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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혁] 버그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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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혁] 버그 上

 

w. 미스터루껫미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가파른 절벽 위에서 남궁혁이 서 있었다. 푸른 하늘 아래에 선선한 바람을 맞는 그의 표정은 평소처럼 평온했다. 그의 왼손은 따거의 멱살을 꽉 잡고 있었다. 팔에 타고 흐르는 피가 손가락 끝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따거의 얼굴과 몸은 상처와 멍으로 가득했다. 얌전하게 있었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텐데. 남궁혁은 혀를 차며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풀었다. 남궁혁의 입은 웃고 있었고, 따거의 입은 비틀렸다.

 

“이젠 관짝 갈 시간이지.”

 

따거는 실패했고, 창천회는 와해했다. 이젠 그는 쓸모없었다. 무협에선 절벽에 떨어지면 기연을 얻지만, 여기선 제명이었다. 사람들의 기억에는 머물 수 있어도 다신 나타나지도, 언급도 줄어든다. 떨어진 남궁의 위신을 바로 세울 때였다.

 

“나를 영구제명 시킬 줄 알았나.”

 

따거의 말에 남궁혁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의 팔과 걸음은 거침없이 앞으로 나갔다. 따거는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땅에는 앞에 나가는 발자국이, 뒤로는 끌려가는 자국이 남았다. 따거는 이를 악물었다. 실패하면 언젠가 벌어질 일이라는 걸 알았다. 본인의 실수를 되돌아보며 점검하며 더 나은 곳을 향해 가는 인물임을 알고 있었다.

 

“어?”

 

남궁혁은 자신의 발을 내려다봤다. 방금까지만 해도 움직이던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따거를 잡았던 손에도 더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경직된 듯 움직이는 팔을 잡고 따거가 천천히 일어났다. 비틀렸던 따거의 입은 천천히 미소 지었다.

 

“내가 자네를 모르겠나.”

 

따거는 남궁혁의 손을 잡고 천천히 일어났고, 남궁혁의 다리는 서서히 무릎을 꿇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게 강호의 세계 아닌가.”

 

따거의 뒤로 검은 만두들이 나타났다. 협객 옷을 입고 있었지만, 밀가루로 만든 뽀얀 만두피가 아니었다. 남궁혁은 이를 갈았다. 그의 살기에도 따거는 여전히 미소만 지었다.

 

“걱정하지 말게. 자네의 추종자들은 그저 못 들어오는 거네.”

 

따거는 그대로 남궁혁의 목뒤의 깃을 잡더니 그대로 끌고 갔다. 힘이 들어가지 않은 몸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절벽의 끝에서 따거는 남궁혁을 그대로 밀었다.

 

절벽에서 떨어지자마자 하늘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절벽부터 만물을 감싸는 하늘까지 0과 1의 숫자로 뒤덮였다. 남궁혁은 자신의 팔, 허리, 다리를 봤다. 자신의 왼쪽 전부가 0, 1로 변했다. 왼쪽이 뭔가 가린 듯 잘 보이지 않았다. 손은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가, 허리가 기형적으로 꺾였다. 아프다는 느낌은 없었다. 고통이 없어서 더 현실감이 없지만, 그의 감은 위험하다고 계속 말하고 있었다. 남궁혁은 자신이 서 있던 곳을 바라봤다.

 

가까웠던 따거의 얼굴은 점점 멀어졌만, 그의 표정만은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아주 잘 보였다.

 

“기연을 얻은 걸 축하하네!”

 

산 정상에 외치는 것처럼 따거의 소리가 울려 펴졌다. 남궁혁은 다시 손에 힘을 줬다. 숫자로 뒤덮이지 않은 손은 자유롭게 움직였지만, 숫자로 뒤덮인 쪽은 굳은 것처럼 꼼짝도 안 했다. 점점 땅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를 기다리는 땅 또한 0, 1로 가득했다. 남궁혁은 천경검을 봤다. 다행히 오른쪽에 있는 천경검은 숫자로 변하지 않았다. 살고자 하는 본능이 그를, 검을 잡게 했다. 검을 뽑지 않았다. 0과 1로 뒤덮여도 가파른 절벽의 형태는 아주 잘 보였다. 숫자로 뒤덮힌 하나의 덩어리가 된 절벽을 향해서 검집에 박힌 검을 힘으로 꽂아넣었다. 그대로 미끄러지며 속도가 줄어든 동시에 검집은 숫자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했다. 아주 빠르게 반복하더니 숫자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남궁혁은 혀를 한 번 차고 밑을 바라봤다. 아직 땅과 가까워지려면 멀었다. 남궁혁은 아직 움직이는 오른발로 덩어리에 갖다 댄 채 그대로 힘껏 찼다. 그 반동으로 검집에 박힌 천경검이 그대로 뽑혔다. 순간 왼쪽으로 뒤덮인 숫자가 오른쪽으로 넘어갔다. 아까와 다르게 몸이 더 무거워져 남궁혁의 몸이 빠르게 떨어졌으나 다시 숫자가 서서히 왼쪽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굳었던 왼쪽 어깨가 가벼워졌다. 시야도 넓어지고, 왼쪽이 자유로워지자, 그는 다시 절벽에 천경검을 꽂아 넣었다.

하늘을 놀라게 하는 검이라 그런지 땅의 형태를 한 곳에 닿을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땅에 발을 닿자마자 다시 몸이 숫자로 뒤덮였다. 이번에는 검을 들고 있는 오른손이었다. 남궁혁은 흐릿한 시야로 천경검까지 숫자로 뒤덮이는 걸 가만히 바라봤다. 몸을 움직여야하는데 자꾸만 정신이 흐릿해졌다. 남궁혁은 아직 자유로운 손으로 천경검을 잡았다. 숨이 점점 가빠오고, 몸은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남궁혁은 겨우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봤다.

주위는 생명체라는 건 보이지 않았다. 숫자로 뒤덮인 하나의 덩어리들만 있을 뿐이었다. 그저 형체만 보고 어떤 거였는지 짐작만 할 뿐이었다. 남궁혁은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곳이었다. 한없이 떨어지지만, 다시 올라갈 수 없는 곳. 올라가면 어떤 걸 얻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뭘 얻는다는 걸 들은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누가 자신을 부르는 느낌이 들었다.

대협, 대협!

착각이 아니었다. 익숙하게 들었던 목소리였다. 남궁혁의 눈이 번쩍 떴다. 여전히 그의 숨은 거칠고, 시야는 한쪽만 보였지만, 그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그는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가 매일 본 형체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남궁혁은 천경검을 든 채 주위를 돌아다녔다. 몸에 있던 숫자가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몸이 가벼워지다가 다시 무거워졌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자꾸 붙잡지만, 그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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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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