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실 야겐사니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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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거의 없는 혼마루의 구석진 한쪽 방. 인간을 위한 의무실. 수리로 상처가 낫는 도검남사에게는 필요가 없고, 다칠 일이 별로 없는 이 곳의 주인에게도 별로 필요가 없는 공간이다.
이 곳이 제 용도로 사용되는 건 기껏해야 일년에 한두번쯤일까. 이제는 땡땡이를 치는 검 몇 자루가 몰래 숨어들어 낯잠을 자는 용도가 된지 오래다. 환자가 편히 쉬기 위해 구석진 곳에 배치된 것이지만, 여기가 게으름뱅이들이 낮잠자기 딱 좋은 환경이라나.
게으름뱅이들과 그들을 잡으러 오는 보호자를 제외한다면, 야겐 토시로는 이 곳에 가장 자주 오는 검이었다. 이곳을 용도대로 사용하는 거의 유일한 도검남사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인간의 몸에 대한 의학지식이 있는 탓에 원하기도 전에 얻게 된 감투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특별히 불만은 없었다. 이 혼마루의 도검남사는 그들의 주인을 닮아 수동적인 경향이 강하였으니.
한 달에 한번, 야겐 토시로는 의무실의 약이나 도구들을 점검하고 쓸 수 없는 것을 폐기하며 필요한 것을 새로 구입한다. 어차피 쓸 일도 없는데 반년에 한 번이나 일년에 한 번이면 되지 않느냐고 이 곳의 주인은 말 했지만, 그 누구도 그 말에 긍정하지 않았다. 그녀의 초기도를 중심으로 의무실의 점검은 한 달에 한 번으로 결정하자는 의견이 모였고, 그녀는 불만족스러운듯 했지만 굳이 거부하지도 않았다.
야겐 토시로는 내번도 출진도 없는 날, 언제나와 같이 의무실에서 재고를 파악하고 있었다. 달마다 꾸준히 줄어드는 진통제나 반창고 몇 개를 제외하면 다른 것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그대로다. 야겐은 오 분도 걸리지 않아 재고들의 유통기한을 모두 확인하고 새로 살 물건에 대해 메모를 끝마쳤다.
구색을 갖추기 위해 마련된 서랍이 달린 책상 앞에 앉아서, 야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당연하게도, 대장에 관한 일이다. 인간의 몸은 도검남사에 비해 너무나도 연약하다. 망가지기 쉽고 겉으로 티가 나지 않아도 병을 키우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건강검진이라도 자주 받게 하고 싶은데.
제 자신이 직접 설득하는 것은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야겐은 그녀의 초기도를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한다. 그리고 그때, 조용한 의무실 안을 문 열리는 소리가 가로질렀다.
누가 왔지?
아마도 아카시 쿠니유키. 또는 우구이스마루. 아니면 미카즈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외로 문을 연 것은 그의 주인이었다.
그녀는 이미 안에 앉아있는 야겐을 보고는 놀란듯 잠시 멈춰서더니, 곧이어 어색하게 웃는다. 잘못 들어왔다며 다시 문을 닫고 나가려는 그녀를 야겐이 붙잡는다. 야겐은 그녀의 소매가 이상하게 축축하다는 걸 알아챘다. 심지어 차갑지 않고 조금 따뜻하다. 야겐이 그걸 빤히 바라보니, 그녀는 잘못을 들킨 아이처럼 안절부절하기 시작했다.
“별거 아니야. 차를 마시다가 좀 흘렸을 뿐이니까.”
흘렸다,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에 야겐은 그녀의 등을 밀어 의무실 안 쪽으로 밀어넣고, 그녀가 의자에 앉자마자 젖은 소매를 완전히 걷어 그 아래의 손을 살폈다. 발갛게 달아올랐지만, 물집이 잡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자니 대장은 철 없게도 투덜대고 있다.
“너희는 걱정이 너무 많아.”
“이게 다 누굴 닮아서 그런 건지 알지?”
“아니, 그치만, 너희는 자연적으로 안 낫잖아. 내가 걱정하는 건 그럴만 한 거고.”
“그렇다고 인간만큼 쉽게 다치지도 않지.”
“그걸 안다고 생각이 맘대로 되냐…”
대장의 손은 이미 적절한 조치를 마친 후인지 알맞게 식어있었다. 걱정은 되지만 추가적으로 할 일은 없었기에 야겐은 그녀의 손이나 팔에 다른 상처가 있는지를 살피며 그녀를 가볍게 다그쳤다.
“봐, 지금도 나 아무렇지 않은데 여기 억지로 온 거라구. 살짝 데인 거는 바로 식히기만 하면 괜찮은 거 알지? 데였을 때 놀라서 엄살 좀 부렸더니 꼭 의무실에 가야한다고 그러는거야. 같이 오면 두배는 더 불안해할 것 같아서 겨우 떼어놓고 왔어. 할 것도 없으니까 걍 들러서 시간 보내고 가려고 했는데,”
가만히 두니 말이 점점 길어진다. 그러나 야겐은 굳이 그녀가 변명을 늘어놓는 걸 말리지 않았다. 대장도 많이 놀란 거겠지. 오늘의 근시는 마츠이였으니, 그의 앞에서는 솔직하게 굴 수도 없었을터다. 그 나리는 어울리지 않게 대장처럼 유독 아군의 상처에 예민하고 불안해하니까.
야겐은 연고를 꺼내 그녀의 팔에 새로 생긴 생채기들에 바르며 그녀가 스스로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에 비해 대장은 잔상처가 참 많이도 생긴다. 이런 걸 보다보면 다른 이들이 대장을 과하게 걱정하는 걸 이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당장은 작은 상처라도, 언제 큰 사고로 이어질지 모르니까.
필요한 조치를 모두 끝내고, 야겐은 그녀의 손을 드디어 놓아준다. 사실은 더 자세히 구석구석 다친 곳이 있는지 살펴보고 싶지만, 역시 거기까진 허락받지 못함을 안다.
그녀는 다시 소매를 내리려다가 어느새 제 팔 곳곳에 연고가 발라져있는 걸 보고 멈췄다. 제 팔과 야겐을 번갈아보고, 헛웃음을 지으며 한숨을 쉰다.
“너도 만만치 않게 걱정 많다니까…”
“이럴 때는 그보다 더 해야 할 말이 있을텐데, 대장.”
“…치료해줘서 고마워.”
그녀의 투정을 사전에 가로막은 야겐은, 솔직한 감사인사에 씨익 웃는다. 별말씀을. 한마디 돌려주니 대장도 따라 웃어준다.
“그럼 이제 슬슬 돌아가보는 게 좋을 거야. 대장이 큰 화상을 입었다는 부풀려진 소문이 나는 게 싫다면말야.”
문을 열어주며 작은 농담을 덧붙이니, 대장이 과하게도 질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집무실로 뛰어가는 뒷모습에 뛰다가 넘어지지 말라고 혼을 내니, 착하게도 멈추고 얌전히 걸어간다.
다시 혼자 남은 의무실에서 야겐 토시로는 아까 하던 고민을 이어나갔다. 역시 한 달에 한 번은 건강검진을 해야 마음이 놓이겠다. 야겐은 카슈 키요미츠에게 그녀가 오늘 친 사고를 고스란히 일러바칠 생각에 저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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