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찰나의 삶

#Cerumillion

다락방 by 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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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벗어나고 싶지 않나?"

♦️는 기분좋게 방안을 울리는 중저음의 목소리에 서류를 보다말고 고개를 들었다. 💎는 다리를 꼰 채로 소파에 앉아있었다. 시리도록 따뜻한 푸른 눈동자가 허공에서 그의 것과 마주쳤다.

"하하, 갑자기 무슨소리야? 심심해?"

"♦️, 난 진지해."

♦️는 뜬금없는 질문에 💎에게 몇번 장난을 쳤으나 완고한 💎의 반응에 이내 입을 열었다.

"음...매우 심오한데, 나는 그래도 인간으로 쭉 살고 싶어."

"왜지? 인간은 너무 약하고 악해."

"에이, 그래도 그 안에서 빛나는것이 분명 있는걸. 난 그걸 찾아내는..,"

"너는."

♦️는 💎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자 움찔했다. 💎는 자각하지 못한 듯 했으나 ♦️가 놀라자 이내 사과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인간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야. 난 그걸 지켜봐왔다. 자신의 인생을 걸고, 모든걸 태워도 재밖에 남지 않는 그 무력감을, 네 선의가 악의로 돌아올때의 그 절망감을, 그 모든것을 너는 기꺼이 받아들일 셈이냐고 묻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배신의 역사다. 내 생각은 과거에도 지금에도 변하지 않아."

💎는 오랜시간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토해내며 그의 작은 인간 친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친우는 무슨 생각인지 종잡을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는 바빴다. 그리고 가끔 미련할 정도로 착했다.

이것이 💎가 그에게 느끼는 감상이었다.

생각해보면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 작은 아이가 부모의 결백을 증명하겠답시고 인간들 모두가 꺼리는 숲에 들어온것 부터 그는 범상치 않았다.

'나는 부모님을 도우러 이곳에 온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저 호수의 물이 필요해.'

아이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는 헛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어디 한낱 인간 따위가 감히 날씨같은 중대사를 결정할 수 있겠는가? 보나마나 칠성, 그 고지식한 여자가 무언가 맘에 들지 않아 벌인 일이겠지.

'단명종들의 생각이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제 앞에 서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마을의 인간들에게 복수하고 싶은가?

그는 아이에게 짖궃게 물어봤다.

아이는 이를 농으로 알아들은 것 같았지만 그는 자신의 말을 실현할 능력이 충분히 있었고 아이가 허락만 한다면 기꺼이 그랬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그는 아이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러나 자신의 부모에게 누명을 씌운 인간들이 미울 법도 한데, 아이에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같았으면 지나갔을 일인데도, 그는 왜인지 알 수 없는 기분으로 아이의 장단에 조금 어울려 주기로 했다.

아이는 이제 자라서 청년이 되었다.

아이는 엑솔레이 라는 곳에 들어가 사람들을 도왔다.

아이가 '의뢰'라며 받아오는 임무들은 쉬운 것들도 있었지만 위험한 것들 투성이었다.

아이가 다쳐올 때마다, 그가 도와준 인간들이 주제도 모르고 그를 배신할때마다, 💎는 모든 걸 뒤집어 엎고싶은 심정이었으나 아이의 만류로 꾹 참고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는 참다가 기어코 말을 꺼낸것이다.

"나는 그런 꼴을 더이상 봐줄 수 없다. 미래를 보는 도술? 인간에게 그런게 허락될 듯 싶으냐? 설사 그런 도술이 있다해도 아주 큰 대가를 치뤄야 한단 말이다.

그건 금술이야! 시전자의 ■■을 태워 고작 수많은 갈래 중 하나만을 보여주는 파괴적인..!"

"💎."

♦️는 그의 이름을 부른게 다였으나 💎는 말을 멈추고 가만히 ♦️를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그의 눈에는 말하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해, ♦️는 속으로 웃음을 참았다.

"물론 나도 무섭지 않은건 아니야. 나는 너처럼 오래사는 존재가 아닌걸."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네 말대로, 인간은 나약해. 우리가 할 수 있는것은 끊임없이 시도하고, 부딪히는 것 뿐이야."

"그 길의 끝에 아무것도 없다면? 너의 답은 달라지는가?"

"아니, 이 길의 끝에 아무것도 없더라도.

난 그저 내 심장이 뛰는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야. 이 결정에 대해서는 후회하지도 않을거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소중한 인연들도 많아.

생각해보면, 내가 무모하게 숲에 들어가서 너와도 만난거잖아? 내가 무섭다고 마을에만 있었으면,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을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할 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내가 추구하는 길이고 신념이야. 후회없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부디 내가 내 신념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세르 네가 도와줄 수 있을까?

우리는 친한 친구니까."

💎는 희미하게 미소짓는 ♦️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미처 목적지를 찾지 못한 말을 삼켰다.

지독히도 이기적인 부탁이었노라고, 그는 감히 생각했다.

"그래서, 너는 지금 행복한가?"

💎는 한 묘비 앞에 서서 중얼거렸다. 주위에는 답하는 이 아무도 없이 비가 내리는 소리만 들렸건만, 그는 어렴풋이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은것 같았다.

그는 괜스레 허전한 가슴을 부여잡으며 입김을 내뱉었다. 그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를 정의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모든 생명이 순환한다는 진리를 알았으나, 그 사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니, 사실 그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의 작은 친구가 영원히 자신의 곁에 있기를 바랬다. 그래서 그날 그런 멍청한 질문을 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는 항상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릴 눈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못내 불안했던 건지, 그는 끝내 ♦️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었다.

...답한다고 해도 이제와서 뭐가 달라질까 싶지만.

그는 오랜만에 곰방대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아이의 건강을 위하여 그 옛날 끊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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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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