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일기

안녕 키티. 오랜만이야. 얼마만이지. 최근에는, 그래도  잠 못 드는 밤이 없었거든.

미안해 꼭 이런 밤에만 찾아와서. 그렇지만... 너도 알잖아. 잠들지 못하는 밤은... 혼자서는 너무 벅차. 선생님이 이렇게라도 털어놓는 게 좋다고 하셨으니까.

... 전부 괜찮아 졌는가 싶다가도 이러니 나조차 나를 믿을 수 없어. 오늘은 무슨 불안이냐고? 행복. 너무 행복해서 불안해. 무서워.

키티, 친구들이 생겼어. 신기하지,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그 애밖에 없었는데... 고등학교, 사실 내가 생떼를 부려서 갔던 거잖아. 기억해? 응, 사촌 언니네 학교. 부모님께 너무 죄송했었는데. 평소에 별말도 없다가 갑자기 예술 중점 고등학교에 가겠다고 했으니 놀라실만도 해. 분명 난처하셨겠지. 근데 마침 그 애가 그 학교에 가겠다고 하기도 했고... 그래, 조금 자포자기 하는 심정도 없었던 건 아니지. 하지만... 언니 생각이 났는걸. 언니도 내 하나뿐인 친구도 너무나 빛나는 사람이니까... 그런걸 눈에 담고 싶었어.

아무튼, 여전히 그래. 매번 나를 이끌어 주고 손내밀어주고... 그러다가 동아리 신청 시기가 됐었거든. 말해 줬었지? 동아리 같은 거... 이전에는 한번도 신경 써본 적 없었고... 정확히 말하자만 신경 쓸 수 없었던 거긴 하지만...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니까 넘어가자. 아무튼 그래서 조금 무서웠어. 내가 폐를 끼쳐버릴까봐. 단체생활인데, 아무데도 쓸모없는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너무 걱정이 되었으니까... 그 앤 연극부에 가겠다고 했거든. 당연한 일이지, 그걸 위해 그 학교에 갔으니까. 나는... 그때까지도 고민이었고... 정말 이번에도 귀가부나 할까 싶었는데, 같이 하는 게 어떻겠냐고, 그렇게 물어줘서... 너는 책도 많이 읽고, 읽는 걸 좋아하기도 하니까... 그걸 살려서 극본을 써보면 어떻겠냐고... 걘 항상 내가 믿지 못하는 나조차 믿어준단 말이야... 그래서 한번 노력해보기로 했어. 나한테 기대를 걸어준 그 앨 위해서라도.

다행히도 뽑혔던 거지. 그 앤 말할 것도 없고. 키티, 너도 알잖아. 내가 몇번이나 말해줬는걸. 무대 위의 그 아이는 마치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듯 빛나. 정말로.

아, 아무튼 거기서 새로운 아이들을 만났어. 같은 신입생이었고... 연출담당이랑 음향 담당으로 뽑힌 친구들이었거든. 그, 사실 잘 몰랐는데, 하나의 무대를 준비하는 건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협력이 필요했어. 내 생각보다도 더.

우리는 신입이니까, 아직 경험이 부족하니까 선배들이 이것저것 많이 시켰거든... 나는 극본담당이었잖아. 연출이나 음향은 극본을 바탕으로 무대를 꾸며야하고. 그래서, 그 애들이랑 같이 해야하는 일이 많았어.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글을 빨리 써내야 했지. 내가 빨리 완성하지 않으면 뭣도 시작이 안 되니는 거였으니까... 그래서 조금 다급해졌던 것 같아. 선배들한테 글을 써서 냈는데... 응, 평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어. 변명같이 들릴진 모르겠지만 시나리오 형식의 글은 처음 써보기도 했고... 응, 알아. 변명이겠지... 도움을 받고 싶었는데,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고, 계속되는 거절에 나 스스로가 너무 무능하고 비참하게 느껴져서... 부끄럽지만 무대 뒷정리를 하다가 살짝 울어버렸는데... 그때 본 같은 학년 신입생들한테 그 모습을 들켜버렸거든. 부끄러워서 숨어버리고 싶었어. 무능하면서, 할 줄 아는 게 없으면서 이런 꼴불견인 모습이나 보여줬으니까... 치를 떨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무슨일이 있었는 줄 알아? 지금 떠올리면 조금 웃음이 나기도 해. 막, 당황해하더니 둘이서 허둥지둥 하던거 있지. 그러고서는 뛰쳐나가더니 두루마기 휴지를 둘둘 손에 뽑아서 가져와주더라.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나를 위해 그런 행동을 보여준 그 두사람들이 고마웠어. 남을 위해 다정을 할애해주다니... 그런거, 쉬운 일이 아니잖아.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라 무슨 일이냐고,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혼자서 힘든 일은 끙끙 앓는 것보다 주변에 털어놓는 게 좋다고... 그렇게 말해주는데, 정말 엄청 큰일이라도 난 듯 심각한 표정이길래, 미안한 와중에도 웃겨서 말이야. 웃어버렸더니 그제서야 걔들도 어물쩍 웃더라구. 후후... 좋은 친구들이야.

호의를 표해주었으니 나도 그에 걸맞는 반응을 보여야 하니까, 뭣때문에 울었는지 말해줬는데 둘 다 자기 일처럼 고민해주는 거 있지? 그러더니, 자기들도 같은 연극을 만드는 일원이고, 너도 무대를 꾸미는 구성원중 하나니까, 우리라도 글을 읽고 조언해줘도 괜찮겠냐고 물어보는거야. 뭐든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주고 싶다고. 그 말이... 나는 너무 벅찼어. 내가, 무언가를 이루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도 '우리'중의 하나가 될 수 있는 걸까?

그래서 키티, 요즈음은 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글을 쓰는 중이야. 이것저것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찝어주고 조언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래도 조금씩은 나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 ...나도 무언가를 이루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뭐라도 된 것같은 생각이 들어서, 심장이 벅차고 두근거리는데, 키티, 그만큼 무서워. 실수하지 않을까? 착각이 아닐까? 내가 뭐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오만하게 구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도와주는 친구들한테 실례인 거겠지.

...응, 그러니까 조금 더 힘내볼게. 내 독백 들어줘서 고마워. 언제나 불안한 소리들만 해서 미안해. 잘 자. 좋은 꿈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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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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