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깔창 때문이라고요
그러니까 나도 그 망할 깔창 달라고
*항교팟
왜 이렇게 된 거지?
아니마는 자신에게 달려든 익숙한 자이언트 한명을 바라보며 방금 전까지의 일을 회상했다. 길진 않았다. 그냥 평범하게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스승인 키리에의 농장으로 가던 도중이었다. 발걸음치고 다소 육중한 소리가 울렸을 때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야 여긴 발레스지 않는가. 자이언트 가드들이 누군가라도 발견한 모양이지. 다만 그것이 너무 가까이서 울린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렸을 땐, 큰 손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방어를 하는 건 좋았는데 상대와 체급 차이가 너무 났다. 자신이 두 손으로 막고 있는 것이 상대의 한 손이라는 걸 인지하자 오금이 어디있는지 새삼 알 것 같았다. 더군다나 그의 다른 손은 제 몸을 붙들고 있었다. 거의 완벽하게 붙잡힌 상태다.
마법을 쓸까? 대체 무슨 일이지? 이스시에게 먹혔나? 하지만 느껴지는 기운은 혼탁하지 않았다.
“자네,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우선 놓고…….”
“어르신……”
봐라. 그 은빛 눈동자는 평소와 같이 차분하고…… 묘한 광기로 일렁이고 있었다.
“이, 이러지 말게.”
“걱정 마십시오. 금방 끝납니다.”
내 이번 생이? 피닉스의 깃털은 가져온 거 맞지? 아, 아니면 스승이라도 불러…….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던 도중 갑자기 느껴지는 감각에 기겁했다. 제 허리를 붙잡고 있던 손가락이 아래로 향했다. 천 너머로 느껴지는 타인의 손길이 생경했다. 플란이 자신을 그런 눈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마는 순간 크게 외쳤다.
“나, 나, 나는 임자가 있는 몸이네!”
“허?”
부욱! 천이 뜯어지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뒤집어졌다가 멈췄다. 어떤 손길에 몸이 뒤집혔는데, 그 어떤 손길에 다시금 붙잡혔기 때문이다.
아니마는 반쯤 눕혀진 자신의 상황을 살펴봤다. 로브 끝자락이 조금 찢어졌지만 약간의 수선만 거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을 붙잡고 있는 자이언트. 플란은 평소와 다름 없는 반듯한 무표정으로, 그러나 분명 어이없다는 듯한 눈동자를 한 채 언제 벗긴 건지 모를 아니마의 한쪽 신발을 들고 있었다. 아니, 그건 왜…….
“……상관 없습니다. 말씀드렸듯, 금방 끝납니다.”
나는 상관 있네만. 모든 사랑과 추억이 과거에 있는 아니마로서는 그게 더 중요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플란은 아니마의 신발 안 쪽에 있던 깔창을 꺼내 자신의 신발을 벗고 그 안에 넣었다. 체급 차이가 얼마나 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자이언트 신발 안으로 쏘옥 들어간 깔창은 귀여운 수준이었고, 신어봤자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다.
플란은 그 신발을 보다가 하늘을 봤다. 잠시 말이 없었다.
“어르신.”
“더는 없네…….”
그렇겠죠, 플란은 그저 그 말을 삼키곤 깔창을 원래 자리에 넣었다. 이어서 아니마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신발을 신겨주었다. 평상시와 똑같이 무던한 표정을 하고는.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군요. 실례했습니다.”
플란의 시선이 뒤편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자이언트 가드에게 향했다. 가드는 그때까지만 해도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며, 크루크 폐하께 이걸 보고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던 차에 묘한 열망으로 일렁거리는 시선을 마주하자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근처에 자이언트 남성 밀레시안 못 봤습니까?”
가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아니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마도 고개를 저었다.
쳇, 짧게 혀를 차던 플란은 가드에게 한마디 더 물어봤다.
“…혹시 가드 분들도 깔창을 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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