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태섭] 함께니까 괜찮아
업로드 2023.11.20
* 트친 생일축하연성
* 농구선수 정우성 X 농구감독 송태섭
* 우성의 부상 소재 있습니다. (심한 거 아님!)
태섭이 두 손으로 마른 세수를 했다. 처치실 문 앞을 계속 서성인다. 진료 대기중이거나 다른 과 진료를 보러왔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만있지 못해서도 있지만, 국내 농구팀을 맡고 있는 송태섭 감독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의 인지도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태섭은 답지 않게 시선에 대해 응대할 정신도 없는 듯 했다. 단정하게 깎인 손톱을 잘근거린다. 천년만년 봉인된 것 같았던 처치실 문이 열리자마자 자동반사로 튀어나갔다.
"정우성!"
"태서바!"
우성이 태섭을 보자마자 활짝 웃었다. 우성의 표정을 살피던 태섭이 시선을 내리다 인상을 와락 구겼다. 우측 발목을 감싼 반깁스를 보고서. 태섭의 시선을 따라가던 우성이 멋쩍게 웃었다. 뒤따라 나온 준호가 태섭에게 말했다.
"골절은 아니야. 인대가 조금 상했어. 주위 근육도 놀란 상태라 한동안 이렇게 지내면서 발목을 쉬게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 걸을 때 조금 불편하겠지만……."
"…선배. 감사해요."
"우성이도 우성이지만 너도 많이 놀랐겠다. 괜찮니?"
자상한 준호의 목소리가 일그러진 태섭의 인상을 사락 풀어낸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른 태섭이 다시 눈을 뜬다. 멋쩍어하는 우성이 보였다. 태섭이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간호사가 우성에게 목발 한 쌍을 내민다. 우성이 어색하게 양 겨드랑이 사이로 목발을 끼웠다. 그 모습을 본 태섭이 준호에게 물었다.
"휠체어를 타는 게 나은 거 아니에요?"
"태서바, 나 그 정도까진…"
"집에서도 휠체어 타게? 태섭아. 우성이가 부상을 입어서 놀란 건 알겠는데, 그렇게 심한 부상은 아니야. 선수나, 코치진 입장에서 부상은 크든 작든 항상 이벤트가 되는 건 맞지만. 그 정도로 과잉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네."
"……."
태섭이 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우성이 태섭의 눈치를 살피자, 준호가 옅게 웃었다. 여전히 왁스칠해 올린 머리를 살짝 매만진다.
"당분간 훈련은 안 나가는 게 좋아. 팀의 입장에서도 정우성이라는 에이스급 선수의 부재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건 알지만, 너도 알다시피 농구는 팀 스포츠잖아. 그렇지?"
"…네."
"그래도 우승하고 부상을 입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분위기가 이래서 제대로 축하도 못 하겠네. 둘 다 고생 많았어. 태섭이 넌 에이스의 빠른 복귀를 원한다면 회복을 잘 할 수 있도록 우성이가 충분히 쉴 수 있게 해줘. 너도 선수 생활 해봤고, 이제는 감독이니까 더 잘 알겠지만."
준호의 손 끝이 태섭의 코 끝을 톡 치고 떨어져나갔다. 태섭이 여전히 제 눈치를 보는 우성을 힐끗 보다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섭이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은 우성이 연신 그 살폈다. 묵묵히 운전만 하던 태섭이 빨간불로 바뀌는 신호에 서서히 차를 멈추며 말했다.
"내 눈치 안 봐도 돼. 다친 건 너잖아."
"그건 그렇지만……."
우성이 웅얼거렸다. 태섭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다시 생각만 해도 기가 막혔다. 어이가 없다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태섭이 지휘하고, 우성이 선두로 나선 팀이 시즌 우승한 것까지는 좋았다. 우성이 태섭에게 달려오는 것까지만 해도 좋았다. 태섭 역시 우성을 마주 안을 준비를 했으니까.
우승이라는 거대한 고양감이 불러 일으킨 흥분의 도가니에 휩쓸린 팀원들이 한순간에 태섭이 있는 벤치까지 달려온 게 화근이었다. 안그래도 키도 크고, 덩치도 큰 시커먼 사내들이 우성이 먼저 벤치로 달려가자 너도나도 한번에 한 곳으로 달려든 탓에 서로 부딪히고 우르르 무너지면서 맨 앞에 있던 우성이 확 밀리면서 발목이 접질린 상태로 넘어진 것이었다. 넘어진 우성의 위로 선수들이 쌓이듯 넘어지는 모습에, 웃으며 선수들을 맞이하려던 벤치가 하얗게 질린 것은 순식간이었다. 우성아! 태섭이 혼비백산하여 달려갔다. 벤치에 있던 선수들과 코치진, 그리고 의료팀들까지 달려와 선수들을 분리해내고 상태를 확인했다. 팔뚝이며 다리에 멍이 드는 것에 그친 다른 선수들과 달리 우성은 우측 발목을 움켜쥐고 끙끙 앓고 있었다. 일어나지도 못 했다. 아연한 태섭을 뒤로 한 채 의료팀이 응급처치를 시행했으나 우성은 손만 대도 저도 모르게 악 소리를 지를 정도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우성의 얼굴이 식은땀으로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들것을 가져오라는 의료팀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태섭이 그를 준호가 있는 병원으로 함께 이동한 것까지가 사건의 전말이었다.
정말이지, 골절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운동선수는 어느 한 곳도 다치면 안됐다. 강도 높은 훈련과 시합을 진행하다보면 크고 작은 부상이 항상 따라오는 것을 알지만 최대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소소한 부상이 한 번이라도 생기면 그 부위에 부상이 더 자주 생긴다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기에. 어깨 부상으로 원치 않은 은퇴를 한 태섭이기에 우성의 부상에 더더욱 예민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었다. 농구가 좋아서, 놓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길이 감독이었지만 멀리서 경기를 지켜보니 더욱 신경 쓰였다. 우성이든, 우성이 아니든. 제 팀원들이라면 누구든 다치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우성이기에 태섭의 눈치만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태섭은 손 끝으로 운전대를 두드렸다. 힐끗 우성을 본다. 그 큰 손으로 벨트를 꽉 쥐고 고개를 숙인 모습에 눈을 돌려 여전히 빨간 신호를 들여다보다가, 숨을 훅 내쉬고, 툭 내뱉는다.
"미안."
"으, 응?"
"제일 심란한 건 너일텐데. 내가 예민하게 굴어서."
"태서바……."
태섭이 손을 뻗어 우성의 동그란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빨갛던 신호가 파랗게 변하고,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떨어져나간다. 우성이 태섭을 보다 기어이 눈이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미아내, 태서바, 나 아파…… 우성이 태섭의 눈치만 보느라 참았던 눈물을 그제야 터뜨렸다.
우성은 눈을 깜빡였다. 지금 이게 뭘까. 내가 꿈을 꾸는 걸까? 눈을 연신 깜빡이던 우성이 제 바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안 가?"
"어? 진짜 이렇게 가게?"
"그럼 내가 널 업고가리? 안 되는 거 알면서."
아니 그게 아니라… 우성은 제 오른쪽에 붙어서 반깁스와 반깁스를 감싼 캐스트 슈즈 밑으로 끼워진 태섭의 발과 태섭을 번갈아보았다. 목발 하나를 뺏어들고 우성의 옆구리를 단단히 감싸안은 태섭이 우성과 시선을 마주하며 눈썹 각도를 올려세웠다.
"2인 3각이라고 생각해."
"어, 음……."
"너 무거워. 간다."
"아! 잠깐만!"
태섭이 발을 내딛자 우성이 허둥지둥 걸음을 옮겼다. 태섭이 그랬던 것처럼 우성의 긴 팔이 태섭의 허리를 감싸안는다. 태섭의 왼발이 바닥을 딛으니 우성의 오른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 발바닥이 바닥에 눌리면 아팠는데 태섭의 발등 위에 있으니 통증이 훨씬 덜했다. 우성은 간질간질하게 올라오는 감각을 애써 삼켜내며 태섭과 때 아닌 2인 3각으로 집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연 태섭이 신발을 먼저 벗어내고 제 왼발을 먼저 딛어 우성의 오른발이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게 지지한 후 상체를 비스듬하게 숙여 우성의 왼쪽 신발을 벗겼다. 신발은 제가 벗을거라 생각했던 우성의 상체가 흔들리다 태섭을 꽉 안았다. 태섭의 독특한 부축으로 거실 소파에 앉는데 성공한 우성이 긴 한숨을 내뱉는다. 정장 단추를 풀어 벗어내고 넥타이도 끌어내린 태섭이 셔츠 소매 단추를 풀어 팔뚝 위로 걷어올린 뒤 소파에 등받이에 등을 걸친 채 늘어진 우성을 보며 말했다.
"씻을래?"
"이대로는 힘들잖아."
"씻겨줄게."
"뭣이?!"
우성의 상체가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 왕밤만하게 눈을 뜬 우성에게 어깨를 으쓱인 태섭이 말했다.
"너 발목 회복될 때까지는 어지간한 건 다 내가 해줄게."
눈썹을 삐딱하게 올리면서, 입꼬리도 함께 삐딱하게 올린다.
"이때 아니면 언제 나한테 이런 서비스 받아보겠어?"
오늘 내 생일인가? 우성이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그럼 오늘 섹―."
악! 우성이 머리를 움켜쥐고 허리를 숙였다. 태섭의 작지만 옹골차게 쥐어진 주먹에서 김이 솟고 있었다.
"적당히 하세요?"
"재성함다……."
"물 온도 괜찮아?"
"너무 좋아아아아아아."
우성의 키에 맞춰 주문 제작한 욕조에 우성을 집어넣고 반깁스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욕조 위에 쿠션을 올려 오른발을 댄 태섭이 목을 젖힌 그의 머리에 샴푸칠 해주었다. 태섭의 손 끝이 부드럽게 우성의 두피를 문질렀다. 우성이 나른한 숨을 내쉬었다. 눈 감아. 태섭의 목소리가 욕실을 울렸다. 우성이 눈을 감자 샤워기를 틀어 샴푸를 꼼꼼히 씻어낸 태섭이 샤워타올에 바디워시를 펌핑해 우성의 목부터 닦아내려가기 시작했다. 태섭이 한쪽 무릎을 꿇고 허리를 세워 우성의 몸 구석구석 닦아냈다. 눈 떠도 돼? 응. 우성이 슬며시 눈을 떴다. 태섭이 자신을 씻긴다고 집중하느라 살짝 튀어나온 입술에 시선이 갔다. 어깨, 팔, 가슴, 허리… 우성을 씻겨가던 태섭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흘겼다.
"너 무슨 생각하길래 여기가 이렇게 됐냐."
"그치만 이 상황 너무 야하지 않아?"
"넌 이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 잘도 나네. 걱정도 안되냐?"
자기 주장하는 다리 사이를 애써 무시한 태섭이 우성을 일으켜 욕조에 걸터앉힌 후 허벅지와 다리를 닦아낸다. 오른발 밑으로는 작은 목욕의자를 받쳐놓았다. 씻기면 씻길수록 자기 주장이 강해지는 것을 정말 애써애써 무시하고 있는데 우성의 목소리가 태섭의 위에서 들려온다.
"내가 회복 안 될까봐 걱정돼?"
"야. 너는 그걸 말이라고… 너 선수잖아. 선수가 자기 몸 걱정 안하면 어떡해?"
"네가 이렇게 걱정해주고 신경 쓰는데 어떻게 걱정이 되겠어."
"…뭐?"
태섭이 우성을 올려다보았다. 우성이 젖은 손을 들어 태섭의 뺨을 어루만졌다. 바디워시의 달달한 향이 태섭의 코 끝을 스쳤다. 태섭만 느낄 수 있는 향. 태섭이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나 다음 시즌에 무조건 선발로 뛸 수 있게 잘 회복할 거야. 괜찮을 거야. 아니, 괜찮아. 그러니까 난 걱정 안 해. 네가 내 몫까지 걱정 다 해주니까. 네가 나를 걱정하고 신경쓸수록 나는 더욱 강해져. 나를 걱정하는 너를 아니까 강해질 수 있는 거야. 내가 당연히 잘 회복되서, 다음 시즌에 출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태섭아."
우성이 태섭의 손을 잡아 제 쪽으로 당겼다. 태섭의 손 끝에 쪽 하고 입을 맞춘 우성의 눈빛에 태섭이 침을 삼켰다.
"너와 함께니까, 나는 항상 괜찮아. 함께니까. 괜찮아."
"…응."
태섭이 몸을 일으켰다. 욕조에 앉아있는 우성이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맞닿는다.
제발 다치지 마, 정우성.
응. 미안. 앞으로 더 조심할게.
지금도 많이 아파?
네가 많이 걱정해주고 보살펴줘서 많이 좋아졌어.
우성아, 넌 내 꿈이자 내 사랑이야. 그러니까 다치면 안 돼. 항상 나만의 슈퍼 에이스 정우성으로 있어야 해. 알았지.
걱정 마, 태섭아. 내가 다음 시즌도 너만의 슈퍼 에이스가 될 테니까.
다음 시즌 뿐만 아니라, 평생 너만의 슈퍼 에이스 정우성이 될 테니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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