과 이어지며 기상천외한 존재들을 뱉어냈다(‘이쪽’의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저쪽’ 세계에 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개체의 수를 세거나 분류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생김새의, 다양한 존재들. 그들의 단 한 가지 공통점은,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인간이 상상해본 적 없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무엇 하나 인간의 이해 아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세계수의 등장 초기, 미국은 수 차례의 무력 시도를 통해 세계수의 존재를 없애고자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계수가 어디 사막 한 가운데 나타난 것이라면 어떻게든 무시해 보겠지만, 뉴욕항 한복판을 떡하니 차지해 버렸으니. 그러나 시시때때로 마수의 알이 열리고 수확되는 세계수에는 제 아무리 빠른 제트기라 해도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지상으로의 진입은 아예 불가능했다. 세계수 주변에는 깊고 가파른 골짜기가 있어 골짜기 안으로 떨어진 사람들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미 정부는 6개월 여에 걸친 ‘세계수 섬멸 작전’이 무수한 희생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세상에 인력(人力)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계도시(City of BEYOND)’라고 명명된 뉴욕의 새 이름이 바로 그 증거로, 2020년 12월 30일, 미국은 2020 뉴 이어 성명을 통해 뉴욕에 대한 일체의 권리를 모두 포기하고 그곳을 (강제) 평화불가침 치외법권으로 발표했다. 한 때는 지구 상 가장 번쩍이는 곳으로, 사람들의 동경을 샀던 도시가 사람들이 가장 기피하는 곳으로 전락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리하여 기념비적인 2021년, 세계 초강대국은 그들이 자랑하던 세계 최고의 도시를 잃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옛 위명이 쉽게 사라진 것은 아니었고, 미국은 아직도 많은 도시와 억대의 국민과 막강한 국력을 보유한 선진국이었지만, 도시 하나를 통째로 (생살 떼듯) 떼어버린 상처가 쓰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여하간 그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이계도시’ 통칭 BY(비욘드)는 이제 평범한 사람들보다 이계인이나 그들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 또는 소문─뉴욕시티가 완전한 자유의 도시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몰려든 예의 ‘암흑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시사철 우중충하고 거리 곳곳에 괴상한 생김새의 동물─그것도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면─들이 돌아다니며 눈 감았다 뜨면 옆집 사람이 사라져 있는 기상천외한 장소에서 대체 누가 아이를 키우고,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할까. 좌천 당해 강제 이동된 만년 과장이나, 시대의 어둠을 먹이 삼는 부나방들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BY에도 엄연한 ‘예외’는 있었다. 도시의 마지막 정의를 지키기 위해 남아 있는 한 줌의 경찰들을 비롯해, 대변이 이후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냥꾼’들이 바로 그 예였다. BY의 경찰들은 마찬가지로 한 줌 남아있는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말 할 수 있는·없는 모든 범죄자들과 싸웠고 옛날 옛적부터 이계의 존재를 알고 그들과 싸워오던 사냥꾼들도… 시대의 태풍이 더욱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BY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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