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끝에서 자줏빛 꽃의 겉잠을 6화
파우스트
그런 의식이어도 효과가 있었던 건, 까마귀 마녀의 마도구나 무언가를 매개로 했거나, 혹은……
루틸
더 레이븐이…… 그녀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공주를 상처입히는 것을……
아키라
……
나도, 누구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방 안에 장식된 라벤더의 향이 구슬펐다.
이런 때에, 적극적으로 기분을 전환해서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거는 루틸마저.
수기를 발견했을 때부터 드물게, 그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실패했다’라는 공주의 말이, 그가 했던 말과 똑같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축축한 바람이 부는 안뜰에서, 혼자, 웅크려 앉아있던 그 밤과.
아키라
(공주가 실패한 건, 말주변이 없고, 애초에 마음을 전하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야.)
(루틸은 전하려고 하는 마음 자체는 제대로 있었으니까, 그런 의미로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하지만, 괴물로 변해버리고 만 친구 앞에서, 혼자만 있던 밤의 안뜰에서, 우뚝 서있던 두 사람의 쓸쓸한 마음은 닮은 거겠지.
툭 하고 끊어진 실을 보는 듯한, 실망과 안타까움.
아키라
(…어째서, 소중한 것에만 한해서 전해지지 않는 걸까…)
(어째서, 전하고 싶다는 마음만큼, 닿이지 않는 걸까……)
히스클리프
…그렇다면, 에스코트의 순서도 공주가 나중에 추가한 걸까요.
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네.
실은,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감사하고 있었다라고 최선을 다해 전해서, 더 레이븐을 정화하고 싶었던 거겠지.
클로에
…나, 에스코트도 의식도 엄청 힘낼래. 이게 지금의 우리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오웬
아하하. 의미 없어, 그거.
클로에
에……
오웬
그야, 지금까지 계속, 감사를 올리고 잠들게 해도, 더 레이븐의 영혼은 일그러져 있었는 걸.
그렇다면 차라리, 죽이거나 봉인하는 게 제일 상냥한 거 아냐?
미스라
뭐, 저 느낌으로 봐선, 이제 슬슬 지금의 의식으로 잠들게 하는 것도 한계일 거고요.
어쩔래요? 모처럼이니까, 지금 해버릴까요?
히스클리프
…그…그런…
루틸
…… 퇴치……
고개를 숙인 채로, 루틸이 품에 안고 있던 꽃다발과 수기를 꽉 안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루틸
……퇴치를 생각하기 전에…
이 수기의 내용을 까마귀 마녀 씨에게 전할 수 없을지, 시험해볼 수 없을까요.
클로에, 아서, 히스클리프
…!
파우스트
……
오웬
쓸모없어. 그 녀석은 말을 잊어버렸다고 했잖아.
아니면, 형편 좋게 공주님의 수기만 더 레이븐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가 좋아하는 그림책 속의 이야기처럼.
냉정하게 어깨를 움츠린 오웬에게 루틸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루틸
……생각하지 않아요.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오웬 씨가 올바르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번에 확실히 의식으로 잠재워도, 까마귀 마녀 씨는 언젠가 날뛰어서 퇴치당하고 말겠죠?
그렇다면 마법사가 8명이나 모여서……
공주가 수기와 꽃다발을 맡겨준 지금이라면, 분명 두 번은 없을 정화할 기회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루틸의 말이 도중에 끊겼다.
피가로가 살짝 등에 손을 올려주자, 약하게 미소지으며 한숨을 뱉듯이 계속 말한다.
루틸
…공주의 잘못은, 커다란 비극을 불러왔지만, 어디에나 있는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저는 비슷한 일을 해버리고 말아서.
…그래서…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다니… 그런 거…
파우스트
……
네가 말하고 싶은 건 알았다.
하지만, 희망은 버리는 편이 좋아.
아서
…파우스트…
파우스트
인간과 마법사가 오해도 응어리도 없이,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어.
만약 기적이 일어나, 말이 통한다고 해도, 까마귀 마녀가 공주를 용서할 보장이 없어.
두 사람의 인연은 수백 년 전, 까마귀 마녀가 괴물이 되어버린 시점에서 이미, 돌이킬 수 없어진 거야.
아키라
……
싹둑 잘라내는 듯한 말과 정반대로, 파우스트의 목소리는 상냥하고 조용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희망의 싹을 가차없이 움켜쥐는 것이, 그의 상냥함이라고 알고 있으니까.
그는 믿고 있던 친구에게 산 채로 불태워진 사람이다.
하지만, 한 걸음, 아서가 앞으로 나왔다.
아서
……그럼에도.
나는 루틸에게 찬동하고 싶어.
그는 루틸의 옆에 서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고 파우스트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아서
인간과 마법사가… 아니, 어느 누구라도 오해 없이 마음을 전하고, 함께 있는 건 어려운 일이야.
악의 없는 행동이나 신경쓰지 않았던 태도가, 특히 상대를 깊게 상처입히는 일도 있겠지.
그럼에도, 마음을 다하여 말을 전한다면, 함께할 수 있는 길은 반드시 있을 거야.
게다가 공주와 까마귀 마녀는 서로와 함께 있고 싶다고 바라고 있었어. 그러니까 분명, 아직 늦지 않았어.
클로에
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야, 우리들, 마법관에서 함께 있을 수 있잖아?
물론, 갑작스런 말에 깜짝 놀라거나 충격을 받을 때도 있지만……
나중에 그 말의 이유를 듣고, 그랬구나 하면서 웃은 일, 나는 몇 번이나 있어.
공주와 마녀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히스클리프
선생님. 저도, 가능하다면……
파우스트
……
루틸에게 다가선 젊은 마법사들을 조금이나마, 파우스트는 무언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파우스트를 두둔하려고 했던 건지, 피가로가 무언가 말하려고 한다.
그 전에, 갑자기 파우스트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파우스트
…알았다. 너희들이 그렇게 정했다면, 나도 힘을 빌려주지.
루틸
파우스트 씨…!
파우스트
지금부터 시작한다면, 지금의 의식 순서에 수기를 끼워넣는 편이 빠르겠군.
공주와 제일 연이 깊은 건, 수기와 꽃다발을 건네받은 루틸과 현자다.
루틸이 자신의 분담…… 의식의 마지막에 수기를 읽는 형태가 제일 괜찮겠지.
피가로
그러네. 의식의 마지막이라면 우리들도 가까이서 서포트하기 쉬우니까.
미스라
하? 저는 절대 반대예요. 루틸이 위험하잖아요.
피가로
납득할 수 없는 채로 의식에 참여하는 쪽이 더 위험할지도 몰라. 마법은 마음으로 쓰는 거니까.
미스라
하지만……
피가로
그런 마물, 미스라라면 손가락 끝으로 쓰러트릴 수 있잖아. 그러니까 더더욱 루틸의 납득을 중요하게 대해주는 편이 좋지 않아?
미스라
……
……뭐어, 그건……
루틸
죄송해요, 미스라 씨. 미스라 씨가 무리라고 생각한다면 바로 따를 테니까요.
파우스트
하지만, 이후 의식의 준비에 대해서는 그것도 짜두자.
다시 한 번 순서를 확인해서ㅡ.
오웬
나는 좋다고 안 했어.
팔짱을 낀 채로 오웬이 막았다. 신경질적으로 손끝으로 팔꿈치를 두드리며, 날카롭게 비웃었다.
오웬
루틸도 방금 말했잖아. 이런 거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귀찮은 일이 늘어날 뿐이야.
난 눈물을 자아내는 얕은 꾀를 싫어해. 나를 끌어들이지 말아줘.
클로에
앗… 오, 오웬! 어디 가는 거야?
오웬
돌아갈래.
미스라
하? 돌아가게 하지 않을 거예요.
오웬
몰라. 네 지시는 듣지 않아.
미스라
들어줘야겠어요. 저는 남을 거니까.
아아, 아니. 지금 죽여서 의식이 시작되는 내일 아침까지 이 근처에 두면 되는 건가.
히스클리프
에?!
피가로
진정해, 두 사람 다……
오웬
…쳇.
죽일 것 같은 눈빛을 남기고, 오웬은 휙 하고 몸을 띄웠다.
상의의 옷자락이 둥글게 펼쳐지자, 다음 순간 이미 모습을 감춰버렸다.
클로에
……! 어, 없어져버렸다……
아키라
정말 마법관에 돌아간 걸까요? 제가 대리를 하는 편이…
피가로
괜찮을 거야. 오웬도 죽고 싶진 않을 테니까. 멀리 가진 않았을 거야.
공간의 문이 있는 이상, 어디까지 도망쳐도 쓸모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내일 의식에는 나타날 거야.
준비를 끝낸 우리들은 내일 의식에 대비해 이 성에서 쉬기로 했다.
각자의 시간을 보내면서, 조용히 날이 새는 것을 기다린다.
더 레이븐에게 눈물의 공주의 마음이 닿기를 기도하면서.
파우스트
…좋아. 다음은, 백 년된 찔레나무를……
……아서인가.
아서
파우스트.
파우스트
이런 늦은 밤에 무슨 일이지?
아서
성 밖의 숲에서 네 기척이 느껴져서, 상태를 보러 왔어.
이 성에서 더 레이븐이 도망치지 않도록 결계를 치고 있었던 거구나. 도와줄게.
파우스트
아니, 마음만 받겠어. 남은 건 백 년된 찔레나무를 사용할 공정이야. 네가 만지게 할 순 없어.
아서
그래. ……
파우스트
……
…왜 그러지? 방에 돌아가도 돼.
아서
아아, 그게, 미안하다.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고 있어서……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