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1
사건사고는 왜 한 번에 이렇게 터지는지
사실 게임 길드 내에서 지난 달 내내 아가 하나를 잡고 씨름을 했어요. 이제 갓 성인이 된 아가…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몇가지로 요약을 하자면 심각하게 눈치가 없어서 주변 사람에게 불쾌한 질문을 일삼고, 자기 포지셔닝을 못하는 것. 게임에 지나치게 열중한 나머지 게임 내 전투력과 레벨로 부심을 부리고 다니는 것. 혼잣말인 척 수동공격 하는 것. 정도의 문제가 있었는데요.
저와 친구들이 안타까워서 정말 반 년은 아가를 붙잡고 바깥 세상을 살아야한다, 이건 지금 상대가 불쾌해하는거다 이런 질문은 실례가 된다, 너 지금 수동공격 중이다… 좋게 타이른 적도 많고 놀아주기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우리 아가가 말을 알아듣는 게 아니라 엇나가더라구요. 형, 누나들이 다 나한테만 뭐라고 한다! 나만 잘못한 거 아닌데 억울하다! 이렇게.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아직 미숙한 본인을 새 간부로 뽑아주지 않았다고 온 사방에 투덜거리고 불만을 표하고 새로 온 간부 뒷담하기. 레이드에 연속으로 깜박 잠들었어요 같은 이유로 지각하더니 공대장이 내쫓으니까 사과하러 가서 사과 왜 안 받아주냐고 이런 식이면 나도 님이랑 말 안한다고 14살 연상 형님인 공대장한테 패악질하기. 길드 내 여자분이 누구랑 같이 있기만 하면 누구님이랑 사귀냐고 계속 물어보기. 길드 내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내보낸 사람 자기는 그 분 존경하는데 억울하게 나갔다고 계속 언급하기… 아가가 길원들이랑 부딪칠 때마다 친구들이 커버도 쳐주고, 그러면 안된다고 타이르고 가르쳐보고…
매번 일이 터질 때마다 토닥이던 친구들이 지난 달 쯤에는 이제 학을 떼더라구요. 아가는 아가대로 완전히 엇나가서 수동공격은 심해지기만 하고 그렇다고 또 다른 길원과 친하게 놀기에는 많은 분들이 피하고… 끝내주는 한 달을 보내고 나서 친구들이 아가 저거 절대 안바껴. 뭔 말을 듣질 않네. 하고… 사실 머… 저희도 이 정도면 충분히 해줬다고 생각하고… 또 한 편으로 이 모든 반복훈련이 무의식 어딘가 잠들어있다가 본인이 그렇게 애착을 갖던 겜생의 길드 강퇴와 함께 폭발하면서 큰 깨달음으로 돌아오길 바랐어요. 그렇게 강퇴당한 아가는 그냥 잊어버렸는데요.
어제 게임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뉴비님이 길드에 들어오셨어요. 면접을 제가 봤는데요. 면접 중에는 크게 문제를 못 느꼈고 길드에 가입시켜주고 그대로 친구에게 인계해준 후에 저는 제 할 일 하러 나갔거든요. 지금 발등이 아니라 허벅지가 불타고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근데 새벽에 이 새로 온 뉴비님이 우리가 내쫓은 아가인 거 같다는 친구의 증언이 올라와있더라구요.
9월 9일에 캐릭터를 생성한 뉴비님이 우리 길드 마크를 달고 있는 아가에게 도움을 받아서 우리 길드에 왔다고 말하는 걸 증거로 캡쳐해서 들고왔는데, 그걸 보고 뉴비님에 대해 오전 내내 캐봤는데 양파가 따로없는거에요.
최초 의혹제기: 9월 9일 생성된 캐릭터가 9월 1일에 추방한 캐릭터가 우리 길드 마크를 달고있는 걸 볼 수 있을리가 없다.
의혹의 전개: 자신이 능숙한 건 이전에 타 서버에서 캐릭터를 키웠었기 때문이지만 타 서버에서 키우던 캐릭터의 닉네임은 기억이 안난다.
의혹의 심화: 사람마다 갖는 고유한 말버릇, 오타, 말투가 아가랑 동일하다.
안타까움: 아가가…ㅠ 아직도 그 어떤 길드에도 가입하지 않고 혼자 덩그러니 있다.
친구들은 사과도 없이 부계를 파서 없었던 일인 척 다시 다가오는 건 기만이다, 혹은 무슨 의도로 돌아오는지 알 수 없으니 위험하다. 친구들은 주로 이런 의견인데 저는 원래 사람을 안 따르면 모를까 사람을 그렇게 따르는 아가가, 게다가 사실상 MMORPG는 레이드 컨텐츠가 아니면 스펙업을 할 수가 없는데 열흘이나 길드에 들지 않고 있다는 게 참… 안쓰럽더라구요. 혼자 잘 살겠거니~하고 잊어버렸는데 막상 찾아보니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음침한 건 사실이죠.
차라리 본계로 은근슬쩍 다가왔으면 더 좋았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녁에 결국 다시 불러다 면접봐야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오랜 시간 케어한 아가가 가뜩이나 끝도 별로 안 좋았는데 재방송을 하려고 하니 마음이 편치는 않네요.
이 와중에 길마 자리에 앉아있던 친구녀석은 갑자기 이잉 나~ 여친이가 게임 그만하래~ 길마 안할랭~ 일년 반이나 된 오래된 창립 길원들 다 무시하고 지난 달에 들어온 뉴비님이 나랑 마음이 좀 맞는 거 같은데 그 분한테 길마 맡기면 안될깡~? 이런 속 편한 소리나 하고 있구요. 이쪽은 아가도 아니라서 봐줄 이유가 없으니 다같이 모여서 실컷 말로 때려줬습니다. 만나면 현피도 뜨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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