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W2] X스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

모두가 불행하고 글쓴 놈만 행복한 연성

container by orchest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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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앨런 웨이크 2〉 사가 파트의 챕터 1~4와 앨런 파트의 챕터 1~3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사가 앤더슨은 총알이 빗발치는 숲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총성 탓에 고막이 찢어질 듯이 아팠지만, 사가에게는 엄살을 부릴 틈이 없었다. 적은 너무나 많았고, 아군은 케이시 단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사가는 앨런을 찾아야 했다…. 사슴 가면을 쓴 덩치에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기 전까지는.

사가 앤더슨, FBI 요원.

앨런 웨이크, 소설가.

너희는 감금됐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여기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대로 계속 기절해 있고 싶을 정도로 편안했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 사가는 테니스 코트만한 방 한가운데에 아무 결박도 없이 방치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분명 일반적인 납치와는 상황이 달랐다. 인질의 손과 발을 풀어두는 걸로 모자라, 호화스러운 침대에 모셔두는 납치범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비록 소지품 대부분은 털어갔지만 말이다. 이상한 점은 한둘이 아니었다. 납치범이 보이지 않을 뿐더러, 방 전체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마치 현실로부터 격리된 꿈 같은 공간이었다.

침대의 발치 쪽 벽에는 문처럼 보이는, 그러나 제대로 된 문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한 것이 달려 있었다. ‘문’은 이음매도 없이 벽에 꼭 끼어 있어서, 문이라기보다는 벽에 난 구멍을 땜빵한 것처럼 보였다. 손잡이나 잠금 장치가 부착되어 있어야 할 부분은 터무니없이 매끈했고, 요철이 있는 부분은 사가의 눈높이 약간 위에 걸린 현판이 전부였다. 사가가 ‘문’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자 현판에 적힌 글귀가 눈에 띄었다.

섹스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

“섹스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 사가는 무심코 따라 읽었다. “그런데 누구와?”

“저 말고 다른 후보가 없을 것 같네요.”

뭐?” 사가는 권총을 뽑으며 뒤돌아섰다. 찰나의 순간, 사가의 머릿속에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이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총구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익숙한 얼굴의 중년 남자가 있었다.

“망할, 웨이크! 자리에 있으면 인기척을 좀 내요!”

“그러려던 참이었어요.” 앨런은 미안한 기색도 없어 보였다. “당신이 의식을 잃은 동안 이 방을 조사해봤는데, 여기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원고도 없고, 타자기도 없고, 며칠 버틸 식수가 전부에요.”

“이것도 당신 소설의 일부인가요? 지금 상황이 공포 소설에 어울릴 것 같지는 않은데요.” 사가는 어깨를 으쓱했다. “범인이 누구고 왜 이런 짓을 했던 간에, 이럴 시간이 없어요. 내 동료가 위험하다고요.” 기절한 뒤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혹시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

“힌트가 있어야 탈출할 수 있어요. 범인의 의도를 알면 도움이 되겠죠.” 앨런은 멍하니 현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호수에서 발견된 이후로 그는 대화 상대와 눈을 맞추기 힘들어했다. “이 비현실감이 낯설지 않아요. 분명 이 감옥은 현실 조작으로 만들어졌을 거에요. 하지만 납득이 안 돼요, 개연성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방이 생겨난 건지….”

사가는 FBC의 동요 퍼즐을 떠올렸다. 현실 조작의 원리는 간단했다. 이야기를 지어내고, 의식을 치르면 그 이야기가 현실이 된다. “이야기가 필요하겠군요.”

솔직히 말해, 사가로서는 이야기를 어떻게 지어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공상은 사가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납치범의 신원은 짐작도 가지 않았지만, 변태적인 포르노 취향을 가진 얼간이라는 점 하나는 단언할 수 있었다. 아마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유형의 인간일 것이다. 그런 자의 상상력을 뛰어넘기에는 사가가 너무 상식적인 사람이었고, 한가롭게 인터넷 서핑에 열중하다가 ‘섹못방’이라는 클리셰를 알게 되기에는 너무 짊어진 책임이 많은 서른다섯 살이었다. 그래서 사가는 ‘넌 할 수 있어’ 표정으로 앨런을 바라보았다.

“자, 웨이크 씨. 우리가 섹스를 하지 않고 안전하고 신속하게 이 방에서 탈출히는 이야기를 지어내봐요.”

사가가 눈을 깜빡였다.

앨런은 눈을 끔뻑였다.

“못 해요.”

“그게 무슨 말이죠?” 사가는 귀를 의심했다. 왕년의 베스트셀러 작가 수준이 고작 이 정도란 말인가?

“원래 이야기가 무슨 장르인지 모르잖아요. 이야기로 현실을 조작하는 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앨런이 말을 이었다. “이야기가 현실이 되려면 완벽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장르의 규칙을 완벽하게 숙지해야 해요.”

맙소사, 앨런 웨이크는 지독한 문학 꼰대였다.

“문학에 대해서는 저보다 당신이 더 잘 알 텐데요. 어떤 장르인지 감이 잡히지 않나요?”

앨런은 비참하게 신음했다. 에로티시즘은 그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13년 동안 호수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던 77년생 중년 남성으로서는 팬픽션 창작에서 ‘섹못방’이라는 클리셰가 널리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도리가 없었고, 이 소재가 차용된 작품 일부는 클리셰를 한번 더 뒤집어 등장인물 간의 성관계 없이 끝난다는 사실은 더더욱 몰랐다. AO3의 존재를 알고나 있으면 그게 대단한 거다.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우리를 여기 가두는 데 쓰인 내러티브는 포르노그래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섹스를 피할 방법이 근본적으로 없어요.”

“잘라 말하지 말아요.” 사가가 밥맛이 뚝 떨어진다는 듯이 잘라 말했다. “혹시 모르죠, 이 이야기가 코미디 쇼 각본일지도?”

“그렇다면, 모든 시도가 허사로 돌아간 끝에 우리는 마지못해 방의 지시를 따르게 될 거고 마침내 문이 열리겠죠. 우리는 빠져나온 다음에야 진짜 문이 ‘문’ 옆에 따로 있었다는 걸 깨닫고요.”

“젠장, 내가 도우려 하고 있잖아요! 왜 계속 그런 결말에 도달하는 거에요? 정말 당신이 이 방을 만들지 않은 게 맞아요?”

“난 아내가 있어요!” 앨런이 역정을 냈다.

그가 무심코 뱉은 말이 사가의 역린을 건드렸다. 웨이크는 사가의 앞에서 가족을 들먹일 권리가 없었다.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당신만 결혼한 줄 알아? 내겐 딸이 있어! 당신이 공포 소설 속에 멋대로 집어넣은 딸이!” 웨이크의 모든 것이 사가를 화나게 했다. 그를 노려보기 위해 고개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그랬다 (그는 사가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컸다). “이 자식이…, 지금 내 딸은 당신 때문에 목숨을 잃게 생겼는데, 당신은 당신 기분이 제일 중요해? 우리는 당신 소설의 캐릭터가 아니야!” 사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다행히 외간 개새끼 앞에서 눈물을 흘릴 만큼 충분히 고이지는 않았다.

“로건은 이제 겨우 열세 살이에요. 그렇게 어린 애를 장난감처럼 쓰고 버렸으면서, 아무 죄책감도 못 느끼나요?”

앨런은 제자리에 돌처럼 굳었다. 앨런은 죄책감을 느끼려고 애썼다. 자신이 희생양 삼은 소녀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그 자신을 위해서라도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자기 연민밖에 남지 않은 괴물이 될 수는 없었다.

“…미안합니다.”

사과가 무색하게도, 별다른 소득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앨런이 공포 소설의 클리셰를 바탕으로 몇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지만, 방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동안 넉넉한 편인 사가의 인내심조차 서서히 바닥을 드러냈다.

만약 그들이 갇혀 있는 이야기가 정말로 포르노라면 주어진 선택지는 사실상 하나뿐이었다. 포르노에서 섹스를 빼면 남는 게 뭘까? 이야기의 본질이 포르노인 이상, 서론을 늘려 봤자 쓸데없이 시간만 죽이는 꼴이다. 사가는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몇 번 반복한 다음, 간신히 태연한 척을 하며 입을 열었다.

“웨이크 씨… 이 방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함구해줄 수 있어요?”

“…”

“스크래치의 손에 넘어가기 전에, 우리가 원고를 찾아야 해요. 시간이 없어요….”

사가가 앨런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앨런은 늑대 앞의 사슴처럼 뒷걸음질치더니, 때마침 그의 바로 뒤에 있던 침대에 걸려 뒤로 넘어졌다. 앨런이 일어나려고 버둥거렸지만 사가가 한 발 더 빨랐다. 사가는 앨런의 위에 올라타고 그의 양 손목을 찍어눌렀다.

“정말 이러기에요? 나도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고요.”

“그게 아니라…. 사가, 들어봐요!”

사가가 방심하는 틈을 타 앨런이 양손을 뿌리쳤다. 그 바람에 사가도 매트리스 위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찰나의 순간 동안 사가는 자신이 앨런의 바로 위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다크 플레이스의 힘으로 현실을 바꾸려면 예술이 필요해요. 진짜 예술이요. 그리고 대부분의 포르노는 예술성이 기준 미달이죠….”

“그러면 진짜 장르는 뭐죠?”

“사가, 당신이 말한 대로에요. 코미디요. 코미디는 그 어떤 장르보다 더 성을 자주, 공개적으로 다뤄요. 섹슈얼리티와 성적 욕망은 보편적인 유머 소재고요. 이야기의 원본이 무엇이었던 간에, 그걸 비틀어서 코미디로 만들면 돼요.” 앨런은 잠시 망설이다 덧붙였다. “진짜 섹스는 배제하고요.”

사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상황을 재연할 수 있겠어요? 당신이 침대 위로 나동그라지는 모습이 상당히 우스꽝스럽긴 했거든요.”

앨런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저보고 슬랩스틱을 하라고요?”

사가는 침대 가장자리에 말라 비틀어진 물티슈처럼 앉아 있는 앨런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태어나서 한 번도 웃어본 적 없는 사람의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유머러스한 사람이라도 13년 동안 고립되어 있다가는 저렇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서 즉흥 코미디를 벌인다면, 극을 주도할 사람은 사가일 수밖에 없었다.

“웨이크 씨, 만약 우리가 이 방에서 나갈 방법이 정말로 섹스밖에 없는데, 우리가 섹스를 할 수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해가 안 돼요….”

“문자 그대로, 우리에게 성관계를 맺을 능력이 없는 거에요. 가령 당신이 치료 불가능한 발기부전에 걸렸다던가—”

“아닌데요.”

“그냥 그런 설정이라고 가정하는 거에요. 음경왜소증보다는 낫잖아요….”

“저희가 만든 이야기가 현실이 된다는 거 기억해요, 사가?”

앨런이 다급하게 사가의 말을 잘랐다. 그는 이제 정말로 표정이 안 좋아 보였다.

“당신의 별로 쓸 일도 없었을 고추 하나 희생해서 무고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난 기꺼이 그렇게 하겠어요.” 앨런이 진지한 것만큼이나 사가도 진지했다. “발기부전에 걸린 중년 남성이 발기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더 웃기는 상황을 생각해 낼 수 있어요? 지금 당장?”

사가가 총구를 앨런에게 겨눴다.

“전 이제 더 못 기다려요.”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남자다운 행동이 수컷이길 포기하는 거라, 이거지. 아이러니에 처한 당사자가 아니었더라면, 앨런은 정말 오랫만에 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마침내 ‘문’이 열렸을 때, 사가와 앨런은 자신들이 브라이트 폴즈 인근의 한 오두막에 감금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깥에서 본 오두막은 테니스 코트 넓이의 절반도 되지 않을 만큼 작았지만 분명히 그랬다. 사가가 나왔던 문을 닫고 다시 열었을 때, 오두막 내부는 때묻은 집기로 가득한 평범한 오두막으로 변해 있었다.

“앨런, 우리가 즉석에서 만든 코미디가 통했던 걸까요? 아니면 우리의 창작 과정까지도 납치범이 쓴 각본에 있었던 걸까요?”

“모르겠네요….”


처음 쓴 레메디버스 연성이 이런 거라니….

2차비엘에 나름 관대한 편인데, 남자주인공의 흐드범수화만은 어째서인지 너무나 못마땅하다. 너무 상인간이라서 호방하게 수가 되는 흰동가리존에 있는 수 같은 건 괜찮음. 주인공은 공이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지는 않고, 주인공 주제에 버릇없이 흐드러져서 깁달라고 드러눕는 꼴을 보기가 싫다.

남자주인공은 주인공인 것 그 자체만으로도 온 우주에게 깁을 받는다. 주인공은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사실 잘난 녀석이지만 평범한 척을 해도, 혹은 대놓고 잘나가는 인간이어도, 심지어는 객관적으로 못났거나 부도덕한 구석이 있어도, 정당성이 있는 한 사람들은 주인공의 여정을 함께하며 결국에는 그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시련을 좀 겪긴 해도, 그거 따악 극복할 수 있을 만큼만 겪는 거잖아. 그런데 이렇게 어화둥둥받는 것도 모자라서 더 달라고 드러누워?

컨트롤 2〉의 출시까지의 과정이 순탄하고 안전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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