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아무말해요

조급한 남자의 이상한 하루

뭐 이런 날이 다 있나..../그러게 말입니다_이현과 최선우

그 날은 하늘이 우중충하고 습기때문에 불쾌지수가 슬슬 기어 올라가는 날이었다. 아주 뭣같게도 담배에 불을 붙이자마자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제기랄……. 마지막 한 개비라고.”

편의점이나 가야겠군. 현은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으며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하는 우중충한 하늘 아래를 걸었다. 5분만 지나면 이 꿉꿉한 기분은 금방 사라지겠지. 그렇게 자신을 달래며 걷던 그는 비 오는 길거리에서 우뚝, 멈춰버렸다.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가족과 함께 행복하다는 듯이 웃고 있는 저 얼굴을 지독하리만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은 쥐고 있던 담배의 허리를 부러뜨린 채 버리고 주먹을 쥐었다.

“개, 새끼가……. 감히 어딜 그렇게 웃고 돌아다니는 거야……!!”

이내 그 주먹은 사내의 얼굴에 틀어박혔고, 그럴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는지 사내는 당황에 물들어 얼굴에 손을 얹은 채 두 걸음 물러났다. 현은 사내의 멱살을 잡고 금방이라도 씹어먹을 듯이 그를 응시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 하니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어쩐지 주먹이 저릿한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제 앞에 있는 이의 탓인 것 같았다. 현은 분노를 삼키지 않고 그대로 내뱉었다.

“무슨 일이신진 모르겠지만 우선 진정…….”

“진정이 되겠나?! 이 양심도 없는 쓰레기같으니라고……! 최우선, 네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돌아다녀. 감히……!! 내 동생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행복하다는 듯이 웃고 앉아있어!!”

현은 다시 한번 주먹을 내질렀다. 눈앞의 그는 체념한듯 현의 움직임에 저항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비를 부르는 새된 비명이 현의 귓가에 스치고, 투박한 손에 의해 주먹이 멈췄다. 현의 미간이 사납게 구겨졌다.

“…누나.”

“무슨 일이신진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남을 해칠 사람이 아닙니다. 닮은 사람을 보고 착각하신 게 아닙니까?”

“착각…이라고?”

착각일 리가. 자신이 제일 경계하고, 가까이 보지 않았나. 자신과 동생이 협력해서 붙잡은, 그 얼굴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여동생을 사랑한다 속이고, 그 약한 몸에 억지로 둘이나 들였으면서 결국 도망친, 천하의 사기꾼의 얼굴을 착각할 리가 없었다. 한참이나 멱살이 잡힌 채 말이 없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동생분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드린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은 자백과도 같았다. 역시 그랬다고,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그런 주제에 또 가족을 꾸리고 행복하게 사냐고 비아냥거릴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제 형이,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어떤 말로도 용서를 구할 수 없겠습니다만…….”

그 순간, 현은 숨이 턱 막혀오는 것 같았다. 형이라니? 그 녀석은 형제따위 없다고, 천애 고아라 혈육이라고는 피가 이어진 자식뿐이라고 매번 말해오지 않았나. 손에 힘이 풀리고, 머리가 차게 식었다. 맞아서 붉게 달아오른 뺨, 입안이라도 터졌는지 흘러나오는 피 한줄기. 그런데도 절대 꺼지지 않을 것만 같은 강인한 눈빛. 확연히 달랐다. 어떻게든 제 살길을 찾으려 남과는 눈을 마주치지 않던 녀석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익숙하다는 듯이 잡혔던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자상하게도 아내나 자식들이 더 비를 맞지 않게 우산을 씌워준 뒤에, 자신이야 비를 맞든 말든 상관 없다는 듯이 그의 앞에 깊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용서를 구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지금은 행방불명이 되어 저 조차도 소재를 모르는 상황입니다만… 저를 때리시는 것으로 조금이라도 분이 풀리신다면, 그렇게 하셔도 좋습니다.”

아, 이 얼마나 우직한 사람인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밝히면서도 맞아도 상관 없다는 말을 하다니. 맥이 턱 풀렸다. 현은,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떠올렸다. …한 가족의 평온한 일상을 부순 것은 자신이었다.

“미안… 합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현의 목에서 간신히 그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연거푸, 미안하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빗물이 바닥으로 흘러 웅덩이를 만들었던 그 날. 빗속에서의 기이했던 만남은, 서로의 마음에 가시와도 같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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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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