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엘 연성

K 연구일지

작성자 : 연구원 E

BGM

w. 달이슬

[ 연구일지 No. ■■ ]

작성자 : 연구원 E

실험체(이하 K로 명명)는 인간에 대해 적개심이 없는 것으로 보임

K는 흔히 말하는 인어 (신화나 동화에 나오는 생물, 인간의 상체에 어류의 하체를 지닌 환상종 혹은 신화종으로 알려져 있음) 로 파악됨.

K가 인어라는 가정 하에 K의 종족은 대왕고래 (이하 흰긴수염고래의 의미도 내포) 로 보임

고래는 포유류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K가 인어로 분류되었는지는 미지수이나 아마 고래의 외형이 어류와 유사하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현재 가장 유력한 가설

인간과 의사소통이나 감정의 교류가 가능한것으로 파악되나 이에 관한 연구는 아직 진척되지 않아 미지수로 남아있음

크기나 습성은 고래에 가까워보임 (인간에 가깝다고 한다면 크기에 대한 신진대사같은 것들이 이론적으로 설명되지 않음)

E는 수첩에 내용을 휘갈겨 적고는 펜을 떼어냈다. 그리고는 시선을 올려 K를 바라봤다. 그것은 푸른색으로 가득 들어찬 거대한 아쿠아리움 안에서 고요히 헤엄치고 있었다. 처음 입사한 날, 자신이 맡게 될 개체라고 선임 연구원에게 인수인계를 받은 개체였다.

실험체를 맡았다고 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거대하고 압도적인 무언가를 맡았다고 하는 것이 맞을까. 그것은 분명히 실험체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E는 한숨을 내쉬고는 고고하게 물 속에서 헤엄치는 K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E는 이번에 그 고래를 맡았다면서요?"

E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고래, 라고 표현하는게 맞을까. 멋대로 K라고 이름을 붙이기는 했지만 사실 다른 연구원들이 사용하는 고래나 실험체라고 하는 편이 더 적합한 호칭인것도 같았지만, 어째서인지 그렇게 부르고 싶었다. E는 그런 속내를 숨기고는 다른 연구원의 이어지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 고래,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걸로 알고 있어요. 선임 연구원은 그걸 증명해보겠다고 무작정 그 수조 안으로 들어갔었다가..."

무언가를 더 말하려던 연구원은 때 맞춰 울린 알람에 급하게 자리를 떴다.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알람소리였다. E는 다 먹지 못한 식판을 들고 일어서 퇴식구에 음식들을 버리고는 발걸음을 옮겨 K가 있을 아쿠아리움으로 향했다.

"~"

K는 거대한 아쿠아리움 안에서 헤엄을 치다가 종종 수면 위로 올라오고는 했다. 그때마다 E는 그런 K와 눈이 마주쳤다. 짙고 짙어서 심연의 본질과 가장 닮아있을 법한 새카만 검정색의 눈. 물에 들어가면 물결에 한들거리며 퍼지는 짙은 검정색의 머리칼. 날카로운 눈매, 머리와 눈 색에 비교될만큼 새하얀 피부는 고래보다는 정석적인 미남의 상에 가까워서 E는 종종 자신이 거대한 인외, 그러니까 신과 마주한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물론 그런 생각을 길게 이어갈만큼 그는 신을 믿지는 않는 성정이었다.

"너,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는데."

E는 무작정 말을 내뱉었다. K는 그런 E의 말을 알아들은듯 그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눈웃음을 짓고는 그대로 물로 들어갔다. 꼴에 반은 고래라고 브리칭을 하는 모양새가 같잖았다. E는 그런 생각에 미간을 찌푸리고는 가운 주머니에 집어넣었던 수첩과 펜을 꺼내 방금까지 적고 있던 일지의 끝자락에 몇가지를 추가했다.

K는 브리칭을 함. 평소에는 하지 않다가 스스로 내킬때 하는 것으로 추정

인간과 약간의 의사소통은 가능한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음, 연구원인 작성자 본인의 말을 알아듣고 눈웃음을 짓거나 종종 노래를 부르며 주의를 끄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감정적 교류도 가능해 보임

수첩을 덮고 E는 아쿠아리움의 위에 설치된 통로에서 내려와 평범하게 아쿠아리움을 관람할 수 있는 위치로 내려와 전에 가져다 둔 의자에 앉아 K를 바라봤다. K는 늘 그렇듯 바다와 다르게 좁을것이 분명한 그 수조(사실상 K의 덩치를 고려하면 아쿠아리움은 지극히 인간의 관점에서 쓴 단어이기에 차라리 수조가 옳다고 E는 생각했다.)안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새카맣고 거대한 눈동자가 E를 눈에 담았다. K의 눈에 비친 E는 자그마한 인간이었다. 찬란한 백금발을 높이 올려서 길게 늘어트리고, 제가 살던 바다의 물색과 같은 청량한 하늘빛의 눈동자는 매사 무심해보이는 표정 속에 갇혀있었다. 하얀 연구원 가운을 걸치고, 간편한 세미정장이라고 하는 복장을 입은 E는 자그마하고 연약한 인간이었다.

K는 인간들에게 늘 자애로웠다. 다만 짖궂은 장난을 칠 뿐이었다. (물론 K는 그것이 평범한 인간들에게는 장난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작은 생물들에게 치는 장난은 어쩌면 당연한 본성이지 않겠는가, 라고 K는 스스로를 정당화하고는 했다.

E의 전에 K를 맡았던 선임 연구원 역시 K의 장난아닌 장난에 호되게 당한 경우였다. 그는 K가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교류할 수 있다고 가장 먼저 주장하던 연구원이었다. 상부에서는 당연하게도 결과로 증명하라 했고, 결국 그는 가설을 증명해 결과로 만들기 위해 아쿠아리움에 들어갔다가, K의 손아귀에 발이 붙잡혀 순식간에 아쿠아리움의 깊은 곳까지 끌려내려갔다.

심해와 같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K가 있는 아쿠아리움은 깊고 넓은 형태를 띄고 있었다. 결국 선임은 갑작스레 변한 수압에 적응하지 못해 정신을 잃었고 K는 제 손아귀 안에서 기절한 선임을 발견하고는 뒤늦게야 수면위로 올라와 그를 제 손바닥 위에 올린채로 한참을 다른 연구원들이 올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른 연구원들이 선임을 데려가는걸 본 후에야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갔었다.

E는 자신이 이곳에 처음 입사했을때, 왜 입사를 희망했냐는 선임의 질문에 자신이 했던 대답이 흐릿했다. 그때는 분명 무언가 목표가 있었을텐데, 계속해서 K라 이름붙인 실험체와 있다보면 중요한 무언가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아니, 느낌보다는 분명히 무언가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게 확실했다. E는 이 현상이 K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무슨 능력으로? 어떻게? 확실치 않은 것은 명확하게 탐구를 해야 한다.

E는 수첩을 꺼내들다가 문득 K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슬쩍 수첩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K의 시선은 명백히 수첩을 따라 움직였다. E는 흥미를 느껴 수첩을 펼쳐 다시 몇 줄을 휘갈겨 적었다.

수첩같은 자신을 기록하는 행동에 흥미를 느끼는 것으로 보임. 이에 대한 것은 추후 증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

곧 퇴근을 할 시간이니 E는 자리에서 일어나 K를 잠시 흘긋 쳐다보고는 이내 무언가에 이끌리듯 충동적으로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는 뒤돌아 아쿠아리움을 빠져나갔다. 그렇기에 E는 K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샐쭉, 만족한 고양이같은 미소를 지었던 것을 보지 못했다.

E는 자신이 어릴때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릴때 도련님으로 키워졌던 자신은 바닷가에 있는 별장에 놀러갔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밤에 바닷가에 산책을 나갔다가 만난-.

"형?"

E는 과거의 잡념에 빠져있다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감고있던 눈을 떠 상대를 바라봤다. 청량한 물빛의 머리칼에 머리칼과 똑 닮은 색의 벽안. 피가 이어지지는 않았다만 제게 있어 단 하나뿐인 가족이었다. E는 가만히 제 동생을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동생의 머리칼을 헝클어트리듯 쓰다듬었고, 그는 우왓, 뭐야. 하는 소리를 하면서도 E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평화로운 한때였다.

"형 직장에 고래 있다며!"

"...그렇지."

"사진 한 장만 찍어주면 안돼? 고래 직접 본 적은 없어서 궁금해서... 헤헤."

"애초에 고래를 직접 보는 사람은 드물텐데, ...상부에서 허락하면 찍어다 줄테니 걱정마라."

"응, 고마워."

E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제 동생을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뱉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일 출근을 하기 전에 K가 수첩에 보였던 관심을 생각해보니 스케치북같은 것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가 필요했다. 그러니까, 스케치북과 진한 유성 매직같은 것 말이다. E는 결국 집을 나서서 근처 문방구에서 그것들을 구매해 돌아왔다. 동생은 그것들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내비쳤지만 E에게 별 다른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어련히 E의 뜻이 있겠거니, 하는 생각이었다.

E는 출근하자마자 가운을 걸쳐입고는 목에 출입증을 걸며 발걸음을 옮겼다. K가 있는 아쿠아리움에 도착하기 전에 E는 제 머리를 높게 올려묶고는 챙겨온 스케치북과 매직을 한손에 든채로 아쿠아리움의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K는 늘 그렇듯 물 속에서 잔잔히 유영을 하다 E를 발견하고는 다가와 가볍게 제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E는 그런 K를 보고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아쿠아리움에 가까이 다가가 스케치북의 첫 페이지에 유성매직으로 크게 안녕, 이라고 적은 후 그것을 K에게 보여줬다.

'안녕'

...따라했군. E는 K가 벙긋이는 입모양을 따라해보다가 그가 스케치북에 적은 글을 그대로 따라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잠시 눈을 반짝였다.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이건 감정적 교류도 가능하다는 가설또한 입증하기 쉬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E는 스케치북을 넘겨 다시 글을 적었다.

[ 네 이름은? ]

E가 보여준 내용을 본 K는 그것을 보고 눈을 깜빡이다가 사르륵 제 눈매를 접어 웃고는 벙긋거리며 제 이름을 말했다. E는 이름을 듣고 가만히 있다가 종이를 넘겨 다시 유성매직으로 스케치북에 크게 한 글자를 적었다.

[ K. ]

'K? 좋아.'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K에 E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다시 종이에 글자를 적어내렸다.

[ 손으로 하는 대화를 배워 볼 생각은? ]

'왜?'

[ 입모양을 읽어서 대화하는 건 오래 걸려. ]

'좋아, 네가 가르쳐 줘.'

E는 꽤 순순히 허락하는 K에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제 관찰일지에 적을 것이 늘었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꺼내 수어 영상을 틀어 그것을 보기 시작했다. 몇 번 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모르는 것 보다는 낫겠지. E는 제일 기초적인 것 부터 알려주자는 생각에 수어대신, 간단한 제스쳐들을 K에게 해보이며 하나하나 스케치북에 적어 다시 설명했다. 번거롭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중에 가면 대화를 하기는 편해질테니 E는 그런 생각에 번거로움을 눌러참으며 천천히 설명을 해나갔다.

그날은 그렇게 몇 가지의 간단한 제스쳐를 알려주는게 끝이었다. E는 스케치북과 매직을 챙겨 아쿠아리움에서 나오며 내일부터 이어질 주말 내내 집에서 수어 영상을 찾아보기로 계획을 짜고는 탈의실로 향해 가운을 벗어 제 캐비넷에 넣어두고는 출입증만 챙긴채로 묶었던 머리를 풀어내리며 직장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 연구일지 No. ■■ ]

작성자 : 연구원 E

실험체(이하 K로 명명)는 인간에 대해 적개심이 없는 것으로 보임

K는 흔히 말하는 인어 (신화나 동화에 나오는 생물, 인간의 상체에 어류의 하체를 지닌 환상종 혹은 신화종으로 알려져 있음) 로 파악됨.

K가 인어라는 가정 하에 K의 종족은 대왕고래 (이하 흰긴수염고래의 의미도 내포) 로 보임

고래는 포유류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K가 인어로 분류되었는지는 미지수이나 아마 고래의 외형이 어류와 유사하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현재 가장 유력한 가설

인간과 의사소통이나 감정의 교류가 가능한것으로 파악되나 이에 관한 연구는 아직 진척되지 않아 미지수로 남아있음

크기나 습성은 고래에 가까워보임 (인간에 가깝다고 한다면 크기에 대한 신진대사같은 것들이 이론적으로 설명되지 않음)

K는 브리칭을 함. 평소에는 하지 않다가 스스로 내킬때 하는 것으로 추정

인간과 약간의 의사소통은 가능한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음, 연구원인 작성자 본인의 말을 알아듣고 눈웃음을 짓거나 종종 노래를 부르며 주의를 끄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감정적 교류도 가능해 보임

수첩같은 자신을 기록하는 행동에 흥미를 느끼는 것으로 보임. 이에 대한 것은 추후 증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

간단한 말을 읽고 따라할 수 있음. 이를 조합해 스스로 말을 하는것도 가능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K는 인간과 같거나 혹은 그보다 더 나은 지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을 제시

제스쳐를 제시할때 이를 바로 이해하고 응용함. 감정적 교류는 가능하다고 결론내릴 수 있음

E는 자신이 수첩에 적은 내용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수첩을 덮었다. 역시 실험체나 고래라고 명명하기에 그것은 너무나도 뛰어난 고등생물이다. 차라리 그런 이상한 명명보다는 차라리-

'비밀인데, 나는 사실 너희가 ■■있는 ■■■에 가까운, 그러니까- ■■의 ■■야.'

기록해서는 안 될 말이다. E는 본능적으로 그의 말을 듣고는 뒤돌아 감시카메라가 있었는지부터 확인했다. K가 있는 아쿠아리움은 그가 인간에게 적대적이지 않고 우호적이라는 것 때문인지 최소한만 설치되어 있었고, 운이 좋은것인지 그가 의도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곳은 감시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각도였다.

E는 그가 말하는 입모양을 속으로 따라해보다가 진실을 깨닫고는 부러 K라는 이름을 제시했다. 순순히 그가 받아들였던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E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가 불현듯 떠오른 과거에 깨질듯 아파오는 머리를 짚었다. 그래, 자신이 어렸을때 밤바다에서 만났던.

'음, 지금 만날 생각은 없었는데. 잊어.'

그래, 그때 만났던 존재도 지금의 K처럼 새카만 눈을 가지고 있었다. E는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허, 하며 헛숨을 내뱉었다. 그가 말한게 거짓은 아니었나보지. E는 다시 출근을 해 만날 K에게 알려줄 수어를 배우기 위해 틀었던 영상을 잠깐 끄고는 수첩에 한 줄을 추가했다.

K는 절대 안전한 개체가 아님.

그래, 그는 안전하지 않다. 장난이라는 이름 하에 사람을 수압으로 죽일뻔 했고, 자주 마주할수록 무언가 소중한것에 대한 기억을 잃게 만들고, 남의 기억을 멋대로 주물러 없애고 웃는다. 그리고는 처음 본 것 마냥 굴고-. E는 수첩을 덮고 잠시 껐던 영상을 다시 켜서 수어를 따라했다.

...애초에 이걸 익힐 필요가 있나, 아마 그는 이것도 알고 있을것이다. 다만 자신이 알려주는게 재미있다는 이유로 그저 모르는 척 하고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지. E는 문득 든 회의감을 지워내고 이내 마저 수어를 따라하다 핸드폰을 덮었다. 제 꼴이 우스웠다. 그러던 차에 메세지가 날아왔다.

[ E, 혹시 괜찮으면 지금 와줄 수 있습니까? 담당하신 개체에 관한 일입니다. ]

발신인은 S였다. E는 미리보기로 읽은 메세지를 무시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K에 관한 일이라는 부분이 걸려 결국 의자에서 일어나 코트를 걸치며 방문을 나섰다.

"주말인데 출근해?"

"...일이 생겨서. 미안하다. 금방 오려고 노력은 해볼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와. 올 때 메로나도."

"그래."

E는 작게 웃음을 흘리고는 구두를 신고 현관을 나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직장으로 향했다.

"오, 오셨습니까."

"대체 뭐가 문제지?"

S는 대번에 용건부터 물어오는 E에 제 안경을 고쳐쓰고는 길게 늘어져 손등을 다 덮는 소맷자락을 팔랑이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글쎄요, 그건 저희도 모릅니다. 확실한 건 E님이 간 후로 그가 심기가 좋지 않은건지 최소한의 협력도 해주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당신도 아시겠지만 그 개체는 고래가 아니에요. 인어도 아닙니다. 자세한 정체는 저희도 몰라 그저 고래나 인어로 칭하고 있을 뿐인건, E님도 충분히 아시겠죠."

"말이 길군, 그건 당연히 아는 사실이야."

"...그곳에 들어간 연구원마다 정신이 나가서 돌아옵니다. 그리고는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무슨?"

S는 E를 주시했다. 그리고는 냉랭한 무표정을 지으며 연구원들이 하던 말을 따라했다. 그것은 섬뜩한 경고이자 마지막 자비와도 같은 말이었다.

" '■■의 은혜는 끊어졌다. 너희에게 남은 것은 ■■뿐.' "

"하, 웃기는군."

E는 대차게 그 말을 비웃고는 제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런 같잖은 말 때문에 모처럼 쉬고 있던 주말이 망가졌다. 헝클어진 머리를 적당히 정돈해 하나로 높게 올려묶은 E는 코트를 벗고 다른 연구원이 가져다 준 가운을 걸치고는 S에게서 출입증을 건네받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하십시오. 당신같이 유능한 인재를 잃는건 저희 사측에도 큰 손실입니다."

"...네가 연구원들을 말로 보고 있는 건 이미 명백한 사실이라는 건 잊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이런, 그래도 중요한 인재로 보고 있는건 사실입니다."

같잖은 소리군. E는 그렇게 일축하고는 발걸음을 옮겨 K가 있는 아쿠아리움으로 향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녕?'

'그래, 아주 안녕한가보군.'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난 그냥 장난을 쳤을 뿐이야.'

K는 E가 예상했던 대로 그가 알려주지 않아도 수어를 잘 했다. E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역시 농락이었다. 장난이라는 미명하에 그는 짖궂은 일들을 포장하고 있었다. 포장지가 장난이면 뭐하는가, 그건 그저 포장지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장난이 아니다.

'그게 장난?'

'응. 난 네가 마음에 들었거든. 그런데 네가 아닌 애들이 나에게 애매하게 교류를 시도하잖아.'

'...하.'

E는 어이가 없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딴게 장난이라고? 그저 마음에 안드는 놈들이 멋대로 교류를 시도했다고 그렇게 장난이라고 포장해 미친짓을 한 게, 정당화가 된다고? E는 아쿠아리움의 정면이 아니라 물의 위로 향했다. 머리 위에서 소리라도 치면 뭐가 달라질까 하는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려버린 탓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노린 K는 E가 제가 머물러 주는 수조 위, 그곳을 편히 오가기 위해 설치한 임시 철골 구조물 위에 있는 E를 향해 손을 뻗어 그를 그대로 잡아 물 속으로 끌어들였다.

'섣부르게 판단했나?'

E는 물 속에 끌여들여지자마자 냉정을 되찾았다. 차갑게 피부에 와닿는 감각이 칼로 찌르는 것 처럼 날카롭고 따끔거린다. 부글거리는 거품이 한차례 가라앉은 후에야 E는 찡그렸던 미간을 피고는 제 눈을 떴다. 눈 앞에 와닿는 것은 새카만 검은빛의 눈동자.

"드디어 다시 만났네?"

K의 목소리였다. 수중에서도 선명하게, 마치 땅에 있듯 들려오는 목소리에 E가 눈살을 다시 찌푸렸다. K는 그런 E를 바라보며 뭔가를 고민하는듯 하다가 이내 해맑게 웃고는 다른 손을 뻗어 E의 입에 제 손가락 하나를 톡 가져다 대고는 뭐라뭐라 입만 벙긋거렸다. 얼마 가지 않아 E는 물 속에서도 자유롭게 호흡이 가능함을 깨닫고는 K를 바라봤다.

"이것도, ■■인가?"

"응, 뭐 따지고 보면 그렇지?"

"...그래서 이걸 위해서 그 같잖은 장난을 친거라 이 말이지."

"어라, 벌써 들킨거야? 그렇지만 말이야, 난 너하고 만나고 싶었거든."

그래서 네게서 그 기억을 지웠던거고. 네가 그런 나쁜 기억을 지니고 있으면, 여긴 안올게 자명하잖아. 그렇게 말하고 생글생글 웃어보이는 낯짝에 E는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는 여전히 자신을 올리고 있는 K의 손바닥을 보고는 다시 그의 눈을 마주했다.

"적당히 해."

"흐음, 이런 방식은 별로야?"

"애초에 처음 만났을때는 이렇지 않았을텐데?"

"으음, 그건 그때 일이 있어서 그렇게 꾸민거였으니까. 지금도 나쁘지 않잖아?"

"같잖은 소리."

"아하하, 알겠어. 그럼 적당히 놀릴게. 그래도 난 여기가 제법 마음에 들거든. 여기 편해. 그냥 있어주면 잘해주거든."

"악취미군."

E의 말에 K는 눈을 잠시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키득거리는 웃음을 흘리며 다시 수면으로 올라서서 그를 구조물 위에 올려주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E는 쫄딱 젖어버린 몸에 한숨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기분이 나쁘지만 뭔가 해결이 된 것도 같다. 오묘한 기분에 E는 아쿠아리움에서 나와 S에게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를 기다리고 있던 S는 이미 모든 상황을 보고 있었는지 미리 들고 있던 커다란 배스타월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잘 해결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애초에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게 우선 아닌가?"

"글쎄요? 아무튼 이걸로 기록은 다 사라졌군요."

S가 흘리듯 한 말에 E는 진상을 알아챈듯 그의 눈을 바라봤다. 새하얀 백색의 눈에 동공만 이질적으로 금빛을 띄고 있는 그는 유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S는 K의 진상을 감춤을 통해 지금 이곳에 있는 다른 실험체들을 통제하는 이득을 얻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오히려 이곳이 안정적인 형색을 갖추고 있는 거겠지. 영악하군. E는 S의 평가를 그렇게 내리고는 조만간 정리해 보고서를 올리겠다는 형식적인 말을 내뱉고는 캐비넷에 보관하고 있던 다른 복장으로 갈아입고 물에 젖은 옷은 비닐가방에 넣어 다시 한 번 봉지로 감싸묶고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네, 잘 받았습니다. 가보셔도 좋아요."

"그럼 가보도록 하지."

E가 올린 보고서를 펼친 S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는 그 보고서를 덮었다. 음, 일을 잘 해줬으니 이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사진 한 장 정도는 찍어가실 수 있게 허가를 해 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 관찰일지 No. ■■ ]

작성자 : 연구원 E

실험체는 인간에 대해 적개심이 거의 없음. 최소한의 적개심만 갖추었음.

실험체 흔히 말하는 인어로 분석됨.

실험체의 종족은 대왕고래 (이하 흰긴수염고래의 의미도 내포) 로 보임

고래는 포유류임에도 불구하고 K가 인어로 분류된 이유는 습성이 어류와 가장 흡사하기 때문임

인간과 의사소통이나 감정의 교류가 가능한것으로 파악되나 이는 일부분만 가능한 것으로 파악됨.

크기나 습성은 고래와 동일하다고 결론

K는 평소에는 하지 않으나 필요할때면 브리칭을 함

인간과 약간의 의사소통은 가능함

제스쳐를 제시할때 이를 바로 이해하고 응용함

-No. ■■에 관한 관찰일지

묻혀진 진실은 굳이 파헤치지 않는 연구원이 현명하지. E는 그렇게 생각하며 K에게로 향했다. 그는 언제까지나 그가 원하는 기간동안은 수조 안에서 편안히 유영하며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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