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버스 수뇌부의 일상.
카론, 초콜릿 먹고 싶어.
<음?>
째깍, 하고 시계가 감겨드는 소리가 났다. 초침과 분침도 움직이지 않는 그 시계는 가끔 그렇게 의사를 표현했다. 물론 지금 버스에 남아있는 두 승객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을 소리라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겠다만. 단테는 익숙하게 품 안의 PDA를 꺼내 천천히 글을 적었다. 유려한 글씨체가 가뿐히 흘러갔다.
[초콜릿 먹고 싶어?]
카론이 제 눈앞에 놓인 PDA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옅게 고개를 끄덕였다. 드물게 운전석이 아닌 단테의 옆에 앉아 있던 그녀는 발끝을 세워 버스 바닥을 긁었다. 별다른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어린 말이 발굽이 간지러워 긁는 듯한 모양새였다. 단테가 고개를 들어 그 맞은 편에 앉아 서류를 뒤적이던 특색이자 그의 안내자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는 데.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길잡이가 시선이랄 것도 없는, 대충 시계태를 마주했다. 알아서 하십시오. 라는 뜻이 잔뜩 담겨있는 피로에 젖은 얼굴이 구겨져있었다.
됐다. 저기서 더 말을 붙여봤자 괜한 잔소리-라고 하고 꼽으로 읽는다.-를 들을 뿐이었다. 단테가 PDA를 끌어왔다. 적당히 글귀를 적기 전에 몸을 살짝 숙여 카론의 얼굴을 살폈다. 살짝 내려간 눈꼬리와 다물린 입. 버스 의자를 손 끝으로 긁고 있는 걸 보면 분명 불만이 가득한 몸짓이었다. 단테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감자 전원 휴식을 취하거나 잔업을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확실히. 림버스 컴퍼니는 최근 들어서는 휴식기에 접어들고 있는 상황으로. 다른 둥지로 이동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 황금가지로 향하는 길은 안내되지 않았다. 버스는 멈춰있다.
그 말은 즉, 카론이 핸들을 잡을 일도 줄어들었다는 뜻이었다. 개인 시간이 늘어난다고 해도 그녀에게 있어서는 개인시간이 아니다. 그저 버스에 남아있을 뿐. 자신과 같이. 그렇다고 쳐도 단테에게는 시간을 흘려보낼 서류라는 일거리가 존재했다. 보고서를 적다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파우스트와 베르길리우스의 컨펌을 받고 있자면 더욱. 계속되는 반려의 지옥 속에서 살아가고 있자면 자유시간이 자유시간이 아니고, 휴식이 휴식이 아니다. 그렇다고 칭얼댈 상대도 없으니. 단테는 저절로 고립의 향을 맡는다. 같은 종의 냄새를 맡듯이, 끼리끼리.
그 시선의 끝에는 그의 운전수가 있었다….
그의 방으로 카론이 향하는 날이 많아졌다. 아니, 분명 처음 손을 건낸건 단테였다. 아주 작은 계기가 필요했으니까. 잠시 외출해서 가져온 단 과자를 선물하는 것으로 두 사람은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카론은 그 작은 보따리를 단테의 손에 건냈다. “시계가 가지고 있어. 하루에 하나씩 먹을 거야.” 즉, 그 말은 하나의 명분이 되었다. 카론은 어디든 갈 수 있었기에 어디도 갈 수 없었다. 아무런 명분이 없었으니까. 도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도달한 뒤에 무슨 말을 해야해? 뭐를 위해서, 가야하는 거야? 누구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어?
그 의문의 끝에, 돌아가지 않는 시계가 있다. 작은 사탕 꾸러미를 들고 서 있었다. 카론은 기꺼이 그 손을 잡았다. 이 버스에서 망각의 축복을 받은 이는 단 둘이고, 그 두사람이야 말로 아무것도 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아닌 자신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카론은 그 뒤로 쉬는 날마다 단테의 방문을 두드렸다. 단테는 기꺼이 그 문을 열어주었다. 기묘한 공생애가 흐른다. 그리고 그 문이 다시 열리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나오기 위해서가 아니라, 들어가기 위해서.
두 사람의 시간이 세 사람의 시간이 되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테는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서는 그 보호자를 감당해야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가끔 이렇게 우중충한 분위기를 잡고 서류나 들여다보고 있을거면 그냥 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눈 앞에는 특색이 한숨을 내쉬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단테의 곁에서 인형을 주물거리는 카론이 있었다. 그녀는 자주 말을 걸었고, 책을 읽어달라고 했으며,-단테는 시계소리만 들려줄 수 있었다.-단테의 서류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가끔 이렇게 나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기왕이면 단테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다. 이렇게 서류에 찌들어서, 별로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은 자신과는 달리 운전수는 꽤 많은 시간을 버스에 있어야 했다. 그의 보호자가 자신 없이는 외출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러 나갈까.]
“응.”
[같이 가자.]
“그럴래.”
카론이 벌떡 일어났다. 단테가 가만 일어나려다… 붉은 시선을 느끼고 멈춰섰다. 아주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만, 이미 코트를 챙겨입은 카론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는 듯 했고, 단테 또한 별달리 할 말은 없었다. 그러니까. 그의 ‘알아서 하라.’는 말은 귀찮게 일 만들지 말고, 대충 애 달래서 있으라는 뜻에 가까웠겠지만. 그러면 말을 하던지. 단테는 이제부터 제 귀로, 귀도 없지만. 여튼 직접 들은 말이 아니라면 듣지도 않기로 마음 먹었다.
“베르도 같이 가.”
[그래, 당신도 바람 좀 쐐.]
“카론 먼저 나갈게.”
어? 잠시만. 째깍, 하는 소리가 맞물리듯 사슬 소리가 울렸다. 간만의 외출이라서 신난 건 알겠는데. 근데, 지금 네가 나가면. 차마 말도 글도 적히기 전에 카론이 문을 열고,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찰칵, 하고 문고리가 닫히는 소리가 사형선고 같기도 했다. 단테가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서류를 뒤적이던 특색이 붉은 눈을 빛내며 그대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변명 해보시죠.”
<…하…….>
“하라고, 시계 대가리. 평소에는 잘만 떠들었잖아.”
<나가자마자 싸가지 진짜….>
단테가 PDA를 들었다. 빠르게 적느라 글씨가 좀 날아갔다.
[안되면 안된다고 하던가. 제대로 말해서 미움받기 싫어서 떠넘긴 건 당신이잖아. 좀 바쁜 거 아는데, 일주일 넘게 외출 없이 여기 박혀 있던 것도 맞잖아. 슬슬 나갈 때 되긴 했어.]
“그걸 왜 당신이 정하지.”
[그럼 네가 말했어야지.]
“하….”
[차피 나도 내일 줄 초콜릿 좀 사러나가려고 했어. 그런 의미는 아니어도 기념일 정도는 챙기려고. 당신도 추억 정도는 만들어도 되잖아.]
“방금 건 좀 주제넘었습니다.”
<짜증나.>
“챙겨서 나가죠. 기다리십시오.”
알고 있으면서 괜히 귀찮게 만든다고 더 틱틱거릴 줄 알았더니. 단테가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문을 열었다. 베르길리우스가 서류를 챙겨 문 밖으로 나갔다. 아마 제방에 들린 뒤에 대충 옷을 챙겨입고 올 것이다. 검도 한 자루 챙기는 것 같았다. 과보호인지, 당연한 결과인지는 모르겠다. 비전투원 둘을 챙기고 다녀야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건 알지만. 매번 외출 때마다 자신이 필수적이라고 구니 어디 나가기도 눈치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알게 모르게 카론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아니, 폐를 끼치고 싶다. 그에게 있어서 귀찮게 굴고 싶어진다.
그렇게라도 각인하고 싶다. 라는 걸까. 단테가 코트를 걸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서로에게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애정이라기엔 옅고, 증오라기엔 깊다.
가장 가까운 감정은 살의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무도 죽이지 않는다. 아무도 죽을 수 없다.
무엇하나 정의할 수 없는 곳에서 썩어가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당신은 날 죽여도 후회, 살려도 후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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