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청려 문대유진 이어지는 생과 끝난 사랑
문대청려가 사귀고 차유진이 실연합니다. 차유진이 문대보다 열살 어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완쾌하셨습니다.”
의사의 말에 문대는 눈을 깜박였다. 문대의 옆에 서 있던 신재현이 물었다.
“정말로 다 나은 건가요?”
“네. 정말 기적적으로...깔끔하게 다 나으셨습니다. 다시 축하드립니다. 이제 주기적으로 검진만 받는다면 병원에 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 문대는 멍하게 신재현을 보다가 와락 끌어안았다. 허리에 팔을 감고 어깨에 얼굴을 묻고 훌쩍였다. 신재현은 그래요, 고생 많았어요 하고 문대를 달랬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반년 간의 시한부 판정을 받고 일 년 후. 문대는 병이 다 나았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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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문대. 병이 다 나았다면서?”
“축하, 해!”
문대는 이 소식을 단톡방에 올렸고 이세진과 아현이 당장 저녁에 만나자고 했다. 배세진과 청우는 당일에는 시간이 안나고 내일 만나기로 했다. 당연히 신재현도 함께였다. 축하 인사에 문대는 만면에 미소를 걸었다.
“응. 검사 결과는 정상이래. 나 이제 건강하다.”
“정말로 축하해!”
이세진이 활짝 웃었다. 아현도 웃었고 문대의 옆에서 신재현도 미소 지었다. 문대는 신재현의 손을 꼭 잡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았다.
“네가 있어서 이겨낼 수 있었어. 고맙다.”
“별거 아니에요. 나는 후배님을 사랑하니까.”
“응. 나도 사랑해.”
서로를 꿀이 떨어지는 눈으로 보고 있는데 이세진이 조심스레 말했다. 기쁜 날이기는 한데 말이지. 짚고 넘어갈 게 있었다.
“문대문대. 이제 병이 다 나았다면 유진이는 어떻게 할 거야?”
“이제 내 연인은 신재현이니까...병이 낫는다고 달라질 게 있나?”
“병수발 들게 하기 싫고 창창한 어린애 앞길 막기 싫다고 헤어졌지 않았어?”
“응. 그랬지.”
문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재현은 조용히 문대의 입에 음식이나 내밀었다. 차유진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차유진은 문대의 열 살 어린 전 애인이었다. 문대가 시한부 판정을 받고난 후에 헤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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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자.”
문대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고 말을 시작해 그 단어로 끝맺었다. 차유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눈이 커졌다.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헤어져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면서요! 그러면 남은 시간이라도 나와 함께 보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문대형의 연인이에요!”
“이제 아니지. 나는 너한테 내 병수발 들게 하기 싫어. 너는 젊은 게 아니라 아직 어리다. 나 없이 잘 살 수 있어. 시간이 지나면 그런 사람도 있었지하고 지나가게 될 거다.”
“싫어요. 헤어지기 싫어요. 남은 시간을 나와 함께 보내요!”
“어린애 앞길 막아서 내가 뭘 하겠냐. 이것도 한때 치기로 기억하게 될 거야. 나는 분명히 말했다. 헤어지자고.”
“싫어요! 나랑 같이 있어 줘요!”
“내 말 들어. 너는 네 인생이 있고 나는 내 인생이 있다. 다만 내 인생의 끝이 정해졌을 뿐이지. 이별이 좀 빨랐다고 생각해. ...너를 사랑해서 좋았다.”
문대는 그렇게 말하고 일어났다. 차유진의 얼굴에 서러움이 번졌다. 문대형을 잡고 싶었지만 그는 한번 아니면 죽어도 아니었다. 그래도 손을 뻗었지만 잡히지 않고 카페에서 나갔다. 차유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서럽고 서운했다.
“문대형!”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나서 차유진은 급하게 문대를 따라나섰다. 문대가 택시를 잡는 게 보였다. 달려가 잡으려 했지만 택시가 출발하는게 먼저였다. 차유진은 멍하게 그 택시가 멀어지는 것을 보기만 했다. 잡을 수 없었다. 놓쳤다.
“문대형...”
차유진은 가만히 서있다가 엉엉 울기시작했다. 짧은 연애가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줄은 몰랐다. 정말로 사랑하는데 이렇게? 그것도 문대형이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나서.
서럽고 슬프고 서운해서 차유진은 한참 동안 길거리에 서서 울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고서,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래빈이가 놀라 잡아끌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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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유진에게 이별 통보를 하고 나서 문대는 새로 개발된 치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가격이 좀 있긴 했지만 문대는 조금이라도 더 길게 살고 싶었다. 살아있는 게 좋았다.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죽으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삶의 의욕이 그다지 없었다.
그런 문대를 바꾸어 놓은 것은 대학교에서 만나 사귀었던 선배였다. 이름은 신재현. 사소한 것으로 티격태격 싸우고 또 싸우다가 결국 헤어졌지만 그와의 교제는 문대 안의 무언가를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문대는 치료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신재현과 다시 마주쳤다. 십 년 만이었다. 둘 다 시간이 흐른다고 잊어버릴 외모는 아니었으므로 서로를 금방 알아보았다.
신재현의 시선이 문대의 손에 들린 종이로 향했다. 침묵이 흘렀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신재현이었다.
“음.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어디 아픈 곳 있어요?”
병원에서 만났으니 당연히 할 질문이었다. 문대의 시선이 신재현의 몸을 훑었다. 멀쩡해 보이는데 저놈도 어디 아픈 건가?
“너는?”
“아, 나는 건강해요. 채율이가 사고로 다리가 부러져서 병문안 온 거라서. 후배님은?”
다리가 부러져서 입원했다는 것은 나머지는 멀쩡하다는 뜻이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문대는 담담하게 말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하려 했지만.
“나 시한부 판정 받았다. 반년 남았데.”
그 짧은 문장을 말하자 속에서 무언가가 북받쳐 올랐다. 입 밖으로 내고 나니 실감이 났다. 나 진짜 반년 밖에 못사는 건가. 문대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신재현이 당황하며 품에 안고 등을 쓸어주었다.
따뜻한 체온에 달큼한 살냄새가 났다. 신재현과 사귈 때 문대는 신재현의 품에 끌어안기는 것을 좋아했다. 안정감이 있었다. 살냄새도 좋았다. 포근했다.
근 십 년 만인데도 달라진 점이 없었다. 문대는 따뜻한 품에 안겨 한참 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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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진정했어요?”
“응. ...미안하다. 옷이 눈물로 엉망이 되었네.”
한바탕 울었더니 눈이 퉁퉁 부었다. 신재현은 발개진 문대의 눈가를 살짝 쓸어주었다. 둘은 병원의 카페에 앉아있었다. 각자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신재현이 문대를 응시했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 열 살 어린 애인과 헤어졌다고요.”
“응. 어린애 앞길을 막거나 발목을 잡을 수는 없으니까.”
“그러면 나는 어때요?”
“응?”
문대는 부어서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신재현을 보았다. 길고 우아한 손가락이 문대의 눈가를 덧그리고 볼을 콕 찔렀다.
“나는 후배님보다 나이가 많고 돈도 많아요. 사회적인 위치도 있지. 그러니 앞길을 막는다던가 발목을 잡는다던가 하는 걱정은 안 해도 되는데.”
“...반년 동안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과 다시 잘해보려고? 우리 헤어진 지 십 년이 넘었는데?”
“그때는 우리 둘 다 어렸잖아요. 이제는 나이도 먹었고, 그때와는 다를거에요. 나는 마침 반년간 한가한데.”
신재현이 눈을 가늘게 접어 웃었다. 문대는 신재현의 저 웃음을 좋아했다. 지금도 보기에 좋았다.
문대는 망설였다. 이제와서 잿가루가 된 지 오래인 마음에 다시 불을 지피기는 어렵겠지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이야 눈에 보이는 증상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하나둘 나타나겠지. 간병인을 쓴다고 해도 감정적으로 기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냥 고용관계니까. 정을 나눌 수는 없었다.
문대는 입술을 깨물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들어 신재현과 시선을 맞추었다. 울어서 조금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반년으로 내 죽음까지의 생을 산다고 생각해.”
“그래요.”
신재현이 다시 곱게 웃었다. 문대는 손을 내밀었다. 십여 년 전에는 자신과 맞춘 커플링이 있었던 손을 다시 잡았다. 손은 차가웠지만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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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간 한가하다는 말처럼 신재현은 노트북을 들고 와 가끔 톡톡 두드리는 것 빼고는 문대의 곁에 있었다. 병수발을 드는 것도 의외로 익숙했다. 전에 환자를 보살핀 경험이라도 있는건지.
다행히도 문대는 새로 개발된 치료가 잘 맞았다. 의사가 말하는 여생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반년이 지나도 문대는 살아 있었다. 상태도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이정도 추세로 가면 완쾌되실지도 모릅니다.”
의사의 말을 듣고 문대와 신재현은 기뻐했다. 문대는 이 마음을 신재현을 꼬옥 끌어안는 것으로 표현했다. 신재현이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문대는 지웠던 배세진과 청우, 이세진과 아현의 번호를 다시 저장해 단톡방에 초대했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말만 하고 연락이 끊어진 문대를 무척 걱정하던 넷은 화를 내기도 했고 걱정했다고 울먹이기도 했지만 완쾌할 가능성이 있다는 그 말에 제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다시 연락을 했다는 것은 완쾌할 가능성이 크다는 거겠지. 먼저 이세진과 아현은 문대에게 병문안을 왔고 신재현과 다시 사귀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그 시간을 혼자서 견딘 건 아니었구나 하고 안심했다. 신재현은 이세진과 아현을 알고 있었기에 단정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 다음에 병문안을 온 배세진과 청우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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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이 지나고 나서는 예전만큼 붙어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신재현은 매일 문대의 병실에 왔고 건강해지면 같이 무얼 할까 리스트도 만들었다.
문대는 그 시간을 같이 보내는 동안 제가 다시 신재현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잿가루에서 다시 불이 피어났다. 절대 꺼지지 않을 불이었다.
그리고, 문대는 완치했다. 그 옆에는 신재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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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일은 모르지 않냐. 나는 유진이와 헤어진 것을 후회하지 않아. 그때는 진짜 여생이 반년 밖에 안 남아있었으니까.”
“그리고 재현 선배님과 다시 사귀고 사랑하는 것도 후회하지 않는 거구나.”
“응.”
만약이라는 가정은 의미가 없었다. 새로 개발된 치료는 비용이 많이 들어갔고 보험이 있다고는 하나 신재현이 보태주지 않았다면 도중에 중지해야 했을 테니.
그러면 완쾌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 살아 친구들과 기쁨을 나누지도 못했을 거고. 이세진과 아현은 납득했다.
“그래도 유진이에게 네가 다 나았다는 것은 알릴게.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죽어가더라.”
“...그래.”
문대는 신재현을 다시 사랑하게 되고 유진이에 대한 마음은 깔끔하게 버렸다. 미련은 없었다. 문대에게 이제 차유진은 한때 사귀었던 어린 동생일 뿐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유진이는 아직도 문대에게 마음이 있던 거 같은데. 이세진은 고개를 저었다.
문대는 유진이에게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 이상의 말을 전하지 말라고 했다. 낫고 있는지 악화되고 있는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문대의 옆에 신재현이 있다 정도도 알지만 전애인이었다는 것은 모르지 않을까.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도.
모르겠다. 일단 이세진은 문대가 건강해진 것을 축하하기로 했다. 술은 아직 무리일테니 콜라를 따서 건배했다. 행복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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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형이 다 나았다고요?”
차유진이 벌떡 고개를 들었다. 반년 만에 처음으로 보는 밝은 얼굴이었다. 이세진은 당장이라도 뛰쳐 나갈 기세인 차유진을 말렸다.
“유진아. 진정해. 네가 알아둘 게 있어.”
“문대형이 건강해진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있지. 문대문대의 옆에 다른 사람이 있거든.”
“...다른 사람이라면 그 신재현 선배님이라는 사람?”
“응. 문대문대의 연인이기도 하지.”
“내가 아니라요?”
이해를 못하는 얼굴이었다. 이세진은 배세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청우는 차유진이 달려나가지 못하게 문을 막고 있었다.
“문대가 대학교 때 재현이하고 사귀었거든. 그러다가 몇 년 후에 헤어지고, 너도 알듯이 시한부 판정을 받은 다음 다시 만나기 시작했고 서로 사랑하게 되었어. 너랑 헤어지고 난 다음에 다시 만난 거야.”
배세진은 뒷말을 덧붙였다. 차유진이 멍하게 서서 중얼거렸다. 문대형이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해? 그럴 리가. 문대형은 나를 사랑하는데. 사랑...하는데. 사랑하고 있는데. 머리가 이해를 거부했다. 차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문대형을 만나고 싶어요. 그럴 리가 없어요.”
“문대는 지금 한국에 없어.”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다 낫고 나면 재현이하고 같이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를 만들었거든. 지금은 외국에 가서 한 달 살기 하고 있다는 데. 재현이가 키우는 개하고 같이.”
“...정말 문대형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요?”
차유진은 그렇지 않다 말해달라는 듯이 아현을 보았다. 래빈이는 숨을 죽이고 차유진을 살피고 있었다.
아현이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해야 유진이가 상처받지 않을지 말을 골랐다. 그것으로 답이 되었다.
문대형의 병은 나았다. 그건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왜 나와 함께할 수는 없었던거에요?”
차유진이 중얼거렸다. 그 말에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대답할 수 없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으며 일어나지 않은 일의 가정은 의미가 없었다.
그것을 차유진은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잘 알고 있어서 슬프고 서운하고 서럽고 아팠다. 차유진은 뚝뚝 울기 시작했다.
문대는 생을 이어 나갔지만 차유진에 대한 사랑은 끝났다. 그 사실이 명확해서 차유진은 자신을 달래는 손길을 받으며 길고 또 길게 울었다.
마음이 아프고 또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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