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
왔군. 불도 제대로 켜지 않은 사무실에 모여 있던 이들이 출입문을 돌아보았다. 지금 막 들어온 남자가 문을 닫고 있었다. 벽에 걸린 디지털 시계의 빛이 푸르스름하게 빛나며 자정임을 알렸다. 보통 잘 준비를 하거나 잠이 드는 것이 보통이었을 시각인지라 들어온 남자의 차림새 또한 평소와 달리 가볍다. 언제나 빼입은 정장이 아닌 느슨한 니트 위에 간신히 가디건을 걸친 것이 다였지만, 그런 차림새를 나무라는 이는 없었다. 갑작스러운 소집이기도 했고, 그 곳은 원래 옷차림에 신경 쓰는 장소가 아니었다. 집무 책상 앞의 소파에 앉아 찻잔의 손잡이를 가만히 쓸던 노인이 느릿한 움직임으로 자신의 맞은편을 가리켰다.
“적당히 앉아라. 정신 사나우니까.”
“마침 다 왔으니, 불이나 좀 켤까요?”
불편한 침묵으로 가라앉은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목소리였다. 도심의 야경이 펼쳐진 창가를 등지고 앉아 있던 이가 허락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자리에서 일어난 밀비가 팔랑거리는 걸음으로 걸어가 조명 스위치를 올렸다. 하디가 자리에 앉는 것과 동시에 내부가 환하게 밝아졌다.
하디는 예정에도 없던 소집에 대해 묻지 않은 채 소파에 편하게 기대어 앉아 분위기를 살폈다. 자리에 모인 사람은, 하디를 포함해 총 다섯 명. 최근에 입사한 신참내기인 그를 제외한다면 탈 많았던 창립 초기부터 센터를 지탱해온 사람들이었다. 능력의 등급으로만 따지자면 나라에 단 세 명 밖에 없는 능력자가 한 자리에 있는 일은 흔치 않았다. 바로 옆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는 남자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사건인지 대충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모로에게서는 이능력자 특유의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제대로 갈무리해 그 존재감을 느끼기 힘들었지만 분노한 채 사양 않고 흐르는 기운에 거북한 기분이 든다. 비슷한 급의 능력자인 그나 밀비에겐 신경에 거슬리는 정도의 존재감이지만, 그렇지 않은 다른 두 사람에겐 굉장한 압박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함에도 누구 하나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드러내고 있는 것은, 모로 뿐이었다. 늘 여유가 넘치는 모로의 모습만 봤던 하디로서는 드문 구경이었다.
“임무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고 보낸 겁니까?”
간신히 목소리는 평소처럼 내고 있었으나 꽉 다문 잇새로 감추지 못한 감정의 동요가 흘러나왔다. 가니메데스가 혀를 차며 찻잔을 들려다 말고 내려놓았다.
“치즈펠은 확실히 알고 있어.”
“의뢰주는?”
돋보기 너머의 안경알 너머 탁한 색의 눈동자가 센터장을 응시한다. 찻잔 손잡이 대신 무릎 위에 올려 둔 책을 꼭 쥔 주름진 손이 떨리고 있었다. 보다 상위의 능력자가 뿜어내는 기운에 태연한 척 하고 있지만 신체는 그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가깝게 앉아있으니까 더 그렇겠지. 떨리는 손을 마주잡아 깍지를 낀 센터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운 좀 적당히 거둬 줄래? 무서워서 입이 안 떨어질 것 같은데.”
“됐다. 늙은이 생각은 하나도 안하는게 뭐 별 일이라고.”
가니메데스가 빈정거렸다. 모로의 얼굴에 조바심이 뒤섞인 짜증이 스쳤지만, 그는 자신이 조급해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깨닫고 있었기에 순순히 두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한결 부드러워진 분위기에 가니메데스가 이미 식어빠진 찻물이 담긴 잔을 들었다.
“자, 이제 됐고. 의뢰주는요? 그런 말도 안되게 위험한 의뢰를 할 또라이들이 있나?”
가만히 가니메데스의 어깨를 도닥이던 밀비가 질문을 던져 대화를 원래대로 돌렸다. 밀비나 모로는 높으신 분들의 경호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센터의 본 업무 외의 일에 자주 차출되고는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능력 관리 센터 소속의 이능력자들은 국가 소속의 공무원이며 센터가 굴러가는 예산 또한 군비軍費에 포함되어 있었다. 시민들의 인식 개선과 어린 이능력자들의 실전경험을 위해 다른 기관들과 협력해 여러 의뢰를 맡고 있었지만, 센터의 본질은 무력단체나 다름없었다. 그런 만큼 센터장을 통해 이능력자들에게 직접 내려오는 의뢰는 일개 개인이나 사업체가 의뢰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있기는 하지.”
“…아하.”
한숨 같은 대답에 밀비가 뜻있는 미소를 지었다. 정부 측은 센터를 처치곤란의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었지만 반정부 단체에 이능력자들이 소속되어 있다고 생각할 때면 즉시 이능력 센터에 명령을 하달하고는 했다. 잘도 써먹네. 밀비가 중얼거렸지만 나무라는 이는 없었다. 하디 또한, 짧은 문답 같은 대화로 의뢰주를 짐작해냈기에 피곤한 듯 미간을 찡그린 채 한숨을 쉬었다.
“무려 직접 내려온 의뢰였으니까, 치즈펠을 먼저 보낸 거야. 손발 맞는 애들 둘 붙여서.”
“예상 귀환 시각은?”
“어제. 날짜상으로는 그제.”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손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통신은 물론, 리더인 치즈펠에게 건넸던 GPS 장치마저 신호가 없었다. 직접적인 전투계열 능력자는 없었지만 탐색과 정찰에 특화되어 있는 멤버들이었던 만큼 어려움 없이 돌아올 수 있는 의뢰였다. 첫 임무도 아니었거니와 눈 앞의 세 사람에 비하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S급의 능력자 또한 군의 중요한 전력 중 하나다. 임무가 늦어지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호가 끊기자 마자 마지막으로 GPS 신호를 수신했던 장소를 중심으로 그들이 잡혀 갔을 만한 장소에 대한 수색은 이미 완료되어 있었다. 시선을 내리 깐 센터장이 자신의 팔꿈치 아래에 깔려 있던 서류 한 장을 바라보았다. 남은 것은 귀환 뿐이다. 깍지 껴 모은 손을 들어 그 위에 턱을 괸 센터장이 집무실에 모인 면면을 바라보았다. 군과 경찰의 도움을 받은 김에 더 써먹는 방법도 있겠지만, 모처럼 칼자루를 쥔 쪽을 확실히 하는 기회를 허무하게 날릴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책임지고 애들 데려와.”
“…무슨 일이 있어도?”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것을 참은 채 정보를 위해 참고 앉아 있던 모로의 표정이 돌연 차분해졌다.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는 얼굴로도 감춰지지 않는 한기에 그 속내를 짐작한 밀비가 센터장을 바라보며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말라니까요.”
“아니. 센터장 말대로 해라.”
“아, 선생님까지, 정말.”
“목숨만 붙어있으면 되잖느냐. 남의 집 꼬맹이들을 건드린 놈들에게 그 정도 인사는 해야지.”
“선생님이 안계시면 그건 좀 무리일텐데요.”
모로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절대 살려서 데려오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치유사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말이었으나 그는 모로를 탓하는 일 없이 센터장과 눈을 맞출 뿐이었다. 별다른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선생님 마음대로 하세요. 책임지겠다고 한 것은 본인이었기에 센터장에게 가니메데스를 말릴 명분은 없었다. 허락이 떨어지자, 가니메데스는 줄곧 손에 쥐고 있던 책을 조심스레 테이블 위로 내려 두었다.
“밀비 넌, 한 번에 뒤집어 엎는 건 무리일 테니 이 늙은이 경호나 해다오.”
“어렵진 않겠지만… 괜찮으시겠어요?”
“큰소리를 쳤으니, 방해는 안되도록 노력해보마.”
느릿하게 대꾸하는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게 생기가 넘쳤다. 쓰고 있던 돋보기를 벗어 책 위로 내려놓는 손에는 주름 하나 없었다.
*
뼛속까지 스밀 정도로 소름 끼치는 냉기에 치즈펠은 구역질을 하며 눈을 떴다. 깨어나며 몸을 크게 뒤튼 탓에 요란하게 절그럭 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자신의 손에 채워진 수갑에서 나는 것임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시트를 짚고 있던 손목의 수갑을 확인하자 마자, 치즈펠은 반사적으로 피부로부터의 자극을 최소화했다. 그제야 구역질이 가시는 느낌이 났다.
숨을 진정시킨 그가 내부를 둘러보았다. 조명이 켜져 있지는 않았지만 얇은 커튼 너머로 환하게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기에 전체적인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쉬웠다. 임무 중, 누군가에게 습격을 받은 뒤 잡혀온 곳이라는 점 외에 치즈펠이 알고 있는 정보는 없었다.
그는 가만히 침대에서 내려와 출입문 근처의 벽에 등을 대고 섰다. 시각과 청각을 조금 더 예민하게 한 뒤 다시금 안을 살폈다. 살풍경하지만 대체로 평범한 방이었다. 1인용 침대와 소파가 하나씩. 그에 맞는 테이블까지 갖춰져 있었지만 옷장은 따로 없었다. 생활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도대체 뭐하는 데야?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발자국 소리가 났다. 멀리서,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났다. 평균적인 성인 남성 보다 조금 더 무게가 실린 걸음이었다. 아는 사람이 아닐까 했지만 치즈펠이 아는 발소리는 좀 더 가벼웠다. 체격이 꽤 큰 모양이다. 깨어났다는 사실을 들켜 봤자 좋을 일은 없었기에 치즈펠은 다시금 침대로 뛰어들었다. 딱딱한 매트리스에 눈물이 찔끔 났지만 이를 물어 참은 그가 문을 등지고 옆으로 누워 눈을 감았다. 발소리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층에, 치즈펠 외의 다른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으니 그 목적지는 이 방을 향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절그럭대며 자물쇠를 여는 소리에 온 몸이 긴장한다. 입술이 말랐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기척이 가까워진다. 아직도 못 깨어났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유쾌한 목소리였음에도 본능적인 불쾌함이 들었다. 아. 남자가 무언가 깨달은 목소리를 냈다.
…이 인간이?
자신의 볼에 조심스럽게 와 닿는 손에 치즈펠은 벌떡 일어나 따지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옆얼굴을 가만히 쓸던 손길이 이내 거둬져 안심하던 찰나 커다란 손이 목을 감쌌다. 소름이 돋는다. 당장 힘을 준다면 숨이 막힐 상황이었지만 상대는 아직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대신, 귓가에 선명히 느껴지는 숨결에 치즈펠이 무심결에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일어나야지.”
“…알고 있었으면서, 악취미네.”
가까이서 눈을 마주치는 상황 따위는 피하고 싶었기에 치즈펠은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속내를 알아챈 모양인지 상대는 의외로 순순히 그에게서 물러났다. 기분 나빠. 불평불만을 곧이곧대로 입 밖에 내는 성격은 아니었음에도 한 마디 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어져 내뱉은 말에도, 붉은 눈의 남자는 요사스럽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이는 30대 후반 정도? 머리카락의 색이 빛 바랜 회색이 아니라면 조금 더 젊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현장임무가 드문 치즈펠과 마주칠 일 없는 인사치고는 묘하게 낯익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제법 신사적으로 대접하고 있다는 걸 알아줘.”
지랄. 이라는 말대꾸가 목 끝까지 올라왔으나, 잘 참아낸 치즈펠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기운을 갈무리하지도 않은 채 과시하듯 흩뿌리고 있었다. 압박감이 들진 않는다. 치즈펠보다 한 단계 아래의 등급일 것이 분명함에도 저렇게 자신 있게 구는 걸로 보아서는 전투계열 능력임이 틀림없었다. 아무리 보아도 치즈펠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창가로 다가간 남자가 커튼을 걷어 밖을 살피다가 치즈펠을 돌아보며 웃었다.
“네 쓰레기 같은 부하들이 지금 너를 보면 얼마나 부러워 하겠냐.”
“뭐?”
“말단인 모양이더라? 뭐, 네 보조나 하라고 보냈을 테니 같은 급을 붙이진 않았겠지만.”
“….”
“L급이면 좋았겠지만, 그건 나도 감당 못할 폭탄이니까. 비전투 S급이면 적당하지.”
“우리 팀원들 어쨌어?”
“말귀가 어둡네.”
귀찮다는 듯 얼굴을 구기자 장난꾸러기 소년 같던 인상이 살벌하게 변한다. 그것에 겁을 먹을 이유는 없었다. 치즈펠이 몸을 일으켰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아 돌렸지만 무슨 수를 써서 잠근건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탈출하려는 명백한 움직임에도 남자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표정을 느슨하게 한 채 치즈펠을 관찰하고 있었다. 덜컥거리는 문고리가 조금 더 돌아가자 치즈펠이 힘을 줘 잡아당겼지만, 이내 가슴팍을 두들기는 힘과 함께 방구석으로 밀쳐졌다. 그 모양새를 본 남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귀하신 분이니까 곱게 데려가려고 했는데 말야.”
“그럴 일 없어.”
갑작스레 끼어든 목소리에 남자가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닫아 놓았던 창문의 유리창이 산산조각 났다. 파편은 바닥으로 쏟아지는 일 없이 가루 하나 남기지 않고 창가에 서있던 남자에게 쏟아져 들었다. 염동력 장벽으로 막을 새도 없이 박혀 든 유리 파편에 남자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구하러 전투계열 능력자들이 파견될 것은 예상했지만 A급 능력자가 펼치는 장벽을 숨쉬는 것 보다 쉽게 뚫을 수 있는 사람이 왔음을 직감한 남자가 한숨을 쉬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과연, 그가 예상한 사람이었다.
4층 높이의 창이었음에도 그는 평지처럼 서 있었다. 염동력을 이용한 간단한 잔재주지만 사람의 무게를 온전히 떠받치며 유지할 수 있는 능력자가 몇이나 될까. 공중을 가볍게 걸어온 모로는 창틀에 가볍게 내려섰다. 온 몸에서 피를 흘리는 남자에겐 신경도 쓰지 않고 치즈펠을 발견한 그가 가볍게 고갯짓을 했다. 치즈펠의 몸이 떠올라 창문 밖으로 향한다.
“아니, 모로, 잠, 잠깐만! 나, 잠깐!”
“먼저 가 있어.”
평소에는 들려주지 않는, 눈물이 날 정도로 다정한 목소리였지만 간신히 참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치즈펠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빠르지 않은 속도로 지상에 안착하자, 그간 익히 보았던 센터 소속의 지프 차량과 함께 밀비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여전히 수갑이 채워진 손으로 마주 손을 흔들어 보인 치즈펠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모로의 능력을 의심하진 않는다. 다만…
“손목에 그건 새로 산 장난감이냐?”
“장난감일 리가 없… 누구세요?”
발끈해 대답하던 치즈펠이 지프 차량의 뒷좌석에서 내리는 낯선 사람을 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저 사람은 누구야? 신입? 본 적 없는 얼굴에 밀비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또래로 보이는 그 사람은 치즈펠을 빤히 바라보았다. 턱을 당긴 채, 있지도 않은 렌즈 너머를 응시하는 눈빛이 지나치게 익숙하다. 설마… 치즈펠이 다시금 밀비를 돌아보았지만 밀비는 대답없이 웃으며 치즈펠에게 다가왔다. 잠깐 실례. 수수깡을 끊어내 듯 가볍게 손목의 수갑을 박살내자 가만히 두 사람이 하는 양을 바라보던 이가 다가와 치즈펠의 손을 덥석 잡았다. 타인의 손길이 닿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그였음에도 불쾌하지 않은 접촉에 치즈펠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확신했다.
“…선생님이세요?”
“거 빨리도 알아채는구나. 아주 눈치가 좋아졌어.”
“이잇! 아니거든요? 그 모습은 처음 봐서 그런거거든요?”
발끈할 힘도 남아 있고, 능력의 후유증 없이 전체적인 기운은 나쁘지 않았다. 치즈펠의 등을 가볍게 찰싹 때린 가니메데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열이 느껴지는 손바닥을 뒤집어보자, 무엇을 그리 세게 쥐었는지 살갗이 벗겨지기 직전이었다. 애썼다. 위로하듯 조용히 말한 그는 슬며시 치즈펠의 손을 쓸었다.
열이 잦아드는 손바닥과 반대로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화기火氣에 치즈펠이 소스라치게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낡은 건물이 순식간에 불에 삼켜져 있었다. 주변에 풀숲이 가득했지만 번져 나가는 기색은 없었다. 몇 초 되지않는 동안 짧게 타오른 불은 이내 잿더미만 남긴 채 가라앉는다. 누구의 짓인지 뻔했다. 밀비와 가니메데스의 시선이 교차한다. 사살 허락이 난거나 마찬가지지만, 그것은 치즈펠의 다른 팀원들을 구한 이후였다. 두 사람은 각자 생각한 것을 입밖으로 내는 일 없이 공중에서 내려오는 모로를 반겼다.
“무사히 나왔네. 안 무사한 게 이상하지만.”
“다른 녀석은?”
“불길 속으로 도망친 놈이 하나 있어서, 곧 데리고 나올거예요.”
과연, 그 말대로였다. 단순히 불길 속으로 도망쳤다 하기에는 지나치게 심한 화상을 입은 남자는 정신을 잃어 바닥에 주저 앉아 목덜미를 잡힌 채 질질 끌려 나오고 있었다. 아…. 치즈펠이 새삼스럽다는 듯 자신을 구하러 온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돌아가자. 평소처럼 가장 먼저 내밀어오는 손이 있었다. 아니, 그것 역시 평소와는 달랐다. 마주잡자, 그 손은 조금 떨리고 있어서 치즈펠은 있는 힘껏 그 손을 마주잡았다.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
15년 전 죽은 최애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prologue
다우트
갓생 오타쿠. 그것은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픈 것도 없는 내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목표 의식이 뚜렷해 성적이든 뭐든 원하는 건 다 쟁취해 내는 미친놈. 그 위에 여유 있는 집안에 태어난 우쭈쭈 막둥이 공주라는 설정 한 스푼.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내가 무엇을 하든 나를 100% 믿어주는 가족들의 신뢰까지도. 그 견고한 신뢰를 품에 안은 나
#웹소설 #소설 #다우트 #창작 #방탄소년단 #방탄 #전정국 #민윤기 #김태형 #김석진 #정호석 #김남준 #박지민 #방탄빙의글 #빙의글 #나페스 #방빙 #방빙추천 #bts #nps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