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자흐로미

Fiendfyre

2022.09.12

잔인한 살해와 고문, 시체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악마의 화염은 불붙은 대상이 온전히 사라질 때까지 꺼지지 않는다. 그 붉게 타오르는 화마는 모든 것을 살라 먹고서야 겨우 저 자신의 눈을 감는다. 태울 것이 단 하나라도 있는 한, 그것은 움직이고 잡아먹기를 그치지 않으니. 그것은 그야말로 홀로 살아 움직이는 죽음이요, 저주다. 가히 마魔라는 호칭을 내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그래. 마치 그의 증오가 그러했듯이. 나의, 증오가 그러했듯이.

 


나는 너를 볼 때마다 그날을 떠올린다. 몇 겹씩 쳐놓은 주문들을 하나, 하나 산산히 부수며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불꽃이 그 뒤를 따라 자신의 주변에 놓인 모든 것을 게걸스레 제 입안으로 삼켰다. 바깥으로부터 안쪽으로, 그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나무들이 바스라지고, 과실은 썩어들어갔다. 수풀은 이내 검은색 재가 되어, 연기가 되어 피어올랐다. 그렇게 어둠 속을 걷는 검디검은 로브가 하나. 그 뒤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죽음이 둘. 한낮의 태양처럼 밝게 타오르는 화염은 나 역시도 살라 먹어버리고 싶다는 듯 내 뒤를 감쌌다. 나를 향해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그날, 나의 전진은 곧 생명의 죽음을 의미했다. 모든 것의 죽음을 의미했다.

 

“줄리아, 어서 내 뒤로―”

“아바다 케다브라.”

 

그 초록빛 섬광은 차라리 자비에 가까웠다. 먼저 남자가 쓰러지고, 그다음으로 여자가 쓰러졌다. 짐승의 형상을 한 불이 그들을 덮치자 한때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던 '무언가'만이 남았다. 거기에서 그들의 삶의 흔적은 전부 사라져버렸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자식인 린 프레일마저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었으리라.

그럼에도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너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다. 언젠가, 네가 그리 말하는 것을 똑똑히 기억했다. 화마가 드넓은 과수원을 천천히 살라 먹도록 내버려둔 채 나는 곧장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한 명이라도 놓치면 안 된다. 그것은 나의 주인이 명령한 바였다. 그리고, 나 역시 그것을 간절히 바랐다. 내가 느꼈던 기분을 네게 되돌려주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희망도 남겨 놓아서는 안 되었기에.

 

지팡이를 휘두르고, 단단히 잠겨있던 문을 열자 곧바로 보이는 것은 너의 여동생이었다. 그래, 아직 네가 살아 있었다. 린 프레일의, 마지막 희망. 너를 살려둔다면 그는 증오에 먹히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네가 있기에, 그는 그럼에도 정의를 위해 싸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생각했다.

오, 그래서는 안 되지. 안 되고말고.

 

“크루시오.”

 

나는 마치 힘이 없고 약한 벌레를 불로 지져버리듯 그렇게 네 여동생을 향해 주문을 걸었다. 찢어질듯한 비명이 내 귀에 꽂혔다. 그가 살려달라는 말 대신 죽여달라고 울며 빌 때까지, 나는 기다렸다. 그리고,

“아바다 케다브라.”

다시 한번 초록빛 섬광이 번쩍, 눈앞에서 빛났다. 고통에 잠긴 채로 허우적대던 그의 몸뚱어리는 그렇게 서서히 나의 눈앞에서 스러졌다. 단지 비틀린 사지만을 남긴 채.


그리고 장면은 순식간에 뒤바뀐다. 화염과, 과수원과, 그 집과, 시체가 연기처럼 눈 앞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너의 얼굴이다. 

너가 저지른 짓이냐?”

확신에 찬 어투로, 너는 내게 질문했다. 그러나 네 눈빛에는 일말의 망설임이 있었다. 너는 알고 있었으나, 그것을 부정하길 원했다. 어쩌면 그때까지도 너는 희망을 놓지 않았기에. 내 입에서 너의 확신을 부정하는 대답이 나오기를 바랐을 것이다. 여전히 우리가 친구라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고 싶지 않았기에.

하지만 너는 단 한 순간도 나의 친구가 아니었다.

광기가 스물스물 내 안에 피어올랐다. 오, 그때 나는 진심으로 즐거움을 느꼈다.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

그리고 너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 속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단 하나. 

증오. 

마치 그 날 너의 집을 불사라버렸던 그 화염처럼, 뜨겁고 모두를 불태울 듯한, 증오. 

그것은 네 안을 갉아먹었다, 너의 정신을 집어삼켰다. 온 몸이 바들바들 떨려오고, 단지 눈 앞의 상대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만이 가득하게 만들었다. 악마의 화염에 휩싸인 자가, 그 불꽃에 기꺼이 자신의 몸을 맡기듯이. 너 역시 증오에 휩싸여 그 감정에 네 몸을 맡겼다. 아, 그래. 나는 그 감정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고통스러울 것이다. 머릿속은 새하얗게 물들 것이다. 비명을 지르고 싶을 것이다. 목을 조르고 싶을 것이다. 나는 조용히 너를 향해 속삭였다.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같은 출발선에 선 거야. 프레일.”

드디어, 말이지. 


그러나 이제 나를 불태우던 악마의 화염은 사라졌다. 광기는 흩어졌으며, 증오는 사그라들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죄책감 뿐이었다. 

너의 악몽이 네 머릿속에 진득하게 달라붙고, 너의 코는 가끔 타는 냄새로 가득 채워진다. 그리고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화염이 내뱉던 뜨거운 숨결. 과수원은 대낮처럼 환하게 불타올랐고, 남자는 절박하게 제 곁에 선 여자를 향해 외쳤다. “줄리아, 어서 내 뒤로―”. 초록빛 섬광이 쓰러뜨린 세 사람. 화마에 휩싸인 너의 부모와, 비틀린 채로 눈을 감은 너의 동생. 

너를 볼때마다, 그 풍경은 나를 사로잡았다. 네가 그 날로부터 여전히 헤어나오지 못했듯이, 나는 내가 저지른 수많은 죽음들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렇기에 너를 바라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너를 마주할 수 없었다. 비난과 증오는 익숙했으되, 단지 그 환상이 두려워서. 내 목을 조르는 죄가, 두려워서.

“미워.”

나는 네가 밉다, 자흐로미.

그렇다. 린 프레일, 너는 성자가 아니다. 너는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은혜는 되갚기를 원하고, 복수는 배로 돌려주어야만 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

“너는 내 부모님을, 내 동생을, 과거와 현재의 터전을, 내 동료들을, 그리고 나를 죽였지.”

나의 죄를 네 입에서 들으니 심장이 아릿하게 저려왔다. 나는 주먹을 꼭 쥐며 손톱으로 살가죽을 긁었다. 증오로 가득찬 나의 모습, 너의 가족을 죽이며 진심으로 기뻐했던 나의 형상이 거기, 네 곁에 있었다. 나를 보며, 마치 귀신처럼, 반시처럼 서 있었다. 증오에 불타는 눈빛은 나를 향해 지팡이를 치켜든 채 외쳤다. 아바다 케다브라―.

“그러나 그것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 형상은 이어지는 너의 선언에 안개처럼 흩어졌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너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간단히 넘겨버릴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이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었다 해도, 그 기억은 여전히 네게 남아있을 텐데. 여전히 너로 하여금 악몽을 꾸게 하고, 환상을 보게 할텐데. 타는 냄새를 여전히 맡을 수 있지 않은가? 불타오르는 화염이 너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 

아. 그러나 나는 알았다. 이것은 우문이다. 너는 지금 쉽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간단히 넘겨버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네게도 어려운 선택이었다. 힘겨운, 결정이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그러니 나는 너를 알고 싶다, 시린.

단지, 그럼에도 이해하고 싶었던 것이다. 닿고 싶었던 것이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사람이라는 것을.

하지만 어째서?

그것은 아마도, 변화를 만들기를 원했기에. 이번만큼은, 같은 결말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기에.

아, 린 프레일. 너는 참으로 강한 사람이었다. 증오는 너를 집어삼키지 않았다. 후회 또한 너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오히려 너로 하여금 결심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세상을 향해 선언하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나는 지금부터, 다른 이야기를 써내려갈 것이라고.

나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너를 마주했다. 그러나 너에 비해 나는 너무 약해서. 증오에 사로잡혔고, 후회에 무너져내려서. 다른 결말을 맞이하길 바라나 거기에 나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아서. 감히, 그런 것을 바랄 수가 없어서.

“너는 정말로,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어?”

어쩐지 울컥, 하는 감정이 나를 건드렸다. 너를 향해 묻는 나의 질문은 분명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분명 나의 증오에는 이유가 있었으되, 그것으로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해받으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해를 거부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불가해한 재해가 되기로 선택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그럼에도 너는 감히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그러길 바란다고?

“내가 저지른 모든 짓에도 불구하고, 나를 알고 싶다고 생각해?”

절박한 목소리로 나는 말했다. 일그러진 얼굴로 나는 물었다. 성큼, 너에게로 다가가 네 어깨를 붙잡았다. 손아귀에 단단히 힘을 주고 네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지금 너의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악귀일까, 아니면 단지 도움을 요청하는 어린아이일까. 

나의 모든 죄는 나의 것. 그러므로 나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는 나를 포기해야 마땅했으며, 너는 나를 증오해야 마땅했다. 이러한 이해는, 이러한 용서는, 이러한, 망각은 한번도 바란 적이 없었다.

 

너는 증오와 작별했으되 나는 이 죄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서. 모든 일과 감정을 지난 생의 시린 자흐로미에게 돌릴 수 없어서. 

“네가 지금 하는 짓이야말로 실수인 걸지도 몰라. 너는 나중에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그럼에도,”

 

필사적인 움켜쥠과 함께 나는 너를 올려다보았다. 무너져내리는 시선으로 나는 네게 질문했다. 그것은 비명이었고, 그것은 부서짐이었다. 그것은 악마의 화염에 집어삼켜져 이제는 잿더미만 남은 이의 절규였다. 악마의 화염을 보았으되 살라 먹히지 않은 자를 향한.

“내가 감히, 너에게 그런 이해를 받아도 된다고, 너는 말하는 거야?”

우리가 다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