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드림 모음집]

[주술회전 드림] 사랑과 증오 사이

고죠 사토루 혐관에 지독한 애증 한 스푼

*고죠 사토루 혐관+약간의 게토 스구루 드림 포함 

*윤리관에 벗어나는 문장, 후반에 강압적 장면 주의

*테스트용

                                                                                                                        

 

 

 

1. 

도쿄 주술고전 입학식 첫날, 그는 나에게 말했다.

 

“니 부모 주저사였다며? 여기 들어온거 안 쪽팔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듯 말투는 가볍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눈빛은 그보다 더한 것을 쳐다보는 듯 했다. 

마주보려 올린 시선 끝엔 새파란 안광이 선글라스에 걸려있다. 그것은 내 숨겨진 부분까지 찾아내겠다는 듯 샅샅이 훑어내렸다. 그는 이미 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면전에 대고 저딴 무례한 질문을 하진 않았겠지. 매우 불쾌한 행동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당당했다. 뭐가 잘못된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것을 보고 있으려니, 그에게 악의가 있는지 없는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평생을 저렇게 살아온 것이다.

 

오만한 태도. 천한 이를 바라보는 시선. 자신이 걸어온 길은 절대 틀리지 않았다라는 저 자신감.

 

모두 하나같이 역겨웠다.

 

 

“어. 근데 옛날 고삼가는 근친도 했다던데. 니 부모도 그래?”

 

짝-! 그걸 들은 남자가 내 뺨을 내려쳤다. 

그것을 지켜보던 동기들이 하나같이 놀란 얼굴을 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말릴 새도 없었다.

나는 돌아간 고개 그대로 멈춰 상황을 인지했다. 왼쪽 뺨이 후끈거리고 입안에선 비릿한 피맛이 돌았다.

 

아...시발.

 

찢어진 상처를 둥글게 혀로 훑으며 욕을 짓씹었다. 한바퀴 돌아간 눈동자가 다시 앞을 향했다.

 

짝-!

 

여자가 똑같이 그의 반대쪽 뺨을 내리쳤다. 

탁, 쨍그랑! 그 충격에 그의 선글라스가 보기좋게 날아가 산산조각이 났다.

“이 미친년이…”

 

그가 바로 고개를 돌리고 나를 노려봤다. 눈빛은 금방이라도 나를 찢어죽일 것처럼 희번뜩했다. 순식간에 주변이 차가워지고 그의 주변에서 서늘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돌연 무거워진 공기에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곧이어 그가 여자를 향해 팔을 뻗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리만 빼고 피하며 코웃음 쳤다. 소년은 그 소리 하나까지 놓치지 않았다. 소년이 고개를 돌려 여자를 바라봤다.

 

피식-

 

비소. 그것은 명백한 비소였다.

하. 그가 눈을 밝히며 한쪽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다물린 어금니가 갈리고 턱에는 힘줄이 올라왔다. 

그가 다시 한번 나에게 팔을 뻗었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그가 나를 잡는데 성공했다.

 

 

 

나는 그에게 멱살이 잡히며 다시 깨달았다. 역시 나는 이런 애하고는 맞지 않는다고. 평생 인생의 풍파라곤, 약혼자 정하기나 점심 메뉴 고르기 정도일 뿐인 이 애는 일생이 절벽에 내몰려진 나와는 전혀 다른 류의 사람이었다.

자신은 태생부터 남들과 다르다는 저 얼굴. 남을 깎아내릴 권리가 있다는 것처럼 구는 저 뻔뻔한 낯짝을 뭉개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주기 전, 내 스스로 다짐했다.

절대로 저 새끼와는 상종을 하지 않겠다고.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져도 말이다.

 

 

 


 

 

그 일은 타이밍 좋게 들어오신 담임 선생님의 만류로 어느정도 일단락되었다. 입학식 날에 대차게 싸운 우리는 첫날부터 선생님의 긴 연설을 들어야했다. 몇 십분동안의 말을 듣고난 나는 교실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또 다시 누군가에게 불려가야했다.

주술고전의 학장이었다.

 

“한번 더 그 아이에게 그딴 말을 지껄이기만 해라. 네 남동생이 누구 덕분에 살아있는지 일깨워줄테니.”

  

학장의 말에 나는 조용히 입술을 물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목구멍을 거쳐 입에 다다랐다. 그 말을 몇 번이나 되내였지만 차마 입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결국 나온 말은 똑같았다.

 

“…네. 죄송합니다.”

 

그 이후로도 이어진 학장의 ‘정신 교육’을 몇 시간이나 듣고 나온 밖은 낮이 한창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썩 유쾌하진 않았다.

무거운 발을 이끌고 돌아온 교실엔 그 자식이 있었다. 자기가 없을 때 벌써 아이들과 친해졌는지, 얼굴은 더럽게 밝았다. 먼저 저에게 시비를 건 주제에 태평했다. 누구와는 전혀 다른 대우였다.

재수가 없으려니. 나는 떠들어대는 그 자식을 지나쳐 내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나를 본 게토 스구루와 이에이리 쇼코는 언제 그와 있었냐는 태도로 그를 버리고 나에게 다가왔다.

게토 스구루가 걱정이 서린 얼굴로 물었다.

 

“괜찮아?”

“아 어. 괜찮아.”

 

맞은게 괜찮냐는 건지, 그런 말을 들은게 괜찮냐는 건지 모르겠어서 잠깐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차피 상관은 없었고 대답은 똑같을 터였다. 저런 말을 밥먹듯이 들어온 나는 이 일이 전혀 개의치 않았다.

드르륵, 쾅!  곧이어 교실 문이 열리고 닫혔다. 꽤 요란한 소리에 나를 제외한 둘의 시선이 문쪽을 향했다. 문 너머로 뒤돌아 걸어가는 그가 보였다. 뒷모습도 성깔이 드러워 보였다.

그것을 본 게토와 이에이리가 나의 눈치를 봤다. 나는 곧바로 굳히고 있던 얼굴을 풀었다. 저런 애 때문에 애들까지 엮이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괜히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 것 같아 그들을 안심시키며 말했다.

 

“내 눈치 안봐도 돼. 나 정말 괜찮아.”

“...”

 

그렇게 말하는 소녀의 얼굴에 작게 미소가 서렸다. 그 옅은 미소에는 보이지 않는 다정함이 묻어있었다. 그것을 본 둘이 티나지 않게 놀랐다.

사실 아까까지만 해도 날카울거라 생각했던 소녀였다. 저렇게 웃는 그녀가 아까 그 눈하나 깜빡이지 않고 대들던 여자와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멈춰있던 공기가 풀리며 분위기가 한층 누그러졌다.

마음의 벽이 허물어진 둘은 여자의 눈높이를 맞추며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고죠 내가 혼내줄까? 말만 해.”

“뭐? 하하- 말이라도 고마워.”

“쟤 진심이야. 그리고 난 아까 너가 했던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 안해.”

 

오히려 통쾌했는걸?

 

이에이리가 그녀에게 마주 웃어보였다. 덩달아 소녀가 소리내어 웃었다. 그것을 본 게토 스구루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렸다.

 

 

2. 

 

고죠 사토루는 처음부터 나를 싫어했다. 그것은 제 동기도 알고 선생님도 알고 온 학교가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저런 애를 막 들여보내고. 고전도 제정신인가.”

 

저러다 주저사라도 되는거 아닌지 몰라~

 

그는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해댔다. 그 한 마디에 내 인생이 부정당했고 그의 말 하나로 이미 죽은 나의 부모가 몇 번이나 난도질 당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렇게 된 것이 모두 내 잘못이라는 것처럼 굴었다. 

그는 마치 내가 벌이지도 않은 살인을 저지른 사람인 양, 인간 이하의 것을 보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 그런 모습에 욱하던 것도 잠시, 난 학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한번 더 그 아이에게 그딴 말을 지껄이기만 해라.'

그리하여 난 방향을 바꾸었다. 그래. 그냥 처음부터 만날 여지조차 만들지 말자.

그렇게 그와 최대한 부딪히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같은 학교, 심지어 같은 반에서 아예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애초에 한쪽만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는 내가 그어놓은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으며 나의 신경을 건드렸다. 할 거면 해보라는 뜻이었다. 그런 저급한 도발에 곁에 있던 이들이 되려 미간을 찌푸렸다.

"와, 그럼 넌 주술사를 해도 패륜아인가? 뭘 하든 최악이라 고민할 필요는 없겠네.”

“어. 그러니까 너도 부모님 간수 잘해. 저번에 보니까 너 체술연습 좀 해야겠더라.”

느려터져서 깜짝 놀랐어. 굼벵이가 그것보단 낫겠던데.

하지만 항상 나는 그 도발에 넘어갔다. 아니, 도발에 넘어갔다기보다 덤벼오는 싸움에 친히 참여해준게 맞았다. 

왜 참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왜?라고 되묻고 싶다. 뭐 참으라면 참을 수는 있었겠지만. 내가 왜? 내가 왜 저딴 말을 듣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상층부에게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저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 가만히 있고 싶진 않았다.

 

그것은 내 남은 마지막 자존심과도 같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학장실로 불려갔다. 그들은 내 남동생을 가지고 협박하는 걸로 모자라 말로는 안되겠는지 나에게 혹독한 임무를 배정했다. 

배정된 임무는 항상 3급 이내의 상급임무들로, 주술도 형편없는 내가 혼자하기엔 벅찬 것들이었다. 그로인해 나의 육체와 정신이 점점 무너져갔다. 교복 안의 상처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그럴 때 내 눈 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아닌 게토 스구루였다. 그는 어떻게 내 상태를 그렇게 귀신같이 아는지, 항상 구급약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다른 손엔 소다와 감자칩도 함께였다.

그런 우리 둘을 본 고죠 사토루는 제 친우를 못마땅히 여겼다. 그리고 그는 제 하나뿐인 친우를 나무라기보단 나를 게토 스구루에게서 떨어트리려고 했다. 그 덕에 나는 지겨운 괴롭힘에 시달렸다. 그는 뭔가 우리 사이를 질투하는 것 같았다.

잠시만, '질투'? 

'질투'라는 단어에서 오류가 났다. 그런 그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아 내 멋대로 해석했다. '제 하나뿐인 친구가 살인자와 친해지는 꼴은 못 보는 건가.' 제일 그럴 듯했다. 자기 친구랑은 친해지지도 말라 이건가? 하, 내가 생각해도 악랄해 헛웃음이 나왔다. 

 

 

또 웃긴 얘기지만, 고죠 사토루가 나를 괴롭히며 나와 멀어질수록 나는 게토 스구루와 더 가까워졌다. 그는 제 무서운 친우의 시선에도 계속해서 나를 챙겨주고 도와줬다.

덕분에 우리는 한때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붙어지냈다. 애들 앞에서 그는 몰래 나에게 살며시 웃어줬다. 손으로 햇빛을 가려주고 얼굴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넘겨줬다. 처음 다가온 친절은 따뜻했고 꽤 포근했다. 

이런 건 처음이라 나는 그에 보답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최대한 임무에서 다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왜냐면 그는 항상 내 상처만 보면 슬픈 표정을 지었기에.

 

하지만 맹세코 그 이상으로 넘어가진 않았다. 우린 그저 좋은 친한 친구였을 뿐이다.

 

 

 

3.

 

“드림주, 여깄었네.”

“아 스구루.”

 

회전의자에서 장난을 치던 내게 게토 스구루가 다가왔다. 그는 내 입가와 눈 밑에 생긴 상처를 발견하곤 침울한 얼굴을 했다. 다친 건 나인데 왜 저가 더 아픈 듯한 얼굴인지. 주제를 바꾸려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도대체 내가 있는데는 어떻게 아는거야.”

“다 방법이 있지. 그러니까 숨길 생각 마.”

 

또 어디 다쳤어?

 

그가 내 손을 잡고 눈을 맞춰왔다. 그 시선을 피하려했지만 꽉 잡은 손이 너무나도 따뜻해서 마지 못해 무릎을 가리켰다.

그러자 게토 스구루는 내 허리위로 손을 올리더니 가볍게 나를 들어올려 옆에 있는 침대에 앉혔다. 순순히 치맛자락을 올리자 피딱지가 진 무릎이 보였다. 그가 놀란 얼굴로 옆에 있던 구급상자를 들고 의자에 앉아 몸을 낮췄다.

 

달그락,

 

“조금 따가울거야.”

 

차가운 알코올 솜이 상처에 닿았다. 시원함과 동시에 상처가 쓰라렸지만 내색은 안했다. 아픈건 익숙하니까.

 

그가 상처에 연고를 발랐다. 혹시나 아파할까 연약한 것을 다루는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엄청나게 집중했네. 나는 가만히 그를 내려다봤다. 그렇게 커보이던 게토 스구루도 위에서 보니 작아보였다. 이게 뭐라고 저 집중하고 있는 머리통이 웃겨 그의 동그란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갑작스런 행동에 게토 스구루가 멈칫, 하더니 계속해서 의료용 밴드의 포장지를 벗겨 상처위를 덮었다. 그 손바닥만한 밴드를 보며 내가 말했다.

 

“에, 누가보면 특급이랑 싸운줄 알겠다.”

“큰일날 소릴.”

 

그렇게 말한 게토 스구루는 한번 더 밴드를 손으로 지긋이 누르더니 이내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리에서 손을 떼냈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 ‘다음에는 안 다쳐올게’라고 해야지.”

“다음에는 안 다쳐올게.”

“전혀 못 믿겠는걸. 드림주 너, 저번에도 그렇게 말하다 다쳐왔으니까-”

“내가 그랬어?”

 

내가 머쓱해져 괜히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혼날 거 같았지만 그는 예상외로 웃으며 다정하게 답했다.

 

“응. 그랬지.”

 

이리와. 게토 스구루가 손짓했다. 난 그에게 다가가려 침대 끝에 걸터앉아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 밑에서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때 달갑지 않은 이름이 들려왔다.

 

“아직도 사토루와는 냉전중?”

“하. 냉전? 파국이다, 걔랑은.”

“흠 속은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던데... 사실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걸수도 있어. 드림주는 고전에 들어오기 전부터 유명했잖아.”

 

그저 표현이 서투른거지.

 

게토 스구루의 말에 내 미간이 좁혀졌다. 무슨 말이냐는 뜻이었다.

친해지고 싶다고? 누가 친해지고 싶은 애한테 그런 말을 해? 하루도 빠짐없이 내게 시비를 걸어온 건 누구고, 또 이런 신세가 된것도 다 누구 탓인데.

할 말은 많았지만 괜한 이에게 화만 낼 거 같아 조용히 가라앉혔다.

 

“참나. 표현이 서투르기는 무슨. 나한테 말만 잘하더만.”

 

입가에서 느껴지던 간지러운 손길이 그쳤다. 갑자기 조용해진 그에 천천히 눈을 떴다. 시야엔 금방이라도 닿을듯한 그의 얼굴이 보였다.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그가 진지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드림주, 나는 너가 너 자신을 돌봐줬으면 좋겠어. 우리한테 하는 것처럼.”

“...”

 

게토 스구루의 까만 눈동자에 내 얼굴이 반사되었다. 여기저기 다치고 피곤에 절여진 형편없는 얼굴이었다. 그것을 발견한 나는 순간 목이 매어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너가 요즘 그 애와 다툰다는 이유로 불려가는 걸 알아. 혼자 하는 임무가 늘어난 게 그 애 때문이라는 것도.”

“...”

“그러니까 나는 너가 사토루랑 화해했으면 좋겠어.”

"..."

"이렇게 말한다면 조금 이해가 갈까?"

 

 

이 아이는 나처럼 눈치가 빨랐다. 그렇지만 나와는 다른 결의 사람이었다. 내가 더러운 밑바닥에서 살아남으려고 아득바득 눈치를 길러왔다면, 이 아이에겐 그저 배려하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이렇게 반짝거릴 수 있지. 검은 동공이 따뜻한 감정으로 넘실거렸다.

 

 

“...미안 스구루. 너도 날 잘 알잖아. 다른 앤 몰라도 난 절대 걔랑은 친해질 수 없어.”

 

 

나의 말에 그가 걱정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애써 그 시선을 피했다. 차마 이 말을 그의 얼굴을 보고 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나는 너가 더 우선이니까. 게토 스구루가 나의 고개를 돌리며 마주보고 작게 웃었다. 평소와 같이 따뜻한 행동이었다. 게토 스구루는 말 한마디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제 사람을 위해서라면 뭐라든 나설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똑같았다.

 

“고마워.”

 

그의 앞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

 

그렇게 우린 한참을 서로의 손을 마주 잡고 이야기를 나눴다. 취미는 무엇이고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맛은 무엇이고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와 같은 시시콜콜한 대화였다.

그래서 우리는 문 앞에서 느껴지는 인기척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 검은 인영은 꽤 오래 보건실의 문 앞에 있다 자리를 나섰다.

 

 

그 다음 날부터 이상하게 고죠 사토루의 괴롭힘이 멎었다.

 


“뭐야. 고죠, 이 밤에 너가 왜 여길?”

“...”

“너도 보건실 온거야? 드림주도 왔다던데, 혹시 봤어?”

“그 빌어먹을 녀석 얘기 꺼내지마. 기분 더러우니까.”

 

고죠 사토루는 그렇게 말하며 이에이리 쇼코를 휙, 지나쳤다. 또 뭐가 마음에 안드는지 잔뜩 화가 난 얼굴이었다.

 

“..또 왜 저래.”

 

이에이리 쇼코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까지 저렇게 굴 건지. 훈련 때 드림주만 보고 있으면서.

 

드림주는 확실히 소문대로 체술에 능했다. 얼마나 능하냐면, 어린 최강을 놀래킬 정도였다. 그것을 증명하듯 첫만남의 드림주는 고죠 사토루와의 싸움에서도 상처 하나없이 그를 압도했다.

 

이에이리 쇼코는 체술 훈련 때마다 드림주에게 눈을 못 떼는 고죠 사토루를 보았다. 그건 체술 훈련 뿐만 아니라 어느 때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상하게 그녀를 의식했다. 그것을 눈치챈 이에이리는 그 다음부터 드림주를 못살게 구는 고죠 사토루를 쓰레기,라 명칭했다.

 

자기자신의 마음을 의식하지도 못하는 제 친우는 너무나도 어렸다. 저걸 다 받아줘야하는 드림주가 불쌍했다.

 

 

4. 

 

고죠 사토루는 여자를 보면 짜증부터 냈다. 여자는 술식도 형편없고, 주력도 쥐똥만한 주제에, 화내는 얼굴은 꼴도 보기 싫게 생겼다. 그녀는 마치 그가 싫어하는 유형을 한데 모아놓은 사람 같았다.

무엇보다 그녀는 주저사의 딸이었다. 그것을 티라도 내듯 얼굴은 무감각한 표정에, 눈동자에는 생기도 없었고 재미도 없었다. 평생을 지루하게 산 사람마냥 처음해보는 것 투성이었고 매사에 예민하게 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오직 자신에게만 한정이었다.

 

그녀는 사실 잘 웃는다. 뭐가 좋다고 저렇게 웃어대는지. 자신에게는 웃어준 적도 없으면서. 저런 얼굴을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지어줄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나빴다.

 

또 그녀는 악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선안에 있는 사람들을 지극히도 아꼈다. 그녀는 주저사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감시를 받고 탄압받았다. 자신말고도 그녀를 무시하는 사람은 주술계에 널려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눈길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곁에 있는 이들을 챙겼다. 고죠 사토루는 저것이 얼마나 갈지 예상하다 그만두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림주는 훈련을 할 때면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굴었다. 평상시엔 온통 답답하고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는, 몸을 움직일 때 진심으로 자유로워보였다. 그걸 본 고죠 사토루는 심드렁했다. 어차피 저 웃음은 평생 받아보지 못할 것이었다. 얼마못가 여길 뜰게 뻔하다는 생각을 했다. 

 

유독 그녀는 게토 스구루와 붙어다녔다. 임무도 항상 둘이서하고 끝나고 밥을 먹으러가는 것도 항상 둘이서였다. 

뭐지? 불쾌한 감정이 온몸을 지배했다. 둘이 붙어 있는 모습만 보면 이상하게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여자가 혼자 임무를 나가기 시작하더니 몸에 자잘한 상흔들을 달고 돌아왔다. 상처들은 매번 새로 생기는 바람에 나을 새가 없었다. 고죠 사토루는 그것마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훈련 때 보여주던 실력은 어디두고 어디서 저렇게 다쳐오는지. 그의 눈길이 여자를 향했다.

 

하지만 그냥 무시했다.

 

알아서 하라 그래. 지도 자기가 잘난 줄 아는 사람인데.

그녀는 자기가 하는 말이라면, 걱정하는 말에도 화를 낼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보건실에서 게토 스구루와 드림주의 대화를 듣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고죠 사토루는 그녀만 보면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뱃속에서부터 올라온 그 느낌은 처음 느껴본 것이라, 그는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드림주의 임무의 강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학교에서도 그녀를 보지 못하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오며가며 어쩌다 마주친 여자는 흐린 미소를 띄우며 저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자는 시시한 농담을 치며 아이들을 달랬지만, 그런 그녀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이 위태로워 보였다.

이제 그녀는 고죠 사토루의 도발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고죠 사토루는 그것을 이상하게 여겼으나 딱히 말을 꺼내진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일이 터졌다.

 

고죠 사토루는 연락을 받고 드림주의 임무지에 도착했다. 별다른 말 없이 최대한 빨리 와달라는 보조 감독의 문자가 핸드폰 화면에서 반짝였다.

 

“…뭐야?”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희미한 숨소리는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힘들어보였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고 보조 감독은 와이셔츠 차림으로 그녀의 복부를 지혈하고 있었다. 그의 손은 이미 여자의 피로 흠뻑 젖어있었다.

 

쿨럭-, 소녀가 크게 기침했다. 그녀의 입에서 새빨간 선혈이 터져나왔다. 지혈하는 정장 너머로 울컥 피가 솟아나왔다. 그 밑에 있던 피웅덩이가 점점 더 커져갔다.

그 광경을 본 고죠 사토루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있었는지 손가락이 희게 질렸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고죠 사토루는 처음으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이게, 지금 무슨...”

 

임무를 하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게토 스구루가 달려왔다. 그는 피범벅이 된 교복을 입고 있는 소녀를 내려다봤다.

수술을 마친 그녀는 긴 잠에 빠진 사람처럼 평온한 얼굴이었다. 게토 스구루는 그 얼굴이 마치 죽은 것처럼 느껴져 불안함을 느꼈다.

 

“2급 주령의 임무였는데. 등급 측정 오류였던 거 같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

 

“몇 급.”

 

보건실에 누워있는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던 고죠 사토루가 첫 말을 내뱉었다. 그 냉정한 한 마디에 게토 스구루가 힐끗, 그를 바라봤다. 언제부터 서있었는지 피로 물든 교복이 그대로였다.

 

“네, 네?”

“몇 급이었냐고 묻잖아.”

 

귀가 먹은거야?

 

보조 감독은 그렇게 묻는 고죠 사토루의 얼굴을 보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소녀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어딘가 이상했다.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1, 1급이었습니다.”

“얘가 고작 1급한테 당할 정도로 나약하진 않아.”

“그게... 드림주 씨가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지랄하지 말고 제대로 말해.”

 

고죠 사토루가 짐승과도 같은 눈빛으로 남자에게 으르렁거렸다. 남자는 몇 번 주저하던 끝에 입을 열었다.

 

“일반인이 휩쓸리는 바람에, 드림주 양이 그 분을 구하려다 공격을 맞았습니다. 덕분에 그분은 무사하ㅅ,”

 

쾅-!

 

고죠 사토루가 제 분에 못이겨 문을 박차고 보건실을 나갔다. 옆에 있던 게토 스구루가 마른 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에게 절망이 찾아왔다.

 

 

 

5.

 

그녀가 다시 깨어난 것은 3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

“와, 미친. 깜짝이야.”

“쇼코, 나 물,좀..”

 

물을 건네는 쇼코에 컵을 받으러 몸을 일으키자 복부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헙. 힘주지 않는게 좋을걸 꼬매놓은거라. 반전술식은 만능 아니었어? 완벽하게 낫진 않아. 

몸에 힘을 빼고 천천히 물을 삼켰다. 컵의 물이 바닥을 보이고 쇼코는 나의 컵을 받아들었다. 그녀는 폴더폰을 열어 자판기를 몇번 두드리며 나에게 말했다.

 

“둘이 난리났어.”

“둘? 누구?”

“누구겠냐.”

 

저 ‘둘’이란게 혹시 내가 아는 그 ‘둘’이 맞나 의심했다. 한 명은 짐작이 가지만 나머지 한 명은 이해가 가지 않아서였다.

 

“너 말 잘해라.”

 

드르륵-

 

“둘 다 개빡쳤거든.”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그녀 뒤로 보건실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럼 대화 잘 나눠. 무시무시한 얼굴로 들어온 게토 스구루를 보고 놀라 이곳을 나가는 쇼코를 붙잡지도 못했다. 아, 가지마..! 

 

“...”

“...”

 

나는 죄인이 된 사람처럼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지도 못하고 조용히 바닥만을 쳐다보며 그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슬쩍 본 그의 얼굴은 며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안색이 처참했다. 이런 처지가 된 나도 저것보단 몰골이 괜찮았으니 말 다했지.

 

“저, 게토..”

“…내가,”

“응?”

 

“내가 그날 너에게 너 자신을 돌보라는 말을 더 강하게 했어야 했나봐.”

“...어?”

“그 말로는 부족했니.”

 

그래서 그런거니?

 

어딘가 물에 잠긴 듯한 어투였다. 그가 말 끝을 흐리며 두 손을 올려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내가 놀라 그의 팔을 잡고 내렸다. 그의 팔은 내 손짓 하나로 쉽게 내려갔다.

두 손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에선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나 때문에 울고 있었다. 

그것을 본 드림주가 눈에 띄게 당황해했다. 처음 보는 그의 약한 모습이었다. 그제서야 드림주는 이 아이에게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스구루.. 내가 다 미안해.”

 

나는 그를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이런 거 밖에 없어 미안할 뿐이었다.

 

 

 


 

 

깨어나자마자 여자는 학장실로 불려갔다. 나에게 한참을 안겨있던 게토 스구루는 이제야 좀 진정이 됐는지 이 말을 전해듣고 차가운 얼굴을 했다. 얘가 이렇게 표정이 많았나. 또 다른 비밀을 알게 된 것 같아 신기했다.

 

 

“이제부터 임무 개수를 줄여주겠다. 어찌됐든 좋게 끝났으니 다행이지. 너에게도 좋은 경험이었을테니 그냥 넘어가고. 이제 가서 쉬어라.”

“...네.”

 

감사합니다.

 

이젠 너무 익숙해서 화도 나지 않았다. 이미 당한게 많아서 그런지 머릿속은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다. 습관처럼 입에 발린 말을 하고 학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그 앞에는 고죠 사토루가 서 있었다.

 

뭔가 나에게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나는 이미 많은 사건으로 그를 상대할 힘도 없었다. 무시하고 지나가려는데 그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다가와 나의 어깨를 잡고 벽으로 밀쳤다. 그것은 눈 깜빡한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상황파악도 하기 전, 그는 내가 도망가지 못하게 손으로 벽을 짚어 팔로 나를 가뒀다. 그가 상체를 낮추자 선글라스도 없는 맨 얼굴이 보였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거리에 나는 시선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그를 바라봤다. 푸른 눈동자가 오묘한 빛깔을 냈다. 게토 스구루와는 전혀 다른 눈동자였다.

 

“너 병신이야?”

 

그는 다짜고짜 욕을 해왔다. 고죠 사토루의 언행은 평소와 같이 재수없었으나, 주위에 흐르는 공기가 조금 달랐다. 그것은 더 낮고 분노를 억지로 삼키는 어투였다. 원래라면 벌써 화를 내고도 남았을텐데. 화를 내지 않는 그가 조금 이상했다. 그는 금방이라도 날 삼켜낼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꺼져.”

 

하지만 난 그런 그가 단 1도 무섭지 않았다.

 

 

 

 

 

6. 

 

학장과 드림주의 대화를 밖에서 듣고 있던 고죠 사토루가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절대로 웃겨서 웃은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딴 대화를 해왔던 거야? 그리고 저런 말을 듣고도 계속 나한테 덤볐던 거고? 갑자기 이유모를 짜증이 솟구쳤다. 그래서 그는 드림주에게 강압적으로 굴었다.

 

“너 왜 가만히 있어? 나한테 했던 것처럼 굴라고.”

“뭐?”

 

그녀는 저딴 말 같지도 않은 말에도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평온히 그 말을 들었다. 또 그에 그치지 않고 여자는 감사하다는 헛소리까지 뱉었다. 

평소에도 여자는 항상 툭하면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시 돌아오는 그녀의 표정이 항상 어두운 것을 보아 학장실에 불려간건 눈치챘지만 저런 개소리를 듣고왔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방금은 자신이 난리를 피우고 난 후라, 원래는 더하면 더했지 이보다 덜하진 않았을 거였다.

왜 그런 말에 가만히 있어? 왜? 너 나한테는 잘만 덤벼왔잖아.

고죠 사토루는 불쾌했다. 그녀가 학장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하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됐다.

 

“다들 잘한다 하니까 눈에 뵈는게 없지? 너가 뭐라도 된 줄 알아?”

“또 무슨 개소리야.”

“역시 이런 일에도 배운게 없는 걸 보니 그 부모에 그 자식인가 보네.”

“..뭐?”

 

그는 어떻게서든 그 불쾌한 감정을 떨쳐내려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평소에도 그녀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으니,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도 그와 비슷했다. 그리고 그것은 드림주의 가슴에 꽂혔다.

 

똑같은 레파토리다. 이제 그녀가 자신을 향해 뭐라고 할 차례였다.

 

“하.. 말을 말자. 이제 니 마음대로 해.”

 

 

하지만 여자는 매서운 눈을 거두고 손으로 눈가를 짓누르더니, 자신의 팔을 쳐내고 복도를 나섰다. 예상을 벗어난 행동에 고죠 사토루가 벙찐 얼굴 그대로 서있었다. 혐오, 증오, 멸시. 그 모든 것을 겪어봤지만 이런 건 처음이었다.

포기하는 것 같기도, 체념하는 것 같기도 한 그 귀찮은 한숨에, 고죠 사토루의 몸에서 피가 모조리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대신해 온몸에 불안함이 급습했다.

고죠 사토루는 그런 그녀의 무관심이 죽기보다 더 싫었다. 차라리 저 눈으로 자신을 죽여버릴듯이 바라봤으면 했다. 

 

그가 뒤 돌아가는 드림주의 팔을 황급히 부여잡았다.

 

“너 죽을 뻔했어. 알아?”

 

여자의 발이 멈췄다. 하! 그 말을 들은 여자가 표정의 변화없이 크게 한번 웃더니 자신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의 팔을 탁, 떨쳐냈다.

 

“그럼 그때 죽게 내버려두지 그랬어.”

 

여자가 뒤를 돌아 다시 가던 길을 갔다. 그와 동시에 고죠 사토루가 참아왔던 무언가가 터지면서 그의 이성이 끊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돌아서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머릿속에는 단 한가지 생각 뿐이었다. 

무시될 바에야, 차라리 잊지 못할 정도로 각인되고 말거라고,

그리고 언젠가 저 무표정을 무너뜨리겠다고.

오직 그 생각으로 그는 긴 다리로 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가 다시 한번 그녀의 팔을 움켜잡고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에 드림주의 몸이 휙 그에게로 쏠렸다.

 

“뭐하는-,”

 

드림주의 뒷말은 순식간에 겹쳐오는 고죠 사토루의 입술에 막혀 나오지 못했다. 여자는 눈 앞에 보이는 푸른 눈동자를 보고 눈을 키웠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 머리로 이해하려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팔로 그를 밀어내려해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의 몸부림을 버텨낸 그는 전혀 물러나지 않을 것처럼 한 손으로 나의 허리를 감아올렸다. 옷깃 너머로 느껴지는 그의 체온에 본능적인 거부감으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것을 느낀 그가 자신의 턱을 잡아 고정시켜 아랫입술을 베어물더니, 이내 진득하게 빨아올렸다. 그 감촉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이 미친 새끼가- 진심으로 그를 밀어내자 그는 턱을 잡고 있던 손의 엄지를 끌어올려 내 입가에 난 상처를 손끝으로 주욱 긁어내렸다. 

아. 갑자기 느껴지는 통증에 입을 연 사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그가 두터운 혀를 내 입 사이로 밀어넣었다. 생소한 그 감각에 내가 눈 앞의 그를 바라봤다. 이 와중에도 그는 두 눈으로 내 반응을 계속해서 보고 있었다. 맞닿은 얼굴 너머 보이는 눈빛에는 이유모를 열기가 느껴졌다. 온통 시야를 채우는 것은 그의 집착어린 눈동자라, 제정신을 붙잡기가 힘들었다.

그와의 첫키스는 비릿한 피맛이었다. 

처음 그와 만났을 때 느꼈던 그 맛이다.

몇 번의 키스 끝에 숨이 딸려 그를 밀어냈다. 한번 더 내 상처를 엄지로 훑은 그가 내게서 멀어졌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이 은색실처럼 길게 늘어졌다. 들리는 것은 서로의 녹진한 숨소리 뿐이다.

고죠 사토루가 엄지로 자신의 입술을 닦아냈다. 내 피가 번져나간 붉은 입술이 선정적이었다. 

“이, 미친, 새끼가..”

 

내 말에도 그는 자신이 이긴 것처럼 웃었다. 그녀는 저 얼굴을 뭉개버리고 싶었다. 

지지 않겠다는 의미로 그의 뒷목을 끌어당겨 다시 한번 더 입을 맞췄다. 이번에는 우리 둘 다 열정적이었다. 그때 여자가 남자의 입술을 깨물었다. , 남자가 신음을 냈다.

팍-

나는 그의 가슴팍을 밀쳐내고 입가를 팔로 훔쳐 닦았다.

고죠 사토루의 입술에 피가 송글송글 맺혔다. 그것을 본 내가 입꼬리를 올렸다. 내 미소를 본 그가 눈을 키우더니 덩달아 씩 웃으며 말했다.

 

“넌 죽어도 나한테 죽어.”

“말은 제대로 해. 너가 죽이는 게 아니라 내가 죽어주는 거야.”

 

그러니까 이건, 지독한 애증이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