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테르 에고의 규칙 15화
아키라
(과거의 기억이 없다는 건, 나도 아키라의 경영자일 수도 있는 걸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마지막 한 모금을 남김없이 마신다.
텅 빈 칵테일 글라스와, 그 반들거림 너머로 보는 샤일록. 나는 옅은 위화감을 느꼈다.
아키라
(어라…? 나, 알고 있어. 이 풍경을.)
(붕배의 의식을 했을 때 봤으니까 당연한 거지만,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
…좀 더, 전부터…
나는 유리잔에 닿아있던 손가락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아키라
(아…)
갑자기, 내 손가락 끝은 분홍색 꽃잎으로 모습을 바꿔 팔랑팔랑 무너져 간다.
리케
아키라…!
샤일록
설마… 당신도, 경영자…!?
…읏. 빨리, 키르슈 페르슈를…!
두 사람의 비명에, 모두가 당황해서 달려와준다.
스노우
자네, 그 손가락…! 빨리 멈춰야만!
카인
안 돼. 손으로 억눌러도 무너져버려…!
히스클리프
그런… 아키라는, 아직 폭주 단계에도 들어가지 않았던 게…
리케
기다려요! 사라져버리는 건 싫어요, 모처럼 동료가 되었는데…!
카인과 리케가 내 일부였을 터인 꽃잎을, 열심히 손바닥으로 모았다.
그 필사적인 행동에, 내 가슴이 점점 따뜻해진다. 동시에, 조금 미안한 기분도 들었다.
모두와의 이별은, 슬프고, 쓸쓸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놀라거나 당황스러운 기분은 없었으니까.
아키라
놀라게 해서 죄송해요, 여러분. 괜찮아요… 저는, 괜찮으니까.
미스라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이미 손바닥까지 없어졌는데요.
오웬
너, 그런 얼굴을 하고, 사실은 강한 척 하고 있는 거 아냐?
조금 먼 곳에서 이쪽을 보는 두 사람에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침착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아키라
강한 척 하는 것도 아니고, 무섭지도 않아요. 그야…
나는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몸에서 흩어지는 꽃잎을 본다.
아키라
(이 분홍색 꽃은, 낙월화가 아니야. 나는 이 꽃을 알고 있어.)
(이 꽃이 넘칠 때마다 기억이, 추억이, 돌아온다.)
샤일록
아키라…! 키르슈 페르슈예요.
이름이 불려서 고개를 들자, 샤일록이 유리잔을 손에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미 유리잔을 받기 위한 팔이 없었다.
샤일록은 고통스러운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내 턱에 손을 걸쳤다.
샤일록
부탁이에요, 아키라. 제발, 마셔주세요.
아키라
샤일록…
그의 목소리에는, 기도하는 듯한 울림이 있었다. 눈앞에는 아름다운 액체로 가득 찬 유리잔이 있다.
나는 애달프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키라
키르슈 페르슈라면, 전에 마셨어요. 괜찮아요. 저는 경영자가 아니에요.
샤일록
…그렇다면, 당신은…
아키라
저는 아키라.
만월의 밤에, 부서지기 직전의 세계에 소환된, 현자예요.
샤일록
현자? 그것은, 대체…?
아키라
저를 표현하는 말이에요. 고양이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키라’가, 세계를 구하는, 현자 ‘아키라’가 되었어요.
그것이, 여기에 오기 전의 제 정체예요.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샤일록은 곤란한 듯이 웃으며 유리잔을 카운터 위에 올려두었다.
샤일록
그런가요… 그게 진실된, 당신이었군요.
아키로
그러네요. …하지만, 정확히는 조금 달라요.
평범한 아키라이자, 현자 아키라…
그리고, 루나피에나 패밀리의 아키라. 그 전부가, 진실된 저예요.
샤일록
아키라…
이별을 섭섭해하는 눈물처럼, 내 몸에서 분홍색 꽃잎이 팔랑, 팔랑 흩어진다.
샤일록
…이별은 서운하지만, 분명, 어딘가에서, 현자로써의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분이 계시겠지요.
그러니 막지 않겠습니다.
그럼, 잠깐의 이별을 위한 한 잔을.
샤일록이, 내 입가에 상냥하게 키르슈 페르슈를 내밀었다.
아키라
…감사합니다. 샤일록.
나는, 분홍색의… 벚꽃으로 돌아가면서 눈을 감았다.
그 입술에, 유리잔의 감촉이 느껴졌다.
아키라
(…맞다. 기억났어.)
(희미하게 달고 산뜻한 맛과, 상냥한 꽃향기. 그 한 잔을, 나는 알고 있어.)
(세계를 구하는, 현자인 나는ㅡ)
다시금 눈을 떴을 때에는, 술집의 경치는 하얀 얇은 천을 씌운 것처럼 흐릿했다.
보이지 않게 되어가는, 사랑스러운 사람들에게, 나는 속삭였다.
아키라
안녕히. 낙월화 거리의, 모두들……
샤일록
………… ……님. 아키라 님.
아키라
으응… 한 입만…
샤일록
이런, 무엇을 원하시나요? 제가 입까지 옮겨드리겠습니다.
스노우
그럴 때에는 앙~이라네. 히스클리프, 차례일세.
히스클리프
제, 제가 하는 건가요?
에, 그러니까… 아~앙…
아키라
에… 에에!?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나의 의식은 단숨에 각성했다.
아키라
여기는… 마법관의, 제 방?
스노우
호호호, 서프라이즈 성공이구먼.
어른 모습의 스노우가 웃고, 그 옆에서는 샤일록과 히스클리프가, 조금 안심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네 침대 주위에는 많은 마법사들이 모여있었다.
샤일록과 스노우, 히스클리프 뿐만이 아니라, 카인, 리케, 아서, 게다가 미스라나 오웬까지 있었다.
아키라
이건 대체… 어떤 상황인가요?
샤일록
어젯밤, 제 바에 오셨던 일을 기억하고 계시나요?
아키라
어느 정도는…
샤일록
그때, 수면에 좋은 허브를 사용한 논 알코올 칵테일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너무 잘 주무신 건지 다음날 점심이 되서도 일어나지 못하셨기에, 걱정이 되어.
히스클리프
마법관에 있던 모두가, 병문안을 온 참이었어요.
스노우
솔직하지 못한 미스라 쨩과 오웬 쨩은 내가 질질 끌어서… 크흠. 권유해서 데려온 거라네.
아키라
기, 기억났다…! 걱정을 끼쳐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미스라
하아… 재미없어. 역시 그냥 자고 있었을 뿐이잖아요.
카인
만약의 일이 있으면 곤란하잖아.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이지 않아?
오웬
죽어있는 것처럼 한심한 자는 얼굴이었는데. 벌써 일어나다니, 재미없어.
아키라
하하… 그다지 재미있게 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내가 몸을 일으키면서 말하자, 리케가 흥미로운 듯이 물어왔다.
리케
그건 그렇고, 정말 잘 듣는 수면 칵테일이었네요. 맛은 어떠셨나요?
아키라
엄청 맛있었어요. 희미하게 달고 산뜻한 맛에다가… 상냥한 꽃향기가 나서.
리케
꽃향기가 나는 칵테일! 멋지네요. 저도 마셔보고 싶어라.
아서
칵테일이 효과가 있었던 건 확실하지만, 이렇게까지 잘 주무신 거라면, 분명 피로가 쌓여있었던 거겠죠.
현시점에서 가장 가까운 임무는, 쉬는 건 어떤가요?
스노우
그래. 나중에 준비해두지. 너무 무리하지 않게끔 말이누.
아키라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실히 피곤, 했던 걸까… 엄청 긴 꿈을 꿨어요.
샤일록
그런 듯 하네요. ‘한 입만 더’라고 말씀하시곤. 대체 어떤 꿈이었나요?
아키라
그건, 마침 샤일록의 술집에서 한 잔을 받기 직전이었어요.
스노우
호오. 샤일록이 꿈속에서도 술집의 점주를 하고 있던 겐가.
아키라
아, 아니. 술집의 점주는 부업이라고 할까… 본업은 좀 더 악당 느낌이라.
히스클리프
샤일록이 악당…?
아키라
사실은, 히스도 악당 느낌이었어요. 스노우도, 다른 모두도…
히스클리프
에에!? 저도…?
스노우
싫다, 현자쨩! 큐트하고 상냥한 본인을, 사실은 그런 식으로 보고 있었던 거야?~
카인
헤에, 악당 같은 샤일록들인가. 어떤 느낌이었는지 신경쓰이네. 의외로, 멋있는 거 아냐?
미스라
흥미없네요. 꿈속 이야기 따위.
샤일록은 모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머릿맡에 유리잔을 준비하고 있었다. 유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왜인지 그리웠다.
샤일록
후후, 현자님은, 악당인 저와 지금의 저, 어느쪽이 취향이신가요?
아키라
그건…
고를 수 없어요. 악당이어도 악당이 아니어도… 샤일록은 샤일록.
제가 좋아하는, 샤일록이었으니까요.
진심으로 우러나온 말을 전하자, 샤일록의 얼굴은 풀리기 시작했다.
샤일록
이런이런. 기쁜 말 감사합니다.
그럼, 잠에서 깨어난 한 잔을 이쪽에.
가벼운 인사와 함께, 은색의 쟁반에 올라간 유리잔이 눈앞에 나타났다.
따뜻한 노란색이 바닥에, 꽃이 피는 듯한 분홍색이 그 위에. 유리잔 안에 있는 것은, 아름다운 그라데이션.
아키라
(그 음료와 엄청 닮았어… 꿈의 마지막에 마신, 그 칵테일과.)
샤일록
태양 아래에서 즐기기 위한 용도로, 안면 허브는 뺐습니다.
아키라
아하하, 감사합니다.
나는 유리잔을 받아들고, 창문에서 비춰들어오는 햇빛을 손으로 가리자, 손등에 분홍색과 노란색의 빛이 춤춘다.
마치 꽃잎같다, 라고 생각하며 나는 유리잔을 기울였다.
코를 간지럽히는, 산뜻하고 단 향기. 확실히 그 음료와 비슷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향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벚꽃의 그것과 매우 닮은, 그리운 꽃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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