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오브 히어로즈 나폴리탄 (상)

악몽: 마도서를 읽어주는 여자의 역동적 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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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마도서를 읽어주는 여자의 역동적 유희



이윽고 아발론의 ■■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아, 인사가 너무 짧았나요? 가끔은 담백함이 더 중할 때가 있다만. 
저는 드리는 입장이니 크게 상관은 없지만, 받으시는 쪽은 영 불만스러우신 듯 하니 수정해보죠. 
그동안 무탈하셨을까요? 제국을 무너트린 동맹의 맹주, 용이 수호하는, 아하핫! 미안해요, 어쩐지 웃음이 나서 말이에요. 그럼, 다시. 용이 수호하는 나라, 위대한 아발론의 ■■를 향해 체자렛 알티온이 기꺼이 고개를 숙입니다. 
어때요, 이제는 조금이나마 성에 차실까요? 흠, 뭘까요, 그 불만족스러운 표정은?
뭐, 상관 없겠죠. ■■의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시간을 돌리는 것밖에 존재하지 않을테니.
저와 같은 길을 가시는 건 거절하셨으니… 비상시 왕성 내 행동강령을 읽어드릴 수밖에.
딱 한 번만 읽어드릴 거에요. 따로 드릴 사본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귀를 바짝 세워서, 아주 잘 듣고, 꼭꼭 씹어 기억해요, 역동적인 유희에 너무나도 즐거울 아발론의 ■■시여.


자아, 그럼, 아발론 왕성 내 행동강령.

아발론 왕성에 들어가기에 앞서 하단의 대전제를 반드시 숙지하십시오. 오, 대전제. 이런 걸 제가 참 좋아하거든요.  

일. ■■의 기억에 남아있는 마지막 회귀는 열다섯번째-그러니까 단순 기억하고 있는 것이 열다섯번째고, 실제로는 더 많았을수도 있다는 소리군요? 지금 현재는…  열아홉번 째던가요? 아, 알았어요, 열여덟번째. 열여덟. 어머, 꽤나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시네요. 뭐, 크게 뭐라 할 생각은 없어요. 이 마도서를 읽어드리는 저는 너무나도 황송하기 때문에? 

이. ■■ 의 기사들은 ■■가 행동강령에 벗어나지 않는 이상엔 아마도 큰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겁니다. 음…  아마도? 왜 아마도, 인지 궁금하군요. 흐음… 정말, 어쩔때는 미쳐버릴 정도로 흥미롭다가도, 순식간에 팍 식어버릴만큼 재미없을 때도 있고. 관심 없으면 됐어요. 억지로 관심 끄는 건 제 취미가 아니니까. 그리고 어차피 ■■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테니까. 으음? 거짓말? 두고 보지요, 하하.

삼. ■■의 인과율들이 한 데 묶였던 시간선이어서 모든 기사들의 모든 속성이 공존합니다. 기억 안 난다고는 못 하겠죠? 아아, 정말 그때는 재미있는 놀이였었는데- 어머, 무서운 눈을 거두어주세요, 마저 읽어드릴테니. 속성에 관계없이 기사들은 저장된 기억에 의존하여 행동하고, 그에 따라 ■■의 대처방법이 달라야합니다. ■■, 그렇다면 과거의 기억을 최대한 많이 떠올려봐야겠네요. 어디 볼까요, 예를 들어, 음… 프람 이었나? 귀여운 바보머리가 삐죽 나온 아가씨. 그것과 마주쳤을 때에 추천드릴 만한 표정은…  역시 그거죠! ■■과 카르티스 대. 제. 폐. 하. 가 함께 스스로 유명을 달리한 날-? 어머나, 그런 눈으로 노려보시면 제가 너무 무섭잖아요? 자, 진정하고, 마저 들어보시는게 더 좋을 거 같은데. 좋아, 그래요, 그렇게 앉아요, 아주 착하게. 혹시 알까요? 정말 순순히 고분고분 착한 애처럼 굴면 퍼즐의 결정적인 조각을 제가 드릴, 지도… ? 

사. 왕성을 떠도는 기사들 중 누군가는 ■■을 기억할 수도 있고, 혹은 전혀 기억 못 할수도 있습니다. 가까운 사이었던 자가 ■■을 몰라보아도 서운한 티를 내지 마십시오. 음, 이 페이지를 잠시 함께 보시겠어요? '아주 강력히 권고하는 바입니다!' 라고 밑줄과 함께 별이 세 개나 갈겨있군요. 근데 ■■의 눈에도 참 익숙한 글씨체죠? 아주, 아주 아주 익숙한.  

오. 곁을 스쳐가는 기사를 5초 이상 응시하지 마십시오. 돌아보지도, 말을 걸지도, 제스쳐를 취하지도 마십시오. 당신을 맴도는 왕성의 다른 기사와 같이 굴고, 외부에서 침입해왔음을 들키지 않게 하십시오. 갈수록 규칙이 빡빡해지는데요. 이쯤되면 그냥 저와 손을 잡으시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은데. 차라리 죽어서, 이루던지. 어머, 농담이에요! 웃자고 하는 농담.

육…  빛, 불, 물, 대지, 어둠 다섯 속성 중 대지 속성이 그나마 온순하고 위험하지 않으며, 어둠 속성이 가장 집요하게 굴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삼번을 참고하십시오… 근데 너무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에요. '그나마' 인 거니까. 아, 좋아요! 그런 표정. 점점 기대 따위를 놓아가는 표정. 정말 아름다워요. 그렇지 않나요, ■■?

다음. 으흠…  아발론 왕성 오래된 봉쇄로 인해 덥고, 습하고, 탁합니다. 하지만 정복의 소매나 바짓자락을 걷어올리거나 장갑을 절대로 벗지 마십시오. 맨몸에 새겨진 이능의 빛이 기사들-특히 어둠 속성-을 불러모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항상 궁금했답니다, ■■의 몸에 새겨진 이명의 흔적들을. 구경해보고 싶은데, 당연히 안 보여주시겠죠. 좋아요, 시간이 흐르면 제가 싫대로 보여주실 수도 있는 거고. 휴, 정말 그런 표정은 무섭다니 말이에요. 사람 일이 항상 자기 뜻대로만 되는 걸 잘 아시는 분이 그러시는군요.

위의 행동강령을 어길시에는 ■■는 언젠가의 시간선에서처럼 십자로 못이 박혀 지하감옥의 중앙에 세워질 겁니다. 못박힌 육신은 당연히, 영혼조차 자유롭게 되지 못하고… 영. 원. 히이? 

 


그럼 본격적으로 본문에 들어가볼까요? 아아, 심장이 쿵쿵 뛰어요, 너무나도 흥분되어서. 

자, 흠흠, 아발론은- 대륙의 서쪽에 위치한, 작은 반도 국가입니다. 이번으로  열여덟번째 일생을 살게 된, 그러니까 기억나는 것만 쳐서 열여덟번째라는 얘기랍니다- 아, 알겠어요, 이번 생의 ■■는 생각보다 화가 많네요. 소리도 제법 지를 줄도 알고. 귓구멍이 아파 당장이라도 재갈을 물리고 싶지만- 사실 ■■의 반응이 너무나도 재미있어서, 일단은 그냥 두죠. 어쨌거나, 어느 시간선들에서 아발론을 중심으로 한 동맹은 갈루스 제국을 무너뜨린 적이 있습니다. 전 대륙에는 이윽고 평화와 안녕이 깃들었습니다. 언젠가의 ■■가 지하감옥에서 십자로 못박혀 매달린 채 발견될 때까지는 말입니다. 

십자로 못박히다, 십자로 못박혀 매달리다, 라…  약간 순교자의 느낌도 들고? 좋아요, 이번 시간선에서도 매달리게 되면 순금으로 지어지고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가시면류관을 선물로 씌워드리겠어요. 꽤 낭만적이지 않나요?

■■의 참혹한 죽음을 목격한 ■■의 기사들 사이로 빠질 것 하나 없이 역병이 돌았습니다. 고열과 헛소리를 동반하는 그것은 죽음까지 불러들이진 않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밟게 하여, 남겨진 기사들은 정신착란의 증세가 오게 됩니다. 군주의 대리인인 오스왈드 공작- 어느 시간선에서였나, 이 작자를 폰 중의 폰으로 써먹었던 때가 있었죠. 아아, 고아한 옛날이여- 딱 그때는 참 좋았었는데. 쨌거나, 마저 읽어드리자면, 오스왈드 공작은 심한 정신착란을 일으킨 기사들을 외부와 분리시켜야 한다고 판단해 왕성을 완전히 폐쇄합니다. 

끝없이 회귀하는 ■■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정체 모를 누군가에 의해 봉인된 내정관 루인 마이어와 망령처럼 왕성에 묶여버린 ■■의 기사들을 자유케하고 무사히 탈출하는 것입니다. 그러며 ■■는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으며, 미칠 수도 있고, 스스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살다, 죽다, 미치다, 그리고…!   

자, 이제부터 흥미진진하다고요. 예쁘게, 착하게 앉아서 경청해주시겠어요? 저라고 안 힘든 줄 아시나요? 계속 거의 저만 말하고 있지 않아요. 목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답니다. 그래요, 착하지. 마저 읽어볼까요. 

아발론 왕성으로 진입하는 방법은 다음 세 가지가 알려져 있습니다. 

첫번째. 외부와 왕성을 잇는 거대한 출입문을 거세게 두들깁니다. 그냥, 도 아니고 거세게, 거세게. 이는 가장 기본적이자 고전적인 방법이며, 슈나이더의 낮잠을 방해해 기분을 상하게 할 것입니다. 언젠가의 당신이 남긴, 아주 낮은 확률로 무탈히 들여보내줄 때도 있다는 기록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가 데인투스를 찾아 잡는 사이에 안으로 뛰는 편이 생존 확률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제가 알기엔 ■■, 달리기는 영 잼병인 걸로 아는데. 그래서 회귀를 많이 하셨나? 아, 농담이에요, 농담. 무슨 말을 못 하게 하시네. 

두번째. 문 앞에 서서 양 손으로 눈을 완전히 가린 채 골드 하나를 입에 물고 노래를 흥얼거리십시오. 노래의 종류는 상관없지만 되도록 최선을 다해 불러야 합니다. ■■, 노래는 좀 잘 하실까요? 춤은 못 추실 거 같으니 노래라도 잘 하셔야 할 텐데. 뭐, 성의가 중요한 거니까. 마도서에도 그렇게 쓰여 있군요. 약간이라도 성의가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데인투스가 빠르게 회오리치며 공중을 무자비하게 갈라낼 것입니다.  

셋. ■■의 제일 긴 머리칼 열 두 올, 잘 깎은 손톱과 발톱, 그리고 금화 두 닢과 넉넉한 곰인형을 준비합니다. 인형은 온통 흰 색이 가장 좋습니다. 갈라낸 뱃속에 그것들을 넣고 꼼꼼하게 봉합한 후 붉은 색 립스틱을 입술에 발라 곰인형의 배 위로 흔적을 찍습니다. 준비한 곰인형을 슈나이저에게 선물합니다. 다만 인사는 하지 않습니다. 이 방법은 생존한 채로 왕성에 들어갈 확률이 제일 높은 방법입니다. 흠, 확실히 주박 같은 걸 거는 쪽이 쉽군요. ■■는 싫다고 하겠지만? 

이어서 읽어볼까요. 위의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를 따른 뒤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쥡니다. 확실히, 눈을 감고 손을 모으는 행위는 뭐랄까, 썩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은, 그런 모습이랄까. 1부터- 3000까지- 속으로 거꾸로 셉니다. 고요한 와중에 귓가를 때리듯 ‘집결하라. 기사들이여!’ 하는, 당신과 똑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면 일단은 성공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대다수의 당신들이 영원히 실종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대다수의 당신들이라… 아, 여기 빨간 글씨로 '경고' 라고 써있어요. 읽어볼까요. 경,고. 슈나이더 곁으로 한때 왕녀였던 여자가 서있을 때가 아주 간혹 있습니다. 전 왕녀와 마주쳤다면, 그저 손발의 못질이 얼른 끝나기만을 기도하십시오. 흐음, 마지막 줄에 맘에 드네요. 아주 맘에 들어요, 너무나도 좋아요. 

다음 이어지는 내용은 짧지만 굵네요. 봐요, 아발론의 왕성을 탈출하는 방법부터 기술합니다. 탈출법: ■■의 방이었던 곳의 창문을 통해 바깥으로 뛰어내린다.

흠, ■■의 개인 침실이 꽤 높은 층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게 살라는 건지 죽으라는 건지 헷갈리는군요. 

이제 본격적으로 왕성 내부에 들어가는 군요. 보자…  여기는 앞에서 말한 내용들이니까 생략해버리고, 여기서부터 읽어드리면 되겠네요. 

하나. 왕성의 안쪽으로 통하는 큰 문이 보일겁니다. 앞에 서서 '아리에스! 아리에스! 아리에스!' 세 번 크게 외친 후 물고 왔던 금화를 문 밑의 틈으로 밀어 넣으십시오. 여기서 이름 외치는 것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아리에스가 아닌 다른 기사가 나온다면 지체없이 당신을 지하 감옥으로 끌고갈 것입니다. 아리에스, 라… 저도 알죠, 그 산양 비린내. 굉장히 독특한 냄새여서 여태 잊지 못하고 있답니다. 

둘. 왕성 안으로 진입하여 알현실로 통하는 복도를 가로지릅니다. 반드시 바닥을 확인해가며 발걸음을 옮기십시오. 새빨간 양탄자가 시작되면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걸으십시오. 최대한 소리를 죽여 걷는 것을 권장합니다. 왕성 어딘가의 균열 속 잠든 거대한 재앙은 귀가 밝습니다. ■■의 기사들이 정신착란에 걸린 이유 중 하나가 재앙 때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흠, 다섯 속성이 모두 존재하는 걸까. 흥밋거리가 하나 더 생겼는데요? 아핫.

거대한 재앙은 깊은 잠을 오래 자는 편이지만, 깨어나있기도 합니다. 복도의 커다란 창밖으로 보이는 재앙과 절대로 눈을 마주치지 마십시오. 재앙은 먹잇감을 가지고 잔인하게 놀이하는 것을 즐겨합니다. 

아주 드물게 미하일이 재앙의 어린 유생체와 어울리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미하일이 ■■의 존재를 알아채는 순간 안쪽을 향해 전력으로 뛰십시오. 만일 재앙 또한 당신을 눈치챈대도, 미하일은 어떻게든 거대한 재앙을 가로막을 것이고 ■■은 무사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미하일은 ■■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기사 중 하나입니다. 어머,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충성심이란. 정말… 쓸데없는 감정이 아니겠어요?

그럼 3장으로 넘어갈게요. 

긴 복도를 지났다면 곧 알현실에 도착합니다. 가장 안 쪽, 높은 곳에 위치해 용이 휘감아싼 형국을 하고 있는 의자에 앉은 소녀가 흐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샬롯은 아까 전의 미하일과 마찬가지로 당신을 기억해내는 몇 안 되는 기사 중 하나입니다. 샬롯과 시선을 교환하는 건 괜찮습니다만, 정면으로 가까이 다가가지는 마십시오. 대신 조심스럽게 뒤로 돌아가, 들고있던 신을 가만히 내려놓은 다음, 양손으로 그녀의 두 눈을 가려주십시오. 다른 신체부위는 건들지 않는 것이 좋지만, 흐느낌이 지나치다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는 정도는 괜찮습니다. 

샬롯이 눈물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가 되면 이유를 물으십시오. ‘그때 이 힘이 있었더라면..!’ 이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곳의 샬롯은 어둠 속성인가보군요? 아아, 참 가련하기도 하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허망히 지켜보며 얼마나 울었을까. 이제는 되살릴 수 있는 힘이 있어도 기회가 없어버리니… 아, 여기 덧붙임글이 있어요. 꽤나 흥미로워요, 같이 보실까요? 보세요. ■■에겐 다섯 번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해당 문장을 다섯번의 질문 안에 들어야하고, 대답은 무작위입니다. 다섯번째 실패와 동시에 ■■는 양 손목을 속박하는 누군가를 느낄 것입니다. 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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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 꼐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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