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下
side Vash
vw | 밧슈 시점 | 퇴고 없음 날조 주의
TW: 공황발작 묘사 | 퍼스널 스페이스 무시함 주의 | descriptions of mental breakdown | 이것저것 다 주의 | honestly I think wolfwood needs to be held | hugs save lives | 사랑은 그 뭐냐 쓰릴 쇼크 서스펜스
스탬피드의 여행 파트너는 왠만해선 먼저 잠에 들지 않는다. 지금까지 밧슈가 관찰한 바론 그렇다. 오늘 두 사람의 잠자리는 모래 바다 위, 버려진 무인도 같은 마을이다.
이 경우, 저녁 루틴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적당한 잠자리를 찾는다. 허름한 여관, 고장 난 트럭, 오늘은 지붕도 없이 벽 두 개만 남은 집에서 - 집이라고 할 수 있나? 아무튼, - 밤을 보내기로 했다.
그 다음엔, 밥을 해결한다. 자고로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한다.
빈약한 저녁을 소화하는 동안 라디오를 돌려보거나, 시덥지 않은(울프우드의 표현이다)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면 밧슈가 먼저 눈을 감는다.
이제 울프우드가 담배를 찾아 입에 문다.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담배 냄새가 익숙하다.
렘, 그거 알아? 나, 친구가 많이 생겼어. 그중에서도 말이야….초록이 너울거리는 언덕 위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가 새로 사랑하게 된 친우의 이야기를 하는 꿈을 꿨다. 따뜻한 바람이 이마를 간질인다. 최근 들어 울프우드는 악몽을 꾸는 일이 잦았다. 지금 불어오는 바람이 너의 검은 머리도 쓰다듬어주길. 그렇게 같은 꿈을 꾸기를 바라며 밧슈가 먼저 잠을 청한다.
아.
덩그러니 쓰러져있는 울프우드를 밧슈가 내려다봤다. 본능적으로는 알았다. 정말 죽은 게 아니라는 걸. 피도, 멎은 숨도, 다 현실이 아니라는 걸.
동시에, 진실이란걸.
어긋난 시간대를 맞춰 여행하다 보면, 결국 먼저 다치는 건 더 마음이 다정한 사람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이 투정을, 울프우드가 받아주길 바라며 밧슈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언제나처럼, 이기적인 건 나다. 그래서 이렇게 네 잠을 침범하고 말았다. 밧슈가 울프우드의 가슴에 귀를 대고 다시 눈을 감았다.
네 심장 소리를 듣고 싶었다.
눈을 뜨자 울프우드의 얼굴이 시야를 채운다. 가슴이 일정하게 오르락, 내리락, 하며 숨을 쉰다. 살아있다. 잠결에 피워낸 날개가 둥지처럼 두 사람을 덮었다. 불은 꺼진 지 오래고, 불침번을 설 순번이 이미 지나버렸다.
깃털 하나가 자는 목사의 이마 위를 배회한다. 맥이 뛰는 피부 위를 노란 날개가 쓰다듬었다.
울프우드가 깨기 전까지만, 그렇게 천사는 몰래 따뜻한 인간을 안고 밤을 새웠다.
다시 내일의 해가 뜨고, 울프우드가 엔젤리나를 채비했다. 피곤한 안색은 떨어져 가는 담배 때문이라며 울프우드가 밧슈를 사이드카에 실었다. 반나절만 가면 다음 타운이다. 슬슬 제대로 된 휴식이 필요했다. 사막을 여행하려면 품이 많이 든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와아악!!!"
잠잠할 날이 없는 태풍과 함께인 경우엔 더 그렇다.
"울프우드!!!"
포탄이 굉음을 내며 십자가를 향해 날아갔다. 이런 개 같은…! 충돌하기 전에 울프우드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마을에 발을 들이자마자 또 이 모양이다. 울프우드가 느지막이 욕을 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십자가를 감싼 천을 풀어 퍼니셔를 손에 들기 무섭게 땅에 떨어진 포탄이 땅을 뒤흔든다. 검은 머리가 열댓 걸음 떨어진 금발에게 역정을 냈다.
"와 또 이 모양이가!!!"
"그게 내 탓이야?!"
한쪽에서 쏟아지는 총알들을 피하며 밧슈가 항변했지만, 정작 울프우드는 금발 너머로 보이는 - 뒤로 거대한 대포를 든 놈 하나, 라이플 든 놈이 셋, 그리고 리볼버가 넷, 에게 관심을 돌렸다.
쯧, 목사가 습관처럼 필터를 씹으며 선글라스를 콧대 위로 올린다.
“그럼, 내 탓이냐.”
“뭣.”
어이가 없어진 밧슈를 무시하고 울프우드가 발을 단단하게 땅 위로 딛는다. 커다란 손이 퍼니셔의 방아쇠를 잡는다. 아무런 계산 없이도 이 십자가에서 몇 발이 나갔는지 울프우드는 안다. 거대한 중화기를 피스톨처럼 가볍게 휘두르며 조준한다.
하나,
둘,
셋.
대포가 부서지고, 라이플 하나와 리볼버 둘이 쓰러진다. 죽이진 않았다. 밧슈의 울프우드는 이렇게나 자상하다.
남은 리볼버는 총알이 떨어진 틈을 타 밧슈가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남은 건 라이플 둘. 밧슈와 울프우드가 동시에 트리거를 당겼다.
울프우드의 전투는 연산이 아니라 타고난 감각이다. 아무리 꼬인 판에서도 페이스를 잃지 않는다. 그의 금발 파트너와는 구조 자체가 달랐다. 본능에 계산이 기본값으로 들어가 있다니. 밧슈는 다시 감탄했다. 손끝부터 호흡 하나하나까지, 모든 싸울 때의 울프우드는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검은 머리카락이 노을 진 태양을 받아 하얗게 빛난다. 선글라스 너머로 은회색 눈동자가, 마치 별을 박아 넣은 것 같았다. 저렇게 예쁜 눈을 가지고 별명이 퍼니셔라니, 말도 안 돼. 귓가를 도는 박자가 빨라진다. 조금만 더 하면 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어이, 빗자루.”
퍼뜩 온나. 흙먼지를 뒤집고 숨을 몰아쉬던 울프우드가 밧슈를 부른다. 밧슈가 환하게 웃으며 앞서가는 등을 좇았다. 울프우드는 알까. 아닌 척 하지만, 그 속에는 갈비뼈를 비집고 나올 정도로 큰 사랑이 담겼다는 걸. 밧슈는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니 어리광이 느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니까, 내가, 일부러어…. 그러는 게 아니잖아, 응? 울프우드으…." 밧슈가 두 번째 병을 비워내며 징징거렸다. 자연스럽게 다음 병을 쥐자, 울프우드가 술병을 뺏었다. 에에… 파란 눈이 울상을 지었다. 어쩔 수 없으려나.
밧슈가 선글라스를 벗어 울프우드의 품에 물렸다. 핑계는 술기운이고, 어차피 내일이면 다 잊힐 어리광이다. 충동적인 장난에 어이없어하는 울프우드를 보니 바보 같이 웃음이 났다. 퍼지는 미소를 들키기 전에 밧슈는 쿵쾅거리며 테이블을 떠났다. 다리가 슬슬 시동이 걸렸다. 그렇게 스탬피드는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춘다. 술과 타인의 온기로 화약 냄새를 지우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일 것이다. 살롱 입구로 불어오는 밤바람이 서늘했다.
빙글빙글 돌던 밧슈가 가장 아끼는 존재를 향해 시선을 튼다. “울프우드!” 불린 이름에 목사가 착실하게 반응하며 밧슈를 봤다. “이 노래 알아?” 밧슈가 외쳤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었던 노래다. 기억하려나, 역시 같이 춤을 추면 좋겠다 싶었다.
차분하게 빛을 내던 회색 눈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응? 밧슈가 반응하기도 전해 양 쪽에 팔을 낀 사람들이 밧슈를 빙글빙글 돌렸다. 아니, 어, 잠시만요! 울프우드가 시선을 거두며 몸을 돌렸다. 뭐라 사람들에게 말을 하더니, 지고 있는 무게에 비해 가벼운 걸음으로 밖으로 향했다.
-빗자루. 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부름이 들려온다. 간다.
밧슈가 겨우 사람들을 제치고 반쯤 밤에 먹힌 울프우드의 팔을 잡았다.
“벌써 가?”
왜 그래, 사실 묻고 싶었다. 오늘 울프우드는 조금 이상했다. 밥도 조금밖에 먹지 않았고, 마신 술도 반병 정도 뿐이다. 속에서 걱정과 투정이 엉켜버린 밧슈가 고집을 부렸다. 조금만 더 있다 가, 응?-
”-됐다.”
탁, 하고 내는 마찰음이 생각에 브레이크를 건다. 어라. 울프우드가 쳐낸 손이 간지러웠다. 괜찮지 않다. 내보이지 않는다고 밧슈가 모르지 않는다. 문제는 그의 파트너가 도통 솔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이건 밧슈도 떳떳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울프우드는 티를 내지 않으니, 밧슈로서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뇌가 그간의 여행을 되짚으며 빠르게 경우의 수를 세는 동안, 울프우드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참을 입구에 서 있던 밧슈가 사람들 손에 이끌려 다시 안으로 들어섰다. 풀리지 않는 브레이크가 머릿속에서 철커덕거린다. 밧슈가 왁자지껄한 인파를 배경 삼아 반쯤 빈 술병을 한 번에 비워냈다. 고막에 쿵쿵거리며 튀는 소리가 박수 소리인지, 심장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밧슈의 박자는 항상 느린 편이었다. 이미 내일이 되어버린 하늘에 달이 걸렸다. 우욱. 더 이상 춤을 출 기분이 아니었다. 술에 너무 취해 속이 안 좋다는 핑계로 밧슈가 슬 웃으며 살롱을 나셨다. 아쉬움도 잠시, 주인공은 없지만 목격자들이 이야기를 시작하며 밤을 이어나간다. 빨간 코트와 금발을 두른 태풍이 어떻게 마을을 구했는지, 그리고 십자가를 둘러맨 검은 사내는 누구인지. 밤은 길지만, 인간의 상상력으로 채우지 못할 만큼은 아니다.
일행 옆 방이라며 인상 좋은 여관 주인이 콧수염을 씰룩거렸다. 비틀거리며 밧슈가 열쇠를 받아들었다. 계단을 올라가는 걸음이 곧 안정적인 페이스를 찾는다. 알코올이 몸을 도는 시간은 항상 짧다. 머리가 침대에 닿을 때쯤에는 맨정신으로 잠을 청해야 한다. 어쩔 수 없지. 밧슈가 체념하며 둘러진 넥타이를 풀고 머리를 북북 헝클었다. 어느새 마지막 계단을 올라온 밧슈가 늘어진 문들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어느 방이지? 열쇠에 숫자가 있나? 문에도 숫자가 없는데? 아직 제대로 된 사고를 할 만큼 알코올이 분해되지는 않은 모양이라, 뇌가 더디게 굴러가며 물음표로 빈칸을 채웠다. 머리가 나쁘면 역시 몸으로 때우는 게…응. 밧슈는 일단 부딪혀보기로 했다. 하나, 둘, 세 번째 시도에 겨우 열쇠가 들어갔다. 밧슈의 방은 세 번째다. 그러면, 울프우드의 방은… 뭐였더라?
"흐, 옆방이랬지이…"
옆 방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물어볼걸 그랬다. 잠깐 고민하던 밧슈가 오른쪽 방에 귀를 가져다 댔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그러면 정답은! 왼쪽 방이다. 문 앞에 서기 무섭게 뭔가, 부스럭거리며 불규칙한 소리를 냈다. 밧슈가 다시 다시 헤실헤실 웃었다. 다행이다, 안 자는구나. 취기가 콕콕 찌르는 양심을 마비시켰다. 역시,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검은 손이 발랄하게 문을 두드렸다.
“울프우드, 자?”
소리에 반응하듯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곧 열릴 줄 알았던 문은 아무리 서 있어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정말 몸이 안 좋은 걸까. 아까 확인했을 땐 가벼운 상처뿐이었는데.
머릿속을 뭉게뭉게 채우는 우울한 가능성에 시무룩해진 밧슈가 문에 기대며 웅얼거렸다.
“울프우드으… 문 좀 열어 봐…”
밧슈의 외침을 들은 건지, 문 너머로 움직임이 들리더니, 이내 뚝, 멈춰선다. 갑자기 작은 불안함이 속에서 톡톡 탭댄스를 춘다. 건맨의 직감이랄까, 무언가 어긋난 기분에 술기운이 점점 옅어졌다. 손이 문고리를 잡았다. 잠겨있었으면 망가트려서라도 들어갈 생각이었다.
쉽게 돌아가는 문고리를 밀자마자 문을 우당탕, 소리가 방 안에서 울렸다. 얌전히 벽을 차지하고 있는 퍼니셔가 먼저 보인다.
그리고 바닥에서 웅크리고 있는 울프우드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나는, 이 광경을 본 적이 있다.
밧슈가 급하게 울프우드를 돌려 않았다. 울프우드는 살아있다. 열린 창문 너머로 달이 밝다. 검은 머리가 땀으로 축축하다. 흰색 셔츠가 등에 달라붙으며 황갈색 피부가 비쳤다. 술이 깨다 못
아직 의식은 없지만, 기도는 막히지 않았다. 밧슈가 울프우드를 들어 침대에 올리곤 빠르게 제 코트를 벗었다. 의자 위에 가지런히 걸린 울프우드의 재킷 위로 붉은 것이 덮어진다. 울프우드를 뒤로 안아 들며 침대 위로 올라가자 낡은 헤드보드가 두 남자의 무게에 불안하게 삐걱거린다. 밧슈가 겨드랑이 아래로 팔을 넣어 늘어진 목사를 다리 사이에 앉혔다. 상체를 조금 더 품 안으로 일으켜 당기자 품에 안긴 사내가 크게 경련하며 팔다리를 허공에 휘둘렀다. 우왁! 밧슈가 빠르게 고개를 뒤로 뺐다. 하마터면 저 커다란 손에 얼굴을 맞고 바닥에 내팽개칠 뻔했다.
"아무래도 말이지, 내가 정말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밧슈가 밧슈가 오른손으로 울프우드의 벨트로 손을 옮겼다. 깔끔하게 버클을 풀어헤친 후 낡은 가죽으로 두 손을 빠르게 묶었다. 그리고 팔을 가슴 위로 접어 그 위를 금속으로 팔이 울프우드의 상체를 완전히 고정했다. 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금발을 까슬한 턱에 슬 비비며 밧슈가 종아리로 울프우드의 허벅지를 단단히 감아 눌렀다. 울프우드가 경련하며 목이 뒤로 꺾이려 하자 밧슈가 어깨를 더 꽉 안아 내렸다. 답답한 걸 싫어하는 그를 이렇게 구속하고 있으니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옳지, 응.” 밧슈가 작게 속삭이며 울프우드의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왜 너는 좋은 꿈을 꾸지 않을까. 밧슈가 검은 머리를 토닥이며 고민했다.
그래서 밧슈는 울프우드에게 이야기를 해주기로 했다. 렘이 해준 것처럼, 편하게 잠에 들기 전까지만.
“….있잖아, 울프우드,”
메트로놈이 뭔지 알아? 밧슈가 땀에 젖은 어깨에 턱을 올리며 자세를 마저 잡았다. 그리고 다시 팔다리에 힘을 줘 과속하는 혈류를 억눌렀다.
"처음 악기를 배울 때는 곡을 잘 모르니까, 박자가 어긋나잖아. 원래보다 빨라지거나, 느려지거나."
추를 위아래로 움직이면 박자를 조절할 수 있고, 태엽을 감아서 동력을 만든다. 또 뭐가 있더라. 시답잖은 얘기를 계속하며 밧슈가 손끝으로 울프우드의 심장을 달랬다. 밧슈의 심장이 한번 뛸 때, 그는 세 번을 뛴다. 평소에는 두 번 정도일까. 다시 올라오는 발작을 느끼며 밧슈가 품 안의 남자를 조금 더 세게 안았다. 부서지는 게 네가 나일 수 있으면 몇 번이고 망가져 줄 텐데. 피가 겨우 통할 만큼만 누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심장이 아직 너무 빨랐다.
메트로놈의 범위는 아마, 삼십에서 이백 오십 정도였던 거 같다. 인간이라면 아무리 극한까지 몰려도 박동이 그 범위를 벗어날 일이 없다. 평소의 너도 마찬가지다. 신발 신고 침대에 올라와서 미안해, 울프우드. 밧슈가 사과하며 자세를 고쳐 두 팔로 울프우드를 안았다. 더 세게 전해질 때까지. 애처롭게 거친 숨을 삼키는 울프우드를 붙잡으려니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흔들리던 침대 밑으로 쩌적, 마른 섬유질이 끓는다. 침대가 완전히 내려앉으며 두 몸이 벽으로 쏠렸다. 퍽, 하고뒤통수를 부딪친 밧슈가 밧슈가 울프우드를 올려다봤다. 다행히 아직 깨지 않았다.
해 피가 식는 걸 느끼며 밧슈가 급하게 무릎을 꿇고 울프우드를 품에 안았다. 아, 덜덜 떨고 있는 몸이 뜨겁다. 호흡은 불규칙하고, 심장도 너무 빨랐다. 턱 아래로 꼭 쥔 주먹이 밧슈의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풀어내자 노란 안경알이 밧슈를 비췄다. 빛을 내던 새파란 눈이 살짝 풀리며 따뜻한 손으로 울프우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반쯤 떠진 청회색 눈이 초점 없이 탁했다. 책상 위로 선글라스를 올려두자, 그 작은 소리에도 움찔거리며 바르작거렸다.
차가운 의수가 어느덧 체온으로 미지근해졌다. 버클이 잔뜩 달린 바지가 살에 자국을 남기는 게 불편할 법도 한데, 품 안의 사내는 그런 내색 없이 약간 느려진 박자로 헐떡거릴 뿐이다. 호흡이 하락세를 보인다. 160, 평소 심박수로 떨어지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조금만 더, 닿은 몸에서 울리는 박자를 계속해서 세어간다. 100. 조금만 더 느려지면 바로 놓을게. 정말이야. 밧슈가 혼잣말을 계속 늘어놓았다.
"-내일 피곤하겠다, 그렇지. 내가 운전을 좀 잘했으면 좋을 텐데…”
너는 여전히 답이 없다.
“음, 이참에 한 번 도전해 볼까, 어때?”
핸들을 잡기가 무섭게 조난하지 않을까, 밧슈가 작게 웃었다. 품에 쥐고 있던 몸이 점점 긴장을 놓는다. 밧슈는 긴장을 놓지 않고 차분하게 박동을 쫓았다. 70. 끓는 숨이 아니라 편안한 호흡이 뱉어질 때까지. 50.
밧슈의 맨피부 위로 깃털이 꾸물꾸물 피어난다. 꿈에서 너는 무슨 선택 했을까. 궁금했지만 파헤칠 생각은 없다.
거짓말.
정말이야.
거짓말!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
그래?
그래.
그러니까, 태풍이 눈을 빛내며 동공에 울프우드를 담았다. 잠깐만 여기 있자, 우리.
30.
됐다. 얼굴 위를 배회하던 깃털을 다시 몸 속으로 불러들이며 밧슈가 천천히 다리를 풀었다. 축 늘어진 몸을 옆으로 눕히고 손목을 묶은 벨트를 풀자 거친 가죽에 한참 비벼진 피부가 벌겋게 헐어있었다.
밧슈가 엉망이 된 방을 한번 쓱 둘러보곤 순서를 정한다. 먼저 울프우드를 들어 옆방으로 옮겼다. 그다음으로 퍼니셔를 벽에 그대로 배치했다. 그리고 시약이 든 홀스터를 먼저 걸고, 그 위를 벨트와 재킷으로 덮었다. 마지막으로 노란 안경을 올려두며 뒷수습을 마친 금발이 뿌듯하게 웃으며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다. 금세 본래 색을 찾은 손목을 검은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쥔다. 안도와 아쉬움이 뒤섞인 마음을 삼키며 밧슈가 손목 안쪽에 얼굴을 비볐다.
“…잘 자.”
이제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잘 수 있기를, 떠 있는 달을 하나씩 세며 속삭였다. 한참을 그렇게 일정하게 오르락, 내리락 움직이는 몸을 시켜보던 밧슈가 이내 저린 다리를 털며 몸을 일으켰다. 자려면 어둠이 필요하니, 꼼꼼하게 창문을 닫았다. 그렇게 태풍 오래된 노래를 흥얼거리며 옆 방으로 되돌아갔다. 침대에 풀썩 눕자 매트리스 밑으로 파편이 덜그덕거린다. . 어쩔 수 없지, 밧슈가 미소와 함께 체념한다. 이제 남은 건 땀 냄새와 부러진 침대, 그리고 세 시간의 수면이다.
밧슈는 제 심장이 제대로 속도를 올려 언젠가 울프우드의 박자를 따라잡는 꿈을 꿨다. 어긋나는 노래를 맞춰가며 아주 오랫동안 그의 곁에서 걷는 꿈을. 아침이 되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다시 잠시나마 같이 사막을 건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존재하고, 사랑 많은 네가 내어주는 모든 빈틈을 붙잡아 어리광을 피울 것이다.
조금만 더 감당해 줘, 울프우드. 너는 할 수 있잖아.
오늘도 천사가 몰래 투정했다. 태풍을 온전히 받아내는 건 인간의 몫이다.
다시 이렇게 자급자족 라이프를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분명 구독러로 잠깐 살다가 빠른 은퇴! 할 줄 알았는데 그럴리 없지... nn년 구장르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완덕이 아니라 휴덕이었다니! 오랜만에 쓰려니 손가락이 삐그덕 하덥니다. 쓰는데는 나흘 걸렸지만 다듬으면서 계속 분량이 늘어나지 뭡니까. 이게 다 회사 탓입니다.
울프우드라면 기본 심박이 일반 사람들보다 느릴거라고 생각합니다. 신체적으로 단련된 사람들은 쉴 때 BPM이 보통 40 정도, 힘을 써야 할 때는 180 정도라고 합니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울프우드라면 최대 심박은 그것보다 훨씬 높지 않을까, 라는 생각의 흐름으로 썼습니다. 생각보다 추상적인 글이 나와서... 퇴고할 용기, 사흘 후에 찾아보겠습니다.
쓰면서도 이거… 캐붕인가? 싶었지만 분명 정신적으로 산치 깎이는 경험을 했을겁니다, 우리 우르훗도쿤. 인외를 사랑한다는건 그런 겁니다. 인외한테 사랑받는다는 것도 마찬가지겠죠. 초월적인 존재를 사랑하는 것도 힘든데, 처음 자각했을때 그 순간 자체도 호러가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원작 기반 제 캐해는 그렇습니다. 공포와 사랑, 거기에 신앙심과 죄책감, 그리고 자각 후의 뻔뻔함, 이런걸 다 섞어먹고 있습니다. 혼돈의 맛, 맛있지 않나요. 개인적으로는 맥시멈이 이 맛이 가장 조씁니다. 울프우드가 가진 가장 인간다운 부분을 사랑하지만 비인간성에 전율하는 밧슈가 너무 좋아요... 하... 아무튼 다들 맥시멈 해주면 좋겠다.
씨피를 따지자면 밧울입니다. 리드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결국 휘둘려지고 감겨버린 울프우드, 이끌려주는 척 하면서 하고 싶은걸 다 하는 밧슈, CP로만 보면 누가봐도 밧울이구만. <<이란 캐해를 합니다. 몸으로 하기도 전에 이미 산치체크에서 울프우드는 승산이 없지 않나요.
곧 영어로 옮겨 쓸 예정입니다. 영어가 더 편하신 분들은 ao3에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링크 업데이트 예정!
아무튼 각설하고.
읽어주신 분들이 계시다면… 재밌으셨나요. 아니면 글러먹은 캐해에 기겁하셨나요…
인스퍼레이숀. zf님(누르면 링크 이동)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다들 러브앤피스 하세요.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