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ll
나의 누나는 강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약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긴 했지만. 말로 곧잘 그를 설명하기는 어려웠으나 제 선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언어를 골라 표현한다면, 땅바닥에 깨져 굴러다니는 유리조각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연약함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건만, 나는 자꾸만 그가 언젠가 산산조각으로 깨져버려서는 그렇게 사라지고 말 것 같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고, 아마 누군가에게 밟혀버린다면 그 비릿한 형상은 금새 가루가 되어 흩어져버릴 것 같았다. 다 낡은 것은 곧장 바스라지지 않는가. 메이는 그 사실이 두려웠다. 그것은 제가 무언가 해 보기도 전에 낡아있었으니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잃어버리지 않게 꾹 쥐고 있는 것 뿐이었다.
바닥을 굴러 마모되었어도 유리는 유리라, 자칫하면 손을 베이기 쉽상이었다. 종종 밟혀 바스라지는 것이 아니라 깨질 때면, 그 단면이 한층 날카로운 모습이 된다. 바스라지지 못한 유리는 전보다도 위협적이지만 결국은 작아지고, 더욱 더 파편에, 가루에 가까워지고. 그렇게 바스라지지 못 하면 또 다시 깨지고, 땅을 굴러 무뎌지고. 깨지고, 무뎌지고.
근 10년을 함께한 사이었다. 그는 저를 거두거나 붙잡은 적 없었지만, 떠나보내면 다시는 만나지 못 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붙잡아 둘만한 명분도 없었으니,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잃어버리지 않게 꾹 쥐고 있는 것 뿐이라, 짐을 챙기는 그를 말리지도 못하고 그저 그가 들쳐맨 가방 끝자락만을 그렇게. 나는 내 몫을 챙길 겨를도 없었고, 그냥 그가 집을 나서는 날 그를 따라 길을 나섰을 뿐이다. 그날 내게 있었던 것은 목이 늘어난 회색 반팔 티, 짧은 반바지, 몇 치수는 커 자꾸만 흘러내리는 칙칙한 녹색 체크 셔츠, 다 헤진 슬리퍼, 그리고 손에 쥔 당신만이 전부였다. 그의 발걸음은 따라가기 그리 어렵지 않아서, 다행이도 나는 그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강하지 않다. 강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날카로워 쉬히 건드릴 수는 없는 사람이다. 예민하다던가, 신경질적이라던가 하는 차원의 말이 아니다. 그러니까 정말이지 그는... 너무나도 어려운 사람이다. 감수성이 풍부하지도, 마음이 여리지도 않다. 멍청하고 어리석지도, 순수하지도 깨끗치도 않다. 저주하지 않는다. 축복하지 않는다. 바라는 것이 없다. 불행을 떨쳐낼 힘도, 진흙탕을 기어 나갈 여력도 없는 사람이다. 그에겐 이 모든 것이 희극도 비극도 아니다. 초월했다기에는 그는 너무나 세속적인 방법으로 고요와 평안을 얻는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내게 손을 내밀어 주었고, 굶주린 배를 채울 것을 던져주기도 했고, 방 한 켠을 제게 내어주었다. 돕지 않을 지언정 내치지 않는다. 그것은 가끔 누군가에겐 구원이 된다.
그는 마치 고독을 형상화 해 놓은 사람같았다. 곁에 사람이 있어도 시선은 언제나 저 먼 곳을 향해있었다. 하지만 붙잡은 손이 분명 따스했기에, 곁을 따라가길 마음먹는다. 가끔 죽은 듯 고요히 숨을 내뱉는 그를 마주한다. 그러나 심장에 귀를 가져다 대면, 분명히 박동소리가 들려오고 미약한 숨소리마나 느껴지기에 나는 그의 옆에 남아있기를 선택한다. 붙잡은 손에서 더 이상 온기가 느껴지지 않고 심장 박동의 반복됨이 멈추고 어떤 공기의 흐름도 들려오지 않을 때, 비로소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겪어야하는 것의 어떠한 종말이 찾아 왔을 때, 마지막을 정리해주고 싶다. 삶의 흔적과 작별의 궤도를 기억하고 싶다. 자랑하기 어렵고, 어딘가에 내놓기에 떳떳한 삶이 아닌 것도 알지만, 혼자로 잊혀지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러니까 우리는 버려진 혼자가 아니라 함께한 가족이고 싶다. 나는 당신의 가족으로서 당신을 기억하고 싶다. 혼자는 외롭다. 다른 사람이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니 나는 끝까지 당신 곁에 남아있다가 당신의 마지막을 정리하고, 가끔 그대를 기억할 것이다. 이것만큼은 제 작은 욕심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당신이 오래 살아있기를 바란다. 당신의 창백한 온기가 끊기지 않았으면 한다. 혼자는 외롭다. 정말이지, 혼자는 외로우니까. 집에는 가족이 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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