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하나공주
요즘 들어 남자친구가 우리 관계에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흔히들 권태기라 칭하는 시기…, 인 것 같다.
주변인들도 우리 둘의 사이를 대략 눈치챌 때쯤이었다. 남자친구와 진지하게 얘기해 볼까 생각했다.
단풍으로 물드는 계절인 가을이 점차 없어지고, 하얀 눈으로 덮이는 겨울이 다가온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달라지며 생활방식도 바뀌고, 우리의 관계도 정리된다.
차하나
이 사람이 나의 남자친구이다. 뛰어난 두뇌로 그다지 많지 않은 나이로 벌써부터 연구원직으로 취업했다. 그래서인지 취업 이후로 연락하는 빈도가 잦아들고…,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일도 줄었다. 학생때는 공부할 때(...)나 바쁜 일이 있을 때는 제외하면 매일같이 연락하던 사이였다. 차하나가 대학교에 들어간 후부터 연락이 끊기듯 지냈다. 최대한 이해하려 했지만 자기 여자친구한테 틈내어 연락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당연히 서운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대학에 들어가고서, 차하나가 졸업을 한 후면 연락 문제가 나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차하나는 홀랑 졸업을 하고 나서 연구원직에 바로 취직했다. 이런 이유로 일주일에 한번 올까 말까 한 연락은, 한 달에 한 번 올까 말까 하게 변했다. 이 정도면 일방적인 관계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얽혀있는 관계가 아닌, 나 혼자 상대방에게만 얽혀있는 관계.
주변인들도 이 정도면 포기하라고 말해주었다. 음…, 차두리나 권세모, 내 친구들까지도.
내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도 붙잡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과거의 차하나가 나에게도 한없이 다정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따수웠던 그의 손길과 행동을 잊을 수가 없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나오빠. 우리 잠깐 만나서 얘기할 수 있을까?”
—네. 아, 알겠습니다. 공주야. 미안. 다시 한번 말해줄래?
“아, 오빠 시간 언제 돼? 시간 될 때 만나서 얘기 좀 하자.”
—음…. 내일 아침 10시 넘어서야……, 만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래. 그러면 내가 10시까지 거기로 갈게.”
—어, 그래. 네! 지금 준비해 둘게요! 공주야, 내일 보자. 바빠서 먼저 끊을게.
뚝—
겨우 걸었던 전화였다. 만나서 얘기하자는 말만 전하고 제대로 끝맺지 못한 채 끊겼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취업하기 전에도 이랬으니까….
내가 차하나에게 만나자고 한 이유는, 이 관계를 끝내기 위함이었다. 솔직히 말하지면 이런 상황들이 지겨워졌다. 다들 그렇겠지만 나는 이제야 지겨워진 느낌이 들었다.
어느덧 10시…, 쯤 다 되어간다. 아직 전화 한 통도 없고, 문자도 오지 않았다. 근처 카페에 들러 기다리고 있었다.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공주야. 지금 어디야?]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어. 나갈까?]
[내가 그쪽으로 갈게. 보름카페지? 금방 갈게.]
몇 분 후, 문에 달린 현관종이 짤랑거렸다. 열린 문 뒤로 차하나가 들어왔다. 날 찾는 건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 공주야!”
차하나가 날 부르며 다가왔다. 그러곤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물어봤다.
“할 얘기가 뭔데 그래?”
“…우리 이제 그만하자….”
맞은편에 앉은 차하나가 날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말하려다가 조금 망설이는 가 싶더니, 나를 당황스럽게 하는 말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 그러자. 요즘 내가 연락도 잘 못해서 그런 거잖아.”
…. 다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뜸하게 연락했다.
“근데, 너 나 아직 좋아하잖아.”
……. 정적이 흘렀다. 차하나의 마지막 말이 내 뇌리 속에 깊게 박혔다.
“그래. 그만하자, 공주야. 연락 못해서 미안. 바빠서 먼저 가볼게.”
차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에서 나갔다.
다정한 차하나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허벅지 위로 떨어지는 눈물로 공허한 감정을 토해냈다.
우리의 마지막은, 허무했으며 늦가을이 초겨울로 변하는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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