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used to.

: 彌陀

: oc by 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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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타가 죽었다.

겨울의 끝자락에 일어난 일이었다.

...미 연방 정부는, 오랜 침묵 끝에 해당 약물의 존재에 대해 긍정했습니다. 기자회견장에 순간 거대한 정적이 흐릅니다. 여러분, 이것은 하나의 대혁신입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변곡점에 서 있습니다. 인류의 위대함을 찬양하며. 이능력과 함께 살아간 지 한 세기, 우리는 드디어 이 능력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정부 대변인은 해당 약물이 위대한 우리의 조국을 더욱 멋지고, 환상적으로 바꿀 수 있으리라, 며 기대해달라고 연신 언급했....

...현재 이 약물은 일차적으로 이능력자 특수부대인 ROG부대에 시범적으로 적용시켰으며, 차츰 민간으로 확대해 나갈.... 다만 이에 대해, 임상 실험은 거친 것이냐며 약물의 불확실한 생산 경로를 통한 인권단체의 여러 제기가...

.....치지직. 직.

RX-0085. 채 이름조차 여즉 붙여지지 않은 약은 은밀하게, 아주 조용히 뒷골목으로부터 소문이 흘러나왔다. 그 전에도 여러 번 나고 사라진 뜬소문들과는 달랐다. 조직적으로,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을 듣노라면ㅡ 효능은 단순했다. 이능력자에게 필연적으로 부여되는, 부작용이라 할 만한 것들의 일시적 완화. 혹은 완전 제거. 인류는 그들을 수호할 이들이 더 강해지는 것에 기꺼이 환호했다. 정부가 그렇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인류가 안전해지리라 비로소 환호했다. 정부가 그렇게 만들었다.

미연방정부 연하 ROG 부대, 포계 해타. 여느 때와 같이 거부하다가 끝내 수용당한다. 입에 든 것은 하나의 캡슐 정제 알약이다. 눌어붙은 세포가 찢기고 졸아든 위까지 길이 난다. 알약은 위액에 든 산성에 빠르게 융해되면서, 복잡한 구조의 화학 성분이 혈관과 세포 상피를 통해 흡수되었다. 그동안 해타는 몸부림치다가, 헛구역질하다가, 죽은 듯 늘어지는 몸을 끌고 서서히 잠에 들자면, 그리고 가물해지는 의식 너머 느껴지는 서부의 겨울. 육신은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 의식을 단절시킨다.

능력이 약효와 맞닿으며 일순 저항이 일었다. 결합으로부터 일었던 엔트로피가 결괏값을 도출시켰다. 그것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일었던 변화와 동일하게, 정확하고 신속했다. 그 파급이 세포 사이로 스며들자면 맞닿는 신경이, 죽었던 신경로가 재생된다. 부풀어오른 종양을 가르고, 뼈와 근육을 타고 신경이 천천히 발했다. 뇌세포가 천천히 생성되면, 그것은 그래. 소환이나 다름없다. 새로운 탄생, 활자가 조형을 갖고, 죽어버린 뇌가 다시 천천히 피를 갖는다. 숨을 쉰다. 화상으로 무뎌진 감각이 조금씩 재생한다. 머리부터 발 끝을 도는 피가 약효를 온 곳으로 돌렸다. 순식간에 재생이 일었다.

다만 아무도 알지 못한 채, 해타가 죽었다.

..ROG 포계, 해타.

아침이 밝는다. 여상한 낯으로 이미 죽어버린 것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그것은 호명이라기보다는, 비명에 가까웠다. 체감되지 않는 지금을 일깨우는 소리다. 일어나자마자 육신을 더듬는다. 한 번도 자르지 않은 거친 머리카락을 연신 그어내리면서도, 나는 이미 죽어버린 것의 허물을 되찾기 위해 애를 썼다. 우리는 죽어버린 유년기를 되찾을 수 있는가? 바다 아래 깊이 침잠하는 고래가 다시는 육지에 발 디딜 수 없듯이, 우리는 죽어버린 숨을 건져올릴 수는 없듯이. 터무니 없는 정보량에 굳어 있던 뇌가 비명을 지른다. 손이 떨렸다. 팔을 타고 온 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은, 아마 두려움의 연유일지언정. 이마를 닦아내면, 식은땀이 축축했다. 온 말단의 감각이 작용하는 감각에 해타, 는 몸을 떨었다. 반쯤 헐거운 정복 차림.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내가 너에게 해타라는 이름을 얹었던 까닭은, 또한 네게 잘못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없이 많은 내가 발한 울음에도, 네가 수없이 뱉은 울음에도 실상은 잘못 없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 하나 편하자고 네게 전가한 감정들에 네가 수용했기 때문이었다. 인과를 추론하자면 나로부터 너로 이어지는 것이다. 어그러진 수평선이 존재를 구성했고. 결국 우리는, 연속되어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새벽의 병영은 고요하다. 불침번 새우는 몇을 제외하고는. 그 장면에 하나가 정신없이 물을 머리에 끼얹고 있는 장면이 삽입된다면, 조금 소란스러울 수도 있겠다. 촥, 소리와 함께 정수리로부터 물이 끼얹어진다. 얼굴의 굴곡을 따라 민낯이 물에 흠벅진다. 추위에 몸이 자연 떨리기 시작한다. 입이 파래지고, 몸이 시리다 못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욱신거리며 아프게 치솟았던 감정을 깎는다. 온갖 혼란을 조각내서 잘게 흩어버린다. 흐으으으. 우는 듯한 소리가 났다. 아팠고, 덜 나은 화상 자국은 따갑게 통각을 자극했고, 강제로 뚫린 감각들이 고동치고 비명을 지르는데. 오래도록 접은 허리가 아팠으며 뻣뻣한 군복에 괜히 울음이 났다. 다시 한 번 더 끼얹는다. 온전하게 돌지 않는 약효가 저를 바닥으로 내리꽂았다가도, 일으켰다. 쉽사리 의식이 끊기지 않으며 오히려 생각이 온갖 감정으로 얼룩진다. 바가지로 몇 번을 끼얹었더라.

괜시리 헛웃음이 났다. 그 전까지는 처참하게도 뭉개진 경계였던 것을. 고의적으로 배제해버린 것이 발목을 잡고 기어올랐다. 여기까지가, 그리고 이 이상은 비정상이다. 부작용이다. 고깃덩어리에 사고가 조금 활발하게 돈다 하여도, 이것이 무슨 수치스러운 꼴인가. 지금까지 발버둥친 것들이 무용해져버린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저가 간신히 긍정한 이 삶을 이 약물이 부정했다. 한갓 약물이. 어떻게? 부작용에 몸부림치면서, 잃어버리는 사고의 파편을 주워모으려 했던 그 모든 노력들이 허망하게 연소되었다. 불에 사위는 동안 지샜던 온갖 사념을 기억한다. 길어지는 빈 기억이 두려워 허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애써 마음을 비우려던 시간이. 그러나 갈급하게 저를 몰아세웠던 불꽃들이. 재 하나 남기지 않고, 말끔하게 타 버렸다. 해타로 완결되었어야 할 삶이다. 이건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을 외전일 뿐이잖아.

사념을 죽어버린 물에 흘려보내다가도, 결국 차가운 물에 머리를 박는 것은 어리석은 이의 말로다. 첨벙. 새벽을 깨는 무던한 소리. 물에 낀 살얼음이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들었고, 새벽 찬 바람에 올 하나 하나 얼어붙고 생각의 유기성이 고스란히 박피된다. 그러므로 해타가 죽은 것이다. 아무도 수용하지 않을 진실을 미타 홀로 삼켰다. 그것은 그와 해타가 동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저항적 성질이었으며 또한 투쟁의 성질이었다. 약물 따위에 내가, 너가, 저울질되리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는다. 해타를 부정한다면 지금으로 오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부정당하는 꼴을 결코 볼 수 없다. 나는 아주 비겁하게도, 너를 죽었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또한 우리가 탈각하면서 성장해버린 과거들에 애도를 표해야만 한다. 돌아갈 수 없음에 비탄하자니 잔재하는 기억들이 이 명제를 반증하나, 그럼에도 감히 부정한다. 감정의 껍질들에 몇 번이고 부채질한다. 수면 위로 작게 거품이 인다. 하나, 둘.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죽은 듯 잠잠히 엎드린 군인 하나가 남는다. 물에 잠긴 소리는 대야 속에서만 번지고 번졌다. 빈 어깨가 간혹 떨렸다, 모래색 군복에는 이름 두 글자가 적혀 있다. 해타.

존재의 연속성이란 무엇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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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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