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계란에 바위치기

: 彌陀

: oc by 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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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구백년대의 미국은 자유와 혼란으로, 또한 저마다의 분출된 광기로 혼란스러웠다. 20세기를 맞이하며 새롭게 세기의 앞자리수를 2로 매김세우면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맵시 있는 옷차림새로 거리를 활보했다. 그 뒤에는 필시 착취로부터 왔을 것이 분명한. 또한 노동자와 사업자와 정치인, 전쟁으로 부자가 된 벼락부자들, 이능력자들의 존재로 인한 새로운 변화가 봇물 터지듯 밀려들어왔다. 거리에는 새천년이 오매 종말이 오리라 외치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거라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가리 따위의 팻말을 들고 활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옆에서는 환경 보호를 외치는 사람들도, 저들의 이익을 위해 외면하는 기업가들의 무리가, 혹은 투표의 권리를 위해, 농업인들의 생존을 위해, 토지 소유주들의 반발이, 인종 차별 철폐를 위해 외치는 사람들이 넘실댔다. 최근 자동차라는 것이, 산업화와 그들의 위대한 아메리카를 장식하며 포오ㅡ드 자동차가 마차와 뒤섞여 느리게 굴러갔다. 턴테이블 위에서는 LP판이 느리게 돌아간다. 잡음 섞인 재즈가 느릿하게 흘러나온다.

그 온갖 소용돌이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조합이 없을 리 없다. 조합의 통일성은 시위에 타당함을 불러일으켰고, 어떠한 분파의 의견인지 어림짐작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도리어 다양성은 아무런 시선 받지 못했다. 여기. 아무런 자리 차지하지 못한 채, 그 물결의 끝자락에 자리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맥락성이 없었다. 황인과 흑인, 백인이 뒤섞여 있었다. 여성과 남성이, 젊은이와 노인이 나이를 불문하고 뒤섞여 있었다. 그들은 조금 더 과감했고, 어찌 보면 아슬아슬하게 비폭력 시위의 틀을 썼다. 그들 사이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것이 있다면, 하얗게 샌 머리카락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자른 적이 없다는 듯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또 낯선 동북아시아의 어떠한 전통복식이겠으나. 사람들은 옳거니 소수민족의 그것이겠다 하며 지나갈 따름이었다. 그 사람은 조금 낡은 정장 위에 해진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었다. 바람결에 도포 휘날리면은 다부지게 쥔 주먹 드러난다. 아직 앳된 낯, 다만 눈에 담긴 처절함만큼은 여타 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눈동자가 영명한 총기와 결연한 의지로 번들거렸다.

미타. 조선에서 나 단지 이능력을 발현했다는 이유로 입대해야 했다. 이능협회란 것은, 온갖 이능력자가 입대를 위해 미국으로 오는 경비를 지원했다. 머나먼 태평양으로 향해는 배에 걸어올라가면서, 그날 미타는 회고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 능력이 발현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고민조차 해 본 적 없었음을. 그야 대체 누가 작금의 현실에서 이능력자가 약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놀랍게도 이능력은 권력과 함께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하나의 길이라고도 불릴 만큼.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는데.

저는 죄 한글로 쓰인 종이를 펄럭였다. 느릿하게 발음 뱉는 것은 머리를 쥐어 싸맨 다음이다. 아ㅡ미리가. 도저히 어떤 발음이라는 거야? 다시 천천히 혀를 굴리자면, 누군가의 말이 끼어든다. America, 라고 읽습니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노인이 홀로 앉아있던 미타의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분명히, 그러니까. 속된 말로... 서방 오랑캐라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 미타는 조용히 경계했으나, 또한 배울 기회를 놓치지는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어르신. 미국으로 가는 배가 증기를 내뿜으면서 파도를 가를 동안, 미타는 그렇게 영어와 함께, 또한 새로운 사상을 습득했다. 시위, 데모. 노동자의, 평등과 혁명 따위의 것들. 올바름. 타향에서 미타는 동지라 할 누군가를 한 명 얻게 되었다. 그것이 가장 처음의 시작이다.

미타는 그에게서 배운 딱딱하고, 엄숙한 억양의 영어를 유려하게 사용했다. 신뢰감을 주는, 어쩌면 군인처럼 들리기도 하는. 도대체 왜 그리 발음하냐 물으면, 글쎄 . 단지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에 의한 자유를 투쟁하려 들 때, 가장 알맞은 어조였으므로. 짧고, 강하게. 호흡은 길게. 억양을 주어 확실하게 끊는다. 혹은 시작과도 같은 습관이었으니. 결코 미타는 이 발음을 고칠 생각이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강하게 외치면서, 목이 나갈 때까지. 쇳소리가 나가면서 듣기 싫은 소리가 날 때도. 한결같이 같은 뜻을 외쳤다.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도. 도저히 사람들은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이미 사회의 상류층처럼 보이는 계급에 도통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것에 절망했던가? 모르겠다.

경찰은 미타가 능력을 사용하자마자 진압을 시도했다. 오롯하게 테러의 의미가 아니었다. 단지 집중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리 변명해도 결국 테러용의자가 될 뿐이지 아니한가? 그들로는 분명 타당한 시도였다. 허나 이것 보라. 우리는 여전히 괴물의 굴레에 빠져 있다. 우리를 누가 인간으로 보고 있지? 아니, 그저 특이한 능력을 가진 가축과 짐승으로 볼 뿐이다. 그렇게 상피 타며 갈변한 피부를 사정 없이 짓무르는 손. 돌바닥에 부딪힌 어깨가 욱신거린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절로 찌푸려지는 미간. 진압봉이 등을 치자 무력하게 꿀릴 수밖에. 공권력이 등 뒤로 팔 접어 무릎 꿇릴 때, 미타는 누군가와 눈을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비웃음.

한심하다는 시선은 익숙했다. 무관심한 시선은 그보다 더 익숙했다. 간혹은 시간을 태운다는 거렁뱅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다만 경멸하고, 비웃으며 진심으로 타당하다는 시선은 처음이었다. 찰나 미타는 성찰했다. 제가 너무 과도하게 시민을 위협했나? 저가 저이한테 위협 될 만한 행동을 했는가? 시위를 펼치는 입장에서 그것은 불가피한 것인데. 이름뿐인 유치장에 며칠 갇혔다가, 석방될 때까지도. 미타는 비틀거리면서 고민했다.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옳음인가. 치열하게 올바름에 대해 고민한다. 바름에 차선을 둘 수는 있으나, 그렇게 두지 않았다. 미타는 단지, 미타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인데. 그 혼란스러움을 진정으로 해소하지 못하고 다음 날 시위에 나갔을 때, 해타는 처음으로 날계란을 맞았다.

날계란을 맞아본 적 있는가? 둔탁한 충격에 머리가 흔들린다. 까슬한 껍질이 깨지며 이마를 긁고, 이윽고 예상했으나 불쾌한 감각이 살갗을 적시며 흘러내린다. 얼굴의 굴곡을 타고, 목을 타고. 하얀 셔츠의 옷깃이 노랗게 물든다. 미타는 입을 달싹였다. 방금까지 나오던 말이 잠시, 멈춤. 일시정지를 누른 것마냥 몇 초. 하지만 이것은 기회로소, 범인을 찾기보다는 소매로 닦아내며 외쳤다. 좆까라고 해!!!!! 우리는 싸울 필요가 없다! 단지 미지에서 나온 두려움이 우리를 가를 뿐이니. 그대, 무엇을 사유하는가? 우리는 자유 의지가 있는 사람이다! 그 눈을 떠!!!!!!! 우리에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두려움 뿐. 그것은 더 이상 우리에게 장벽이 될 수 없다! 일어나라!!! 카랑카랑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점점 힘을 얻고 단단해진다. 누군가가 쥐여주는 계란이 단단하다. 이것을 던지면 그자와 같은 인간이 되는 셈이겠지. 하하, 이능력 부작용이 어리석어지는 것이라더니. 드디어 시작되었나. 대체 어떻게, 어디로 가야만 하는 것인가. 그리고 해타는 손에 불을 피워냈다. 계란의 껍질이 뜨겁게 가열되며 곧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오른다. 직전에, 익숙한 눈과 마주쳤었지. 푸르른 강산을 닮았으나, 그 감정 아주 낯설은. 녹색. 아주 손쉽게도, 해타는 찾아낼 수 있었다. 입으로 무언가를 읊조리고 있었기에.

팔을 휘두른다. 그것은 몹시도 우발적인 행동이었으므로, 제지 또한 없었다. 적당히 가열된 달걀이 그 자의 이마까지 정확하게 날아간다. 딱. 아픈 소리와 함께 그자의 얼굴이 휘청였다. 시선이 쏠린다. 미타는 삶에 부끄럽고도 날카로운 자기반성이 한 획 긁히는 것을 느꼈다. 그 껍질 깨진다, 무언가의 세계였던 것이. 허나 무정란이었으므로, 적당히 익은 것이 흐물하게 흘러내린다. 말도 되지 않는다는 듯, 그 자의 눈은 느릿하게 깜박인다. 일순, 미타는 스스로가 정의감에 취했을까 두려웠다. 뒤에서 잡아오는 동지들의 손이, 동료들의 속삭임이. 찰나 많은 제지와 함께 떨리는 제 손가락을 보고서야. 미타는 스스로가 많은 감정이 쌓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두려움으로부터, 분노로부터. 어리고 유약한 것이 강제로 껍질 굳히며 세계를 받아들일 때, 강제로 개변되었을 때. 올바름에 대한 억울함과 부끄러움이 얼마나 복합적으로 배합되었는지. 바람이 분다. 구겨지는 도포 자락, 강제로 붙들리는 양팔, 꺾이는 머리. 거리를 울리는 흥겨운 재즈 음악. 그것과 함께 미타는 환히 웃었다. 아, 확신이다.

저는 옳게 가고 있다. 다른 이들이 그것을 지지하고, 어깨를 나란히 한다. 만일 내 길을 잃는 일이 있는 한이 있더라도, 이들이, 동료들이. 저와 뜻을 같이하는 자들이 스스로를 나아가게끔 하겠지. 부끄러워하면서, 또한 매달리지 않으며 나아가리라. 고민의 종결이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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