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 D

구마사제 베르길리우스 X 악마 단테

창고 by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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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이 무엇이냐?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벗은 형제여. 베르길리우스가 성당 뒷편 끝 좌석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성전 앞 근처에서는 성가대가 찬송 연습을 하고 있었다. 찬송이 귓가를 스치듯 지나갔다. 빠른 탬포로 이어지는 목소리. 드럼을 베이스로 조금 더 신나게 변곡된 것. 담대하게 싸울지라 저기 악한 적병과. 평일 오후 두 시가 넘어갈 즈음, 오전 미사가 지나 성당을 찾은 신자는 몇 없었다. 심판 날과 멸망의 날 네가 섰는 눈 앞에. 물론, 이 성당은 베르길리우스가 의탁하고 있는 곳이긴 했으나 주임 신부로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보좌를 할 깜냥도 아니다. 벌써 신부로 서품된지 20년은 거뜬히 흘러갔다. 이제 주임 신부로 한 성당을 꾸려나가야 할 즈음에, 베르길리우스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자신을 의탁하는 떠돌이 신세였다.

곧 다가오리라.

그것이 구마사제, 엑소시스트의 운명이었다.

그가 고뇌하며 양 손을 모아 감싸쥐고 무릎을 꿇은 채로 이마에 기도손을 눌러붙였다. 거친 손 끝과 핏줄이 선명하게 들어난 손. 여기저기 잔상처가 많은 그 두꺼운 손을 조심히 모아잡고 기도했다. 누구를 위해 기도하나. 십자가가 세워진 곳에서 가장 먼 곳, 구석지고 어두운 곳에서 베르길리우스는 기도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베르길리우스.”

“아, 파우스트 씨.”

베르길리우스가 느리게 고개를 틀었다. 그의 시선에 베일을 쓰고 있는 파우스트가 잡혔다. 그가 머무는 교구에 수녀님으로 머무는 이였다. 또한, 자신과 이 교구 주교님을 이어 말을 전달하는 이기도 했다.

“뭔가 전할 것이라도.”

그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파우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자리를 옮기죠.”

성전 끝,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지나며 베르길리우스가 그 뒤를 따랐다. 색색의 유리빛으로 떨어지는 빛이 무채색의 그를 스치고 멀어졌다. 검은 수단을 입고 성전을 벗어나자 성모상이 보였다. 그가 잠시 멈춰 고개를 숙여 경배했다. 파우스트 또한 그 옆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은 계단을 타고 내려와 성전 옆 건물로 향했다. 사제관은 보통 성전에 있었으나 수녀님이나 신부가 되기 전 성당에서 머무는 부제님들이 머무는 곳은 보통 성당 옆 건물에 존재했다. 베르길리우스가 구두를 벗고 허리를 숙여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층고가 조금 낮아서 그런지 허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었다. 파우스트가 잠시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늘 이렇게 숙여 들어가야 머리를 안 박을 수 있었다.

안쪽 세번째 방은 파우스트 수녀의 방이었다. 그가 가장 자주 드나드는 방이었다. 방안은 고요했고,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녀가 방 불을 켜고 탁상 근처에 섰다. 베르길리우스가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달칵, 느리게 몸을 움직여 그 앞으로 서자. 파우스트가 서류 묶음을 내밀었다.

“교구로부터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베르길리우스가 서류를 받아들었다. 첫장을 넘기자 가장 먼저 사진이 보였다. 두어번 눈을 깜박인 그가 다시 고개를 들어 파우스트를 바라보았다. 느리게 눈을 내리뜨던 파우스트가 시선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혼란을 이해한다는 듯이. 그리고 도무지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이번 대상과 관련된 정보입니다. 그리고, 베르길리우스. 당신의 찾는 이가… 네, 라피스가… 발견되었습니다.”

우직, 서류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든 그의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파우스트는 그 책망의 시선을 받아들였다. 베르길리우스가 느리게 숨을 내쉬며 한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손이 스쳐지나간 이후의 눈은 더이상 붉지 않았다. 대신 그는 천천히 파우스트에게 다가갔다. 한쪽 어깨를 잡고, 천천히 위압했다.

“파우스트 씨. 내가 아직까지. 사제로 있는 이유를. 부디, 착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윽, 네. 알고 있어요.”

“이깟 수단을. 아직까지 걸치고 있는 이유를… 말이죠.”

느리게 어깨를 쥔 손을 떼어낸 베르길리우스가 뒤돌아 방을 떠났다. 아마도, 그의 은신처로 돌아가겠지. 그는 처소를 마련하겠다는 본당 신부의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 지역과 나라를 바꿔 돌아다니면서도 성당에는 머물지 않았다.

구마사제 베르길리우스. 세간에 알려는 있지만 실제로 활동하는 것은 쉬이 보기 힘들며, 그 수도 적어 민간인들 사이에서는 영화로 보이는 것이 더 유명한 직업. 엑소시스트. 실제로 구마사제로 오래 활동하기는 퍽 어려웠다. 늘 악마를 쫒아 여러 나라와 지역으로 돌아다녀야 했으며, 정말 악마가 들린 이를 구마한다고 해도 이를 폭행으로 신고하는 경우도 늘었다. 현대로 접어들 수록 악마들은 교묘해졌고, 사람들은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을 불신했으며, 엑소시즘 자체를 판타지의 영역으로 생각했다.

그런 이들에게도 소문이 돌 만큼 유명한 구마사제가 있었으니, 바로 피의 가시관을 쓰고 망토를 두른 자며, 이 세상에 악을 멸하러 온 이며, 세상을 구원하고자 성흔을 입은 자. 길잡이, 베르길리우스라.

그가 구마하지 못한 악령이 없었으며, 내쫒지 못한 악마가 없었으니. 모두가 그를 신과 같은 자라고 여겼다. 이른 나이에 주교 서품을 올려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 있었으나 그가 직접 거절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더한 악을 물리치기 위해 온 것이라고. 그러나 최근 들어 그의 소식을 듣기 어려웠으니, 그것이 바로 약 10년 전의 이야기였다. 그가 후원하며 찾았던 고아원을 쑥대밭으로 만든 악마가 있었다. 가장 귀애하던 소녀의 몸을 훔치고, 도망쳐버렸다고.

그래, 그게 벌써 10년을 훌쩍 지나간 이야기였다. 베르길리우스가 그의 은신처에서 서류를 넘기기 시작했다. 라피스를 잃고, 정신을 잃은 뒤에 깨어난 병원 응급실에서, 그는 사제를 그만두겠다고 밝혔다. 사제의 이름으로는 아이를 찾을 수 없을 듯 하니, 이 이름을 버리고 아이를 찾겠다고. 그 악마를 찾아내 반드시 멸해버리겠다고. 피눈물을 흘리는 그에게 파우스트가 계약서를 내밀었다.

모든 교구를 동원하여 그 악마와 아이를 찾겠다고. 그 정보는 당신에게 공유될 것이고, 그 악마를 멸하는 것 또한 당신의 것으로 남기겠으니. 구마사제를 관두지는 말아달라고. 그렇게 베르길리우스는 여러 정보를 받으며 여전히 악마와 악령 들린 이를 구마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만, 교구에서도 모르는 일이 있었으니. 베르길리우스가 전화를 걸었다. 발랄한 음악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당신이 가는 길 그 길가에 새들이 피어 하늘을 바라고

익숙한 찬송가였다. 얼마 이어지지 않아 그 노래보다 더 발랄한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려왔다.

“어, 대표! 전화 받았습니다.”

“…덴버? 란 옌은.”

“지금 화장실이요. 대표 전화길래 그냥 받았지~ 용건 급합니까?”

베르길리우스가 펼쳐둔 서류를 바라보다가 눈을 깜박였다. 뭐, 상관은 없는 이야기였다. 결국 모두가 알아야 할테니까.

“급해. 교구에서 서류를 건냈다.”

“아따, 겁~나게 늦다니까. 그래서. 맞아요?”

덴버가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래, 이들은 베르길리우스가 개인적으로 꾸리고 있는 사무소의 직원들이었다. 세계 각국의 이상현상을 모으고 악마에 관련된 모든 지식을 긁어모으는, 오직 한 악마를 위해서 운영되는 사무실. 그것을 잡기 위해서 꾸려진 곳이었다. 교구의 정보만으로는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 베르길리우스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생각보다 유능했으니. 베르길리우스가 삼초간 숨을 고르고 나서, 대답했다.

“맞아. 단테 알리기에리 상원 의원. 다음 보수당 당수로 가장 유력한 후보.”

“설마설마 했는데 말임다. 예비 총리가 악마라니. 영국 꼴 잘 돌아간다 싶고. 대표.”

베르길리우스가 천천히 서류를 바라보았다. 두번째 장, 서류에 첨부되어있는 그 의체가 선명히 보였다. 흑백 사진으로 보이는 둥근 시계머리. 확실히 잡힌 타지 않는 불. 단정한 붉은 정장일 그 모습. 베르길리우스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티비에서 떠들어대니 모를 수가 없었다.

보수당이 밀어주는 젊은 인재. 귀족가의 외동이면서도 시의원으로 정치계에 들어오는 겸손한 정치가. 아이들을 사랑하고 시민을 위하는 모습으로 하원의원이 될 뻔 했으나, 오히려 상원의원으로 봉사하고 싶다고 밝힌 모습에 보수당에서 영입한 이였다. 현재 영국에서 가장 지지받는 정치가라고 한다면 그 시계의 이름이 그 누구보다 먼저 거론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정치인이. 다음 보수당 당수로 집권해 예비 총리라고 거의 확정된 이가.

악령들린 이거나, 악마라고? 베르길리우스가 느리게 침음했다.

“팩스로 서류 보내겠슴다. 아직도 팩스 쓰는 건 우리 밖에 없을 거야. 여튼, 그럼 대표. 좀 서둘러야겠는데요.”

덴버의 목소리 뒤로 란 옌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 니 내 전화 왜 가지고 있나.

“대표가 급하대서. 여튼, 대표! 빨리요. 오늘 그 시계, 보육원 봉사가는 날이라. 그, 지금 쯤 도착했을 거거든요? 대표가 후원하는 거기-!”

삐————. 소리가 나는 것처럼. 순간 주위가 멍해졌다. 목소리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베르길리우스가 전화기를 툭 떨어트렸다. 대표? 대표? 멀어지는 소리를 뒤로하고 베르길리우스가 무작정 밖으로 나섰다. 발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숨이 찬다. 막혀서 아플 정도로 뛰었다. 택시를 부르는 게 더 빠른 길이라는 걸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흐린 의식 속에서 베르길리우스가 달려나갔다. 장딴지가 단단해질 정도로, 연신 숨을 내뱉으며. 그래, 이곳은. 영국은. 그 고아원은…

…라피스를 잃은 뒤에, 부서진 그 잔해를 그러모아 세운 곳이었다.

이곳은 그의 무덤과도 같았으며, 늘 숨을 빼앗는 심해와도 같은 곳이었고.

그가 처음으로, 신을 의심한 곳이었으니.

그러니, 묻지. 베르길리우스.

누가 신과 같은가?


——헉, 허억. 거친 숨을 고르며 도착한 보육원 근처에는 차가 몇 대 도착해있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으나 비공식 일정인지 기자는 없었다. 파파라치 처럼 보이는 이가 몇 보이기는 했으나, 베르길리우스는 그런게 하나도 급하지 않았다. 그는 숨을 고르기도 전에 보육원 문을 두드렸다. 그의 눈 앞에는 이미 끔찍한 광경이. 그의 과거가. 시야를 잔뜩 잠식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그는 비릿한 혈향이 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가 급박하게 두드리자, 문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그렇게 남김 없이 앗아갔지. 너는.- 쿵, 그가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렸다. -내 아이들의 뱃가죽을 가르고, 장난감처럼 내팽긴 채로.- “누구신데 이렇게… 어머, 신부님.” -벽에는 피칠을 하고선, 나를 맞이하려는 것처럼 붉은 융단과 같은 혈로를 만들어서.- “아이들은.” 베르길리우스가 다급하게 말을 뱉었다. 문을 연 교사는 고개를 기울였다. 어머나. “말을 하시지. 지금 손님이 와 있어서요.” -사람의 숨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던 그 지독한 길 끝에서.- “땀이 엄청나요. 뛰어오셨어요?” 베르길리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급했다.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몸을 밀어 안으로 들어섰다. 손잡이를 잡아 돌리는 데, 끔찍하게 느리고 차가워서. 곧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 끝에 선 네가, 암흑에 선 악마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말했지.-

아저씨-!

“아저씨-!“

헉, 베르길리우스가 숨을 들이켰다. 금방이라도 착란할 것 같은 시야 속에서 붉은 광경이 계속 명멸했다. 시야속 어둡고 붉은 핏빛 색과, 당황한듯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그 붉은 사람이. 아니, 악마가. 지독하게 겹쳐 흔들렸다. 그가 한 걸음 나아가다 구역감에 고개를 떨궜다. 어느새 제게 달라붙은 아이들의 온기가 느껴졌다. 아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은 차갑고, 차가워서. 그래, 모든 피를 흘리고 창백하게 얼어붙은 그 아이들이…

아직도 제 품에 있는 것 같았다. 베르길리우스가 심한 어지럼증을 이기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당황하는 아이들에게 손을 뻗으려는 순간, 눈 앞에 구두가 보였다. 느린 손길이 느껴졌다. 장갑낀 손이, 제 어깨를 부드럽게 쥐는 게 느껴졌다. 사람의 체온이라고는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날, 쓰러지며 자신을 매만지던 손이 떠올랐다. 지금과 그 상황이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것 같아서. 그가 숨을 멈췄다.

급히, 내쉬려고 했으나 다시 내쉬는 법을 몰라서. 아, 어떤 게 뱉는 거였지? 뭘 뱉어야 했지? 무엇이. 내게 있는지… 반사적으로 등 뒤로 향한 손은 검 대신 허공을 짚었다. 아무것도 없이, 다시. 나는…

시야가 흐릿하게 명멸하고, 그리고 다시… 암전했다. 몸이 쓰러지는 것을 느끼며. 베르길리우스는 아주 큰, 궤종소리를 들었다. 뎅, 하고. 머리를 울리는 소리를.


…다시금 눈을 떴다. 베르길리우스가 느리게 몸을 일으키며 어지러운 시야에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여긴 어디지? 조금 서늘했고 어두웠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머리쪽에서 느껴졌던 부드러운 감각이 선명했다. 윽, 그가 아직 흐린 시야에 느린 신음을 뱉었다. 다시 눈을 뜨려는 순간, 누군가 그를 붙잡았다. 눈을 가렸던 손목을 잡은 감각. 사람의 체온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거칠고 미끄러운 감촉. 장갑. 베르길리우스가 급히 눈을 떴다.

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어정쩡하게 일어난 시계가 제 앞에 있었다.

쾅-!

생각은 뒷전이었다. 반사적으로 베르길리우스가 손을 뻗었다. 그 얊은 손목과 어깨를 쥐고 몸을 돌려 단단히 고정한 다음 의자에 내리치듯 제압했다. 뎅,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등에 무릎을 찍어눌러 단단히 압박한 다음에야, 베르길리우스가 주변을 살폈다. 그가 누구보다 잘 아는 의자였다. 그가 누구보다 잘 아는 곳이었고, 그가, 거의 하루를 보내는 곳이었다.

성전 뒷편, 오늘도 기도를 올렸던 그 자리에. 그는 지금 악마를 짓누른 채로 서 있었다. 어두운 성전에서 흐릿하게 스테인드글라스가 달빛에 빛났다. 푸른 빛이 그의 위로 산산히 부서지듯 떨어져. 중앙을 가르고 정면의 십자가를 비추었다. 베르길리우스가 고개를 들어 제대 뒤에 있는 십자가를 올려보았다. 그가 느리게 읊조렸다. 손목을 쥐었던 손을 풀어 그 시계의 등에 십자가를 그었다. 엄지를 깨물어 피를 낸 다음, 옷 위로 피를 떨어트려 십자를 그었다. 붉은 코트 위로 떨어진 핏방울이 점차 갈적색으로 변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데엥-!! 그의 아래에 깔린 시계가 급한 째깍소리를 냈다. 바르작거리며 몸을 경련하기 시작했다. 장갑으로 의자를 긁고, 헛된 발길질을 했다. 베르길리우스가 아예 그를 의자에 짓눌렀다. 다리를 펴 누운 자세가 되도록. 납작해져서, 이대로 구마할 생각이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이름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뎅—!! 시끄러운 소리가 성전 전체를 울렸다. 베르길리우스는 그 시계머리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등을 손과 무릎으로 짓누르면서. 시끄럽다. 늦은 밤이지만 혹시 사람이 올지도 모르니, 부수는 게 낫겠지. 그럼 적어도 소리는 못낼 것 아닌가. 그가 손을 뻗어 단테의 뒷목을 콱 집었다. 옷 사이로 검은 목덜미가 보였다. 상흔도 같이.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시계가 잔뜩 얼어붙어 틱, 틱 소리를 냈다. 이제 무엇을 할지 예상하는 것 같기도 했고, 불타는 작열통에 괴로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베르길리우스가 손에 힘을 줬다. 핏줄이 훅 나타나며 손끝이 파고들었다. 목을 쥐어 뜯을 것처럼, 서서히 압박을 가하자 그가 손을 뻗어 제 목을 긁었다. 제 손가락을 밀어내려고 앙간힘을 쓰고 있었으나 이 정도 힘은 우스웠다. 베르길리우스가 느린 숨을 내쉬었다.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시계가 고통스러워하며 마구 움직이다가, 서서히 움직임이 멈췄다. 마지막으로 쥐어짜는 듯한 궤종소리를 내기에, 손에 힘을 풀지 않고 더 가했다. 베르길리우스가 잠시 침을 삼켰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다시금 중얼거리고 있자니,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베르길리우스가 고개를 들었다. 느리게 움직이는 인형, 흰 머리. 파우스트였다. 잠시간의 망설임을 눈치챘는지 뎅-!! 소리가 다시금 울렸다. 베르길리우스가 무릎에 힘을 가했다.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그가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다가온 파우스트가 제 손 위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기도라도 같이 하려는 건가. 베르길리우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시선은 시계에게 고정한 채로, 암울한 목소리를 흘렸다.

“마침 잘 됐습니다. 파우스트 씨. 성수를…”

그 말이 이어지기 전에 파우스트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손목을 당기고 있었다. 왠지 다급한 얼굴이었다.

“베르길리우스 씨, 안 됩니다. 어서 손을 치우세요.”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악마입니다. 보육원에서…”

“네, 보육원에서 기절한 당신을 데려온 상원 의원이죠. 곧 노동당 당수가 될 이고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여전히 압박을 거두지 않은 베르길리우스를 바라보던 파우스트가 고개를 내저었다. 안 됩니다. 그 얼굴이 꽤나 다급해서. 꼭 자신이 착각하는 것 같았다. 이건 악마인데. 제가 멸해야하는 악마. 간절히 바라온 악마. 제 보육원의 아이들을 죽이고, 라피스를 데려갔을지도 모르는 그 악마…

“정신 차리세요. 베르길리우스 씨. 파우스트는, 이 악마가 보육원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라피스가.”

“네, 라피스를 데리고 있는 악마죠.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건의 범인이라기에는 많은 곳에 공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이를 멸해버리면 어떡할 건가요. 라피스의 행방을 알아야하지 않겠습니까. 베르길리우스, 정신 차리세요. 이는 분명히 악마이지만, 당신이 간절히 바라는 상대이기도 합니다.”

베르길리우스가 천천히 손에 힘을 풀었다. 그제야 파우스트가 손을 뻗어 이미 너덜너덜해진, 시계를 일으켰다.

“네, 당신이 바라는. 라피스의 정보를 알고 있는 자.”

그게 이 악마이자, 현 상원의원. 단테 알리기에리였다. 느리게 의자에서 멀어지는 그를 바라보며, 파우스트의 부축을 받던 시계가. 그래, 단테가 고개를 들었다. 손자국이 남아 살짝 피가 흐르는 제 목을 매만지면서 의자에 앉았다. 아무래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그는 두어번 고개를 끄덕이다가. 천천히 두어발자국 멀어지는 파우스트를 보더니 제 코트 안쪽에서 전자기기를 꺼냈다. 익숙하게 전원을 켜서 타이핑을 한 다음, 톡. 두드렸다. 전자음과 함께 그가 적은 글귀가 들려왔다. 베르길리우스가 천천히 벽에 몸을 기댔다. 서늘한 감각이 등을 타고 흘렀다. 그게 제정신을 차리는 데 좀 도움을 줄 것 같았다.

째깍, 시계가 말했다.

[자, 그럼. 이제 내가 말할 차례인가?]


중간에 등장한 음악들입니다.

1. 마귀들과 싸울지라.

2.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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