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가미] 캐릭터 해석 타입 샘플
뮤지컬 <용의자X의헌신> 조성윤 배우님 기반 이시가미 캐릭터 해석
이시가미는 고독하고 외로운 인물이에요. 그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이시가미 삶에 유일하게 있는 건 수학밖에 없어요. 그래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몰라요.
이 인터뷰를 읽고 어떻게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을까...
이시가미라는 인물의 핵심은 수학 천재라는 부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부분이 좋다...) 극중에서 그의 세상을 좌표에 비유하는 대사가 나오는데, 아주 좋은 비유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거대한 좌표로만 느껴지는 사람이 그 무료한 일생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잃고 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모르고, 아마 강렬한 감정을 느껴본 것도 아주 오래된 일이었을 것이다. 이시가미가 일 년 전 자살을 생각한 것은 무언가에 쫓기거나 한 것이 아니라 죽음만이 자신 앞에 놓인 단 한 가지 길로 보였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한다.) 실패에 좌절하거나 한 사건으로 절망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삶을 살아가는 것과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별다르지 않아 둘 중 낭비가 덜한 후자로 나아간 셈이다. 당시 그는 공허 속에 사는 인간이었다.
수학은 사실 현실과 맞닿은 부분이 오로지 인간이라는 매개뿐인 아주 이상적인 학문이다. 좌표나 숫자, 공식이나 증명은 현실과 아주 닮았지만 결코 현실과 같지 않은 이데아 같은 개념에 가깝다. 이데아가 어떤 공간으로서 실존하지 않는 것처럼, 수학은 인간의 상상과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며 인간을 통해 현실에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런 수학만이 인생을 온통 차지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현실보다 이상에 부유하는 삶을 사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시가미는 그렇게 본인의 육체가 속한 현실과 본인의 정신이 속한 이상 사이에 부유하며 공허 속에 살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에겐 그의 인생이 지속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그 선택으로 끝나지 않는다. 텅 빈 좌표에 누군가 점을 찍었다. 그는 인생을 뒤흔드는 발견을 하고 만다. 텅 빈 좌표는 읽을 가치가 없다. 어떠한 의미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좌표 위에 점이 생기면, 읽을 가치가 있는 유의미한 의미를 가진 대상이 된다. 그가 아무 점도 찍히지 않은 좌표 위를 공허하게 맴돌다가 드디어 자신을 현실과 연결하는 점을 찾은 것이다. 점과 점의 거리를 관측하듯, 흥미로운 문제를 풀듯 그의 삶에는 생기가 돋아나기 시작한다. 그의 정신이 오로지 수학이라는 이상 속에 머물기 때문에 세상은 텅 빈 좌표와 같았지만, 그들 모녀가 그의 삶에 등장했기 때문에 좌표가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제 현실을 살 수 있다. 모녀를 통해서 현실을 보고, 세상과 소통한다. 점이 두 개 있기 때문에 점 사이 거리를 재는 공식이 생기는 것처럼 야스코와 미사토가 있기 때문에 그의 삶은 모녀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가 하는 모든 행동에 이유가 생긴 것은 두 사람이 그의 삶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도시락 집에 가서 도시락을 사는 것도, 학교에 출근을 하는 것도, 주말에 창문을 열어놓는 것도... 모든 행동에 이유와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야스코가 이시가미의 구원자가 되었다. 뭍에 올라온 물고기에게 폐를 창조해준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창조주에게 느끼는 경외감을 인간에게 느낀다면 그건 사랑이라 불러 마땅하다. 그래서 이시가미는 야스코를 사랑했다. 단순히 죽지 않게 해준 것이 아니라 죽음과 인생을 다르지 않게 느꼈던 그에게 생의 가치를 줬으니 생명의 은인 그 이상이다. 야스코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때 초인종을 눌렀더라면 그는 언제고 다시 죽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옆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야스코가 일 년 전의 그 초인종으로 이시가미를 구했으니 그때부터 그의 희생은 예정되어 있었다.
이시가미가 좋은 건... 그 초인종을 누르기까지 일 년동안 야스코에게 어떠한 표현을 하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소설로 볼 때는 걍 음침하고 별 생각 안들었는데 조성윤씨가먼저) 그는 야스코에게 자신의 감정을 밝히지 않았고, 알아주길 바라지도 않았고, 자기를 특별하게 여기길 바라지도 않았다. 그가 바란 가장 큰 한 가지는 야스코의 행복이다. 만약 자신이 영영 야스코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게 야스코의 행복이 된다면, 그게 자신을 불행하게 할지라도 기꺼이 그렇게 할 정도로.
유카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야스코를 위해 아주 큰 희생을 했다. 아마 유카와도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그의 희생은 단순히 '감옥에 대신 가는' 것 정도가 아니다. '살인을 한다'는 행위 자체가 그의 가장 큰 희생이다. 그가 행한 살인은 그의 인격을 파괴하고 평생 그에게 고통을 주어 그를 불행하게 할 행위였다. 그건 오로지 야스코를 위해 행한 일이지만 그는 그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하지 않고 거기에 붙들려 평생을 지옥처럼 살 사람이다. 그래서 그것이 그의 희생인 것이다. 그리고 그라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희생이었다. 야스코를 위해 전재산을 바치든, 목숨을 바치든 그 어떤 희생을 하든 이 이상은 되지 못한다. 자기 인생을 자기 손으로 지옥에 처박는 짓을 한 것은 야스코가 아니었으면 그의 인생이 지옥조차 못되는 공허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사랑이 그런 희생을 할 만큼 커다란 것이었음을 유카와는 깨닫는다.
이시가미의 사랑이 단순히 상대와 함께 행복해지고 싶은 종류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시가미라는 캐릭터가 참 빛난다. 동시에 이시가미가 오로지 상대의 행복만을 바라고 커다란 희생을 한 것은 그가 자기 인생에 큰 가치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본래 자기의 인생은 부정적인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여겼을 텐데, 이 점은 그가 (그런 얼굴을 가졌음에도) 평소 그런 가치관이 묻어나는 행동을 했었다고 예측하게 해준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타인을 위해 자기의 감정조차 체스말로 여기는 캐릭터를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야스코가 평범하게 행복한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자기 삶의 의미를 만든 것은 두 모녀기 때문에 자기의 모든 부분은 그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진정한 사랑
진정한 사랑을 하는 캐릭터는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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