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단편
삑—
산호가 신경질적으로 티비를 꺼버렸다. 방음벽을 붙여놓은 방 가득히 울려퍼지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좀비의 괴성이 사라진 공간에는 삽시간에 암흑과 고요가 들어찼다.
영화에 집중하고 싶다던 진아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암막 커튼을 쳐놨던 터라, 방에는 정말 단 한 줄기의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진아가 더듬더듬 이불을 깔아놓은 바닥을 짚어 옆에 놓여있을 산호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네가 보자고 해놓고 네가 꺼버리면 어떡해. 슬슬 하이라이트 아니었어?”
산호가 꺼버리기 직전까지의 영화는 막 주인공의 연인이 주인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 주인공을 내보내고 좀비가 우글거리는 창고 안에서 문을 닫아버리는 장면이었다.
문이 닫히는 동안 울리는 낡은 경첩음과 처절하게 연인의 이름 석 자를 외치는 주인공의 울부짖음, 그저 눈 앞에 보이는 것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좀비의 괴성이 아주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던 참인지라 진아는 팝콘을 입에 넣는 것도 까먹고 멍하니 화면만 들여다보았다. 산호는 주인공의 연인이 좀비에게 물어뜯기기 일보직전에 화면을 꺼버렸다.
진아는 제 손에 잡힌 남자친구의 손을 조물거리며 종알거렸다. 재미 없었어? 아니면, 역시 너무 잔인했나? 그치만 네가 보자고 했잖아. 장난스럽게 탓하는 말에 평소 같았으면 투덜거렸을 산호가 조용했다.
의아함을 느낀 진아가 고개를 올려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산호를 보았다. 아무리 어둠에 익숙해졌다지만, 역시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산호가 어떤 상태인지는 눈이 아닌 소리로 알 수 있었다.
산호는, 울고 있었다.
“왜 울고 그래. 응?”
진아가 저보다 머리 반은 큰 산호를 끌어당겨와 안으며 물었다. 원래도 눈물 많은 남자친구지만 자기가 보자고 갖고와 놓고는 펑펑 울어버리니 진아는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내용도 모르고 가져온 건가? 어느 부분이 그렇게 슬펐던거지? 진아는 원래도 영화를 보며 우는 사람이 아니라서 공감성 높은 남자친구를 이해할 순 없었지만 커다란 등의 떨림이 멈출 때까지 계속 다독였다. 진아가 산호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였다.
산호는 한참을 소리없이 울다가 진정이 된 듯 진아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진아가 더듬더듬 눈 주위를 찾아 손가락으로 쓸어주자 괜찮다는 듯 그 손을 잡아 조심스레 내려주었다.
“자, 이제 말해봐. 뭐가 그렇게 슬펐어.”
“주인공이 소리 지르는게 너무 듣기 힘들었어.”
주인공? 아, 하긴. 영화적 표현이라곤 하지만 주인공의 처절한 목소리는 좀비 수 십마리의 괴성을 뚫고 나오고 있었다. 그 대목은 진아조차도 마음이 저릿해질 정도였다.
“그게 그렇게 슬펐어? 화면도 꺼버릴 만큼?”
“그치만, 그게 나였으면….”
나였으면, 난 아무 말도 못했을 것 같아서. 산호가 기껏 그친 눈물을 다시 뚝뚝 흘리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진아에게 말했다. 진아의 손을 잡은 산호의 손이 또 바르르 떨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산호는 상상력이 풍부했다. 재난 영화나 좀비물 같은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주제에 꼭 진아랑 그런 영화를 보고, 그 안에서 연인이 나오면 꼭 자신들을 그 연인에 대입해보았다. 그래서인지 산호는 꼭 한 사람이 희생해야만 하는 상황 연출을 싫어했다. 희생자가 여자일 경우엔 더욱 싫어했고, 남자일 경우엔 비극이라며 또 엉엉 울었다. 그리고 그걸 달래는 건 언제나 진아의 몫이었다.
진아가 산호의 등을 다시 토닥토닥 두드렸다. 이번엔 산호가 알아서 진아의 품으로 엉겨들어왔다. 마치 진아의 존재가 이곳에 있음을 확인하고 싶다는 듯이. 진아는 그런 산호를 개의치 않고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우리 이제 커튼 걷자. 새벽에 보기 시작했으니까, 지금쯤 해가 떴을 거야. 산호야, 바깥은 아침이야. 길거리에는 좀비가 아니라 바쁘게 일상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지나다닐 거고, 전봇대에는 까마귀나 참새가 앉아있을거야. 우리, 그거 보면서 따뜻한 우유나 한 잔 마시자. 며칠 전에 선물 받은 꿀도 있으니까, 그것도 넣고. 오랜만에 낮잠이나 자자.”
그러고 일어나면, 이번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로맨스 영화를 보자. 그건, 우리 둘다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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