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자흐로미

시린 자흐로미는 방어술 수업을 결석했다.

2022.09.19

스코틀랜드의 가을은 날이 갈수록 추워져만 갔고, 그에 맞추어 기숙사 휴게실의 벽난로는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타닥 타닥. 오늘도 거침없이 타오르는 불은 제 아래 깔린 나뭇가지들을 살라먹었다. 붉은색 소파. 금빛 사자가 그려진 테피스트리. 벽난로 위에 올려진 섬세한 장식들…. 

텅 비어있는 휴게실은 적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왁자지껄하니 떠드는 학생들도, 시끄러운 소음도 없었다. 가끔씩 어떤 못말리는 그리핀도르-주로 저학생이었는데-가 곳곳에 똥 폭탄을 터뜨릴 때면 풍기는 고약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오로지 나뭇가지가 불에 잡아먹히는 소리와, 그의 손에서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 그의 뒤척임에 따라 소파가 내는 삐걱이는 소리만이 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팔락 팔락. 타닥 타닥. 끼익 끼익.

팔락 팔락. 타닥 타닥. 끼익 끼익.


오늘은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이번 수업은 특이하게도 네 기숙사가 함께 하는 합동 수업라고 했다. 아이들은 오늘은 어떤 마법을 배우게 될지, 또는 어떤 어둠의 생물에 대해 알게 될지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소근거렸다. 두려움과 기대가 섞인 태도였다. 한 아이가 그를 툭, 건드리며 물었다.

“자흐로미. 곧 있으면 수업인데, 준비 안 해?”

“조금만 더 쉬었다가.”

그는 붉은색 소파에 제 몸을 반쯤 파묻고 있었다. 피곤한 것인지 두 눈은 슬며시 감은 채였다. 그는 저를 향한 질문에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질문을 한 아이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다른 아이들과 함께 삼삼오오 휴게실을 나갔다. 우르르 인파가 빠져나가고 찾아오는 것은 정적. 그는 그 고요 속에서, 두 눈을 뜨지 않은 채로 한참을 그 상태 그대로 꼼짝 하나 하지 않았다. 그가 제 무릎에 올려놓은 책을 집어들어 펼친 것은 그로부터도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째깍 째깍. 시계의 초침이 한 바퀴를 돌고, 이내 분침이 움직였다. 수업 시작까지 10분, 5분, 3분, 2분, 1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수업 시작으로부터 1분, 2분, 3분, 5분, 10분…. 그는 여전히 소파에 파묻힌 채였다. 그는 제 손 안의 책을 펼치고, 한 장씩 페이지를 넘겼다. 그는 벽난로가 타닥이는 소리를 듣고, 벽의 테피스트리를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소파에 더 깊숙히 파묻혔다가, 제 몸을 뒤척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처음부터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수업에 참여할 생각 따위, 애당초 하지도 않았다. 그는 오늘 수업에서 무엇이 나오는지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그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묻지 않기로 하자.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다.

보가트. 그것은 옷장이나 침대 아래서 숨어 살며, 그것을 마주하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변한다. 해치우는 주문은 리디큘러스, 그리고 진심어린 폭소.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우습게 여기는 마음가짐. 제 두려움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용기.

그는 읽던 페이지에 책갈피를 끼워두고, 책을 덮었다. 소파에 몸을 깊숙히 파묻은 채로, 다시금 눈을 감았다. 방금 전까지 읽은 단어와 문장들이 붉은 허공 속을 떠돌아다녔다. 온갖 심상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모든 것이 돌이켜지기 이전, 이제는 그가 '지난 삶'이라고 부르는 그 때에 보가트를 만난 적이 있었다. 지금과 같은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 시간이었다. 그것은 다른 아이들 앞에서 거미와 쥐, 방울뱀과 코브라, 미라와 기어다니는 손 따위로 변하며 이리저리 주문을 피하다 그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보였던 것은―.

폭발, 총성, 비명, 절규, 피, 쓰러져내리는 몸뚱아리. 지겹도록 반복되는 똑같은 장면들. 총을 들고 굳은 얼굴을 한 남자의 모습. 지팡이는 총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사람들은 허무하게 질질 끌려나갔다. 허무하게 눈 앞에서 죽어 나자빠졌다.

그 때의 교실을 기억한다. 아이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교수는 당황한 표정으로 재빨리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의 입에서 큰 소리로 주문이 나왔다. 리디큘러스! 그런 다음 그는 제 몸으로 보가트의 모습을 가린 채 그것을 강제로 다시 옷장에 밀어넣었다. 그제서야 몇몇 아이들은 딸꾹질을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저 작고 조용한, 그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는 아이가 가진 공포의 크기를. 그 구체성을. 그 과거를.

그는 천천히 눈을 떠서 휴게실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낮은 한숨이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알고 있었다. 그 때와 지금은 다르다. 그의 짐작이 맞다면 그가 아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지난 삶'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렇다는 것은, 그들이 가진 공포 또한 그에 맞먹는다는 뜻이다. 그들 중 태반은 가족이 죽고, 친구가 죽고, 자신이 죽었다.
똑바로 말해. 네가 죽인 거잖아. 가슴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속삭였다. 그는 속삭임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 아마 그의 공포는 이전처럼 다른 이들을 겁주지 못할 것이다. 이전처럼 이상한 시선을 받고, 은근한 배제를 겪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게 맞을거야.”

속삭임이 날숨과 함께 흘러나왔다. 여전히 시선은 천장을 향한 채였다.

“이게 맞아.”

조금 전보다 힘이 있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스스로에게 선언하듯이. 

“…이게 맞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달라질 것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공포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의 보가트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지난번과 같은 모습일지도 몰랐다. 그 날의 기억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두방망이질치게 만들었다. 몸이 굳고 이성이 마비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달랐다. 그것은 총을 든 남자도, 제 앞에서 죽어가던 언니도, 무너지던 집의 기둥도 아니었다. 

그는 거울을 떠올렸다. 호그와트에서의 전투가 있기 직전, 그가 처음으로 실패했던 임무. 그곳에서 그는 거울을 보았다. 증오로 가득 찬, 광기에 물든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 굳은 표정을, 흔들리지 않는 분노를 보았다. 지팡이를 들고, 그는 외쳤다. 총을 들고, 그 남자는 말했다. 아바다 케다브라―. 저주받을 것들, 신께서 너희를 용서치 않으리라―. 하나의 모습 위에 다른 모습이 겹쳐졌다. 남자와 여자. 머글과 마녀. 총을 든 자와 지팡이를 든 자. 그들은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상대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굳은 낯빛으로 그들은 무기를 겨누었다. 더 약한 모습의 서로를 향해서―.

그는 한 팔로 제 눈을 덮었다. 시야가 다시금 붉게 물들었다.
그래. 그것이야말로 그의 공포, 그의 보가트였다. 몸이 얼어붙고, 이성이 끊어지고, 심장이 내려앉고, 호흡이 가빠지고, 오로지 도망치고자 하는 충동만이 정신을 가득 채우도록 하는 것. 단지 상상만으로도,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것.

그는 그것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다른 이들에게 그것을 보여줄 자신도, 없었다. 그들은 전부 자신과 한 때 싸우던 이들이었다. 자신이 경멸하고 증오하던 이들이었다. 그것을 오롯이 감내해야 했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그 모습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을 죽였던 것을. 그들을 향해 증오를 쏟아붓던 것을. 그들을 향해 악을 쓰고 저주를 내뱉던 그 귀신을.

그는 여전히 많은 것을 알지 못했고,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제아무리 무지한 그여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단지, 자신이 그 모습을 마주할 수 없었기에 대는 핑계일지도 몰랐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비록 그것이 도망이더라도, 제 죄악을 바라보지 않는 회피더라도. 이번만은, 이번 한 번 만큼은 그리 하겠다고.

이것이 그저 저의 이기심일지도 몰랐지만, 차마 그 모습을 너희에게 보여줄 수 없었기에.

만일 그것을 마주해야 하더라도, 그것은 오직 자신만이 감내해야 하는 문제였기에.

그러니 이번만큼은, 그것에서 눈을 돌리겠다고.

그는 팔을 제 얼굴에서 내리고 소파에 파묻힌 몸을 일으켜세웠다. 머물렀던 자리를 정돈하고, 책을 제 자리에 두고, 소리없는 발걸음으로 휴게실을 떠났다. 마치 아무도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일렁이는 불이 그의 그림자를 비추었다. 그림자는 서서히 길게 늘어나다가, 이내 계단이 만들어낸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나무 계단에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 소리가 텅 빈 휴게실 사이에 울렸다. 타박이는 발걸음이 서서히 멀어지더니 이내 잦아졌다. 남은 것은 오로지 나뭇가지가 부서져내리며 내는 타닥이는 소리 뿐이었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한 번 열렸다가 닫혔다. 그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은 채로 그대로 옆으로 누웠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한 때 붉었던 시야는 이제 검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몸에 힘을 풀었다. 떠도는 생각의 흐름에 자기 자신을 맡겼다. 다른 이들이 자신의 공포를 마주하고, 이겨내고, 도망치는 동안, 그는 그렇게 그 혼자만의 보가트를 마주했다.

폭발과 총성. 피와 비명. 쓰러지는 몸뚱이. 

초록빛 광선. 타오르는 불. 증오로 가득 찬 저주받을 목소리.

너무나도 달랐으되, 너무나도 닮은 남자와 여자.

저주받을 것들. 신께서 너희를 용서치 않으리라―.

아바다, 케다브라.

다시 한 번, 악몽을 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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