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끝에서 자줏빛 꽃의 겉잠을 5화
루틸
앗, 있다…! 드디어 따라잡았다.
영애를 쫓아 도착한 곳은 집무실처럼 보이는 방이었다.
커다란 책상 건너편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던 여성이, 조용히 시선을 올렸다.
루틸
쫓아와서 죄송합니다.
저는 현자의 마법사인 루틸이에요. 이쪽은 현자인 아키라 님.
아까 전부터 저희들을 보고 계셨죠. 뭔가, 제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을까요?
루틸의 말에 영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얼음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한 무언가를 띄우고, 옅은 색의 입술이 작게 떨렸다.
파란 드레스의 영애
…나는…
실패했어…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여성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동시에, 책장에서 무언가가 반짝하고 빛나면서 떨어졌다.
루틸
왓……!
아키라
사, 사람이 사라졌어… 역시 저 사람은 유령…?
루틸
책장에서 떨어진 건… 열쇠네요. 저 사람은 이걸 전해주고 싶었던 거였을까요?
루틸이 열쇠를 주웠다. 여성이 있던 장소에 서서 그녀의 모습을 찾는 듯이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문득, 책상에 눈이 멈췄다.
루틸
이 서랍, 열쇠와 같은 문양의 자물쇠가 있어요! 열 수 있을지도…
아키라
열렸다!
루틸
들어있는 건… 라벤더 꽃다발과, 책?
나도 조심히 서랍에 다가가, 루틸과 둘이서 꽃다발과 책을 손에 넣었다.
겁내면서 껴안은 라벤더 꽃다발에서, 신기할 정도로 생기가 넘치는 향이 났다. 여태껏 서랍 속에 있었는데도.
아키라
그 사람은 이걸 찾아주길 바랬던 걸까요?
루틸
네, 분명… 이 책, 조금만 봐볼게요.
신중하게 책을 손에 든 루틸이 서서히 페이지를 넘겼다.
미간을 좁히면서 처음의 페이지를 읽더니, 천천히 눈을 크게 떴다.
루틸
이거… 눈물의 공주가 쓴 수기같아요!
아키라
네!? 하지만 히스가, 공주의 일기나 편지는 남지 않았다고……
루틸
서랍 속 열쇠의 존재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돌아가셨을 수도 있겠네요.
아버지의 방에 있던 책에서 본 것 같은, 엄청 예스러운 표현이 잔뜩…… 하지만, 간추려서 읽어볼게요.
…오늘… 이어졌다…? 가 아니야, 거둬들인 마녀는……
더듬거리며 루틸은 책의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까마귀 마녀를 고용한 날에 대해. 마녀에게 배운 잠의 의식. 백성의 소문과 라벤더 수배에 대해.
까마귀 마녀가 더 레이븐으로 변이한, 그 당일의 기록.
그리고, 그 다음의 기록.
수기를 덮었을 때, 루틸의 속눈썹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루틸
…… 그랬던 거였군요……
그럼, 눈물의 공주는…
파우스트
…그런가. 눈물의 공주같은 무언가가, 이 수기와 꽃다발을…
홀에 돌아온 우리들은 다른 마법사들에게 방금 전 본 것에 대해서 설명했다.
오웬
하지만, 눈물의 공주는 진작에 죽었잖아. 유령?
피가로
더 레이븐에게 낚여서, 공주의 사념이 소생한 걸지도 모르지. 그 라벤더 꽃다발에서 꽤나 강한, 재앙과 더 레이븐의 기척이 느껴지고.
아서
그렇다면 역시, 눈물의 공주도 더 레이븐이 자신의 백성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지가 계속 마음에 걸렸던 걸까요.
루틸
그것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공주가 걱정했던 건 더 레이븐ㅡ 까마귀 마녀 씨예요.
자신 때문에 괴물이 되어버렸으니까.
클로에, 히스클리프
엣?
미스라
더 레이븐은 멋대로 괴물이 된 거잖아요? 공주를 원망해서.
루틸
아뇨. 이 수기에, 공주의 시점에서 당시의 일이 적혀있어요.
요약해서 읽어볼게요.
…'오늘, 마녀가 성에 왔다. 이후 나를 섬기라고 명하자 마음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마음을 다할 필요는 없지만, 소문보다는 마음씨가 좋아보인다.’
클로에
에…… 마음씨가 좋아?
루틸
‘망령에 대해 보고를 받았을 때, 도움이 되고 있는지를 물어왔다.’
‘공로에 대한 보수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그렇다면, 금액을 다시 생각해야지.’
‘그녀처럼 유능하고 겸허한 마법사는 분명, 두 번 다시 찾지 못할 테니까.’
아서
……공주는 꽤나 까마귀 마녀를 애지중지했구나.
파우스트
전승을 들었을 땐 공주와 까마귀 마녀는 사이가 안 좋은 인상이었는데. 실제로는 달랐던 건가?
히스클리프
그렇다면 어째서, 그렇게 전해진 거죠…?
루틸
이 앞을 읽으면 알 수 있어요. 까마귀 마녀가 더 레이븐이 된 날의 기록이에요.
‘백성들이 마침내 직소하러 찾아왔다. 까닭은…’
농부의 작업복을 입은 남자
공주님! 제발, 들어주십시오!
앞치마를 두른 여자
유행병은 그 마녀 때문이에요! 그 마녀가, 기분 나쁜 까마귀의 시체로 저희들을 저주하고 있는 거라구요!
눈물의 공주
조용히 하세요. 어제도 그저께도 말했듯이, 원인은 산 너머에 있는 수원입니다.
그 마녀는 저의 명령으로 병을 봉인하고 있어. 시체는 그 주문 때문에ㅡ.
농부의 작업복을 입은 남자
봐요! 봐요! 주문을 위해서, 시체를 사용하고 있잖아요?
그게 사병을 위한 주문이 아니라고, 누가 증명할 수 있나요? 우리들은 마법사가 아닌데!
눈물의 공주
그러니까ㅡ
농부의 작업복을 입은 남자
고……공주님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면,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이봐, 너희들, 그럴 생각이지!?
앞치마를 두른 여자
그, 그럼. 물론이지! 우리 집에는 아직 3명의 아이가 있어. 마녀 따위가 죽이게 두지 않을 거야!
괭이를 든 남자
옳소, 옳소! 살해당하기 전에, 이쪽이ㅡ.
눈물의 공주
조용히!
백성들
…!
눈물의 공주
…… …너희들이 하고 싶은 말은 알겠어.
영주로서, 올바르게 대처하겠습니다. 물러나세요.
괭이를 든 남자
아아…! 감사합니다!
앞치마를 두른 여자
공주님, 제발 잘 부탁드립니다…!
눈물의 공주
…… ㅡ아무나, 까마귀 마녀를 이곳에.
까마귀 마녀
부, 부르셨나요. 공주님……
아… 수원을 정화하는 의식이라면, 방금 전 끝났습니다. 이걸로 병도……
눈물의 공주
시간이 없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ㅡ영주 아델레인의 명에 따라, 까마귀 마녀, 요란다를 영지 바깥으로 추방하도록 한다.
까마귀 마녀
…!? 그, 그런, 거짓말이야, 거짓말, 거짓말……
눈물의 공주
사실이야. 바로 짐을 싸도록 해.
옛 도읍에 우리 가문이 소유하는 저택이 있어. 병이 낫는다면 인심도 언젠가 진정되겠지. 그때까지 거기서ㅡ.
까마귀
저, 저는! 저저, 저주 따위! 저주 따위 걸지 않았어요!
하, 하지만, 공주님도, 역시 저를 쫓아내는 거죠!
눈물의 공주
저주를 걸지 않은 건 알고 있어. 하지만…
까마귀 마녀
아, 아, 알고 있었어요! 알고 있었다구요! 공주님이 저 같은 굼벵이를 엄청 싫어한다는 것쯤은!!
눈물의 공주
에……
까마귀 마녀
그, 그, 그래도 공주님은, 그 녀석들처럼, 돌을 던지지 않았으니까.
마녀인 저를, 곁에 둬주셨으니까. 저, 저는……
미… 미움받고 있어도, 돼. 공주님에게, 아델레인 님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
그런데, 당신까지 저를……읏.
눈물의 공주
……! 요란다, 요란다!
네 모습이, 까마귀로…!
까마귀 마녀
아…… 아아, 아아, 용서못해. 용서못해! 죽여버릴 거야, 아델레인……!
죽여버릴 거야! 죽여, 죽……아아아, 아가가아아아아……
아악아아악…… 아델레……님…….
……죄송……. 그, 우, 아, 카아……
그아아, 까아, 까악……!
눈물의 공주
아아, 어째서……!
요란다!!
루틸
……‘나는 실패했다’
‘한 번이라도, 그녀의 헌신을 칭찬해야만 했다. 그녀에게 감사를 전해야만 했다.’
‘불러낸 마법사가, 너라서 다행이라고 말해야만 했다. 이 수기에서만이 아니라, 목소리를 내서.’
‘나 때문에 그녀는 괴물이 됐다.’
마법사들
……
루틸
‘수배했던 라벤더 꽃다발이 이제서야 도착했지만. 그녀가 이 꽃을 끌어안을 날은 더 이상 오지 않아.’
‘그녀 자신에게 배운 의식을 통해, 더 레이븐을 잠들게 했다. 이 잠을 깨우지 않도록, 명령해야겠다.’
‘…언젠가, 그녀의 영혼에 남겨진 상처가 치유되어, 원망으로부터 해방되기를.’
미스라
… 응? 뭔가, 들은 이야기랑 많이 다르지 않아요?
오웬
전승은 인간들이 멋대로 퍼트린 이야기란 거지. ‘그 기분 나쁜 마녀니까, 어차피’라고.
피가로
그 시절에는 마법사를 향한 편견이 한층 더 과했을 때니까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외부인은 미움받기 십상이고.
파우스트
…어쨌든, 의식이 어중간해진 이유는 알았군.
까마귀 마녀는 올바른 마법 지식을 알지 못했던 거겠지.
그런 그녀가, 인간인 눈물의 공주에게 의식을 알려주기 위해, 더욱 더 세부사항을 개변해서 불완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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