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별들

이게 다 망할 깔창 때문이겠지

요즘 세상에 남성만 가능하다는 게 무슨 소리야

드림 by 서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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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교팟


아니마는 항공 교역 도중에 플란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들었다.

“…어르신, 혹시 지금 깔창 끼셨습니까?”

“…….”

그는 은은한 미소를 띤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주변의 다른 밀레시안들과 배가 날고 있는 높이를 보았다. 덮쳐졌을 때 밖으로 떨어지진 않을지 혹은 이곳에 얼마만큼의 피해가 올지,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아주 빠르게 지나갔다. 그건 아니마 개인의 성질이 아닌 경험에 의한 본능적인 확인에 가까웠다.

경계를 느낀 것인지 플란이 바로 덧붙여 말했다.

“아니, 평소보다 큰 것 같아서 질투가 나서 물어봤어요.”

아주 솔직했기에, 아니마 또한 솔직히 답해주었다.

“평소에도 신은 채였네.”

“포션도 마셨겠네요?”

“평소에도 마셨었네.”

“힐도 신으신 거고?”

“평소에도 이 신발이었네.”

“평소에도 질투가 났었던 것 같네요.”

“…….”

꼬박꼬박 대꾸를 하면서도 장소 때문인지 아니면 저번에 있던 일 때문인지 플란은 얌전했다. 다만 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와이번이 찾아와 총을 빼들었을 때도, 레드 드래곤에게 발리스타를 쏴갈길 때도 종종 아니마를 바라보며 말이다…….

훗날 크림은 자이언트가 인간을 사냥하기도 하냐고 물었다. 플란은 그럴 이유가 없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럼 플란이 인간을 사냥하기도 하냐고 물었다. 플란은 그럴 이유가… 엑? 네? 라고 대답했다.


플란은 항공 교역이 끝나자마자 로브를 챙겨 입고는 나오를 찾아갔다. 나오는 빛에 휩싸여 나타난 밀레시안을 보고 미소 지었다. 그가 방문한 목적은 알고 있었다.

“플란 님. 플란 님이 원하신다면 지금의 육체를 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환생하실 수 있어요.”

“응. 할래요. 남자의 모습으로.”

“네, 그럼… 네?”

나오는 순간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밀레시안들 중에서도 플란은 만나기 어려운 편에 속했다. 나오는 스타 스트림의 관리자로서 그곳에 고정되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고, 밀레시안의 요청이 있을 때야 만날 수 있었다. 플란은 자주 죽지도, 환생하지도 않았기에 만나는 일이 드물었다. 또한 가끔 해도 재능을 바꾸기 위함이지 성별을 바꾼 적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최근에도-온전히 플란의 환생 주기 기준이었다- 이미 남성의 모습으로 변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빠르게 환생을 하고자 한다는 것은 의아할 일이었다. 플란은 해보고 싶은 게 있다 했을 뿐이었고, 평소와는 다르게 기대로 찬 은빛 시선에 나오는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그렇게 자이언트 남성 밀레시안 플란이 그곳에 있었다. 이마가 드러날 정도로 짧아진 제 머리칼 끝을 매만졌다.

‘짧은 머리 낯설어… 하지만 취향인 것도 안 보이고, 돈도 마땅치 않으니까.’

사치를 부리는 것도 아닌데 왜 항상 돈이 없을까? 영웅은 탄식했다. 그러나 딱히 아끼는 성향도 아닌 밀레시안에게 돈이 모일 리는 없었다. 오늘도 하나의 호기심을 위해 그는 덥석 깔창을 샀으니 말이다. 그렇다. 그는 켈라의 땅을 밟자마자 바로 깔창을 구매했다. 오로지 그것을 위해 환생을 한 것이다!

‘이게 깔창. 신기하네. 커질 것 같진 않은데…?’

희고 말랑하며 살짝 단단한 촉감이 느껴졌다. 두 손으로 쥐고 있으니 더 신기했다. 사이즈는 맞겠지만, 높이는 평범해 보였다. 몇 번 애매한 촉감 놀이를 즐기다가 착용해 본다. 의아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놀랍게도 예상과 다르게 달라진 시야가 확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고 제 몸을 살펴본다. 한 번 호기심은 충족되지 않고 꼬리를 물며 다른 궁금증을 불러왔다. 이제는 한계가 궁금했다. 언제 이런 마음이 들겠어. 이렇게까지 된 이상 해보고 싶은 건 해봐야 했다.

밀레시안은 기본적으로 작은 편은 아니지만 특정 키 이상은 자라지 않았다. 플란은 그게 가장 움직이기 적당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죽음도 넘어서는 종족에게도 가장 편한 적정선이 있을 거라고 이해한 거다. 그러나 어떤 욕망은 그 이상을 원하기 마련이다. 그는 경매장에서도 구할 수 없는 포션을 어떻게든 구했다. 세세하게 적다간 에린 너머의 다른 영혼이 다칠 것 같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그는 가진 신발 중에서 제일 굽이 큰 신발을 찾아냈다.

자이언트는 이름 그대로 큰 종족이었다. 가장 어린 나이에도, 다른 종족의 제일 큰 키 보다도 컸다. 당연하게도 플란은 평소에도 다른 이들보다 컸다는 소리다. 그런 자이언트가 타고난 육체와 포션, 거기에 장비의 힘까지 덧붙여지니 멀리서 육안으로 보기에도 달랐다.

근처에 있던 아니마의 둥근 머리가-평소에도 이 구도였는데- 색다르게 보였다. 그가 고개를 들어 빙그레 웃는다.

“플란. 자네 결국 어떤 선태을 해버렸구먼 그래.”

“어떤 선택이라뇨…….”

잔잔한 미소를 보니 괜히 난리를 쳤던 것 같아 조금 머쓱해졌다. 난리친 건 맞지만 뭐.

플란은 제 몸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다가 곰곰히 생각했다.

‘평소보다 30… 아니, 약 40~50 정도인가? 익숙해지려면 조금 걸리겠어. 아, 그런데…… 재밌다!’

색다른 기분이었다. 평소엔 보관만 해두던 옷들도 둘러봤다. 이 몸으로 움직이려면 어떤 게 가장 편할지, 어떤 모습이 가장 괜찮을 지 찾는 손길이 분주했다. 이거? 아냐, 너무 타이트해서 부담스러워. 이건 색상이 별로야. 이건… 이건 왜 있지? 언제 산 거지?

아니마는 문득 위에서 떨어지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항상 무표정인 그가 드물게 웃고 있었다. 순박한 아이같은 얼굴이었다.

‘정말 깔창이 갖고 싶었었나 보군.’

평온한 일상의 하루였다.


사실 이전에도 남환하고 깔창 껴본 적 있는데 글을 쓰다보니 가내밀레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는 느낌이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어요.

깔창 설명에 힐을 신은 여캐 옆에 서기 위함이라 써있던데 그런 것 치곤 남캐도 힐 신발이 많지 않나 싶음. 그러니 여캐에게도 깔창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놔라. 내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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