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청려 문대큰세 실연의 아픔에는 술을

문대청려가 사귀고 이세진이 실연합니다. 현판 에유

이세진은 문대가 돌봐주는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다. 대등하게 옆에 서서 등을 맡길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자신을 신뢰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너에게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네가 없어도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그 믿음.

 

그 바람은 이루어져서, 문대는 이세진을 동등한 친구로써 대했다. 챙기기는 하지만 과하지 않았다. 자신의 옆에 서서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것과 사랑은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야 하는데. 이세진은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게 되었다.

 

+++

 

문대는 제일 위험한 순간 이세진을 믿고 신재현에게로 달려갔다. 신재현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몬스터를 눈을 깜박이며 보고만 있었다. 신재현은 한계까지 힘을 썼다. 더 이상 움직이거나 피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그는 늘 그렇듯이 죽음을 기다렸다. 두 번 다시 재시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익숙하게. 평온한 죽음을 보는 모습에 문대는 이를 갈았다.

 

문대는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신재현을 낚아채 몬스터의 공격을 피했다. 입에서 피 맛이 돌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폐가 공기를 갈구했다. 신재현은 문대의 품 안에서 가만히 눈만 깜박였다. 문대는 욕설을 삼키면서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한 박자 늦게 달려온 차유진이 몬스터를 죽였다. 문대가 한순간이라도 주저했다면 신재현은 치명상을 입었으리라. 죽음에 이를 정도의. 문대가 입을 벌렸다. 숨이 가빴다.

 

“너...너...이...망할...”

 

숨이 차서 욕설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문대는 신재현을 꼬옥 안고 있었다. 신재현을 잃을 수도 있었다 생각하니 온몸이 덜덜 떨렸다. 신재현은 그런 문대를 멀뚱히 보다가 손을 뻗어 볼을 매만졌다. 평소에는 따끈하던 볼이 공포로 차갑게 식어 있었다.

 

“죽을 뻔한건 난데 왜 후배님이 떨지?”

“왜긴 왜야. 너 나랑 사귀고 있다는 자각은 있는 거냐.”

“하고 있어요.”

“그러면 내가 너랑 사귀면서 딱 한가지만 부탁한 것도 기억하고 있겠네.”

“죽지 말라고 했지요. 후배님과 같이 살면서 늙어 죽는 형식이 아니면 죽지 말라고. 하지만 아까는 진짜...”

“알아. 안다고.”

 

문대는 욕설을 삼켰다. 요즘 던전 공략은 유난히 힘들었다. 저번 던전 공략 때 브이틱의 셋이 다쳐서 신재현이 테스타의 공략팀에 임시로 들어온 것도 그렇고. 신재현은 얼마 쉬지도 못하고 계속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다. 힘이 빠지는 것도 당연했다.

말간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니까. S급 각성자라고 해도 체력의 한계는 있었다. 신재현의 힘은 무한하지 않았다. 문대는 신재현을 품에 안고 일어났다.

“이제 공략 끝났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이주일 동안 쉰다. 너는 수발 받을 생각이나 해.”

“후배님도 지치지 않았나? 난 괜찮으니까 쉬어요.”

“됐고. 나가자.”

 

문대는 신재현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부축하는 모양새를 보고 나서야 이세진은 신재현이 다리를 다쳤다는 것을 알았다. 그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다 보고 있었구나. 이세진은 쓰게 웃었다.

 

“던전은 공략 되었어.”

 

청우가 나타난 던전의 핵을 전용 용기 안에 넣었다. 곧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신재현은 자신의 허리에 감긴 문대의 손을 잡았다.

 

“이제 놔줘요.”

“공주님 안기로 안기고 싶냐?”

“공주님 안기가 뭐지?”

“됐고. 콩이, 애견 호텔에 언제까지 맡겼어.”

“이주일 정도.”

“그러면 일주일 동안 쉬고 일주일 후에 찾으러 가자.”

“음. 네.”

 

게이트가 완전히 열리자 문대는 뒤에 있는 멤버들을 뒤돌아보았다.

 

“저는 신재현도 돌봐줘야해서 먼저 가겠습니다.”

“그래.”

“너는 다친데 없고?”

“저는 지친거 빼면 괜찮아요. 조금만 쉬면 되요.”

“응.”

“재현 선배님이 무사히 나으시길 바라겠습니다.”

“나 문대형 요리 먹고 싶었는데!”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문대는 게이트를 향해 한걸음 내딛다가 다시 뒤돌았다. 이세진을 보며 웃었다.

 

“네가 있어서 신재현을 구하러 갈 수 있었어. 고맙다.”

 

이세진은 문대의 감사 인사를 듣고 미소를 그려냈다. 마음이 따끔거리며 아팠다. 실연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그럼. 세진이는 언제나 든든한 문대문대의 친구니까.”

“그래.”

 

이번에야말로 문대는 게이트 밖으로 나갔다. 이세진은 한숨을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

사랑에는 여러 가지 색이 있다. 사람마다 주고받는 크기도 달랐다. 사랑하는 방식도 다양했다. 이세진에게 있어 성애적인 사랑이란 그 사람과 동등한 곳에 서서 등을 맡기는 것이었다. 기대기도 하고 자신이 지탱해주기도 하며 안온한 사랑을 이어가는 것. 동료애에서 발전하는 셈이었다.

 

그래서 이세진은 문대와 그런 관계가 되고 싶었다. 서로 기대며 사랑하고 싶었다. 그 바람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문대의 사랑은 이세진과 달랐다. 문대에게 있어 성애적인 사랑이란 그 사람의 옆에서 챙겨주고 보살펴주고 제 손 안에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타고난 통제광적인 면모가 연애라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제 손이 닿아야만 성이 찼다. 옆에 있으면서 계속 챙겨주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문대가 사랑하는 사람은 챙김을 받기보다는 챙겨주는 쪽인 신재현이었다.

 

신재현은 문대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혼자서도 잘 살았다. 수백 번의 재시작 속에서 기댈 것은 제자신 밖에 없었으므로.

재시작이 끝난 지금도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그는 브이틱의 리더였고 채율과 신오, 주단의 버팀목이었다. 셋을 보살피며 잘 살고 있었다.

 

그런 신재현이 문대를 사랑했다. 신재현은 문대의 성향을 빠르게 파악했다. 문대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자 고민했다. 이거 썸이지? 살아온 세월에 세월이니 그런 것을 헷갈리지 않았다.

 

콩이를 쓰다듬으며 삼 일 동안 생각하고 난 뒤에 신재현은 문대에게 자신의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오고 싶으면 언제든 와도 된다고도 했다. 문대는 숨겨진 뜻을 금방 읽어냈다.

 

신재현의 손을 잡고 그러면 내가 만든 거 다 먹어줄거냐고 했다. 신재현은 어느 정도는, 하고 대답했다. 문대는 고개를 끄덕이고 신재현의 집에 아예 자기 방을 만들어 버렸다.

 

신재현에게 밥을 만들어 주고 옆에 붙어 있었다. 같이 콩이 산책을 시키기도 했다. 신재현은 문대가 해주는 것들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일은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문대는 그 선을 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마음에 달린 문을 열어 신재현을 잡아 끌었다. 신재현은 가만히 서있기만 했는데 손을 잡아다가 끌어 넣고 자물쇠를 여러 개 달았다.

 

신재현은 문대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있기만 했다. 문대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들을 다 용인했다. 그정도는 받아줄 수 있었다. 신재현은 문대를 사랑했고 문대는 선를 넘지 않았기에.

 

대신 신재현은 문대를 귀여워했다. 머리도 쓰다듬고 턱도 간지럽히고 품 안에 안아 토닥였다. 문대는 신재현에게 귀여움 받는 것을 즐겼다.

 

말하자면, 문대와 이세진이 성애적인 의미로 사랑하는 방식은 달랐고 문대와 신재현의 방식은 결이 같았다.

 

사랑하면 그 상대를 챙기고 보살피고 싶어하는 사람과 사랑하면 상대가 선을 넘지 않는 한에서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 사람. 궁합이 잘 맞았다.

 

문대는 신재현을 끌어안고 행복해했다. 신재현은 문대가 행복해하니 된거지...정도의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문대가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을 거란 신뢰가 있었다.

 

둘은 서로를 만나서 행복해했고, 사랑을 했고, 그 모습을 보며 이세진은 자신이 무언가를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문대는 이세진을 사랑했다. 믿고 의지하고 있었다. 등을 맡길 수 있고 자신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다 여기고 있었다. 가족이고 동료이고 친구였다. 동등한 곳에 서있었고 신뢰하고 있었다.

 

다만 문대는 친구와 동료, 가족과 연인을 구분했다. 결코 헷갈리게 만들지 않았다. 문대에게 이세진은 연인이 아니었다. 그의 연인은 신재현이었다.

 

이세진에게 친구와 동료, 가족으로써의 사랑을 보내면서도 연인을 향한 사랑은 오직 신재현에게만 향했다. 초반에는 이세진과 썸을 탔다고 생각한다.

 

이세진은 제 나름대로 어필을 했다. 문제는 그게 문대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졌다는 거였다.

아, 이세진은 나와 연애할 마음이 없나 보네. 그러면 다른 사람 찾아볼까.

 

썸이란 잘 이어지다가도 갑자기 사라지거나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던가. 불안정했다. 이름을 붙여야만 했다. 이세진은 문대에게 열심히 어필을 했으나 그럴수록 문대는 이세진이 자신과 연애할 마음이 없다고 받아들였다.

 

사랑 방식의 차이였다. 문대는 다른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신재현에게 닿았다. 신재현은 수동적인 듯 능동적인 모습을 보였고 문대는 저놈이 나랑 연애할 마음이 있다고 받아들였다.

 

썸을 타면서 살짝 간을 보았다. 신재현의 방식은 문대의 방식과 결이 같았다. 문대는 안심하고 신재현을 잡아 끌어다 제 마음속에 가두었다.

 

+++

 

그쯤 되고 나니 이세진도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문대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예전과 같았다. 그러면 안되는데? 썸을 타는거면 무언가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나? 이세진이 고민을 할 즈음에 문대가 멤버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저 신재현하고 사귑니다.”

“...뭐라고?”

 

문대와 이세진이 썸 탄다고 인식하고 있던 멤버들은, 특히 이세진이 놀랐다. 나랑 문대랑 썸타고 있었던 거 아닌가? 그런데 방금 문대문대가 뭐라고 했지?

 

“언제부터..?”

“한 달 전부터. 숨기려고 숨긴 건 아닌데 눈치 못 챈 거 같길래.”

“너 이세진하고 썸타고 있었던 거 아니었어?”

 

배세진이 말했다. 문대는 확실히 그러긴 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세진은 나하고 연애할 생각이 없어 보여서요. 신재현을 챙기다 보니 사귀게 되었습니다.”

“내가 너랑 연애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고..?”

 

이세진은 뒷목을 잡고 싶었다. 아니, 그러면 그동안 내가 해왔던 것은 다 뭐라고 생각한 건지. 열심히 구애하고 있었는데 정작 그 대상은 알아먹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이랑 사귄다고 선언했다. 그것도 하필이면 그 선배님이랑.

 

여기에서 나는 너랑 썸 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말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세진은 억지로 미소를 그려냈다. 문대는 그럼 신재현을 만나러 간다고 나갔고 나머지 멤버들이 이세진을 다독였다.

 

+++

 

“문대문대가 청려 선배님하고 사귀고 있다면 그동안 나는 뭐한거냐고...”

 

이세진은 배세진이 말아주는 쏘맥을 마시며 훌쩍였다. 오늘 같은 날이 아니면 언제 배세진형이 쏘맥을 말아주겠냐는 마음가짐으로 원샷했다.

 

“음. 그게 말이지. 내가 봤을 때 네가 생각하는 사랑하고 문대가 생각하는 사랑이 차이가 있긴 한거 같더라...”

 

배세진이 쏘맥을 한잔 더 말아서 내밀었다. 그는 S급 각성자지만 뛰어난 연기자이기도 했다. 사람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 배세진이 보기에 둘의 사랑 방식은 차이가 있었지만 지적하기 애매해서 그냥 두었다고. 연애에 제삼자가 끼어들면 꼬이기 밖에 더하냐는 말에 이세진은 쏘맥을 한잔 더 원샷했다.

 

나름대로 배려해준 거라는 것은 안다. 그래도 진작 말해주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쩌랴. 이미 기차는 떠나갔고 문대의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 갔는데.

 

“진작에 말해줄걸 그랬나...미안.”

“그냥 타고난 성향이 다른거니까 형님이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

 

나 쏘맥 한 잔만 더 말아줘요. 빈 컵을 내밀자 배세진은 조용히 쏘맥을 말아주었다. 이세진은 훌쩍이면서 쏘맥을 몇 잔 더 마시고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한번도 취할 때까지 마셔본 적 없는데. 실연은 그만큼 아팠다. 고백조차 하지 못해서 더더욱.

+++

 

문대는 한번 사랑하면 끝장을 보았다. 이미 한 사람을 사랑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만 보았다. 평생, 어쩌면 영원히.

 

이세진은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해서 문대의 마음을 돌리려고 하거나 자신을 보게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저 가족이자 동료, 친구의 위치에 만족해야 했다. 문대는 자신에게 등을 맡기고 제 사람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원하던 것은 이루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문대는 자신이 아니라면 청려 선배님에게 달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던 것은 이세진을 신뢰하기에. 목숨을 걸 수 있을 정도로 믿고 있기에.

 

그건 기쁘다. 기쁘지만 어쩐지 입이 썼다. 문대는 이주일 동안 청려 선배님 집에 있겠지. 사랑을 퍼부어 주며 곁에 붙어 있을 것이다. 사랑한다 속삭이며 끌어안고 또...

 

“...쏘맥 말아줄까?”

 

침울한 표정의 이세진에게 배세진이 슬쩍 물었다. 아니, 이 형은 내가 쏘맥만 마시면 실연의 아픔을 잊을 수 있다 여기는 모양인데.

 

“양주로 폭탄주 만들 줄 알아요?”

“저번에 바텐더 비슷한 역할 해서 배웠어.”

“그러면 칵테일 말아줘요.”

“알았어.”

 

두 세진의 대화를 듣다가 청우가 다가왔다. 차유진이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우리 오늘 비싼 술 마셔요! 던전 공략했으니 그 정도는 마셔도 돼요.”

“그래.”

“오늘만이야.”

“그러면, 일단 게이트가 닫히기 전에 나가요.”

“응.”

 

게이트에서 나가며 이세진은 배세진이 어떤 술을 말아줄까 기대하기로 했다. 그런 관대함은 오늘 하루 뿐이겠지만 마음의 아픔에는 술이 제일 빠른 진통제라고 생각했다.

 

오늘도 이세진의 밤은 짧고도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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