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른 (단편)

[우성태섭] 너의 생일

** 퍼슬덩 O 원작 X 애니 X

** 태섭이 형 언급 있음 하지만 커플링적인건 아님

** 우태 안사귐

*** 우태 첫연성

* * *

머리가 지끈거려 잠을 쉽게 이룰 수 없었다. 끈적한 여름은 미국에서도 매한가지였다. 미국이라고 더위가 덜하다 생각했냐 하면 그건 아니었지만. 땀에 젖은 몸이 축축했다. 구릿빛으로 항상 탄력있던 몸이 무겁게 늘어졌다. 이상할 정도의 컨디션 난조에 송태섭은 결국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하얗게 쏟아지는 불빛에 지끈거리는 느낌이 강해져 눈을 찌푸렸다. 한새벽을 가리키는 시간 속에 메일이 들어와있었다.

[ 오빠 생일 축하해!!

이번 케이크도 맛있겠지? 

케이크 꼭 챙겨먹어야돼!!! ]

생일 축하 문구와 함께 올해의 케이크 사진이 담긴 메일을 본 송태섭이 픽 웃었다. 이내 입을 꾹 다문다. 눈을 느리게 감았다 가늘게 뜨고 토독거리며 답장을 썼다.

[ 축하고마워. 

오빠 없어서 딸기는 다 네 몫이겠구만~ 

형 꺼는 양보 좀 해라. ]

문장의 마침표를 찍고 난 손이 머뭇거린다. 송태섭은 제가 미국에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그대로 답장을 보냈다. 휴대폰을 머리맡에 두고 눈을 감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한쪽으로 돌아누워 무릎을 굽혀 웅크린 자세를 취했다. 

답장을 보내던 자신의 표정을 상상하지 못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 * * 

- 송태섭! 오늘 생일이라며!!

송태섭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세상 맑은 하이톤을 듣자마자 골이 울려왔다. 결국 밤을 거의 꼴딱 세워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연습할 때도 팀원들이 걱정할 정도였다. 수면부족 상태에서 난도 있는 훈련은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잠을 매일같이 못 자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코트 전체의 흐름과 분위기를 읽고 적재적소에 판단하여 지시를 내리는 포인트가드의 특성상 신경써야할 것이 많았기에 송태섭은 그들의 걱정을 겸손하게 받아들였다. 

물론 미국에서 포인트가드로 전향한 상태로 맞닥뜨리게 된 정우성이 이 일을 알 리는 만무했고.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돌아가라는 말을 할 수 도 없었다. 왜? 를 달고 눈을 댕그랗게 뜬 채 저를 내려다볼 게 뻔하기도 했고, 굳이 그런 얘기를 할 정도의 사이도 아닌데다 일말에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했다. 

쟤는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 있긴 할까?

정우성은 대번에 그런 건 또 어디서 들었냐며 면박주는 송태섭을 생각하다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을 보고 웃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 했다. 틱틱대면서도, 말을 거칠게 하는 게 종종 있었어도 송태섭이라는 남자는 기본적으로 배려를 깔고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뭐랄까. 시합 중에는 상대에게 밀리지 않고 거칠고, 강해보여야하니 센 척 하지만 바깥에서는 장난치는 것도 좋아하고 코트에서처럼 억세고 거칠지 않고. 그런 거 있잖아. 필요에 의한 거친 남자. 다정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기본 매너와 배려는 있는 듯한. 

순간 그런 것이 자신에게는 있나? 하고 주위에서 속터질 만한 생각도 해본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정우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생일이라고 들었는데 표정이 왜 그래?

- 어디서 들었냐, 그런 건.

아. 평소와 같은 모습이다. 정우성이 눈을 접고 밝게 웃어보였다. 찌풀찌풀하면서도 대꾸해주는 송태섭. 틱틱거리면서도 다 받아주는 송태섭이다. 

- 농구 잡지에! 이번 달 생일인 선수 리스트 띄워주잖아. 

- 아~ 그랬나.

농구잡지는 꽤나 들여보는 것 같던데 그런 부분은 딱히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7월 31일. 정우성은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한낮의 하늘과 송태섭을 번갈아 보았다. 송태섭과 잘 어울리는 계절과 생일이라고 생각했다.

- 그래서, 뭐. 선물이라도 갖고왔다고?

송태섭의 시선이 정우성을 향했다. 찡그린 눈썹 사이를 보던 정우성이 다시금 갸웃한다. 

- 너 어디 아파?

- 묻는 말에 대답부터 해줄래?

궁금한 것은 그닥 참지 않는 정우성의 물음에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정우성이 송태섭을 빤히 내려다봤다. 그 내려다보는 시선이 송태섭에게 무언가를 자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 어디 아프냐고.

- 아니 진짜 하나만 해.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송태섭이 말을 끝내며 이를 악물었다. 눈가를 찡그린다. 대답할 의지가 없는 모습에 호기심이 더욱 동했지만 정우성은 참기로 했다. 표정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던가 어디 아프거나 뭐 그런 걸 꺼다. 송태섭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시절 북산 대 산왕의 경기에서, 코트에서 마주한 것이 전부였어서 정우성에게 송태섭의 정보는 오로지 농구잡지와 소문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추측만 한다. 물어보고 싶은데. 정우성이 입술을 안으로 말아 우물거렸다.

- 너 생일이라길래 축하해주려고 했지. 밥도 같이 먹고. 케이크 좋아해?

- 미국에서 만난 동향 사람이라지만 너무 챙기는 거 아냐? 뭐 얼마나 봤다고..

송태섭이 투덜거리는 것이 꽤나 섭섭하게 들렸다. 목소리가 미묘하게 날카로워 정우성은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본능적으로 판단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 그러니 이번 기회에 친해져보자는 거지.

- …….

정우성의 말에 송태섭의 표정에서 순간 고민이 스쳐지나갔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정우성의 눈이 말갛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송태섭이 작게 말했다.

- 생일 축하해주는 건 고마운데,

나 생일 안 챙겨.

- 어?

정우성은 제 귀를 의심했다. 사람이 어떻게 생일이라는 기쁘고 사랑받는 날을 안 챙길 수 가 있지? 정우성에게 있어서 생일은 가족과 함께 지내는 연례행사나 마찬가지였다. 외동인 만큼 부모의 사랑과 축하를 독차지하며 마음껏 어리광도 부리고 맛있는 것도 먹고 좋아하는, 갖고싶은 선물도 잔뜩 받는 아주 행복하고 좋은 날이었다. 주위에서도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생일인 날은 다들 기뻐했다. 무서운 선배들도 그랬다. 

그런데 송태섭은 그런 생일을 챙기지 않는다고 했다.

- 왜?

결국 호기심을 누르지 못 했다. 말간 눈의 정우성을 올려다본 송태섭의 입에서 숨이 터져나왔다. 전혀 이해가지 않는다는 표정이 괜히 송태섭의 속을 긁었다. 그야,

그야...

- …내가 오늘 잠을 설쳐서 컨디션이 영 꽝이다. 그러니까 짜증나게 하지 말고 존말할 때 가라.

이를 악문 목소리와 함께 검지가 정우성의 가슴팍을 쿡 찔렀다. 놀란 정우성이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송태섭이 지끈거리는 두통을 겨우 억누르며 뒤돌아섰다. 

조만간 경기 있는데 약을 먹어도 될까. 수면부족이라 잠만 잘 자면 될 것 같은데. 두통이 너무 심해서 눈도 뜨기 힘들었다. 도핑 목록에 있는 약이 무슨 약이었더라. 송태섭이 그런 생각을 하며 정우성에게서 멀어져갔다.

목구멍까지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이 치솟아올랐다. 당장 쫓아가려던 정우성의 걸음이 멈칫했다. 송태섭이 한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눈을 찡그렸기 때문이었다. 

저게 무슨 하루 잠 설친 사람의 얼굴이야.

정우성의 눈에 비친 송태섭은 위태로울 정도로 무겁고, 고통스러워보였다.

정우성의 손이 주먹을 꽉 쥐었다.

* * * 

머리가 지끈거리다 못해 터질듯 박동하는 느낌이었다. 입 안에서 절로 침이 고였다. 기숙사에 겨우 도착하자마자 쓰러지듯 엎드려 엉금엉금 기었다. 엉망으로 일그러진 머리는 도핑 목록에서 두통약이 있는지 결론을 도출하지 못 하고 계속 맴맴 돌았다. 머리에서만 느껴졌던 박동감이 전신에서 느껴지는 듯 했다. 몸이 박동에 맞춰 들썩거리는 것 같았다. 

- 아, 윽…….

고통에 못 이겨 신음이 흘렀다. 기숙사는 고요했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박동이 귓가를 웅웅 울렸다. 송태섭이 머리를 감싸안았다. 하루 잠 설치는 걸로 이 정도로 아픈 게 말이 되냐고. 송태섭이 씨근덕거리며 벽에 걸린 달력으로 시선을 던졌다.

- …씹…….

눈 앞이 흐렸다. 거물거리는 눈을 겨우 떴으나 무겁게 내려앉았다. 두근거리는 박동이 아파왔다. 

하루가 아니었다.

송태섭은 한 달 전부터 잠을 설치고 있었다. 한 달 전, 달력을 보며 다음달에 있을 자신과, 죽은 형의 생일을 떠올린 이후부터.

아무도 없는 생일을 맞이하게 될 순간을 떠올린 이후부터.

머리를 죄이는 감각을 느끼며 송태섭이 눈을 감았다.

* * *

- …….

송태섭이 눈을 떴다. 형광등 불빛이 아픈 눈을 아프게 때렸다. 눈을 잠시 감았다 다시 떴다. 아까만큼 눈이 아프지 않았다. 내가 불을 어떻게 켰지? 

문득 낯선 소리가 웅웅거리는 귓가를 뚫고 희미하게 들려왔다. 무언가를 통, 통, 하고… 자르는…… 소리? 

- 어…?

송태섭은 그제야 제가 누운 곳이 침대 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바닥에서 기어가다가 기절하듯 잠들었던 것 같은데.

…잠 들었던 게 맞겠지? 

아무리 아팠다곤 하지만 차마 자존심에 쓰러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깨어나서 침대에 누웠을 것 같진 않고. 그러다 테이블에 놓인 상자를 보았다. 케이크 상자였다. 송태섭은 속에서부터 메슥한 감각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야,

그야……

- 어, 일어났어?

맑은 목소리가 어둡게 가라앉아가는 갈색눈을 깨웠다. 눈을 깜빡거리던 송태섭이 입을 열었다.

- 정우성?

- 응. 나야.

입을 뻥긋거리기만 하는 송태섭의 모습에 질문하면 대답하려던 정우성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 어떻게 내가 여기 있냐. 너네 팀한테 물어봐서 주소 알아내고 찾아왔지. 왜 내가 여기 왔냐. 동향 사람 생일이라 생일밥 챙겨주고싶다 했더니 특별허용 해주던데? 자기들이 챙겨주는 거랑 동향 사람이 챙겨주는 건 다를거라고. 아. 네 동료들이나 팬들이 보내는 선물은 다 저기 갖다놨어. 내가 생일상을 차릴 줄 아느냐. NO. 즉석 미역국이 생일상을 책임져줄거야. 내가 하는 건 볶음밥 정도? 흠, 또 내가 예측 못한 질문이 있나?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는 모습에 송태섭은 기가 찼다. 그새 마른 입술에 혀를 축이며 말했다.

- 너는 연습 안 해?

- 으음? 그런 질문은 예상 못 했는데. 팀에 양해 구하고 오후 훈련은 빠졌어. 훈련은 아깝지만, 한번 빠진다고 내가 벤치로 가는 실력은 아니라서.

아 재수없어. 송태섭이 눈썹을 찌푸렸다. 잔뜩 치솟은 눈썹에 정우성이 웃었다.

- 맞아, 이 표정!! 역시 이 표정이지!

- ……?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정우성을 따라갈 재간이 없어 송태섭은 입을 다물기로 했다. 혼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리던 정우성이 송태섭에게 다가갔다. 송태섭의 시선이 정우성을 향한다. 정우성이 송태섭과 시선을 맞췄다.

- 미안.

- 너 진짜 이상해. 원래도 이상한 놈이긴 했어도 이렇게 뒤죽박죽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 뭔 소리야! 그런 실례의 말이 어딨어!!

너무하다며 뺑 외치는 게 원래의 정우성은 맞는 것 같긴 한데. 송태섭이 눈을 가늘게 떴다 우씨.. 하던 정우성이 말을 이었다.

- 컨디션 안 좋은 사람한테 괜한 얘길 한 것 같아서. 미안.

- 무슨,

- 얘기 들었어.

답지않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송태섭이 입을 다물었다. 속이 좋지 않았다. 이불을 틀어쥐자 땀이 배어나왔다. 심장이 두근거림을 넘어 쿵쿵거렸다. 귀가 멍멍했다. 그러나 송태섭의 시선은 정우성의 입술에 고정되어있었다. 정우성의 입술이 움직였다.

- 같은 생일이라며. …죽은 형이랑.

- 우욱! 

순간 치솟는 토기에 송태섭이 한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고 정우성을 밀쳐내더니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변기뚜껑을 열고 안으로 고개를 쳐박다싶을 정도로 기울이고는 그대로 구역질을 했다. 나오는 것이 없으니 헛구역질이었다. 정우성의 말이 창이 되어 속을 있는대로 갖다 쑤시니 정신이 버티질 못 했다. 송태섭은 어지러운 시야 속에서 욕을 뇌까렸다. 그냥 말을 하지 못 하게 막았어야 했는데. 아니다, 이 안에 들이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오는 것도 없어 침만 질질 흘리는데도 토기는 계속해서 밀려나왔다. 성난 파도 같았다. 거대한 파도 같았다. 형을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한--

등 뒤로 탄탄하고 강한 힘이 느껴졌다. 있는 힘껏 저를 껴안고 당기는 힘에 속절없이 발라당 엉덩방아를 찧었다. 머리 위로 거친 호흡이 들려왔다. 시뻘겋게 젖은 시선을 들었다.

- 미안… 미안해…….

정우성의 품에 꽉 끌어안겨 그의 흐느끼는 목소리와 떨리는 몸을 고스란히 느꼈다. 티셔츠에 제가 흘린 침이 다 묻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끌어안았다. 그리곤 엉엉 울었다. 미안하다고. 내가 잘못했다고. 정작 울고싶은 사람은 난데 대신 우는 것마냥 서럽게 엉엉 울어댔다. 나이 먹을만큼 먹어놓고 애처럼 울었다. 그렇게 울어도 되는 환경에서 살아왔을 테다. 울음도 슬픔도 제 안에 묻어버리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괜찮은 것처럼 살아야했던 자신과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을 테다. 

뜬금없는 상황에 속도 놀란 모양인지 거짓말처럼 토기가 사라졌다. 다 큰 시커먼 남성의 울음소리는 머리를 다시 지끈거리게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소리에 송태섭은 눈이 감기는 것을 느꼈다. 엉엉 울면서 미안하다고 반복하는 목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시끄럽고, 잔뜩 떨리는 몸인데도 이상하게 편한 느낌이 들었다. 송태섭은 눈을 감았다.

* * * 

- 괜찮아?

크흥. 잔뜩 코 먹은 목소리가 송태섭을 향했다.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티슈를 넘기자 팽 하고 코를 풀면서 연신 훌쩍거린다. 눈은 이미 팅팅 부었고 시뻘겋게 충혈된지 오래였다.

- 내가 물어야할 것 같거든.

테이블 위로 팔을 괴어 삐딱하게 쳐다보는 송태섭의 말에 정우성의 눈에 다시금 눈물이 그렁해졌다. 하아. 송태섭이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 왜 내가 이런 말까지 해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오기 전까지 생일되면 집에서 생일 케이크를 먹었어. 형의 몫까지 잘라놓고. 대부분 딸기 케이크였는데 동생이 거의 다 먹었지. 엄마는 조금만 드시고 나는 내 몫만 먹으면 됐으니까. 생일이 같으니 케이크 하나만 사도 충분했어서 동생이 살이 찌거나 하진 않았지만…….

송태섭이 눈치보듯 정우성을 흘끔 보았다. 저보다 몇 센티나 큰 놈이 눈물 그렁그렁 매달고있는 걸 보니 저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춤추고 깽판치고 다 했는데 제가 잘못을 저지른 기분이다. 

- 미국에서 처음 생일을 보냈을 때는 집이랑 시간을 맞춰서 영상 통화로 생일 축하를 했었어. 그 뒤로는 엄마도 그렇고 아라… 아. 내 동생 이름이야. 송아라. 아무튼, 아라도 학교 때문에 점점 시간이 안 맞게 되서 메일로 생일 축하하게 됐거든. 그때까지도 별 생각 없었는데. 아마 혼자서 생일을 보내니까 나도 모르게 신경을 썼던 것 같아. 형과 생일이 같은 것에 대해서. 

나는 살아있고, 형은 죽었는데.

마지막 말은 문장으로 세상 밖에 나오지 않았다. 거기까지 말하면서도 송태섭은 내심 놀랐다. 이 정도로 구구절절하게 자신의 얘기를 한 것이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자신 대신, 자신이 못 하던 만큼 크게 울어준 존재 때문이었을까. 송태섭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제가 뭐라고 자신의 일처럼 펑펑 우는 눈 앞의 사내가 신경쓰여서 그런다는 건 알겠다.

- 나는…….

송태섭이 머뭇거리며 숨을 길게 내뱉었다. 정우성의 눈이 내리깐 송태섭의 시선을 향했다. 

- 나는 한번씩 그 생각을 해.

산왕공고와의 시합을 앞둔 날 엄마에게 썼다 지웠던 편지가 떠올랐다.

- 내가, 

죄송해요.

- 내가…

형 대신 제가 살아있어서.

죄송해요.

형 대신, 

제가,

살아있어서,

죄송,

- 그만.

- 어?

정우성의 커다란 손이 송태섭의 입술에 닿았다. 

- 태섭이 네가 생일 축하 안 하는 이유가 궁금한 거였지, 네가 그런 표정하는 걸 보고싶은 게 아니었어.

제가 무슨 표정을 지었길래 정우성이 이런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꼴불견이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송태섭이 입을 다물었다.

- 네가 느끼는 그 감정, 나는 잘 몰라. 하지만 네 표정을 보니 알고싶은 마음도 사라졌어. 다시 한 번 미안해. 

정우성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놓고는 말을 이었다.

- 나는 '너의 생일'을 축하하고 싶은 거야. 7월 31일. 북산 출신 포인트가드. 송태섭. 너의 생일을.

송태섭의 눈이 떨렸다. 송태섭의 입을 막았던 정우성의 손이 느리게 빠져나갔다. 정우성이 송태섭을 똑바로 보았다. 송태섭의 흔들리는 눈 역시 정우성을 향했다. 말간 눈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너무 투명해서 알 수 없을 정도의 말간 눈.

- 생일 축하해.

정우성이 송태섭에게 말했다. 정우성의 손이 송태섭의 손등을 덮었다. 시선을 내려 그것을 보던 송태섭이 정우성을 보았다.

- 생일 축하해, 송태섭.

송태섭이 입술을 달싹였다. 지끈거리던 두통이 가라앉고 있었다. 저를 흔들고 뒤집던 속이 가라앉고 있었다. 전신을 두드리던 박동음이 사라졌다. 귀를 웅웅 울던 감각이 사라지며 정우성의 목소리가 똑바로 들렸다. 손등 위로 덮인 크고 두터운 손의 온기가 느껴졌다. 

송태섭이 입을 열었다.

- …응. 

정우성이 웃었다. 빨개진 코 끝으로 웃었다. 그런 그를 보던 송태섭도 웃었다. 이맘때 쯤이면 항상 제 안을 휘몰아치던 풍랑이 잦아드는 감각을 느끼며 송태섭이 웃었다. 

고마워. 축하해줘서.

고마워.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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