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감정에는 어떤 마침표가 어울리는가
12학년 진로상담
Q. 왜 많고 많은 직업 중 경찰을 선택했는가?
겉보기로 내놓은 이유는 가족을 지키고 싶어서, 먼 곳을 지키지 않으면 가까운 곳도 지킬 수 없기에.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다. 경찰을 목표로 한 이유는 그보다 더 해묵고 오래된, 바닥에 거멓게 늘어붙은 감정이 있었다. 기억 속에서 가장 오래된 분노와 증오, 어떻게든 한 방 먹이고 말겠다는 독한 의지. 너의 부정을 기어코 꺾어내어 내 쪽에서 다시 부정하고 말리라는 마음은 제가 알려준 몇몇 사람들만이 아는 제 속마음이었다. 누군가는 경찰이 되는 것이 삶의 과정이지만, 제게 있어서는 일종의 목적이었다.
이런 마음을 굳이 내어놓을 이유는 없다. 목적은 확고하고, 그를 위한 발판도 마련되어 있는데 굳이 초를 칠 이유가 무언가. 평소와 같은 평온함을 가장하여 웃는 얼굴로 대답할 뿐이다.
A. “지키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어떤 것을 선택하는 일에 커다란 계기가 필요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실로 모범적이라고 할만한 대답 아래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안다면 선생님은 놀라실까? 끊임없이 노력하는 우등생의 이면에 있는 것을 안다면 누구든 놀라지 않을 수 없으리라 생각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 오래 끌지 않을 일이다. 흔들리지 않는 의지와 눈에 보이는 목표를 가진 사람에게 다른 길을 제시하는 사람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니.
조금은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오고가는 와중에 상념이 작게 떠오른다. 혹 나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길이 아니라면 너는 무엇이 될 수 있지? 스스로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진다. 글쎄, 그것은 스스로도 모르는 일이다. 이미 일변도인 길을 오래도록 걸어온 이에게 다른 길을 제시해도 어째야할지 모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나.
이런 주제에 다른 이들에겐 다른 길을 걸어도 괜찮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거다 말하다니 모순적이기 짝이 없지. 제 스스로에게 속으로 조소를 흘린다. 분명 제가 바라는 복수의 순간은 일찰나와 같고, 사람의 생은 실보다도 길다. 복수 이후의 삶을 행복으로 채워넣어야 비로소 끝이라고 볼 수 있음은 이미 결론 내린 일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행복해지는 법을 잘 모른다면 어떻게 해야 좋은 일일까? 다른 것을 다 알아도 그것만큼은 모를 일이었다.
자신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복수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좋은지 이것만큼은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알 수 없는 일이라 조금은 큰일이다 싶었다. 그저 어떻게든 되겠지, 가볍기 짝이 없는 생각 하나로 무엇이든 다 날려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르겠다. 참으로 무책임한 발언이지만, 자신의 인생이므로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당장 내딛을 단 한 발자국의 미래조차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앞날이며 인생이지 않은가.
어떻게든 될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지금 당장의 내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날들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쳐온 수없이 많은 일들이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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