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의 크리스마스
69년의 12월, 늦은 밤
나이트 근무를 서는 간호사에게 현실적으로 가장 소름끼치는 일이 있다면,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날 때이다. 가령, 떼면 안되는 기구를 환자 스스로 뗐을 때라거나 병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날 때라던가. 제일 무서운 건 지금처럼 갑자기 벼락처럼 콜이 들어올 때다. 특히 중환자실은 더욱 그렇다. 중환자실도 병실이니 콜이 들어오는 경우는 있지만 진상이 차고 넘치는 신경계쪽이 아닌 이상 나이트 시간에는 극히 적다. 중환자실의 환자들의 반은 의식이 없고, 나머지는 다들 여러가지 사유로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에다 나이트쯤 되면 다들 잘 시간이니 어지간한 응급상황이나 진통제빨이 떨어져서 통증 때문에 깬 게 아니고서야 있는 가능성이라고 한다면 그건 거의 100퍼센트의 확률로 큰 사건이 하나 터질 조짐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어딘가에 숨어있던 환자 보호자가 시시콜콜한 이유로 진상을 부리며 너스콜을 부른게 아니고, 기계도 이상없이 돌아간다면 이 콜은 환자 담당 전공의가 불렀을 확률이 크다. 하지만 왜 하필 사람도 많이 없는 지금이냐는 생각은 어쩔 수 없이 든다. 살리려고 노력은 하겠으나 결국 살리지 못할 때의 기분은 보통 착잡한 게 아니다. 중환자실에서는 환자도 의료진도 받는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누군가가 죽어가는 것을 보는 걸 좋게 본다면 정신적 치료를 권하며 정신병동 쪽으로 인계할지 어떨지 재보는 것이 보통이다. 우울의 극치를 달리는 이상異常을 이상理想이라 여기는 게 정상은 아니니까.
중환자실 환자들의 너스콜을 알리는 화면에 붉게 깜빡이며 올라온 번호는 35번 침상의 환자. 5개월 전에 몸 여기저기가 찔려 피투성이인 채 의식불명으로 실려들어와서 지금까지 쭉 눈을 뜬 적 없는 환자였다. 왜 들어왔다고 했더라. 흉기난동 때문에 그랬다고 했던가? 솔직히 출혈이 너무 심해서 곧 황천길 건널 것 같은 상태이길래 어떻게든 출혈을 막고 살려내느라 사유는 나중에 들었던 거 같다. 분명 차츰 차도를 보이다가 어제까지만 해도 꽤 괜찮아져서 의식만 차리면 일반 병실로 올려보내도 될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하지만 어째서라는 말이 가장 통용될 수 없는 곳이 중환자실임을 알기에 지체없이 35번 침상으로 간다. 차도를 보이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악화되고 마는게 사람의 몸이니까. 이럴 때만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신을 찾게 된다. 제발 환자가 죽는게 아니라고 해달라고 빌다가도 어째서 이 환자여야 했는지 원망하기도 한다. 무언가 쏟아낼 것이 필요한 것은 의료진도 똑같다.
제발 큰일만은 아니기를 빌며 도착한 35번 침상에서 본 것은 의식을 차리고 보통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은 당최 일어날 힘이 없을텐데 도대체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자리에 앉아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앞머리가 얼굴을 가려서 눈이 하나도 안보이긴 했다만 어쨌든 그렇게 느꼈다)환자의 모습이었다. 갑갑한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고는 작게 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은 입에서 낮게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야밤에 시덥잖은 걸로 불러서 죄송합니다.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얼굴을 찡그리고 있길래 어디가 아파요, 라고 먼저 말할 줄 알았는데 날짜부터 물어서 엄청나게 당황스러운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자기가 왜 여기 있는지, 여기는 어디인지부터 묻지 않나? 핸드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했다. 이미 자정이 넘어 날짜가 지난 숫자는 12월 25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 어어…. 12월 25일요…? 아니 그 전에 간단하게 검사부터 하실게요, 환자분.”
표정이 잠깐 일그러졌기에 어디 아픈 곳이 있나 걱정이 되면서도 입과 손은 빠르게 움직여 간단하게 인적조사 교차검증부터 한 이후, 환자의 혈압이나 맥박 같은 것을 재고 어디 불편한 것은 없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꼼꼼하게 점검하며 핸드폰으로 담당 전공의를 불렀다. 정말 운좋게도 당직을 서던 참이라 담당의는 환자들이 깨지 않을만큼만의 소음을 내며 헐레벌떡 달려왔다. 너스콜에 반응을 못했던 걸 보니 어디 꾸겨져서 쪽잠이라도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약식으로나마 검사를 마치고 정상임을 확인한 뒤, 환자에게 별 탈 없다면 일반 병실로 이동할 것이라는 사실을 고지해주었다. 환자 보호자들에게도 알려야하니 조금 바빠졌다. 올 때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기하며 환자의 차트를 고치러 간다.
참 다행이지 않은가. 영영 눈을 못 뜰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회복해서 일반 병실로 가게 되다니. 다시는 여기서 얼굴 볼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시 밀린 업무를 보러 바쁘게 걸음을 옮긴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이런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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