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러운 무더위

콩양

bgm: 라이프 앤 타임- 빛

https://youtu.be/w57RgKxCR5I?si=NwyyXKmNmkY6Bu0J

들어가는 입구부터 숨이 턱 막히는 지하는 평소엔 햇볕도 잘 들지 않아, 창문 너머로 반 틈만 들어오는 게 전부였건만 그거라도 어떠냐는 심정으로 사는 수 밖에 없었다. 불을 켜도 불빛이 들어온 거나 만 거나 다름없었지만 장훈과 양지영은 서로에게 의지한 채 쿱쿱한 반지하에 옹기종기 모였다. 여름엔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선풍기 하나로 무더위를, 겨울엔 고물 같이 낡아빠진 전기난로로 겨우 서로의 온기로 버텨 살았다.

그래, 그게 꼭 세상에 마지막 남은 전부인 것처럼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소란스러운 무더위

노오란 쪽방에 푹푹 찌는 더위가 내려 앉자, 지영이 덜덜거리는 선풍기 앞에 얼굴을 바싹 붙였다. 여기서 맞는 여름이 몇 번째더라... 더워서 그런가 별 시답지 않은 생각이 다 들었다. 차라리 바람이라도 잘 통하면 다행이지만 아쉽게도 반지하는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터라 열기가 온 방에 가득했고, 가만히만 있어도 이마께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하나둘 맺혔다. 살인적으로 드높아지는 계절에 맞춰 최대한 얇게 입은 반팔과 반바지도 여름 앞에는 소용이 없었다. 여름이면 모든 게 속수무책으로 흘러내리는 게 일상이었다.

“아, 더워….”

“인정….”

나란히 덜덜거리는 고장난 선풍기에 의지하던 훈이 뇌까리는 말에 지영이 수긍하며 동의했다. 선풍기가 회전하며 바람을 날린다고 한들 얇게 입은 반팔 두어 번 펄럭거리는 게 전부였고 고작 이거 하나로 여름을 보내기란 쥐약이 따로 없었다. 애초에 에어컨도 아닌 선풍기로 여름을 보낸다는 게 되긴 하는 걸까? 이제껏 선풍기 단 하나로 버텼지만 매년 찾아오는 여름에 에어컨에 대한 욕구는 매번 갱신되곤 했다. 언젠가 저 고물 같은 선풍기를 치워버리고 새로 에어컨을 집에 들여와야지. 느린 바람을 맞으며 지영은 속으로 작게 다짐했다.

한참 무기력하게 방바닥에 널부러져 누워있던 훈이 아, 하고 단말마를 내뱉다 이내 짧게 끄응 앓는 소리와 함께 일어섰다. 이마선을 따라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훔쳐내며 몸을 일으키는 훈에 지영의 시선이 자연스레 향했다.

“뭐야, 어디가?”

좁디 좁은 단칸방을 휘적휘적 거침없이 활보하는 넓은 등을 뒤따라 시선을 좇던 지영의 물음에 작게 웃음을 흘린 훈이 동시에 냉동고 문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 봉투에 휩싸인 무언가를 꺼내들자 문이 고스란히 닫혔다.

“제가 어딜 가긴, 어딜 가요. 이거 꺼내려고 갔죠.”

훈의 손에 들린 걸 발견하자마자 지영의 눈이 순식간에 동그랗게 뜨였다. 뭐야, 너 그거 어디서 났어? 던져진 질문에도 아랑곳않고 다시 되돌아와 앉은 훈이 봉투를 뜯곤 막대를 양손으로 붙들고 당기자, 아이스크림이 보기 좋게 갈라졌다. 훈이 아이스크림을 내밀자 얼떨결에 건네받은 아이스크림을 쥔 지영이 다시 되물었다. 어디서 났냐니까? 그리고 그제야 훈이 작게 투덜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 그냥 주면 먹으면 되지 의심이 차암 많으시네….”

“야, 장 훈.”

“참나, 제가 뭐 어디서 훔쳤을까 봐요?”

“…그럼 뭔데.”

“전에 샀던 건데 까먹고 있었어요.”

넣자마자 냉동실에 넣었을 테니까 아마 괜찮지 않을까요? 태연하게 아이스크림을 크게 베어물자 훈의 말끝이 잔뜩 뭉그러지며 웅얼거렸다. 눈을 좁히며 훈을 바라보던 지영도 이내 아이스크림을 입 안 가득 집어삼켰다. 꺼낸지 얼마나 됐다고 반지하의 열기에 못 이긴 아이스크림이 벌써부터 녹아내리고 있었다. 곧이어 금방 모습을 온데간데없이 감춘 아이스크림에 지영이 괜히 입맛을 다셨다. 잠시 곁에 머무르다 사라진 시원함이 퍽 아쉬운 나머지 막대를 가만히 쥐고있자, 물기를 머금은 시원함이 불쾌하게 손을 따라 눅진하게 흘러내렸다. 인상을 찌푸리는 지영에 진작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기다리던 훈의 시선이 향했다. 이내 각티슈에서 휴지를 몇 장 뽑은 훈이 지영에게 건네려다 아이스크림이 끈적하게 달라붙은 지영의 손을 보곤 한숨을 작게 내뱉었다. 그 사이에 사고를 치셨네, 우리 누나. 한탄하듯 작게 중얼거리던 훈은 제 말에 지영이 금세 짜증을 얹기 전에 먼저 지영의 손을 다른 손으로 조심스레 쥐고선 휴지로 느리게 닦아내렸다.

“어휴 진짜, 누나 이렇게 칠칠맞아서 어떡하실래요?”

“참나…. 이렇게 하면 더 찝찝하고 끈적거리거든?”

물로 닦으면 되니까 괜히 휴지 낭비하지 말라고, 그렇게 지영이 말하려던 찰나였다. 지영의 툴툴거리는 핀잔에 못 이겨 휴지를 쥔 손을 거둔 훈이 심술이 옅게 스며든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예고도 없이 지영과 훈의 시선이 허공에 맞닿았다. …어라. 고작 얼마 안 되는 거리에서 불시에 마주한 얼굴이 생각보다 가까워서 그런가, 묘한 분위기가 흐르다 못해 주변에 짙게 머무르는 기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열병이라도 걸린 것마냥 갑자기 열이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퍼져나가는 듯 온몸이 덥다 못해 손바닥에 땀이 배어나왔다. …그새 더위라도 먹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자꾸만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즈음, 그제야 훈의 정신이 차츰 돌아왔다. 멍한 정신을 다시금 붙든 훈이 그대로 지영을 끌어안고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채 고개를 푹 숙이자, 지영이 장난기가 스며든 음성으로 작게 킥킥대며 웃었다.

“끈적거리니까 떨어져, 인마.”

“…일부러 붙어있는 거거든요? 누나 더 더우라고.”

여즉 사라지지 않은 끈적거림이 손바닥에 달라붙어 있었지만 영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훈에 지영이 작게 중얼거렸다. 아, 진짜… 손 닦아야 하는데. 샤워한지도 얼마 안 됐는데. 그럼에도 지영은 훈을 떨어뜨리긴커녕 오히려 끈적거리지 않는 다른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고, 그 모습이 웃긴지 훈이 키득거리며 작게 웃었다.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누나는 짜증을 부리는 것마저 다 웃겼다.

“그러면서 제 머리는 쓰다듬으시는 건데요?”

“…아, 짜증나. 너 저리 가.”

“아, 오케이. 저 지금부터 조용히 하고 있을게요.”

맞닿는 온기가 바깥의 공기보다 더 뜨겁지 않을까 싶었다. 금방이라도 깊게 자리한 언어들을 모조리 꺼내어 고백할 것만 같았다.

속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여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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