輪轉多生曠劫
윤전다생광겁
두 눈이 끔벅인다. 리는 뿌옇게 실내를 매운 연기에도 아랑곳 않은 채 가만히 허공을 응시했다. 연기가 불명확한 형태를 띄우며 한차례 추상적 세계를 그려내었다가 흩어진다. 갈라진 연기에서 파생한 무형의 부유감이 공간을 다시금 메운다. 리양은 종종 손을 뻗어 무언가를 잡아본다. 그러나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아무것도 잡을 수 없으니 애써 잡으려 하지 않는다. 리는 힘을 뺀다. 중력이 리를 아래로 끌어내린다. 형태없는 것은 흩어지고 리는 아래로 아래로. 연기가 리의 입에서 나온다. 리는 빠져나가는 연기를 붙잡아 폐 한가득 들이마시고 눈을 감는다. 형태없는 것은 흩어지고 리는 가벼워진다. 위로 위로.
-ㅏ.. 누ㄴ... 누나..!
- 리 누나!
흔들리는 몸에 찬찬히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눈동자를 옆으로 힐긋 옮기니 단정치 못한 머리의 메이가 눈에 들어왔다. 눈썹이 팔자로 축 처진 모습이 제법 가엽다. 얼굴엔 걱정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리는 가만히 메이를 바라본다. 메이는 정이 넘치는 아이였다. 제 옷을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옷자락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앙칼지게 뻗은 눈꼬리 끝에 투명한 슬픔이 맺혀있다. 리는 그것을 관망한다. 메이가 코를 한번 훌쩍이고 얼굴을 비빈다. 안 일어나는 줄 알았어... 리는 몸을 일으킨다. 몇 시야. 3시... 밥도 안 먹구 어제 새벽에 들어가서는 안 나오길래... 들어와서 미안... 배 안고파? 저녁에 만들어 둔 거 남겨놨는데... 메이가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메이, 머리가 울려. 합. 메이가 제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는다. 고양이 같은 눈이 동그래진다. 미안. 한껏 목소리를 낮추고 소곤거린다. 나가서 아까 그거 데워놓고 있을게, 천천히 나와...? 헤헤, 바보 같은 웃음을 흘리고선 밖으로 나간다. 리는 자리에 앉아서 손에 남은 꽁초를 본다. 값비싼 평안이 바스라진다. 허기가 졌다.
자리를 정리하고 나온 리가 계단을 올라왔다. 부엌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온다. 고소한 냄새가 베일 사이를 비집고 흘러 나온다. 문발을 젖히고 들어가니 단발적 전자음 소리가 들렸다. 메이가 전자레인지에서 막 데운 볶음밥을 꺼낸다. 리양은 묵묵히 수저를 들었다. 허한 속을 채운다. 일정한 간격으로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메이가 주변을 맴돌았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거슬렸다. 리양은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메이는 배회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싱크대로 향했다. 한층 더 음식 먹기가 편했다. 달그락, 쏴아. 물소리와 그릇 소리를 배경으로 식사를 이어나간다. 침묵과 소음은 일종의 불문율이다. 리는 메이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메이는 리에게 구태여 질문하지 않는다.
- L, 물건은 이게 전부야?
- 단속이 심해져서 대량 운반은 위험하다고 전달받았어. 대신 하이클래스 몇 개 얹어줬잖아.
리는 턱짓으로 쓰레기통을 가리켰다. 상대는 쓰레기통을 뒤적거리며 물건을 확인한다. 콘돔 비닐? 너도 제법 전형적인 방식을 사용하네. 부스럭 거리는 조그만 비닐 쪼가리를 들어 올리며 실실 웃는 얼굴이 우습다. 남자는 비닐을 찢어 안을 확인한다. 같잖은 가루따위에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리는 그 모습을 가만 보다가 들고 있던 꽁초를 버려 짓밟는다. 지금 했다가 가는 도중에 뒤지지 말고 가서 확인해. 문제 있으면 말하고. 문제가 있을 리가. 그 유명하신 L의 제조품이잖아? 이래서 얼굴을 아는 사이는 불편했다. 됐고 쓸데없는 헛소리 새어나가지 않게 해. 그럼 그럼, 너만한 품질이 보장되어 있는 데는 또 없단 말이지. 좋은 거래처를 잃고 싶진 않다고. 남자는 보물을 다루듯 섬세하게 다시 봉투를 접어 주머니에 넣는다. 고개를 들어 저를 바라보지만 초점이 없어 아무것도 담기지 않는 눈동자이다. 남자는 차에 쓰레기봉투를 담는다. 그럼 다음 거래때 보자고. 리는 멀어지는 청소차의 뒤를 바라본다. 리는 자신도 눈에 담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 매캐한 냄새가 골목을 맴돈다. 매연, 쓰레기, 범죄, 악취. 여기를 구성하는 것들은 죄다 그런 종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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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세상의 멸망과 같다. 리는 매일 밤 멸망을 겪는다. 리는 죽음을 향해 걷는다. 오늘 죽어서 내일 다시 태어난다. 죽고 다시 태어난다. 태어나 다시 죽는다. 산다. 살아서 죽고 죽어서 죽었다. 죽어서 살고 살아서 살았다. 죽는다. 삶, 을 입에 담으면 시체썩는 냄새가 난다. 삶은 마치 사람을 구겨놓은 것 같다. 리양은 몸을 구겨 삶에 맞춰넣는다. 짜잔, 어엿한 하나의 삶이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저도 사람이니까요. 삶은 시체 사이에 몸을 구겨넣는 일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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