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전야 2장

2-1. 갈라테이아

2. 밀랍 인형의 이름으로

플라이스토세 295년 여름

스카버러, 노스요크셔 주

「밀랍 인형」

이게 내가 제일 사랑하는 예술품——갈라테이아다.

「밀랍 인형」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니?

「밀랍 인형」

그는 상아로 아름다운 소녀상을 조각했고, 아내를 대하듯 소녀상을 애지중지하며 장식했다……

「밀랍 인형」

그리고 모든 열정과 사랑을 소녀상에게 바쳤지.

「밀랍 인형」

“갈라테이아”——이것이 그 소녀의 이름이다.

「밀랍 인형」

미안, 내가 조심성 없이 너무 많이 말했구나. 분명 지루했을 게다.

남자아이

아, 아닙니다, 선생님. 선생님, 제발……

남자아이

제 부모님은 전부 체면을 중요시하는 부자들이시니, 선생님께 돈을 드릴 거예요……

남자아이

부디 절 놓, 놓아주세요.

「밀랍 인형」

쉿…… 말하지 말거라, 방해하고 있잖니.

「밀랍 인형」

이리 와보렴, 아이야.

「밀랍 인형」

조금만 더 가까이 오려무나. 두려워 말렴.

「밀랍 인형」

이 손을 봐, 정말 아름답지 않니?

「밀랍 인형」

가장 완벽하고 아름답다는 옥도, 이 아름다움에는 만분의 일도 미치지 못할 거다.

남자아이

매, 매우 아름답습니다, 선생님.

「밀랍 인형」

안타깝네, 지금 네 눈에선 조금의 존경심도 보이지 않아. 오직 두려움과 혐오 뿐이지……

남자아이

그…… 그런 게 아닙니다, 선생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밀랍 인형」

괜찮아, 내가 널 잘 키워주마. 너의 무지를 벗겨내기 위해, 첫 단계부터 시작하지——

「밀랍 인형」

꿇어.

「밀랍 인형」

명령한다, 꿇어.

「밀랍 인형」

갈라테이아를 향해, “어머니”를 향해……

「밀랍 인형」

경건한 입맞춤을 바치거라.

그때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와 입을 맞추었다.

창백한 손이 끈적한 왁스에 세심하게 감싸여, 스카버러의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은은하게 썩은내를 풍겼다.

죽음의 냄새였다.


21:00

사우스워크 거리

???

호출번호 I-2069 통신기, 호출번호 I-2069 통신기……

에리카

25번째 통신시도 실패. 조사관 윌리엄 드라푸어와의 연결을 잃었습니다.

키퍼

윌리엄 선배와 함께 있는 탐정들과는, 연락 가능해?

유감이지만, 불가능하다.

작업을 종료하고, 먼저 미사그로 돌아가 보고하길 바라. 상황이 명확해지기 전까지는 경솔하게 행동할 생각 말고.

키퍼

작업을 종료하라고요? 하지만 윌리엄 선배의 상황이 아직 불분명해요. 걱정이 됩니다만……

젠킨

정말 겁쟁이들이군.

젠킨

미안하지만, 내 언니는 당신들의 이 길고 지루한 절차를 기다릴 여유따윈 없거든.

젠킨

밀랍 인형 박물관은 나 혼자서도 갈 수 있어.

브라운

찍찍!

젠킨은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짙은 안개 속으로 뛰어든다.

키퍼

젠킨! 함부로 뛰쳐나가지 마, 그쪽은 너무 위험해!

라모나

얼른 쫓아가죠.


젠킨

반나절을 돌아다녔는데, 드디어 밀랍 인형 박물관을 찾았군.

에리카

임무 목표 확인.

임무 1: 로저스 밀랍 인형 박물관에 진입해 메이슨 양과 조사관 윌리엄을 찾으십시오.

에리카

임무 2: 로저스와 “구빈원 실종 사건”의 관련성을 조사하십시오.

에리카

확인 후 접수 부탁드립니다.

키퍼

임무 목표 접수. 확인 결과 이상 없음. 조사를 시작합니다.

에리카

확인 완료. 통신을 유지하며, 조사 과정을 기록하겠습니다.

이번 임무는 위험성이 높으니, 반드시 신중을 기해 주십시오.

에리카

은열쇠가 앞길을 인도하길.

당신은 고개를 들어, 눈앞에 펼쳐진 황폐한 거리의 풍경을 바라본다.

안개 너머로, 유령 같은 붉은 빛을 내뿜는 가로등이 낮게 드리워져, 근처 상점의 간판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다.

“로저스 밀랍 인형 박물관” —— 당신은 마침내 간판에 있는 얼룩진 글씨를 알아본다.

키퍼

젠킨, 메이슨의 모습을 대강이라도 묘사해줄 수 있겠어?

젠킨

언니는 정말 미인이야! 머리카락은 길고, 피부는 아주아주 하얗고……

젠킨

아니야, 머리카락이 짧고, 피부는……

……

그래서, 이 언니라는 사람이 물리적으로 실제로 존재하는 인간이 맞긴 하니, 아니면 이 아이의 정신적 환상 속에서만 떠도는 존재인 거니?

젠킨

큰일났다……

젠킨

언니의 모습을 잊어버린 것 같아. 아니, 모습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라모나

제가 메이슨 양의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라모나

그는……

라모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젠킨과 함께 기묘한 침묵에 빠져든다.

키퍼

음…… 우리 그냥 같이 신문에 나온 사진을 보는 게 어때?

당신은 젠킨이 가져온 그 신문을 펼치지만, 그 위의 잉크는 마치 생명이라도 있는 듯 조금씩 녹아내려——

결국 《봄》과 관련된 그 기사를 읽을 수 없게 된다.

손상된 물과 잉크 자국은 마치 메이슨의 존재를 완전히 지우려는 듯 보인다.

키퍼

……

젠킨

이, 이건 무슨 마법 같은……? 이 신문은 내가 이미 팔백 번도 넘게 봤었는데.

젠킨

그런데…… 한 글자도, 단 한 글자도 떠오르질 않아.

키퍼

아, 너희들 정말 전부 기억을 못하는 거야?

키퍼

“입체파의 뛰어난 수호자, 보티첼리의 환생한 영혼이 사우스워크 거리 모퉁이의 밀랍 인형 박물관에 숨어 있다……”

키퍼

봐, 나는 심지어 이렇게 외워서 말할 수도 있는데.

라모나

신문이 융식된 겁니다. 이는 아마 융식으로 인한 집단 기억 상실 현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라모나와 젠킨이 일제히 당신을 쳐다본다.

라모나

어떤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는 것 같군요.

키퍼

……

키퍼

너네가 믿든 안 믿든 간에,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네……

모르는 새 과거는 이미 조작되고 그로 인해 이야기는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당신은 이 모든 변화의 유일한 증인이다.

끼익—— 끼익——

밀랍 인형 박물관의 굳게 닫혀 있던 문이 갑자기 열린다. 마치 불청객들을 환영하는 듯.

젠킨

문이…… 저절로 열렸어?

라모나

……보아하니 미리 준비해뒀던 잠입 계획은 접어둬도 되겠네요.

라모나

출발하죠, (이름).

모든 걸 잊어버리기 전에, 메이슨과 윌리엄을 찾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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