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Cerumillion
1.
"신병이네. 어린 것이 안됐어..."
♦️는 어릴적 무당이 한 말을 기억했다. 그가 원인모를 고열과 환각에 시달릴때, 보다못한 그의 어머니가 무당을 찾아간 것이었다.
그 기억은 그가 고향을 떠나 왔음에도 불쑥 그를 찾아왔다.
ㅡ
엄마가 너랑 놀지말래.
♦️는 어려서부터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자신이 본 것을 어른들에게 말한 뒤로 자신에 대한 수군거림이 커지자,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상관없는 이야기야.'
굿을 해야한다, 아니다로 시끄럽던 어느날, ♦️의 신병은 갑자기 씻은 듯이 나았다.
♦️의 부모님은 뛸듯이 기뻐하며 역시 의학적인 무언가라고 생각했으나, 그는 그것이 아니라는걸 알고 있었다.
"왜. 내 얼굴이 뚫리겠구나."
그는 맞은 편에 앉은 신비로운 푸른 머리의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언듯 보기에 매우 자애로워 보였으나, ♦️는 사내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는 자신을 신이라고 말했다.
처음에 ♦️는 그 말을 믿지 않았으나, 밀려오는 고통과 환각에 💎와의 계약을 수락했다.
💎가 내건 조건은 간단했다.
영혼.
다행히 💎는 조건을 바로 요구하지는 않았고, ♦️가 성인이 되기를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는, '의뢰'의 형식을 빌려 지금까지 조건을 이행하고 있었다.
영혼을 가져다 달라는, 조건.
"아니면, 설마. 이제와서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다고 말하는건가? 감히, 네가?"
"..그런 적 없어."
♦️는 처음 영혼을 추출했을 때를 기억했다. 따뜻한 무언가가 자신의 손에 잡히는 감각. 사람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는 모습따위를 말이다.
그는, 그래.
조건을 이행해야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살인도 처음이 어렵지, 두번은 어렵지 않은 것처럼 ♦️는 점차 이 생활에 무뎌졌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불쑥 생각했다.
내가 과연 이럴 자격이 있나?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귀신의 짓과 무엇이 다르지?
...내가 인간이 맞나?
의문은 곧 자기혐오로 번졌다. ♦️는 그날 밤 헛구역질을 하며 자신이 저지른 수많은 살인에 몸서리쳤다. 칼로 찌른 것만이 살인이 아니었다. 영혼을 소멸시키는 것. 그것도 살인이었다.
"오, 불쌍한 베르. 너를 보렴. 떨고 있구나."
내가 떨고 있다고?
♦️는 💎의 말에 퍼득 정신을 차렸다. 💎는 어느새 ♦️를 감싸안으며 속삭였다.
"아무래도 지성체의 영혼을 빼앗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지. 하지만 보렴. 그들은 생전에 수많은 죄를 저질렀고, 명백한 악인이었지. 하지만 너는? 가여운 너는?
너는 그저 불쌍하게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꼬마일 뿐이다. 저지른 죄라고는 전혀 없어. 아마 그들도 너를 위해 도움이 돼어 다행일거라 생각할거다."
"나..나..는 더 이상 못하겠어.."
"쉬이..괜찮아. 내가 있잖니. 나는 너의 모든걸 이해할 수 있어. 너의 고통. 불안. 고뇌.
우리는 너의 부모에게도 말 못할 비밀을 공유하고 있지 않니?
기억하렴. 나는 너를 그 망령들에게서 지켜주었다. 그리고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주었어.
우리는 '친구'니까 말이야.
나는 네가 친구를 실망시키는 나쁜 아이가 아닐거라고 믿는다."
💎는 눈동자를 요요히 빛내며 ♦️의 얼굴을 쓸어올려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의 눈가는 붉었고 한층 흘러내린 눈물자국이 있었다.
"나..나는, 내가,"
♦️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울음을 참는 건지 목소리를 잘 내지 못했다.
"많이 불안한가 보구나. 괜찮아, 깨고 나면 다 잊을거니까."
"그게 무슨.., 흡"
♦️는 가까워진 💎의 얼굴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무언가 말캉한 것이 입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에 숨을 들이켰다.
얼마나 지났을까, ♦️는 나른해진 몸을 느끼며 밀려오는 수마에 굴복했다.
마지막으로 ♦️가 본 것은 웃는 듯 얇게 접힌 푸른 눈이었다.
ㅡ
"이런 이중성때문에 인간에게 흥미를 느끼는거지만 말이야..."
💎는 잠이 든 ♦️의 목을 가만히 어루어 만지며 생각했다. 목에 가만히 손을 올리자 그 안으로 희미하게 뛰고있는 맥박이 느껴졌다.
그래. 너는 그런 잡귀 따위에게 죽으면 안된다.
내 손으로 죽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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