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kel
3-2.95=
맞은편의 벽에 걸린 시계는 오후 네 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마이크는 열심히 펜을 놀리는 인터뷰어의 얼굴로 다시 눈길을 돌렸다. 그는 전날 저녁부터 내내 고요했던 전화기를 생각하며 던져지는 질문에 하릴없이 답했다. 딱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비토는 여간해선 그에게 먼저 연락할 적이 드물었다. 그의 손이 일평생 돌린 다이얼의 횟수는 여태 끊어먹은 기타 줄의 개수에 비하면 헤아리기조차 부끄러울 수준일 것이다.
마이크는 그와의 첫 만남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귀퉁이가 덜렁이는 포스터와 전단으로 가득한 벽을 따라 내려간 탈의실에는 낯선 인영이 먼저 자리하고 있었다. 지지대가 부러져 흐느적대는, 손잡이가 반질반질하게 닳은 기타 케이스를 들고 서 있던 깡마른 사내는 탈의실의 서늘한 조명 탓인지 몹시도 창백한 낯빛을 하고 있었다. 이내 그는 짧은 인사와 함께 당시 마이크의 밴드가 가지고 온 앰프 하나를 잠시 빌릴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어수룩하다 싶었던 인상은 온데간데없이, 묵직한 고집이 실린 그의 목소리에 마이크는 선뜻 허락을 내주었다. 곧 앰프에 꽂힌 케이블을 타고 흘러나온 짧은 노이즈가 그의 손틈으로 새어나왔다. 이윽고, 싸구려 가죽을 덧댄 의자에 자리를 잡은 그의 눈이 감기는 것이 보였다. 어디서 제법 본 건 있는 모양인데ㅡ 때마침 그런 빈정거림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까만 눈 한 쌍이 일순 그를 돌아보았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무엇을 낱낱이 꿰뚫어본다거나, 어떤 신비로운 마력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그런 감상과는 거리가 먼 눈이었다. 그곳에 비친 것은 욕심뿐이었다. 지극히 단순하고 투명한, 그렇기에 함부로 깊이를 잴 엄두가 나지 않는 아득한 갈망. 지금 눈앞의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그게 전부인 것처럼 보였다. 머리에서부터 전신을 뒤흔드는 음률을, 오로지 제 손으로 쫓아가고야 말겠다는 집념이 이 순간을 만들어낸 것이라고ㅡ 마이크는 그렇게 이해했다. 직접 표현한 것도 아니건만 이상스럽게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공감은 같은 기타 연주자로서 지닌 동질감 따위에 기인한 것은 아니었다. 이는 지금부터 들려올 연주가, 음악이라는 형체 없는 신에게 매료되어 예속된 삶을 살아갈 가엾은 이들이라면 당연히 알아차릴 수 있어야만 하는 의식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그가 들려준 것은 자신에게 미국으로 건너가라는 충고를 건넸던 프론트맨, 데이비드 리 로스가 몸담은 밴드이자 다시없을 기타의 총아인 에디가 있는 반 헤일런의 노래였다. 당연히 헤비메탈의 팬이라면 누구나 카피를 시도했을 노래이기에, 오히려 더욱 낱낱이 비교될 것임을 눈앞의 남자가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그런 일들은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았다. 마이크는 그가 무대에서 관객을 대하는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보았다. 아마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뜨거운 함성에도, 따가운 야유에도 이 손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다고ㅡ 그의 연주를 듣던 마이크는 확신했다. 그야말로 바로 자신에게 필요한, 그토록 원해왔던 인물이라는 것을.
ㅡ“그렇게나 많이요?”
웃음기와 의아함이 섞인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흐트러뜨렸다. 종이를 긁던 펜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춘 것을 보고서, 마이크는 가볍게 턱을 쓰다듬었다.
“자잘한 걸 빼더라도 제가 기억하는 것만 두 손이 넘어요.”
“하지만 다툼이 잦아도 두 분의 사이가 좀처럼 틀어지지 않는 걸 보면, 나름대로 관계가 유지되는 비결이 있는 거겠죠.”
“비결씩이나 될 만큼 거창한 건 없을 텐데.”
그는 누구나 아는 사실을 괜스레 거만한 척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보통은 그게 원인이니까요. 음악전 견해의 차이로 인한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대개는…”
“그럼요, 잘 알죠.”
대담의 끝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매듭지어졌다. 덧붙일 말이 생각나거든 언제든 연락하라는, 상투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멘트와 함께 인터뷰어가 본인의 연락처를 넘겼으나 정작 마이크는 건물 밖을 나온 직후 그의 얼굴을 거의 잊어버렸다. 두 블록 남짓 걸었을 무렵, 길가의 가판대 앞에서 그의 발걸음이 느닷없이 멈추었다. 낯익은 이름을 알아본 대가로 3달러를 지불한 뒤, 마이크는 집으로 돌아와 소파 위로 잡지를 내던졌다. 와중에 슬그머니 넘겨다본 전화기에는 아무런 부재중 메시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이크는 이 순간 그의 차가 브루클린과 스태튼 아일랜드를 왕복하는 어딘가의 도로 한복판에서 퍼져버리는 기막힌 우연이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스튜디오로 불러낼 때마다 뻔뻔한 낯짝으로 기름값을 뜯어가는 것까지는 이젠 그러려니 하지만… 먼저 연락하기 전까지는 죽어도 수화기를 들지 않는 심보만큼은 도저히 참작해 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이쪽만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제 기억으로는 틀림없이, 그때도 여태까지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말씨름을 하던 중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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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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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명 마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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