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단테] 독

올바른 방법으로 호흡하세요

창고 by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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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성에는 6.5장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워프열차에서의 사건은 금방 마무리 됐다. 모두가 모래폭풍을 뒤집어 쓴 탓에 버스 바닥에 모래가 자욱했고, 그걸 바라보던 운전수가 단단히 화가 나 버스 청소 당번이 돌아오기도 전에 13인 전부가 버스를 뽀득뽀득 세차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관리자 또한 그 육체노동에서 비껴갈 수는 없었는데. 돌아오자마자 베르길리우스의 개인실로 불려가는 파우스트를 보다보면 차라리 이 핑계라도 대고 싶을 정도였다. 이번엔 또 무슨 추궁을 하려나. 저 길잡이는 정작 길을 안내해야할 곳에서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채로 관망하고선 그 길을 헤쳐나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보고하기를 원했다. 상부에 올리는 보고서와는 조금 다른 내용이라도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흐름이라고, 그가 말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거대한 운명의 흐름, 도시의 흐름을 따라 나아가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모든 것은 필연 위에 조각 된, 길을 걸어가고 있을 뿐인가? 나의 모든 행동이 그래야했기 때문에, 나의 모든 선택이 미리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하, 단테는 웃는다. 그럴리가 없지.

만들어진 새장 속에서도 새는 운다. 수십가지의 가정이 범람하는 상황에서 그 누구도 미래는 이렇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것은 이 버스의 여정이 증명했으며,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의 삶이 예제가 된다. 모든 것을 예정할 신 조차 자유의지를 내어줬다. 단테는 그것을 이해한다.

열차는 꽤 많은 것을 내어줬다. 단테는 파우스트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이전의 경험으로도 이해하고 있었으나. 그녀가 완벽에 가까운 활로를 짚어주는 가이드의 역할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연, 그가 PDA에 설치된 검색 엔진의 결과값을 믿는 것처럼, 그는 그녀를 믿고 있었다. 그건 의지라고 하기에는 조금 깊었고. 맹신이라고 하기에는 가벼웠다. 단테는 대부분의 중요한 선택, 그래. 그가 이끌고 꿴 12명의 수감자의 활로나 감정적인 부분에서는 자신의 선택을 따랐으나. 길을 확인하거나 정보의 부분에서는 파우스트를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깨달았다고 바로 바뀌지는 않는다. 익숙함 이전에 그는 여전히 도시의 정보가 필요했다. 그는 파우스트에게 질문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녀가 답하지 못하는 상황을 생각해야하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상황에서, 그녀는 옳지 않다.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완전한 상태가 아닐 수 있다.

그것은 걸어왔던 모든 여정이 증명한다, 단테는 그들을 멀끔히 살려낼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시계를 계속해서 돌리기만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그들을 만전의 상태로 돌려놓는 게 아닌,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놓는 것이 단테의 일이었다. 그가 기억하고, 꿴 열 둘의 사도를 그저 살려놓는 것…

의존은 그저 알아낸 것으로 고쳐지지 않는다. 알아냈다고 한들 깊이, 심부에 박혀있는 습관을 고치기 쉽지 않을테다. 단테는 손에 담배 한 개비를 올려놓고 있었다. 이는 그레고르에게 얻었는데. 막 청소를 마치고 버스 벽에 붙어 담배불을 붙이기 시작한 흡연자들에게 하나 부탁해 얻은 것이었다. 피울 입도 없는 상대에게 하나 내어주는 것이 아깝지도 않은지. 그레고르는 단테를 빤히 바라보다가 가슴팍에서 담배곽을 꺼나 하나 꺼내주었다. 연기를 흘리며,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고.

“뭐, 복잡한 모양이지. 관리자 양반?”

<글쎄…….>

“불멍이라는 말도 괜히 있는 게 아니잖아.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

향초처럼, 그저 태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단테가 느리게 째깍, 소리를 냈다.

<담배 피우면 좀 나아져? 뭐든.>

“실제로 정신력이 올라가는 지는 모르겠다만… 흠, 그냥 호흡하는 것 만으로. 기분이 나아질 때가 있어. 관리자 양반.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만으로도 살아있다는 기분이 드니까.”

단순히 기호식품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래서, 지금 단테는 그 담배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관찰하는 중이었다. 검은 장갑 위로 유독 희어보기기도 하고, 흐릿하게 번져나가는 것 같기도 하다. 불길은 아니지만 한 물체를 이렇게 오래 들여보고 있자니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다. 조용하고 느긋한 새벽녘의 버스에는 침묵 이상의 고요가 존재한다. 꼭 시간을 잘라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 그래. 파우스트의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W사는 이렇게 낭비되는 시간들을 T사에 공급한다고. 그래서 시간 또한 이 도시에서는 공정하지 않다. 사람이 일반적으로 가져야하는 권리가 전부, 갈갈이 조각조각 나뉘는 기분이 든다. 그렇다면…

툭,

심상이 깨진다.

단테는 제 손바닥 위에 올려둔 담배를 집는 손을 가만 바라보았다. 그 손은 언제고 흉이 가득했다. 사람의 혈색이기에는 너무 창백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자. 뭐 하고 있습니까. 하고, 조금 한심하게 내려보는 표정을 마주했다. 참, 생각 할수록 점점 취급이 박해지는 느낌이다. 단테가 무릎 위에 올려둔 패드를 집어 글을 적었다.

[명상 중이었어.]

“할 일이 없나봅니다?”

난 관리자의 정신 건강도 좀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해. 문득 떠오른 말을 적지는 않았다. 수감자들의 정신력은 마이너스로 떨어지진 않는다. 자신이 있으니까. 하지만 내 정신력은?

[좀 쉬자.]

“쉬기는. 따라오시죠.”

[새벽이잖아.]

“차피 안 자잖아.”

그렇다면 할 말이 없다. 실제로 단테는 잠이 적었다. 늘상 불침번을 서고 있는 건 단순히 의무감 때문이 아니었다. 기왕 시계머리를 달아뒀다면 정신이 꺼지는 온-오프 스위치를 달아도 좋았을 텐데. 잠을 아예 자지 않는 건 아니다. 아무리 의체라고 해도 수면 비스무리한 건 존재하는지 침대에 누워 양을 643마리 쯤 세고 있으면 어느새 깜깜한 어둠에 빠진 것처럼 정신을 잃곤 했다.

다만, 그 감각이 잠이라는 것보다는 기절에 가까운 것 같고. 따지자면 두꺼비집을 내려 전기를 끊는 것 같은 기분이기에 선호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렇게 매번 불침번을 서고 있으면 열에 아홉 정도는 길잡이를 만났다. 나와있어서가 아니라, 주로 새벽 3-4시 즈음에 잠시 바람을 쐬러 나오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자다가 잠이 안 와서 나오는 걸까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그 사무실 겸 면담실에 들어가고 나서야 알았다. 이 사람 일하는 구나.

도대체 언제 자는 거냐고 물어도 답이 없었다. 매번 밤을 샐 만큼 일이 많아? 라고 물어도 대강 흘겨보고 말았으니. 잠이 안 와서 일을 하는 건지 일이 많아서 안 자는 건지. 눈 밑으로 짙어지는 다크서클을 관리할 생각조차 없어보였다. 그렇게 가끔은, 그 방에 들어가 베르길리우스가 서류처리 하는 걸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어느새 정신을 잃고 있으면 이른 새벽에 그가 시계를 두드려 깨우곤 했다.

오늘도 그렇게 재울 셈인가? 단테는 무릎 위에 올려둔 패드를 집고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손에 담배를 들던 길잡이가 슬쩍 흘겨보더니 복도 안쪽으로 먼저 걸음을 옮겼다.

<아. W사 효과 한 번 확실한데.>

보통 수감자들이 제정신일 때야 이 복도만큼 조용한 곳이 없었다. 즉, 그 말은 수감자들의 정신력이 낮아진 걸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새벽에 복도에 나와보는 것이라는 뜻이 된다. W사의 경험이 꽤 끔찍했던 걸까. 아니면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시끄러운 천둥소리부터 시작해서 캐롤, 파도 치는 소리에 놀이공원에 나올 법한 경쾌한 음악. 단테는 어떤지 테이프를 늘려 지직 소리가 울리는 것 같은 그 밝은 음악이 흘러나오는 돈키호테의 방 앞에서 잠시 멈춰섰다.

그 느려진 걸음을 눈치챈 걸까. 베르길리우스가 먼저 앞서 나가지 않고 단테를 바라보았다. 그 창문 너머, 고개를 들이미려는 단테를 바라보다 쯧, 혀를 차고 왼팔을 잡아 당겼다. 툭, 시선이 돌아간 시계가 고개를 살짝 숙여 붙잡은 손을 내려보다 걸음을 옮겼다.

<간다니까.>

틱, 들리지도 않을 불평을 하고 있자면 또 그 특유의 한심한 표정으로 내려본다. 그래. 아마 파우스트에게 전해들었겠지. 내가 이제 돈키호테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사실 알고나서도 달라질 건 없었다. 물론 단테는 정말 놀랐고, 어떤 얼굴을 해야할지 몰랐지만. 그 시계는 표정 하나 없는 탓에 말만 적당히 조절하면 됐다.

복도 안쪽, 열차가 연결되지 않은 딱 마지막 길목에 베르길리우스의 집무실이자 면담실이 있었다. 단테는 여전히 팔을 놓지 않고 끌고가듯 걷는 그의 보폭에 맞춰 두배는 더 빨리 걸어야 했다. 좀 놓으라니까. 틱틱 거려도 안 들리는 셈 치려는 듯 열린 문에 들어서고 나서야 그 손을 놓아줬다. 단테는 그제야 손으로 구겨진 코트를 두어번 치다가 패드를 두드렸다.

[그냥 빨리 오라고 하면 될 걸.]

“앉으시죠.”

사람 말을 좀, 아니, 시계 말 좀 들어라 이 양반아!

단테는 연신 틱틱 소리를 내며 제 기분이 상했다는 티를 잔뜩 내다가 책상 앞에 놓인 의자를 한번 두드리고, 제 지정석에 앉는 베르길리우스를 바라보았다. 그가 두드린 자리는 즉, 평소에 관리자가 앉는 소파가 아니라 바로 정면에서 베르길리우스를 마주보는 특별 면담석으로. 문제있는 수감자들은 저 자리에 앉아 특별한 ‘교육’을 받곤 했다.(단테는 아직 교육의 내용은 몰랐다.)

진짜 면담하자는 것도 아니겠고, 교육은 더더욱 아닐테니. 단테가 그 앞에 다가가 의자를 끌어 마주 앉은 다음 패드를 내보였다.

[당신, 상담이라도 해주려는 거야?]

내가 수감자들에게 해주는 것처럼? 고개를 기울이며 묻자 베르길리우스가 가볍게 시선을 마주하며 오히려 되물었다.

“그러면 안 됩니까?”

[아니, 안 될 건 없지. 그냥 의외라서.]

“고민이나 말해보시죠.”

안 그런 것 같지만, 그 열차를 탄 뒤에 당신 태도가 좀 바뀌었습니다. 베르길리우스가 읊었다. 전혀 보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그 시선으로 다 보고 있다는 걸까. 단테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패드에 글을 왕창 적기 시작했다. 사실 말이야. 저번 T사를 지나오면서 로쟈 상태가… 아닌 것 같아도 홍루도 걱정이 되고… 히스클리프도 그렇지. 사실 길을 다 지나왔지만 아직 마무리가 안 된 느낌이… 그레고르가…

그렇게 열 둘의 모든 고민을 돌아 파우스트의 차례가 되었을 무렵. 단테가 타자를 멈췄다. 베르길리우스는 슬슬 이 시계가 걱정이 너무 많아서 쳐서 기절시키면 생각 좀 줄이려나 생각하는 와중이었는데. 틱, 소리만 내고선 허공을 맴도는 손가락에 슬슬 말하겠거니 생각했다. 여태껏 한 소리들은 물론 진심으로 걱정하곤 있겠지만 말을 돌린 것에 가까웠다.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실제로 가슴속에 품던 고민은. 단테가 패드를 매만지다 글을 적었다.

[그거 기억나? 처음에, 황금가지를 회수하기 위해 구 L사 부지에 들어가기 전에. 당신이 나라면 이야기가 통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었잖아.]

베르길리우스가 기억을 더듬었다. 아, 분명 그런 말을 했다. 엉망진창이라는 이름을 넘어 제 기준 평균 이하. 교육할 가치조차 없던 수감자들에게 질려서 말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째깍이는 시계를 앞에 두고. 고해하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랬죠.”

[그 말, 지금도 유효해?]

티익, 여전히 불규칙한 시계소리가 들려왔다. 베르길리우스는 그 문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야기가 통한다라. 글쎄다. 그 시계를, 이 관리자를 여전히 그저 시계소리를 울릴 뿐인 기물로 생각한다면, 편리한 도구라고 생각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베르길리우스의 대화란 것은, 여전히 공적인 것에 가까웠다. 여전히… 고해소의 묵언이 아니라면 그 아무것도 편하지 않았다. 그 침묵을 뭐라고 이해했는지 모르겠다만, 단테가 한결 기분 좋은 째깍임을 냈다. 그래, 이게 문제였다. 베르길리우스는 이제 그 시계가 어떤 소리를 내면 기분이 나쁜 거고, 기분이 좋은 거고.

이 소리는,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문제였다.

[다행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신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어.]

단테가 천천히 글을 적었다. 조금 홀가분해지는 기분이었다. 사실, 베르길리우스와 대화를 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손을 먼저 내밀어줘서, 솔직히 조금 기뻤다.

[처음에는 관리자로서 인정한 걸까 싶었는데. 그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그럴 리가 없잖아. 섣불리 판단했다고 하기엔 그게 당신의 마음이었던 거지. 그 순간에는 정말로. 내가 조금은 마음에 들었다는 거라서. 기뻤어.]

남는 것은 결국 감정이다. 처음에는 의구심이었고, 나중에는 빈말인가 싶었지만. 결국은 기뻤다. 어쩌면 그 나름대로의 위로일까 싶어지기도 했고.

“….”

[사실, 이번 열차를 지나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 파우스트에게 너무 의존하고 있었어. 사실 내가 아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고, 모두가 자신 나름대로의 비밀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 그걸 알면서도 나는 그 순간에, 위험이 찾아올 때마다 내 수감자들을 붙잡고만 있었더라고.]

물론 이 사실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결국, 그들을 되살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나는 다른 무력을 기대할 수 없는 채로. 수감자들에게 이 목숨을 의지한 채로 걸어오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문제를 해결해 나갔으니까. 하지만, 정말로 그게 옳을까? 지나온 저택을 생각한다. 시간을 접어, 가속시키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 수감자들 개개인의 능력에 의지해서가 아니다. 내가, 스스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능력을 개화할 수 있었다.

한 발자국 물러서 있는 것으로는, 더이상 나아갈 수 없어.

내가 아는 것이 사실이 아니고, 내가 보는 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해도.

<별을 붙잡아, 나가야 하니까….>

단테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머리 위로 타오르는 불꽃이, 여전히 그을음 없이 피어올랐다. 베르길리우스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제 손바닥에 놓인 담배를 보았다. 저 불은 실제로 타지 않기에, 담뱃불조차 될 수 없었지만.

[어떻게 하면 의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했어. 그러다보니 당신에게 생각이 미치더라고. 사실, 당신은 길잡이고 정말 큰 무력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당신에게 의지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아. 그렇다고 그게 당신이 길잡이로서 일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야. 그렇지만… 위험이 처한 상황에서, 나는 당신을 생각하지 않아.]

그래서 저 시계의 말이, 그리 아프진 않았다. 실제로 옳은 말이기에. 베르길리우스는 그를 보는 것처럼, 앞으로 수감자들을 바라보겠다는 관리자의 말을 읽는다. 그게 옳은 선택인지는 알 수 없다. 그는 길잡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읽는 것은 큰 흐름. 여태껏 살아왔던 경험과 예민한 기감을 사용해 올바른 흐름이라고 믿는 곳을 안내할 뿐이다.

그 길을 실제로 겪는 것은, 관리자 본인의 의지다.

[그렇게 걸어가보려고.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 먼저 고민 들어준다고 해서 기뻤어.]

단테가 패드를 툭, 두드렸다. 어두워진 화면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다. 베르길리우스는 손바닥에 놓인 담배를 꾸욱 쥐었다. 점차 으스러지듯 부서지는 말린 잎을 두어번 문지르다 말았다. 한결 편안한 소리를 내는 시계 앞에서, 그는 옅은 통증을 느낀다.

그래, 멀듯 유지되는 관계에서 먼저 관계를 정의한 것은 관리자였고. 그는 그 정의를 뒤바꿀 수 없었다. 그게 옳으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당신은 수감자들만 관리하면 되고, 자신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그렇지만…

실제로 담배는, 중독되었다는 것을 느끼기 쉽지 않다. 수없이 호흡하고, 내쉬어서. 자신이 중독되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섭취한 뒤에. 그것이 끊어지면 알게 된다.

자신이 독을 호흡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하여 베르길리우스는, 이제는 중단된 호흡에 등허리를 선득하게 조여오는 독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다시는 향하지 않는 다는 것을, 그 걱정이 자신에게 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야. 그러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이 금단증상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다시금, 그가 욕심을 내는 순간.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감미로운 독이 주어질 것이다.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다정이라는 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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