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내빛전A

첫사랑Bomber

빛전라하 / 6.0까지의 스포일러? 함유

가내빛전 얘기 합니다

그뭔씹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라하 티아는 아모리 비케의 첫사랑이 누군지 '읽어서' 알고 있었다. 정확히 그가 누군가를 사랑했다고 적힌 것은 아니었으나, 연대기를 쓴 작가는 아마도 어떤 마음이 사이에 끼어 있었으리라고 추측했다. 시간의 흐름대로 나열된 행적만 보아도 그가 가진 감정이 단순히 동료를 아끼는 마음에 그치지 않았으리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라하는 그에게 실제로 들어본 적이 없기에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사랑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혹은 그 이전에 다른 사랑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는 다정한 태도와 달리 도통 깊은 속내를 보여주는 일이 없기에.

다만 "첫사랑은 잘 이뤄지지 않는 편이긴 해." 하고 타인의 넋두리에 맞장구 치는 표정이 제법 씁쓸하여, 내심 그 은빛 검날이 역시 그의 첫사랑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것이 서운하다거나 질투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영웅으로 추앙받던 자가 어떻게 몰락하였고, 그를 건져낸 또 다른 영웅이 누구였는지, 그 결말이 어땠는지 모르지 않으니. 오히려 아는 만큼 그라하는 더 말을 얹기 어려워졌다. 짐작할만한 상실이다. 그에게 기억으로만 남은 100년이 넘는 시간에서 수없이 겪었던 상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는 만큼 안타깝고, 서글프고, 안쓰러운 일이다. 동병상련이라 하던가?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끼리 상처를 보듬으며 가시에 찔리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한다. 마치 추위에 떠는 고슴도치처럼.

그라하는 절로 시선을 아래로 미끄러트렸다. 손등을 손끝으로 문지르며 난감한 웃음으로 경직될 것 같은 분위기를 무마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 역시 그렇지? 아무래도 첫사랑에는 그런 미신이 있지."

따끔, 하고 손바닥에 가시가 박힌 느낌이 들었지만, 피는 나지 않았다. 얼굴을 보고 놀란 듯이 눈이 동그래진 아모가 "어…." 하고 바보같은 소리를 내었다.

"라하, 내가 첫사랑이야?"

젠장. 이래서 이 주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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