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인

백세(4)

인소 실험체×연구원 AU

비소는 민화인을 두고 갈 수 없었다.

머릿속에 혼란만이 가득했다.

민화인이 악을 써 소리친다.

“정신차리세요, 비소!!! 어서 이 자리에서 벗어납니다. 곧 이 복도로 들어올거에요!”

“하…하지만.”

민화인이 비소의 두 어깨를 붙잡는다. 선명하고 흔들림 없는 눈동자가 비소를 꿰뚫어본다.

“하지만이 아닙니다. 난 죽지 않습니다 비소. 그러니 움직이세요.”

하나 말과는 다르게 민화인의 숨과 온기는 점점 멎어가고 있었다. 비릿한 혈향이 점점 짙어진다.

비소는 죽음을 느낀다.

^;##9:77

그것이 복도로 들어온다.

상월은 더이상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 않았다. 아니, 저건 생명이라 할 수 있는가?

도망쳐야해.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비소는 고개를 돌렸다 혈향이 짙던 곳엔 어느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 뿐이었다.

비소는 상황을 이해할 여유도 없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도망쳐야만했다.

뒤틀린 형상을 하고 눈이 없음에도 자신을 바라보는 저것으로부터 도망쳐야만했다.

뛰어!

비소는 달린다.

*

이제 겨우 동등해졌군.

비소는 숨을 몰아쉬었다.

도착한 장소엔 연구진이 모여있었다. 해당 사건에 대한 작전을 토의하는 이들과 부상자를 처리하는 이들 또한 있었다.

비소는 눈을 굴려 사라진 민화인을 찾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민화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비소는 그저 안전을 기원 할 수 밖에 없었다. 불안은 점점 커진다.

그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비키세요! 응급환자입니디!”

들것에 한 연구진이 들려온다.

젖어가는 들것을 타고 붉은 선혈이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건 민화인이었다.

비소의 뒷골이 서늘해진다.

“A0구역에서 발견했습니다. 연구진 인솔 중에 습격 받았다고 합니다.”

의료진이 몰려와 민화인의 상태를 확인하고 처치하기 시작한다.

겉으로만 보아도 그의 상태는 위태로워보였다.

다급해지는 의료진의 말투와 긴장감이 가득해지는 얼굴이 그것을 증명한다.

비소는 복도에서 맡았던 죽음의 냄새를 다시 한 번 느낀다.

“민화인…?”

의료진과 혼란만이 가득한 분위기가 비소를 감싸안는다.

*

수습이 어느정도 끝난 연구원 내부는 고요했다.

비소는 눈을 감은 이를 내려다본다.

고요한 내부처럼 눈을 감은 이 또한 상한 곳 없이 깨끗했다. 비소가 기억하던 그는 치명적인 상해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을텐데, 그런 흔적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이라도 눈을 뜰 것 같이 평혼한 얼굴은 전혀 미동이 없다.

“?”

비소는 그의 모습을 살피던 중 그의 손 언저리에 놓인 테이프를 발견하였다.

민화인이 쥐고 있었던 것일까?

비소는 매달리듯 그의 마지막 흔적일지도 모르는 테이프를 집어들었다.

달칵.

재생버튼이 눌리고 노이즈가 들려온다.


- rec. 002

실험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지 않습니까?

하… 얼굴 좀 피세요. 

누가보면 다 끝난줄 알겠어.


다짜고짜 작은 웃음 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기록이었다.

이번건 혼자가 아니었다.


-너… 이런 짓을 하고도 용서가 될 것 같아?

날 용서할 사람은 있고?

아, 쓸#데없는건 듣지마세요.

뒤로 넘어가죠.

###

날 데려온 이들은 내가 보이지 않아도 실제로 존재했다면 이미 죽음에 이르렀으리라 판단했지만, 안타깝게도 아닙니다.

전 생명활동에 관련해 제약이 없거든요.

당연한거 아닙니까?

전 고작 인류가 아닙니다.

하하하… 자신들 사이에 낯선 인물이 섞여있음에도 전혀 깨우치지 못하는 멍청한 모습들은 정말이지 웃음이 나와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제 순간순간의 유희죠.

그러니까 당신도 기분 좀 푸세요.


- rec. 006

말해보세요. 방법이 있는데 왜 숨긴건지.

내가 하고 있던 헛짓거릴 구경하면서 아주 기분이 좋으셨겠습니다.

-그건.. 방법이 아니야. 멸망이지.

그건 당신네들 사정이고. 난 아닙니다.

-넌 절대 이걸 성공시킬 수 없어.

당신의 희망일 뿐이죠.

-그가 그렇게 두지 않을테니.

풉.. 인공물에 불과한 그것이?

-그를 무시하지마.

하… 너무 기대하는것 아닙니까?

이제 고작 태어났을 뿐인데.

-......

뭐라 말 좀 해보세요.

비소.


“...!”

비소는 테이프를 다시 돌린다. 


……


하지만 아무소리도 담겨있지 않았다.

들은 시간만큼 다시 기다리니 말이 이어나온다.


말을 해보라니까 다시 돌리면 어떡합니까.


그것은 마치 비소에게 말을 거는 듯 했다.


말 거는거 맞습니다.

-대#답하지 마… 세요. 3##

아뇨, 말 해야할걸요? 궁금한거 많잖습니까.

노이즈가 섞인 기분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너… 닥쳐.

하,##하.하하하하.#


“민…화인이야?”

비소는 질문한다.


전 민화인이 아닌데요. 아쉽군요.

하지만 당신은 종종 날 민화인이라 부르긴 했습니다.

날 알아보지 못한게 참 아쉽…

-닥쳐.

아, 정말이지 귀찮게 하는군.

-비소… 내가 면목이 없습니다. 이제 정말 당신에게 맡기는 수 밖엔…


“민화인?”

비소는 의문했지만, 이번 목소리는 확실히 그가 아는 사람임을 짐작했다.


면목이 없으면 그 입 좀 다무시는게 어떻습니까?

아득바득 방해 좀 그만하고.

“넌 누구야?”

누구긴, 당신도 알잖습니까? 당신이 사랑해마지 않는 민화인이죠.

“걘… 그렇게 얘기 안해.”

-동의합니다.

하, 이렇게 간섭하는건 계획에 없었던 일인데. 좋습니다. 나의 실험의 오류의 결함에 대해 인정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승리하는건 나입니다.

-꺼져.

민화인의 날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하, 꺼져야하는건 당신이지요.

이제 한계 아닙니까? 가서 잠이나 주무십쇼.

“대체 무슨 일이 있는거야? 방금 일어난 상황이랑 관련있는거지? 나… 테이프 기록 들었어.”

아, 그럼요.

제가 친히 알려드렸죠.

-뭐?

이해는 하셨습니까? 다 못 들었던 것 같은데.

이해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이 대화에 낄 자격이 없습니다.

날 저지하지 마시죠.

-! 비소, 도망…!

비소의 시야가 암전된다.

그것은 무아. 감각의 상실이다.

시야가 뒤집히고 신체에 차가운 바닥이 부딫힌다.

*

비소는 눈을 뜬다.

그곳은 어느 시험관 안이었다.

이건 현실? 혹은 꿈?

감각은 마치 기억처럼 모호하고 의식은 꿈처럼 몽롱하다.

시험관 밖으로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비소는 이해할 수 없었다.

‘…활력징후는…’

‘적응력은 어떻…’

‘의식수치 올라오고 있습니다. …’

‘아, 그냥 두세요. 이참에 확인해보지요.’

들려오는 목소리가 점점 선명해진다.

‘이름은. 그래, 비소가 좋겠군요.‘

선홍빛 눈빛을 가진 새하얀 인물이 비소를 향해 미소를 짓는다.

“안녕, 비소.”

*

“…!”

비소는 다시 한 번 눈을 뜬다.

그곳은 텅 빈 새하얀 공간이다.

비소는 이 공간에 묶여 앉아있다.

비소는 이 공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00C31198. 실험 시작하겠습니다. 몇차였죠?’

‘7차 입니다. 멍청하긴.’

‘예, 예~.’

팔뚝으로 연결된 관으로 온몸에서 거부하는 물질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

“으…으아악!”

비소는 다시 눈을 뜬다.

끔찍했던 격통은 온데간데 존재하지 않는다.

“허억… 허억…”

비소는 숨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본다.

비소는 다시 넓고 흰 공간 안에 앉아있었다. 이번엔 그의 몸은 속박 되어 있지 않았다.

대신 몸의 모든 감각이 예민했다.

비소는 눈을 감았다.

공간 너머의 기척까지 느껴지는 예민함이었다.

비소는 방을 넘어서 연구실의 위치를 느낀다.

더 나아가 연구원의 전체를 느낀다.

그리고 무언가가 자신의 감각을 가리는 것을 느낀다.

“드디어 날 보았습니까?”

비소는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새하얀 머리칼이 흩날리는 선홍빛 눈동자를 가진 그였다.

“안녕, 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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