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 AX

: oc by 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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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의 능력에 붙은 이름은 분투奮鬪. 바다는 그에게 이 명칭을 부여했으므로. 그대는 바다에 보답해야만 하리. 그러나 부끄럽게도, 너희는 알았다. 두 음절의 단어는 그 주인된 자의 삶과는 영 어울리지 아니한 것이라. 결코 고결하다고 부언할 수 없다. 세상을 빈정거리면 걸핏하면 손바닥을 뒤집듯 의견을 바꿔버리고, 뒤를 상정해 둘 이성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굴었으며, 삶에 도통 집착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굴었다. 떳떳하다기보다는 비굴하고, 편협하고, 자존심이라고는 없는 삶이었다. 유일하게 지닌 가치라고는 등에 새긴 한 문양의 이름값.

인류의 적을 제거하고 물리치는. 선박 한 척에 의지하여, 바다가 품어낸 괴물들에 대항하는 영웅들의 행보. 삶과 죽음. 피비린내 나는 전투. 무력하고도 거대한 존재에 대한 투쟁. 또한 등대가 되어 바다에 보답한 자들의 찬란함. 훗날 유려한 깃펜 아래서 위대한 신화 서사시로 탈바꿈될 그들의 역사, 적어도 그 일부 필시 초라하고 옹졸하기 그지없었다. 적어도 엑스는 그랬다. 본받을 여지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인간상. 무엇을 동경하겠나, 술과 담배에 전재산을 꼬라박고 빚까지 진 대책없음? 온갖 악명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갈아치우는 그 빌어먹을 침대 사정? 그 두꺼운 낯이 마치 호걸의 상이라 미화할 것도 없다, 아니 그런가. 현학적이고 기하학적으로 조성된 수사들이 배정되기에도 아까우리라. 그리하여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시선 또한 다름없었다. 과분한 능력이라 바이던트를 갖잡아 비웃는 이들은 없지 않아 있음이다.

그러니 그들은 가벼이 바이던트를 입에 올린 값을 치러야만 한다. 비뚤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표적을 겨누었다. 그 많은 모욕에도 우선 비스듬히 웃으며 담배를 꼬나물던 것과는 다르게, 엑스는 반사적으로 상대를 향해 칼을 던져 꽂아버렸다. 숨 한 번 내쉬기도 전에 이루어지는 일련의 동작들. 크리쳐들의 목을 따고 도살하던 실력이 알코올에 묻혀 무뎌지지는 않았나 보지. 때묻은 단검이 탁자 위에 올려진 그자의 손가락 사이로 꽂힌다. 턱. 조금만 더 깊숙히 들어갔다면 분명 그 너저분하게 바닷냄새나는 손가락들을 잘랐을 것이 분명하다. 피가 튀고, 깨질 듯이 시끄러운 비명이 주점을 채웠겠지. 늙은 바닷남자의 말이 일순 굳는다. 눈이 마주쳤고, 엑스는 혈관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가는 알코올과 아드레날린을 느꼈다. 살아있는 기분. 뇌와 피부가 분리되고 작금을 망각할 수 있는 순간. 아주 죽여버린다면 피곤할 것이 분명하니.. 겉으로 느슨하게 웃는 얼굴은 여상했고, 목표물 혹은 적을 향해 걸어가는 걸음은 태연했다.

날 보이지 않도록 깊숙히 꽂힌 단검을 나무탁자에서 뽑는다. 그자의 턱 밑에 날을 가져다대고, 뚫어져라 관찰했다. 소금기 섞인 바람에 갈라진 피부, 까맣게 탄 주름, 두려움에 떨리고 있는 동공. 칼날이 닿는 턱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노동에 발달된 근육질, 그에 비해 엑스의 몸은 금방이라도 삭아 쓰러질 듯 얇았다. 늙어 노망이 난 주제에, 그에게서는 시큼한 맥주 냄새가 났다. 물 탄 맥주를 마시고도 취해서 입 놀리는 꼴이란. 엑스는 이내 기억 속에서 희미하고 아득한 것을 건져올렸다. 메리? 에이미? 아마도 이 자식의 법적 아내였었던가, 그러했다. 휘파람을 분다. 고개 기울였고, 눈을 접어 조금 더 해사하게 웃었다.

거어, 형씨. 애먼 데다 입 놀리지 말도록. 아무리 근육질이라 하더라도 실상 민간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일반과 다름없는 몸은 얄팍한 후려침에도 우당탕, 뒤집어졌다. 다시 한 번 주점의 의자만 고통받으며 삐그덕, 비명을 지른다. 주점의 사람들은 알아서 자리를 옮겼다. 엑스가 그러는 것이 하루 이틀인가. 그래, 바이던트를 입에 담는 것은 감히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저를 거두어 준 값은 치뤄야지. 나지막히 중얼거리며 발로 쓰러진 상대의 머리를 걷어찬다. 쾅. 머리가 재차 바닥과 부딪히면서 바닥이 움푹 패였다. 늙은 어부는 바닥에서 바르작거리더니, 기침과 함께 누런 치아를 몇 개 뱉었다. 코와 입은 핏덩어리가 울컥 울컥 터져 나왔고, 그자는 벌떡 몸을 일으켜 엑스에게 달려들었다. 그 동작은 느리고 허술했으니, 엑스는 도리어 빈 탁자에서 술병을 들어 병목을 탁자에 내려쳤다. 깡.

병이 부서진다. 단단하게 봉해져 있던 병이 외부 충격으로, 쩍. 금 따라 갈라졌다. 비산하는 유리 조각. 후두둑 액체가 바닥으로 흘렀다. 그 한 방울이 아까웠던 탓에 엑스는 깨진 부분에 입을 대고 죄 액체를 반쯤 들이켰다. 본디 싸움 자리에서는 술이 빠질 수 없는 법. 여느 바이던트 애송이가 들었다면 비명지를 법한 말이었으나, 엑스는 상관 않았다. 오랜만에 생각이란 걸 해서 그런가, 그것이 귀에 유독 선하게 들려오는 기분이었다. 제정신이냐고요!!!!! 웃음만 나왔다. 반사적으로 병을 쥔 손에 힘을 주면, 유리병의 조각 단면이 지그시 입술 상피를 압박했다. 머리를 젖히면 싸구려 럼이 절반쯤 또 사라진다. 손이 구부러지며 관절이 도드라졌다. 곧, 파삭. 악력을 이기지 못하고 병이 조각조각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아있던 액체가 손을 타고 팔로, 몸체로 진득하고 축축하게 흘러내렸다. 상관않았다. 크으, 괴상한 탄식과 함께 팔꿈치로 대충 입을 훔쳐내고는 함께 마주 달려들었다. 상대는 맨손, 그러니 이쪽도 맨손. 머리가 바람을 맞고 뒤쪽으로 휘날린다. 지금이다. 살아있음이다.

느리고 허술하다. 그러나 무게 실려 묵직한 주먹을 휘두르는데 무작정 받아칠 수는 없었다. 필시 저 뒤편으로 튕겨나가 벽면에 처박혀 버리겠지. 그래서 엑스는 주먹을 흘리며 되려 파고들었다. 몸을 반쯤 틀어 왼팔을 뻗는다. 주먹이 지니고 있는 힘에 저항하지 않는다. 되려 동일한 방향으로 운동하면서 잔뜩 들어간 힘을 일순 잡아비튼다. 한 손은 팔꿈치 쪽에, 한 손은 손목을 잡고. 동맥이 지나가는 혈을 강하게 누름과 동시에 상대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툭.

교차하던 팔이 멈춘다. 늙은 어부는 제 딴에 안간힘을 쓰는지 얼굴이 붉어져 있었고, 역방향으로 힘을 가한 팔이 삐그덕대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그러했다. 덜덜 떨리는 팔, 그러나 삶을 바다와 함께한 이가 그리 나약하지는 않은 법이다. 일순 바람이 일었고, 엑스를 향해 날아오는 다른 손바닥이 보였다. 엑스는 본래 의도했던 경로를 가늠했다가, 손을 놓고 재빠르게 허공에서 허리를 뒤틀어 뒤로 착지했다. 빈 허공을 제끼는 손바닥이 뒤늦게 체류하던 자리를 헛돌 뿐이다. 탓, 탓. 엑스는 착지한 뒤 발을 구르는 여유까지 부리며 쓸데없이 비어있는 동작을 가볍게 성공시켰다. 그보다는, 제가 걸려던 동작이 실패했음에도 엑스는 아무런 유감이 없어 보였다. 조금 더 눈이 둥글게 휘어질 뿐. 옳지, 이렇게 쉬우면 재미가 없지.

그렇게 몇십 공방이 오간다.

이 자리에 자리하는 그 어떤 이도 여관 주인의 손해ㅡ부서진 의자와 책상, 바닥에 나뒹구는 유리 조각 따위의ㅡ를 염려하지 않았다. 부엌에서는 기름때 낀 더러운 솥에서 정체 모를 스튜가 누렇게 끓었다. 보글보글. 인근이 곧 바다인만큼, 오래 끓어 질겨진 다리나 흐물해져 반쯤 녹은 건더기, 곤죽이 된 양배추가 뒤적거리면 아주 가끔 건더기로 건져올려지고는 한다. 바다생물의 비린내를 가리기 위해 강한 향신료가 끼얹어진다. 개죽보다 맛이 없다지. 가축 사료나 마찬가지일 법도 했다. 하나 그것은 이 근처 노동자들의 끼니, 도리어 피로한 하루의 끝. 개도 안 먹을 죽 먹는 우리는 개돼지들보다 못난 가축이지, 암. 그렇고말고! 허공에서는 묵직한 주먹의 궤도와 날랜 발길질, 술에 절은 저렴한 농담과 저마다의 도박을 거는 동전들만이. 어느 누군가가 실내에서 거침없이 담배를 피우던가, 희부연 담배 연기가 매캐했다. 여관 천장에 매달린 알전구와 향유등이 간신히 뭉개진 윤곽을 밝힌다. 그 광경 한복판에서 팔을 머리 위로 올려서는 허리를 늘려 펴자면, 엑스는 그리 어울릴 수가 없었다. 술 절어 알코올 냄새 나는 머리카락이 떡져서 목을 흘렀다. 번지는 멍, 제 것 아닌 피. 이것저것 안주와 토사물로 물들은 피부와 옷도. 결국 배경과 어우러진다, 그런 곳이었다. 이곳에 들어오는 이들은 불결함에 눈부터 찌푸릴 것이다. 벽과 바닥에 찌들은 바다내음, 땀냄새, 지린내, 어두침침하고 진창 더러우니 돈이 있다면 들어오지도 않을 곳. 맛대가리 없는 물 탄 맥주에 간혹 가다가 벌어지는 술주정과 누군가의 수치는 단지 유흥에 불과하니 모두가 한탕속으로 걸쭉한 웃음 짓는다. 저급하게 그 값어치 매겨지는 온갖 개념들.

제가 여기 말고 어디에 어울리겠는가. 이 밑바닥 인생, 윤리나 법에 기대어 손 씻겠다고, 누가 그러던? 그 낄낄대는 웃음에 엑스 또한 합류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 어깨동무하며 테이블에 불쑥 끼어들었다. 의자에 발 올리고서는, 술 한 병 따더니 고저 제 입에 부어버린다. 테이블 사람들은 난처하다는 듯 말리는 둥 하다가, 결국 와하하 웃어버리니 온갖 술에 젖어 이곳이 곧 야만과 무지, 날된 욕망의 현장이라. 허리 삐딱하게 세우고서는 눈 모로 괸다, 버석한 입술을 한 번 훑고서는 그린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어느새 또 한 병이다. 낡은 빈병은 뒤쪽으로 던져 버린다. 또한 관중들의 환호, 시끄럽게 깨지는 유리병은 반쯤 벽에 박혀 버리고. 이 한 손에 알코올이 있다면, 다른 손에는 무엇을 물어야 할까. 주정뱅이들에게 농담을 지껄이며 형성된 껍질 같은 공감대를 비집는다. 말투는 과장된 희극과도 같다. 술 취해 가누지 못하는 어조는 쉬이 녹아들고, 그러나 단지 탁한 눈은 알코올에 이지 잃은 것은 아니라. 연기를 뻑뻑 피우던 사람에게서 담뱃잎 빼앗아들고는 제 입에 가져다 물었다. 위생 따위는 알 바 아니라. 잘게 뭉친 가루들을 허파 깊숙히 빨아들이다 보란듯이 연기를 그 얼굴에 내뱉는 것이다. 희부옇게 연기가 그 생면부지의 낯 위로 쏟아진다. 지독한 니코틴이 기체의 태를 타고 흘러나왔다. 이런 것들에 사레 들려 콜록거리는 것은 애송이들이나 하는 것 아니겠나. 치켜올라간 눈이 가늘게 휘었다. 거, 애송이. 무어 바라시길래. 이곳에서 온갖 지랄을 떠시며 청승 부리고 있을까. 아무렴, 질문은 아니라... 대답할 필요까지야 없건만. 다만 그저 이것. 그 뭐라던. 레이디이-퍼스트.

것은 빈정거리는 어조다. 특정한 의도가 깃든 것은 아니었으며, 그저 이 사람 자체의 본디 난 어조에 불과했다. 하도 술과 담배를 피워 갈라지는 목소리, 메이는 목은 듣기 싫을 만큼 형편없다. 다만 발음만은 선연했는데, 것과 달리 음운을 이루는 의미는 괴리되며 허공을 겉도는 것이다. 몇 마디. 그 웃음이 일그러짐 없이 표표하니 담배 한 번 더 빨아들였다가 다시 입에 물려줄 때까지 아무런 이상 못 느꼈다 하더라. 무릇 당당하니 아무런 인지 않는다. 마치 맡긴 것 가져가듯 자연스러운 것이다. 잘 썼다. 뒤늦게 일어서봤자 쫌생이 취급 받을 뿐. 다시 휘적휘적 움직여 안주를 얻어먹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얻어듣는다. 아까 싸움판에서 내 보다시피… 이겼으니, 상금이라도 어디 없나. 엑스는 그렇게 내부를 휘젓다가, 야유 얻으며 밤거리에 낄낄 웃어 나섰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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