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GO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칼데아의 하루

아르주나와 두료다나의 몸이 뒤바뀜

어느 날 아침 눈을 뜬 아르주나는 자신이 원수의 몸에서 깨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른바 그런 이야기다.

“아니,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그리 말해보아도 들리는 것은 본래의 정갈한 목소리가 아닌, 어쩐지 절로 화가 나게 하는 원수의 부루퉁한 목소리였다. 아르주나는 벌떡 일어난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방 한 켠에 위치한 거울에 제 몸을 비춰보고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하아. 흑단 같던 검은 곱슬머리는 보랏빛의 머리칼로, 크리슈나 만큼이나 짙은 피부는 살구색에 가까운 옅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게다가 몸집은 원래보다도 훨씬 커져서는, 움직이는 내내 무거운 몸이 신경쓰였다. 물론 그 몸의 대부분은 근육이고, 힘이야 넘친다만 체격이 워낙 커야 말이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이 수염이다. 아르주나는 체모가 자라지 않는 몸인 서번트가 되어서도 굳이 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두료다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영기에서 수염이 유지되는 것은 뚜렷한 본인 의지의 발현이라고밖에는 이해할 수 없다.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남자였으며,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남자였다. 이 참에 확 깎아버릴까. 아르주나는 순간 진심 어린 충동을 느꼈으나 간신히 그것을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 우선은 이 방에서 벗어나, 다 빈치 기술소장이나 본래의 몸을 찾아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리 생각한 아르주나는 망설임 없이 곧바로 방의 문을 나섰다.

“여어, 두료다나.”

“음.”

“어, 두료다나냐.”

“여어.”

생전이나 지금이나ㅡ놀랍기 그지없게도ㅡ두료다나는 나름대로 인망이 있다. 그를 두고 하는 「인악의 카리스마」라는 말은 괜한 치사가 아니리라. 칼리의 화신인 그에게는 묘한 카리스마가 있어 주위의 사람들을 끌어들이곤 했다. 칼데아에서도 그것은 변하지 않아 적잖은 서번트가 그와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했다. 이미 생전의 복수는 달성한 지 오래인 아르주나로서는 별로 신경이 쓰이지는 않는 일이라, 그는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는 것으로 잠시 빌린 몸의 벗들에 대한 예의를 다했다. 이 정도로 의심을 받지는 않겠지. 아르주나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며 다 빈치가 있으리라 짐작되는 곳을 향했다.

무난하게 제 정체를 숨기며 칼데아를 거닐던 그가 예상치 못한 인물과 마주한 것은, 기술실로 이어지는 골목, 그러니까 식당가와 마주한 장소를 지나갈 즈음이었다. 아르주나는 그와 마주친 순간 제가 마주한 이상상황을 까맣게 잊고 입을 열고야 말았다.

“혀…….”

무언가 잘못되었다, 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인기척을 눈치챈 상대방이 이쪽을 바라본 직후였다. 언제나 제게 눈을 휘어접으며 만면에 가득한 미소를 보여주던 형은 온데간데 없이, 락샤샤나 다름없는 얼굴로 인상을 험악하게 구긴 사내가 그곳에 서 있었다. 비마, 왜 그래? 벽색으로 빛나는 머리칼을 지닌 여성이 난처한 기색으로 아르주나ㅡ현재 겉모습은 두료다나ㅡ와 비마 사이를 곁눈질하며 물었다. 잘도 그 얼굴을 디밀었단 말이지. 비마가 쿵쿵대며 아르주나 쪽으로 걸음을 옮길 때였다. 멀리서 경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ㅡㅡ! 찾았다!”

“오, 아르주…….”

“말 걸지 마! 멍청아! 이몸 님은 저 쪽에게 볼 일이 있다고!”

비마는 멀리서 달려오는 아르주나를 보자마자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지만, 그 선의는 깔끔하게 무시당했다. 인상을 한껏 찌푸린 채로 경멸 어린 말을 토해내는 제 동생의 말에 충격을 받을 대로 받아 입을 떡하니 벌린 것도 잠시, 비마는 방금 전의 대화에서 이상한 점을 찾아 급히 어질어질한 정신을 깨웠다.

“멍청……잠깐, ‘이몸 님’이라고?”

“비키라니까! 너, 지금 이몸 님의 몸 안에 들어와 있는 놈, 아르주나 맞지?”

아르주나는 본디 제 몸이었어야 할 것이 마구잡이로 유린당하는 행태에 눈을 질끈 감았다. 저 경박한 언동과 예법과는 전혀 맞지 않는 행태는 어느 모로 보아도 두료다나였다. 왕자로서의 예법을 그라고 모르는 바가 아닐 텐데, 그것을 깔끔히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배경에 따른 만용이리라. 아르주나는 그것에 감탄을 해야 할지 분노를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천천히 눈을 뜨고, 눈앞의 참상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만. 그보다도 남의 몸으로 경박한 언행을 일삼는 건 삼가 주십시오.”

“그러는 네놈이야말로 이몸 님의 몸으로 무슨 징글징글한 말을 하고 다니는 거야! 이몸 님은 너처럼 비굴하지 않아! 좀 더! 자신감 있게! 세상을 내려다본단 말이다! 보나마나 비마에게 존댓말을 썼을 테지! 거기에서부터 아웃이야!”

두료다나와 설전 아닌 설전을 하고 있으니 어느새 옆에는 인파가 몰려 있었다. 칼데아의 직원으로 보이던 여성은 사라진 채였고, 비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새 멀리서 소동을 지켜보던 카르나와 아슈바타만이 이쪽으로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아슈바타만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물었다.

“이게……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네놈의 말에 찬동하고 싶진 않지만, 나도 정확히 같은 심정이다.”

옆에 있던 비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비교적 담담하게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카르나가 어수선한 상황을 정리하려는지 두 손을 들어 시선을 모으고는 읊조리듯 말했다.

“쉽게 말해, 이쪽이 두료다나, 이쪽이 아르주나다. 어제 합동 작전에서 이상이라도 발생했는지, 두 사람의 영기가 뒤바뀐 상태인 것 같군.”

“말도 안 돼! 어제는 멀쩡했는데 갑자기 이럴 수가 있는 거야? 응? 카르나!”

“……내게 물어보아도 답할 수는 없다. 그보다, 두료다나.”

“응?”

“아르주나의 몸으로 그런 언행은 삼가주지 않겠나. 아무리 나라도, 조금 당혹스러워서.”

카르나가 시선을 피하며 말을 끌자 두 피해자ㅡ아르주나와 두료다나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두료다나 쪽은 실망에, 아르주나 쪽은 분노에 가까운 표정을 지은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너무해! 카르나 너마저 그런 말을 하다니! 두료다나의 말에 아르주나가 일갈했다. 남의 몸으로 감히 숙적에게 달라붙지 마십시오! 뭐야! 그러는 네놈은 비마에게 꼬리 치려고 했으면서! 꼬리를 치긴 누가 친다는 겁니까! 예법에 맞게 말하세요! 서서히 아비규환으로 뒤바뀌는 상황에 비마가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큰 소리로 박수를 쳐 시선을 모았다. 비마는 어느새 제 동생이 아닌 원수의 몸을 향해 시선을 돌린 채였다.

“……그러니까, 네가 지금 아르주나인 거냐?”

“슬프게도, 그렇습니다.”

“그……아까는 놀랐겠구나. 나는 영락없이 두료다나 놈이 말을 걸어온다고 생각해서, 보나마나 인상을 팍 구겼을 텐데.”

“아뇨, 이해합니다. 저라도 카르나가 웃는 낯으로 말을 걸어온다면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겁니다.”

아르주나는 그리 말하며 잠시 비마와 카르나의 영기가 뒤바뀐 상황을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제게 웃는 낯으로 다가오며 비마와 같은 태도로 저를 대하는 카르나를……. 절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끔찍한 상상에 몸을 떠는 아르주나를 비마는 잠시 쳐다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곤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튼, 지금 이 상태로 있어봤자 해결되는 건 없지. 다 빈치를 찾아가자.”

“이몸 님도 그러려고 했어! 멍청한 놈이 잘난 척 하지 마!”

“이게 진짜…….”

남들이 보기엔 영락없는 형제 싸움이 시작되려 할 즈음, 복도 멀리서 청명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필요는 없다네. 여기 본인이 찾아왔으니.”

모두의 시선을 모은 소녀는 확실히 다름아닌 다 빈치, 꼬마 다 빈치였다. 옆에는 조금 전 사라졌던 벽색의 머리칼을 한 직원ㅡ세레제이라가 동행하고 있었다. 상황을 보아 그녀가 다 빈치를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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