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파랑
사요띵
bgm: Kid Wine- 모두 잊은 것처럼, 아무 일 없던 것처럼
→https://youtu.be/w-v31VUYEik?si=9VckgmQmeqm88mvY
항상 평화로울 줄만 알았던 띵숲의 어긋난 오류들을 플레이어들이 알아채고 모두 떠나게 되는 순간이 오면 각자 호감도를 어느 정도 쌓았던 플레이어들이 떠남에 아쉬워 주민들 입맛을 다셨다. 게중에서 사요는 점점 흐리게 번져가며 사라지는 플레이어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저 평소와 같이 무덤덤하게 바라봤다. 당장이라도 이상한 이곳에서 떠나야겠다고 플레이어들이 결심해 떠날 당시조차도 짤막한 한마디하는 게 전부였다. 아쉽다 흥. 그리고 사요는 떠나는 이들을 한없이 눈에 담았다.
플레이어들이 떠나간 자리를 메꾸기 위해 불평 불만을 토로하는 다른 주민들과는 달리 사요는 그저 주민들에게 한두마디씩 얹는 게 전부였다. 네가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않냐 흥. 열심히 해라 흥. 물론 본인들의 신뢰도가 그렇게밖에 되지 않았나, 하는 서운함에 축 처져서 돌아다니는 소수의 주민들도 종종 존재하긴 했지만 그에 반면 사요는 오히려 멀쩡하게 띵숲을 돌아다니는 편이었다.
“사요님은 괜찮아요 메…?”
“뭐가 흥?”
“사, 사람들이 떠났잖아요 메…. 근데 사요님은 다른 분들과는 다르게 괜찮아 보이시길래요 메….”
평소에도 걱정과 생각이 많던 청이가 조심스레 물어오자 사요는 귀 한 번 쫑긋거리곤 덤덤하게 답했다. 난 괜찮다 흥. 그리고 애초에 여기에 남을 거란 기대를 안 했어 흥. 사요의 대답에 청은 한참 말없이 애꿎은 손만 만지작거리다가 한마디하고 자리를 떠났다. 저도 사요님처럼 되고 싶어요 메…. 청이 떠난 이후에도 말없이 손질하던 무언가를 손으로 매만지던 사요가 그 바로 밑에 파란색 물고기 형상을 매달았다. 곧이어 완성된 드림캐쳐를 내려다보던 사요는 드림캐쳐를 손에 쥐고선 이내 가구점에 휴무라는 팻말을 걸어 씌우곤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던 사요는 이내 바람과 볕이 제일 잘 들어오는 창문 부근에 드림캐쳐를 설치했다. 때마침 옅게 불어오는 바람결을 따라 드림캐쳐가 약하게 흔들렸다. 한참이나 드림캐쳐가 흔들리는 걸 무던하게 바라보던 사요의 입 밖으로 한숨이 터져나왔다. 하아... 이내 피곤한듯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꿈뻑이던 사요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듯 앉았다.
다른 이들이 보기엔 멀쩡해 보이고 퍽 괜찮아 보였을지 몰라도 사요는 플레이어들이 떠나던 날부터 속이 좀먹고 있었다. 아니, 지영이 떠나던 날부터. 그래, 더 솔직하게 토로해 보자면 지영이 저를 미묘하게 원망어린 눈길로 보던 순간부터였던 것 같았다.
그동안 숨겨놓았던 비밀이 모든 이들에게 밝혀지던 그 순간, 이상하고 꺼림칙한 촉이 사요를 스쳐지나감을 어렴풋이 느껴졌다. 어쩌면 이후로 다시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불길한 예상이. 저희들끼리 회의하려는 듯 모이려는 플레이어들에 다급하게 지영의 앞을 가로막고 저는 아니라고 비겁한 변명을 해봐도 이미 들리지 않는 듯 빠르게 모습을 감추는 지영에 코앞에서 순식간에 놓쳐버렸다. 그 때문에 사요는 그저 지영이 있었다는 흔적조차 사라진 곳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수 밖에 없었다. ...난, 진짜 적어도 너한테만큼은 그런 적 없는데. 차마 그 애에게 닿지 않을 흐린 목소리가 허공에서 흩어졌다.
다음으로 우연히 마주쳐서 대화했을 땐 내심 안도했던 것도 같다. 평소 제가 좋아하던 파란 물고기에 대해 묻는 지영을 보며 아, 날 믿어주는구나 생각했는데 그 기분은 바로 제 앞에서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꾸므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자마자 한순간에 추락했다. 그 애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꾸므에 대한 이야기가 더 이상 듣기 싫은 나머지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그때 내가 좀 더 아니라고 해명했더라면, 무작정 도망치지 않고 나에 대해서 얘기를 꺼냈더라면... 적어도 너가 날 원망하진 않고 떠났을까? 그랬으면 다시 날 보러 이곳에 와주었으려나? 또 다시 자기 원망과 더불어 후회가 시작되자, 깊은 한숨을 푹 내쉬던 사요가 피곤에 절어 뻑뻑해진 눈가를 비비자 이내 눈이 금세 벌겋게 물들었다.
어느덧 시간이 까맣게 물들고 있었으나 여전히 할 일이 끝나지 않은 채였다. 느리게 몸을 일으킨 사요는 습관적으로 얇은 가디건 하나를 챙겨 집을 나섰고, 그렇게 익숙하게 발걸음을 움직여 도착한 곳은 한때 지영의 집이었던 자리였다. 큼지막한 가구를 제외한 자질구레한 것들은 주민들이 플레이어들의 집을 각자 맡아 치우기로 했지만 우연인지는 몰라도 지영의 집을 맡은 건 사요였다. 이미 애진작에 전부 깨끗이 정리했을 거라는 다른 주민들의 예상과는 달리 이제껏 미뤄두고 있다가 이제야 조금씩 정리하며 치우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느리게 집 안을 훑자 전부 제가 준 것들만 시야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 중에서 이내 유독 눈에 띄는 것 중 하나인 곰인형이 사요의 손에 들렸다. 그림도 시야에 들어오긴 했지만 그건 이미 그 애에게 준 것이었기에 제게 돌아온다고 한들 다시 창고의 구석진 곳에 처박거나, 제 눈에 띌 수 없게 소각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것도 아니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을 지영을 위해 보관하고 있던가.
차츰 하나 둘 정리하고 집에서 빠져나오던 사요의 걸음이 지영의 우편함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우편함에서 편지 한 개를 집어서 꺼내들었다. ...지영이 떠나던 날 낮에 넣어둔 사요의 투박한 손글씨가 담긴 편지였다. 여즉 열어보지 않은 듯 여전히 제 손길이 묻어나는, 빳빳하게 접혀져 있는 파란 색감이 연하게 물들어있는 편지 봉투. 천천히 편지를 꺼내자 함께 동봉되어있는 목걸이가 같이 딸려나와 사요의 손에 들려져 나왔다. 떠나기 전에 한 번쯤은 열어서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읽지 않았구나. 결국엔 아주 작은 마음도 전해지지 않았구나. 먹먹한 마음에 희미한 웃음을 걸친 채 편지의 겉면을 조심스레 매만지던 사요는 결국 제 집에 다다르고 나서야 편지와 목걸이를 망설임없이 쓰레기통에 처박아 넣었다. 매 순간 망설이던 걸 제 손으로 정리한 탓인지 어쩌면 그 애는 다시 이곳에 오지 못할 거란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선물할 사람이 사라져버려 도착해야 할 방향을 잃었으니 이는 더 이상 쓸모를 다한 선물에 불과할 뿐이었다.
[지영아, 네 기억 속에서 내가 함께 할 수 있긴 할까?
어쩌면 너와 함께 하던 여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 같아.
안녕. 조심해서 잘 가.]
영영 전달되지 못할 마지막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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