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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어딜 간 거야?”
한지는 항상 발 빠르게 돌아다니는 편이었다. 호기심이 많은 그녀에겐 세상 자체가 온갖 흥미의 집합소였기 때문이다. 그의 친구인 리바이 아커만은 주로 그런 한지를 가만히 지켜보거나 걷잡을 수 없어지면 말리는 쪽이었다.
“리바이, 드디어 거인 발톱을 이만큼이나 모았어.”
“그딴 거 기숙사 방에 들여놓을 생각하지 마, 내쫓아버릴 테니까”.
“너무하네, 네가 없으면 난 수도세랑 전기세를 내야하고, 그러면 빈털터리가 될 테고, 또 그렇게 되면 거인한테 줄 먹이도 못 사게 될 걸.”
“그러니까 그 망할 거인을 안 키우면 되잖아. 망할 안경.”
대화에서 알 수 있듯, 두 사람은 같은 기숙사에 살았다. 한지의 돈 아끼기 프로젝트의 일종이었다. 리바이는 마지못해 한지를 들인 것이었으나 무서울 만큼 빠르게 적응했다. 리바이는 결벽증이 있었다. 타고난 것이었다. 그는 정리 정돈을 좋아했으며, 물건들이 어지럽혀져 있는 걸 참지 못했다. 한지는 이와 정반대였다. 모든 성향이 다른 듯한 두 사람은 이상하게도 함께 있는 일이 잦았다. 한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요즘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냐?”
질문 그대로였다. 한지의 이유 모를 외출이 많아졌다는 것. 외출 이유를 말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일은 수도 없이 많았으나, 어디를 뭐 하러 가냐는 질문엔 숲에 들어가 거인의 흔적을 관찰한다든가, 도서관에 자료를 찾으러 간다든가, 동아리 방에 들른다든가. 같이 항상 답을 했다. 한지는 물어보기도 전에 밖을 나갔고 돌아와서 마주쳐도 답을 얼버무리며 피하기만 했다.
“그냥, 뭐... 할 일이 있어서.”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내가 뭘 하는지 너한테 다 말해야 해?”
말문이 막혔다.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자신이 한지에게 모든 일을 보고하지 않듯, 한지도 그럴 필요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리바이가 유독 한지에게 고착하는 이유를 궁금해했는데 자신 조차도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었다. 단지 무언가에 이끌려 행동하고 있다는 것 정도만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
*
리바이는 요즈음 꿈을 자주 꾸었다. 꿈에서는 주로 어른이 된 듯한 자신이 이상한 장치를 달고 돌아다녔으며, 거대한 무언가를 칼로 베었다. 많은 주변인이 죽고 사라지는 꿈. 여러 번 꾸어도 여러 번 불쾌한 꿈이었다. 이 영문 모를 꿈의 마지막 부분엔 항상 한지가 나왔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안대를 끼고 이제껏 보지 못한 눈빛을 한 채로. 주위는 뜨거웠고, 분위기는 가라앉아있었으며, 눈앞의 한지는 자신을 보내달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렇게 매번 한지를 보낸다.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상관 없다. 이 꿈에선 다른 선택지 따위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도 영문 모를 말을 내뱉는다. 지켜봐 줘 한지.
*
“… 일어나!”
눈을 뜬 순간 앞에는 한지가 있었다. 자는데 깨워서 미안. 1등으로 축하해주고 싶어서….
“생일 축하해, 리바이.”
한지가 홍차 세트와 케이크를 건넸다. 이거 살 돈 모으느라, 단기 아르바이트 한 거야. 미리 말하면 재미없으니까 비밀로 한 거고... 아 그리고 불법적인 일은 아니었으니까 걱정하지 마. 아는 사람 통해서 한 거야. 아주 합법적인 일이었다고. 한지는 며칠 동안 이어진 이유 모를 외출에 대해 이야기를 술술 늘어놓았다. 그렇게 궁금해하던 이유를 말해주고 있는데, 말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리바이? 방금까지 꾼 꿈 때문일 것이다. 난방을 너무 세게 틀어놓은 것 때문에 땀을 흘려서 그런 건지, 새벽이라 주변이 고요해서 그런 건지. 꿈속에서의 상황과 너무 비슷하게 느껴져서, 꿈과 현실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아서, 네가 마치 그다음 말엔 꿈처럼 보내달라 말할 거 같아서, 또 이대로 너를 보내야만 할 거 같아서, 네가 꿈속의 너와 똑같은 눈빛을 하고 있어서. 리바이는 자신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난 너를 보내고 싶지 않아.
“…그리고,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때부터. 지금도.”
알 수 없던 감정의 도착점. 흐릿하다가 다시금 강렬해지는 그리움 따위가 점철된 원망 願望. 머리에 흐르는 식은 땀이 방 안의 시곗바늘이 정각을 가리키며 내는 큰 소리가 생생하다. 꿈이 아닐 것이다. 한지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눈빛은 거짓말 따위 못하니까.
눈 앞에 있었다. 그 순간의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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