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2021.05.25
이제 망명으로 되돌아가보자.
이는 중요한 단어이자, 어려운 단어이다.
이 단어는 상실의 의미뿐만 아니라,
뒤에 남겨두고 온 장소에 대한
애정 어린 소속감과 연결감의 의미도 품고 있다.
― 일라이 클레어, 『망명과 자긍심』
눈 깜짝할 사이에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신선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아주 오랫동안 맡아보지 못한 공기. 나는 천천히 내 몸의 감각들을 깨웠다. 시간 여행이 불러온 가벼운 현기증이 가시자 더 많은 것들이 느껴졌다.
어디선가 음식을 만드는지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한 냄새가 났다. 아이들이 골목길을 쌩하니 달려갔고, 담 너머로는 이런저런 개인적인 이야기가 흘러들어왔다. 그렇게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한동안 내 눈 앞에 펼쳐진 정경을 바라보았다. 시공간 좌표를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 모든 감각이, 본능이 이곳이 맞다 소리쳤다. 여기는 개경, 고려의 수도.
나의 고향이었다.
나는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자랐다. 걸음을 걷기 전부터 남대가의 시전거리를 쏘다녔고, 상인들이 시끄럽게 장사하는 소리를 통해 말을 배웠다. 나의 열여덟 해의 인생을 이곳에서 보냈으니, 개경은 나의 세상이었다.
내川 를 따라 천천히 중심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물줄기가 부드러이 흘러가는 소리에 내가 향수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아, 그래. 나는 항상 더 넓은 바다를 보기 원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내가 이 도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는 이 도시를 사랑했다. 그 누구보다 이 도시를 잘 안다 자부할 수도 있었다. 나는 어디를 가야 가장 맛있는 만두를 먹을 수 있는지 알았다. 어느 상인이 흥정을 잘하고, 어느 시전 물건의 질이 가장 좋은지도 알았다. 이 도시의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전부 보았다. 무더운 여름이면 나를 시원하게 씻겨주던 냇가, 초파일에 아름답게 연등을 수놓던 다리를 기억한다. 나는 어디를 가야 가장 연등들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는지도 알았다. 어느 절의 탑돌이 때 잘생긴 선남선녀가 모이는지도. 이 도시의 온갖 소식을 알았고, 이 도시의 모든 광경을 보았다. 개경은 내가 매일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며 열여덟 해를 보낸 장소이다. 그러니 개경은 나의 삶이었다.
다리를 건너자 십자가十字街 가 눈앞에 보였다. 이제 이곳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남대가가 나온다. 내가, 집보다도 더 집처럼 여기는 곳이었다. 시전거리에서도 중심에 있는 커다란 포목점. 우리 가족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부터,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때부터 일구었던 가게였다.
가게는 변함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이를 두긴 했지만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로 잡았으니 당연할지도 몰랐다. 점원들이 움직이는 모양을 보니, 오늘은 꽤나 높으신 분이 온 것 같았다. 분위기가 다소 어수선했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우리 가게에서 파는 것 중에서도 가장 좋은 물품들을 가져와 펼치는 모습이 보였다.
“정말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이 비단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저기 저 송나라에서 가져온 것인데 거기서도 없어서 못 사는 물품이지요. 이것만큼 나으리의 격에 걸맞은 천이 있을까요!”
“아, 아니면 이 천은 어떠신가요? 무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건-”
한 필이라도 더 팔려는 그 광경을 가만히 보고 있자 웃음이 나왔다. 한때는 나도 저곳에 있었다. 저들과 함께, 손님의 욕망을 부추겨 하나라도 더 사게 만들려 안간힘을 썼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장사를 끝마치고 난 저녁이면 불을 켜고 아버지, 어머니와 앉아 그날 번 금액, 팔려나간 천의 양을 기록하고 셈을 했다. 어떻게 그것들을 잊을 수 있을까.
나는 기억한다.
저 가게에서 내가 걷고, 말하고, 셈을 배우던 것을. 상인들의 언어를 배우고, 손님들을 유혹하는 법을 배웠다. 어떤 천이 상등품인지, 어느 것이 하급인지, 어떤 사람들이 주로 어떤 종류의 천을 사가는지를 배웠다. 처음에는 단순한 지식이었던 것들이,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고 또 부딪치며 어느새 몸에 익어 습관이 되고, 일종의 본능적인 감각이 되었다. 그렇게 상인이 되어갔다.
붐비는 인파 사이에 스리슬쩍 끼어 가게에 가까이 다가섰다. 한창이나 천을 보던 그 ‘높으신 분’은 한 두어필을 샀을까, 그러고는 어느새 휑하니 가버렸다. 나는 진열된 천을 손끝으로 가볍게 쓸고, 그 천의 품질을 눈으로 살폈다. 미래의 그 무시무시한 속도만큼은 아닐지라도, 이 도시의 유행 역시 빠르게 바뀐다. 귀족들의 취향은 시시각각 변덕스레 변하고, 대륙의 정세나 유행 역시 실시간으로 영향을 미친다. 내가 떠난지 이제 몇 달이 지났던가? 어느새 천의 무늬나 짜임새가 내 기억과는 살짝 달라져 있었다.
어쩐지 설움이 밀려들었다.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천에 눈물을 떨어뜨릴까 재빨리 물러서서는 가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점원들에게 지시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인영이 보였다. 아버지였다. 그 얼굴을 본 순간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 한 걸음, 두 걸음 뒷걸음질쳤다. 인파 사이를 밀치고, 나에게 뭐라 투덜거리는 사람들을 지나쳐 나는 뛰고 또 뛰었다.
시전거리를 빠져나와, 정처없이 걸었다. 무더운 날이 아님에도 땀이 어느새 옷을 적시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한 다리 위에 서 있었다. 선지교였다. 가에는 버드나무가 드리워 그림자를 주었고, 곳곳에 수련이 활짝 피어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변을 보니 손을 잡고 다리를 거니는 연인 한둘, 다리의 풍경을 그리는 화가 하나가 있었다. 다들 나를 힐끗 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자기 할 일에 열중했다. 나는 숨을 몰아쉬고는, 잠시 다리에 걸터앉았다. 그저 쉬고싶었다.
가게에서 그렇게 달아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곳은 내 가게였다. 원래라면 내가 물려받고, 내가 이끌 곳이었다. 내 원대한 야망을 위한 주춧돌. 나의, 것. 나는 그곳에서 태어났고, 자랐으며, 그곳에서 죽을 것이었다. 그래, 원래라면. 원래라면 그랬다.
아버지가 나를 알아본 것도 아니었다. 사실, 알아봤다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나는 아버지를 좋아했다. 아버지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처럼 대했다. 아주 불면 날아갈까 쥐면 부서질까 금이야 옥이야 대하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자랑이었고, 후에 모든 것을 물려받을 적자였다.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만일 그가 나와 시선이 마주치고, 나를 알아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나는 훤히 알고 있었다. 가장 먼저 나올 말은
“일단 들어오려무나.”
그 다음에는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가볍게 껴안을 것이다. 그리고
“왜 이리 연락이 없었어. 그래, 여기 좀 앉아 있거라. 소회는 천천히 풀자꾸나.”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질문부터 시작할수도 있겠지.
“그동안 어떻게 잘 지냈니? 이야기를 들려주렴. 지금은 손님이 많으니 집에 가서 말이다.”
아마 이 말은 결코 빠뜨리지 않으시리라.
“많이 기다렸단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말할까. 아마도
“제가 너무 소식이 없었죠. 죄송해요.”
그리고는
“어머니는 강녕하신가요? 동생들은요?”
어쩌면 이 말부터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많이 보고싶었어요.”
한 번 떠올리자 생각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우리는 함께 집에 갈 것이다. 그곳에는 어머니가 계시겠지. 오늘은 아버지 혼자 일하시는 날인 것 같으니. 집에 가면 어머니의 걱정 어린 꾸중을 듣고, 긴 대화를 나누고, 동생들을 보고, 내가 너무 늦었다며 사과를 하고, 어쩌면 기념품 몇 개를 나누고, 농을 던지고 능청을 떨면서, 한바탕 웃고…. 그 모든 게 하나하나 생생히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그들 사이에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물이 흐르는 강을 바라보았다. 수면 위로 그림자가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자라버린 키, 달라진 차림새. 젖살이 빠졌고, 이목구비는 더욱 뚜렷해졌다.
나는 변해버렸다. 나는 더 이상 이 냇가를 건너다니며 힐끔 제 모습을 보던 아이가 아니었다. 열여덟이란 나이는 지난지 한참은 되었다.
저들과 나의 시간은 다르게 흘렀다. 그 시간 속에서 겪은 경험 역시 판이했다. 나의 가족들이 평범한 하루를 살아나가는 동안, 나는 그들이 결코 보지 못할 것을 보았다.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을 알았고, 끝내 경험하지 못할 것들을 온 몸으로 느꼈다.
하나, 둘.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작은 갈라짐이었던 그것은 점점 커지고 커져서, 이제는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협곡이 되었다. 지식의 틈이자 인식의 틈. 그 틈이 나와 그들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행성 몽환으로의 초대장을 받았을 때, 그곳에서 리미트를 만났던 순간. 아니면 마지막 날 행성을 떠나며, 나를 향해 내민 그 손을 붙잡은 바로 그 찰나. 내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때 분명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가족과 나의 과거가 아닌, 그와 함께하는 새로운 세계를 선택했었다. 그러니 이것은 그저 그 선택의 대가일 뿐이었다. 하나의 선택지를 택함으로써 남은, 기회비용이었다.
알고 있었다. 분명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왜 이리 가슴이 아파오는 것인지.
눈가가 뜨거워지더니, 무언가가 수면을 향해 떨어졌다. 그것은 작은 파문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 원형의 파동.
문득 비명이 지르고 싶어졌다. 소리내어 울고, 나를 떠나간 것에 크게 슬퍼하고 싶었다. 나를 지나쳐 과거로 박제되어 버린 시간을 애도하길 바랐다. 가슴을 움켜쥐고, 옷을 쥐어뜯으며 그렇게 통곡하고 싶었다. 하지만 울음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벌어진 입 사이로 나오는 것은 그저 뜨거운 한숨 뿐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입술은 꾹 다문 채였다. 걸음이 차츰 빨라지더니 이내 뜀박질이 되었다. 나는 달렸다. 주변의 시선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를 향해 닥칠 수도 있는 위험 같은 것도 신경쓰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길을 찾아 흙먼지가 일도록 뛰고, 거친 숨을 토해낼 정도로 뛰었다. 나무뿌리에 걸려 비틀거리고 바위에 발이 채이며 나는 뛰었다.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기억들을 외면하고, 밀려오는 후회를 다시 억누르며 잊기 위해 뛰었다.
그런 나의 모습은 마치 광인 같았다. 평소라면 결코 하지 않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이 기분을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도 없었다. 이런 쓸쓸한 회한을, 울컥이며 솟아오르는 방향없는 울분을, 나는 처음으로 느껴보았다. 이렇게까지 나를 주체할수 없던 적은 없었다.
이 알수없는 상실감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울창하게 자라나 있던 나무들이 하나 둘 밀려나고, 키가 작은 초목들과 들꽃이 바위 사이에 겨우 안간힘을 쓰며 뿌리를 박고 있는 광경이 드러났다. 정갈하게 다듬어져 바닥에 깔린 바위와 시야에 들어오는 정자. 나는 내가 올라온 곳이 어디인지 금세 깨달았다. 자남산. 거기서도 관덕정 근처였다. 어느새 다시 성을 통과했던 걸까. 감정에 휩싸여 질주하듯 걸었기에 어떻게 다시 들어온건지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 아래를 내려다보자 시내가 한눈에 들여다보였다. 저기 저 앞에 보이는 것은 남대가, 조금 옆으로 가면 보이는 십자가. 오른쪽을 보면 관청들이 줄지어 늘어진 광화문이 있고, 그 너머에는 황제의 궁궐이 있다. 반대로 왼쪽을 보자 도시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시내 옆 줄지어 선 주택가가 보였다. 저곳 어딘가의 나의 집이 있다. 내가 태어났던 장소. 그리고 내가 뛰어다니곤 했던 골목길이 그 옆에 있을 것이다. 동생들과 여러 놀이를 하던 흙길. 때로는 사고를 쳐 우리 부모님과 다른 집 부모님들이 싸우기도 했었다. 그 어드메에 있는 우물가에선 내가 때로 투덜거리며 물을 길었고, 그러다 항아리를 깨먹어 회초리를 맞기도 했었다.
그리고 여기서 곧게 정면을 향해, 저 두터운 성벽을 넘고 산을 넘어 보면 바로 그 곳이 있다.
예성강. 배들이 오가며 물건들을 싣고 내리는 곳. 내가 처음으로 보았던 끝없이 펼쳐진 바다. 그 곧게 펼쳐진 수평선이 있는 곳.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나라의 말로 소통하는 장소. 송나라 사람부터 해서, 저기 동남 지역에서 온 사람, 사라센에서 온 회회인까지 다양한 얼굴을 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던 그곳. 처음으로 내게 바다를 향한 꿈을 심어주었던.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추억이 자리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 도시는 나의 시간이 켜켜이 쌓이던 공간이었다. 나의 삶이자, 나의 역사였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나의, 고향.
나는 한없이 홀린 듯 그곳에 서 있었다.
일부러 이곳을 찾지 않았었다. 어쩌면 이곳에서 내가 볼 것이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랫동안, 이 도시는 아련한 기억의 저편에 있었다. 나는 나의 과거를 보지 않았다. 언제나 시선을 미래로 향하는 것, 그것이 나의 성정이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가족들과 약속했던 것들을 지키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그들을 찾아가지도 않았고, 안부를 전하는 편지조차 보내지 않았다.
그저 언제나 그래왔듯 열심히 달릴 뿐이었다. 리미트와 함께,
나 홀로.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내가 왜 이 낯선 곳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더 이상 달릴 힘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달려서 무엇을 얻고자 했던 것인지도 잊었다. 나는 그렇게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제서야 나는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하늘을 보자 어느덧 해가 질 시간이 되어 있었다. 해가 산 너머로 사라져갔다. 창공이 서서히 분홍빛으로, 주황빛으로, 그러다 붉은 빛으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 나는 다시 시선을 남대가로 향했다. 지금쯤이면 가게도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점원들이 하나 둘 물건을 정리하고 퇴근하는 모습이 눈에 선연히 그려졌다. 아버지는 2층에 올라가 장부 정리를 하고, 금고를 채운 자물쇠가 단단히 잠겼는지 확인하고 가게 문을 닫으실 것이다. 그리고 불이 꺼지고, 거리는 다시 조용해지겠지.
처마 아래로 하나 둘 불이 꺼지는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이렇게 하루가 또 지나가고 있었다. 나의 도시는 다시 잠을 잘 준비를 시작했다. 그 어느 곳보다도 내게 친숙했던 곳.
그러나 나는 이제 이곳에서 이방인이었다. 나는 이제 여기 속하지 않는다. 나는 이곳을 나의 의지로 떠났다. 더 넓은 세계로, 타향他鄕 으로.
내가 느끼는 상실감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상실감은, 그 무엇으로도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또다시 나는 생각했다. 내 역사는 이 곳에서 시작되었다. 그 역사는 내가 이방인이 되고, 다시는 여길 찾지 않더라도 나와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내 안에 남아있다.
이 개경은 나의 도시였다. 그리고 나의 도시이다. 앞으로도 나의 도시일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역사가 담긴 장소, 내가 꿈을 꾸게 한 곳. 그래서 나를 떠나게 한 둥지. 나는 영원히 이곳에 소속감을 가지고 있으리라. 망명자들이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고향을 기억하여, 그 고향이 타향 아래에서도 그들 안에 남아 있듯이.
이 도시가 나를 잊더라도, 나는 결코 이 도시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개경은 나의 안에 남아있을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나의 도시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나의 부모이자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장소. 한때 내 모든 삶이었던 것들을 담고 있는 도시였다. 할 말이 적을 리 없었다.
나는 조용히 한쪽 무릎을 꿇고, 이내 다른 쪽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을 모아 가슴까지 올린 뒤 허리를 숙였다. 두 손이 이마에 닿고, 그 이마는 땅에 닿았다. 나는 천천히 부복俯伏했다. 손바닥에 바위의 질감이 느껴졌다. 단단하고, 차가웠다.
다시 일어서 도시를 바라보았다. 나의 고향이었다.
나의 시작이었다.
소매를 걷어 팔에 자리한 시공간 조작 장치를 보았다. 돌아갈 좌표를 지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나의 고향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리고 버튼을 눌렀다.
순식간에 풍경들이 사라져갔다. 반짝이는 빛이 되어 허공으로 치솟는 그 정경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말로는 결코 전부 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 그렇기에 때로는 추상적인 행동이 몇마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방금 전에 내가 한 큰절처럼.
셀수없는 감정들이 그 안에 섞여 있었다.
애정, 감사, 애도, 슬픔, 비애.
하지만 역시, 가장 크게 하고 싶었던 말은
안녕.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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